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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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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9일 11시 22분 등록

 

1. 에이미 추아

 책의 뒷 날개에 나와있는 저자의 지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예쁜 사진과 함께 그녀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엄친딸 (엄마가 자녀를 나무랄 때 비교대상이 되곤 하는 이쁘고 똑똑하고 능력있는 착한엄마 친구의 딸, 실제 존재 유무는 알 수 없음) 같으니라구!!!’

 

세계적인 석학 에이미 추아 교수는 필리핀에서 이민온 중국계 미국인 2세로, 1987년 하버드 대학에서 국제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예일 대학교 법학교수로 있다. 1990년대 초 월스트리트의 법률회사에서 일하며 맥시코의 시장민영화를 도왔고, 1998년 아시아 경제위기 동안 세계은행에서 일했다. 국제 경영과 인종 갈등, 국제관계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로써 정치, 비즈니스, 학술 단체를 대상으로 활발한 강연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3년 출간한 저서 《불타는 세계》(World on Fire)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그 해 '올해의 책'에 뽑혔으며, 뉴욕타임스는 시장과 민주주의의 확산이 세계 평화와 번영에 필수적이라는 오늘날의 교의에 가장 극적인 반론을 펼친 책으로 호평했다.

<제국의 미래>는 제국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의 제국인 미국의 모습을 살피면서 역사 속 제국들의 공통적인 성공 비결이자 미국의 성장 비결이었던 관용을 잃어버리려 하는 미국의 현 위기 상황을 애정을 담아 경고하고 있다. 자신의 나라이자 또한 현재의 초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두려움이나 거침없이 비판과 경고를 쏟아내는 그녀의 모습에서 중국 당나라의 위상과 미국의 자유로움이 함께 느껴진다.

 

그녀의 아버지 레온 추아는 필리핀에서 태어나 자랐다. 가업인 알루미늄 깡통사업을 이어 받을 것을 거부하고 굳은 의지로 노력하여 MIT 입학 허가를 받아냈고, 미국으로 넘어와 어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 1971 UC 버클리 대학교의 교수로 초빙을 받았고 카오스 이론을 연구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레온 추아 교수는 그의 자녀들이 중국인으로써의 전통과 자긍심을 잃지 않으면서 훌륭한 인재로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엄격하게 교육했다.

에이미 추아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고 잘 따랐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던 아버지처럼 UC버클리에 진학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하버드 대학에 입학원서를 내고 입학허가를 받았고, “내가 죽기 전에는 중국인이 아닌 사람과 결혼할 생각을 하지 마라는 아버지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대계 미국인과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의 불복종은 결과적으로 아버지를 더욱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예일대 법대 동료 교수인 제드 러벤펠드(Rubenfeld)로 베스트셀러 소설 《살인의 해석》저자이기도 하다.

 

 

2. Day of Empire (내가 저자라면…)

 

넓고 깊은 연구와 통찰

 <제국의 미래>는 페르시아, 로마, 당나라, 몽골,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오늘날의 미국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의 제국의 흥망성쇠를 살피면서 그 곳에서 하나의 통일된 키워드를 뽑아내어 미래의 제국의 모습을 예견하고 있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다양한 제국의 모습을 살피면서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명쾌하다. ‘관용은 세계적인 패권 국가를 이루는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것, 그리고 오늘날의 초강대국인 미국을 가능하게 했던 것도 역시 관용이었으나, 현재 미국은 그것은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책은 5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 아닌 일반 2~300페이지 정도의 교양서적으로도 충분히 만들어 질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에이미 추아 교수는 각 시대 제국의 이야기를 관용의 관점에 따라 요약하여 대충 이야기하지 않고,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성실히 연구한 결과를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각 장의 새로운 제국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할머니의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듣듯이 빠져들었고,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 즈음엔 그 제국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듯이 풍부한 세계사 상식을 얻었다는 만족감이 들곤 했다.

엄청난 긴 시간들과 제국이 품었던 광대한 지구상의 공간을 대상으로 한 넓고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흘러나오는 풍성한 정보와 이야기들은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고 그것들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저자의 논점은 한번도 흔들리거나 흐릿하지 않고 명확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책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역사책이자, 엄청난 세계사 상식 정보로 지적 만족감을 주는 교양서이고, 역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을 제시해 주는 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다.

 

듣는 책 - 에이미 추아 교수의 교양수업을 듣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에이미 추아 교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것은 이 책이 단순한 역사 속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곳곳에 그녀의 논점과 해석이 생생하게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책 속에서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몇몇 표현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주목해야 할 점은이라는 표현이었다. 저자는 각 제국과 황제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다가도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와 연관된 부분이 나오면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라고 말하면서 체크해야 할 포인트를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특정 상황에 대한 해석 부분에 있어서는 이미 알려진 내용과 보고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면서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고, 여러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음을 알려주어 역사적 사실을 편협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

또 하나 책을 읽은 재미 포인트는 중간 중간 파란색 작은 글씨로 쓰여있는 괄호 안의 부연설명 부분이다. 보통 주석처리나 부연설명의 경우 딱딱한 사전식 정보 나열인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같이 수업을 듣다가 모르는 단어나 생소한 개념이 나왔을 때 당황해 하는 나를 보고 옆의 친구가 귓속말로 살짝 알려주듯이 생동감있게 부연 설명을 해 주거나 가끔 자신의 사적 의견을 넣기도 해서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좋은 책, 마음속에 세계를 품다.

 <제국의 미래>는 좋은 책이다. 방대한 고급 정보와 제국이라는 대상에 대한 색다른 해석,그리고 그것을 현대에 적용시켜 미래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내용의 정보 전달을 떠나 책을 읽는 개인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세계를 제패했던 제국의 리더들을 따라 동서양을 종횡무진하기에 바빴다. 지구를 다스리고 세계를 마음에 품었던 황제들 혹은 칸을 만나고 나니 나의 마음과 꿈도 더욱 커짐을 느꼈다. 그들의 위대한 기상과 힘은 몇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어서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과 함께 나의 무대를 세계로 옮겨주었던 것이다.

좋은 책은 영향력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양질의 정보를 주고, 책을 덮었을 때 긴 여운이 남는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제국의 미래>는 역사를 통틀어 손에 꼽을 수 있는 최고의 리더들을 만나게 하고 그들이 제국을 팽창시켰던 비밀과 전략을 알려주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을 넓히고 성장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나의 꿈은 천하통일혹은 지구 정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노트에는 꿈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들로 가득 찼다.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황제, 칭기즈칸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마음 속에 목표를 새겨두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생은 물론이고 자기 인생도 제대로 경영할 수 없다

 

아쉬운 점

 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관용정책에 의해 세계를 제패했던 제국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일관된 논지에 따라 흐르면서 불관용정책으로 인해 실패 했던 오스만, , 무굴독일, 일본도 따로 묶어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면서 갸우뚱 했던 장이 있었는데 5장 스페인 부분이었다. 스페인은 당시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인 관용덕분에 영토 팽창과 제국으로의 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단 심문소에 의해 관용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불관용으로 인해 쇠퇴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제국들의 이야기와 비교해 볼 때 제국의 탄생에 대한 부분이 약하게 전개되어 있고 사실 관용부분 보다는 불관용부분이 더 커서 다른 장들과 레벨이 맞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스페인 제국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내용의 분량만 보더라도 보통 각 장마다 40페이지 정도의 균일한 양의 이야기들이 들어가 있는데 스페인은 10페이지를 조금 넘는 정도를 그치고 있다.

차라리 네델란드의 이야기 앞부분에 살짝 넣어서 네델란드 제국이 형성되는 배경으로 넣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밑줄 쫙!

서문: 세계 재패의 비결

P4. 정치적으로 단극화된 세계도, 문화적으로 획일적인 세계도, 단일한 초강대국의 일방주의도 용일할 수 없다.

P5. 미국은 경제적, 군사적, 기술적, 측면에서의 우위는 물론이고 태도와 개념, 언어와 생활양식에서의 우위까지 손에 넣었다.

P6. 초강대국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막강한 힘을 축적하여 세계를 지배했던 극소수의 사회들을 이르는 것이다.

P8. 세계적인 패권국가(제국)의 세가지 조건

1)      그 나라의 권력은 동시개의 경쟁국들이 장악한 권력을 분명히 능가해야 한다.

2)      그 나라는 지구상의 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경제력, 혹은 군사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3)      그 나라는 단순히 특정한 한 지방 혹은 지역에서의 우위라는 테두리를 넘어서서 지구상의 방대한 구역과 방대한 인구에 대해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P9. 한 사회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인종, 종교, 배경을 따지지 않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능력과 지혜를 갖춘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야만 한다.

P11. 지리, 인구, 천연자원, 그리고 지도력 등의 추가적인 요소들이 반드시 합쳐져야만 세계적인 패권 국가라는 희귀한 존재가 출현한다.

P12. 미국은 처음부터 종료적인 자유에 대한 대단히 혁명적인 공약과 다양한 국적을 가진 온갖 계층의 개인들에 대한 유난히 개발적인 시장 제도를 통해서, 수천만에 이르는 이민자들의 활력과 재능을 유인하고 보상하고 활용했다.

P14. 워싱턴뿐 아니라 세계 전역의 상당한 지역에서는 시장과 민주주의의 확산이 친구와 적을 모두 경쟁자로 바꾸어버리고”, “세계 전역의 더 많은 사람들이 포부를 성과로 바꿀수 있게 할 것이며, “지리적인 경계뿐 아니라 인간적인 경계까지지워버릴 것이라는 여론이 형성되는 듯이 보였다.

P15. 테러리즘에 대한 대응은 식민지화이다. ?역사학자 폴 존슨

P15. 이라크와 같은 곳에서 민주주의와 안정을 위한 마지막 희망은 바로 미국 제국주의다

     -하버드 인권 연구가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P16. ‘라는 글자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과거에 대영제국이 둘렀던 제국주의의 망토를 넘겨받으라 ? 니얼 퍼거슨

P16. 21세기형 제왕권은 자유시장과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꾸밈음을 내세우고, 이것들을 세계에 존재해온 군사력 가운데 가장 무서운 군사력을 동원해서 집행하는 권력이다.

P20. 로마는 이웃 나라는 무너뜨리고” “아무런 대가 없이 이방인들에게 로마의 특권과 영영예를 허용함으로써세계 제국을 창조했다.

P24. 2500년간, 역사상의 모든 초강대국은 하나같이 똑 같은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해왔다. 그 한 가지는 자국의 성장에 연료를 공급했던 관용을 유지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자국의 지배를 받는 민족들에게서 충성심, 아니면 하다못해 묵인이라도 확보할 수 있는 공통의 결속력을 형성하는 문제이다.

P25.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중단하는 것뿐이다

 

1부 고대 제국의 관용
1
장 최초의 패권 국가, 페르시아 - 아케메네스

 

P39. 키루스가 썼던 전략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참수전략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도자의 머리를 자라내는 것이 아니라 지도력을 잘라내는 전략을 썼다.

P43. 오늘날의 역사학자들 대부분은 키루스가 사용했던 관용 정책은 원칙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전략과 편법에 의한 것이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키루스는 해당 지역의 신을 포용함으로써 정당성을 획득하고, 해당 지역의 전통과 관습을 존중함으로써 피정복민의 저항과 반란 가능성을 줄였다.

P45. 캄비세스는 이집트에서 이집트인으로 행세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P47. 다리우스는 세금 액수를 예상보다 늘려 잡았다가 인심을 쓰듯이 깎아주곤 했다고 한다. 그는 특정 지역에 일정액의 세금을 부과한 후 그 지역 지도자들에게 그 액수가 지나치게 과중하지 않은지 의견을 물은다음, 관용을 베풀어 세금을 반감시켜준다고 공표하곤 했다.

P48. 그는 피정복민들을 죽이거나, ‘페르시아화하는데 자원을 낭비하지 않았고, 그들이 가진 다양한 기술과 재능, 자원을 이용했다. 그것이 다리우스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화려한 제국의 수도들을 건설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P52. 아케메네스 왕조는 인종이나 종교에는 개의치 않고 제국 최고의 실력을 가진 장인들, 사상가들, 노동자들, 전사들을 활용하여 문화적 다양성을 통합력과 국력의 원천으로 변화시켰다.

P57. 키루스와 다리우스가 방대한 제국을 건설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관용이 후일에 싹틀 불관용의 씨앗을뿌려놓았다

P58. 아케메네스 제국의 피정복민들은 대부분 제국에 대한 특별한 충성심을 느끼거나 제국에 소속된 것에 특별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반면에 서기 4세기에 로마제국의 피정복민들은 제국에 대한 특별한 충성심과 특별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P59. 제국의 이질적인 민족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관념체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중되어 있던 권력은 결국 지배력을 잃게 되었다.

P60. 알렉산드로스는 성장기에 자신이 아킬레우스와 헤라클레스 같은 영웅들과 신들의 혈통을 물려받았다고 믿었고, 이런 믿음은 그의 평생의 야망에 자양분을 주었다.

P60. 역사학자 가이 맥린 로저스는 알렉산드로스는 최고의인간의 의해서 통치되는 특별한 제국을 건설한 인물이자,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최조의 여권주의자였고,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다문화주의자였던 종교적 몽상가로 묘사하고 있다.

P65. 이집트부터 인도에 이르기까지 알렉산드로스가 건설했던 여러 도시국가에서는 야만인의 사상이 그리스어로 옮겨져 제국에 흡수되었고, 이를 통해 혼성 문화(헬레니즘)가 탄생했다.

P66. 알렉산드로스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페르시아 왕들은 결코 이룩하지 못했던, 대륙을 가로질러 형성된 고도의 문화적 통일체였다.

 

2장 팍스로마나, 세계인의 탄생 - 로마

 

P68.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전쟁 조직에 지나지 않았지만, 로마제국은 하나의 관념이었다.

P69. 로마제국은 시민들에게 세계라고 불렸다.

P69. 로마인들이 로마의 영토는 세계의 경계에까지 뻗어 있다고 믿을 정도로 로마의 연토는 방대했고, “경계의 신인 테르미누스는 로마가 탄생할 때 자리를 비웠을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P69. 로마는 엄청난 규모의 군사력뿐만 아니라 서구 문명의 새로운 정점을 상징했다.

P70. 세계가 이렇게 오래도록 질서정연하게 통치된 적은 없었다. ? 역사학자 테오도어 몸젠

P71.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이나 다른 고대의 제국들과는 달리, 로마제국에는 각 지역의 지배층이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의 상한선이 없었다.

P73. 로마인들이 자국의 힘을 전 세계로 확장하려 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주민들이 자진해서 로마로 쏟아져 들어왔다.

P75. 로마의 신화에 따르면, 기원전 753년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테베레강 근처에 로마를 세웠다고 한다.

P76. 정복된 도시는 자체의 법률에 따라 자체의 지도자에 의한 통치를 지속할 수 잇었으나, 두 가지 조건만은 감수해야 했다.

첫째, 각 도시는 로마와는 자유롭게 교역을 할 수 있으나, 상호간에는 자유롭게 교역할 수 없다.

둘째, 각 도시는 로마에 병력을 공급해야 한다.

P76. 포에니전쟁은 로마의 전략적인 관용정책이 거둔 개가였다. … 로마의 동맹국들은 수없이 어어지는 고된 전투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고, 결국 로마는 승리는 거두었다.

P78. 로마는 건국 후 6세기 만에 작은 도시국가에서 지중해 연안 전체를 아우르는 세계적인 제국으로 성장하여, 지중해의 이름을 로마의 호수로 바꾸어 놓았다.

P81. 헤시오도스는 로마의 바다를 경계의 시작인 동시에 끝이라고 보고 만물이 이곳으로 흘러들어간다고 말했다. … 현존하지 않는 것만 이곳에서 볼 수 없을 뿐이다.

P83. 로마 사람들은 윗사람에게는 아첨하고 아랫사람에게는 교만했다. 그들은 다른 민족을 자신들과 동등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로마 사람들은 스스로를 신의 은총을 받은 사람, “인간 세계에 사는 하늘의 대표자라고 보았다.

P84. 로마인들의 상상력을 자주 사로잡는 주제는 이방 민족의 해부학정 특징에 대한 추측이었다.

P86. 로마 사람들은 자신들의 체격을 황금비율이라고 보았다.

P86. 로마제국의 가장 흥미로운 면모는 사람들이 로마제국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브리타니아에서 아라비아에 이르기까지 피정복민들은 하나같이 로마제국의 성원, 로마인이 되고 싶어했다.

P87. 로마는 정복된 민족의 지도 계층을 멸시하거나 억압하는 대신 로마 문화를 권력과 특권의 수단으로 받아들이도록 유혹했다.

P87. 각 지역의 지도 계층은 자식들을 로마에 있는 학교에 보냈고, 이 아이들은 자라서 로마 시민이라는 공동체의 충실한 성원이 되었다.

P87. 로마인들이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모든 민족들과의 싸움에서 이겼을 뿐 아니라, 더 나은 관습이 눈에 띄기만 하면 서슴지 않고 자신의 관습을 버린 덕분이었다.

P87. 로마 문화는 또한 그리스의 문학, 미숙, 조각, 건축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것을 빨아들였을 뿐 아니라, 검투사 경기와 사냥 경기 따위의, 대중이 좋아할만한 고유의 문화를 고안해냈다.

P88. 교육을 받은 로마인들은 누구나 라팀어와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했고, 그리스 로마의 위대한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의 저서를 읽으면 자랐다.

P91. 로마가 다른 민족들을 자국 내로 편입시키는 전략을 쓰면서 추구했던 목적은 (…) 다른 민족들을 동화시키는 것이었다.

P92. 로마인들은 야만스러운 피지배민들을 경멸했지만, 이런 경멸감은 그들이 로마의 생활양식을 받아들이는 순간에 말끔히 사라졌다.

P92. 클라우디우스는 그리스 사람이든, 골 사람이든, 스페인 사람이든, 브리튼 사람이든 가릴 것 없이, 전 세계 만만이 토가를 입은 모습을 보고싶어 했다.

P93. 그것은 일속의 예속이었지만 그와 같은 경험이없었던 브리튼 사람들은 그것을 후마니타스’, 즉 문명이라고 불렀다.

P93. 제국으로 흘러드는 새로운 민족들의 끝없는 대열을 통합시키고 동화시키는 로마의 적극성과 능력, 이것이야말로 로마가 위대한 제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P94. 그리스 로마식 세계관에 따르면, 거의 모든 만물에는 신이 존재한다.

P94. 로마은 이방의 신들을 손에 넣었을뿐 아니라, 전염병이나 적의 침입과 같은 국가비상 시에는 도움을 받기 위해서 명성이 있는 이방의 신을 로마로 불러들였다. 그들의 논리는 가뭄이나 기근이 심한 건 로마의 신들이 화가 나 있거나 바빠서 일 터이니, 그 문제를 해결해줄 새로운 신을 찾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P99. 관용은 로마가 세계적인 대국으로 발전하고 팍스로마나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 땅에 뿌려진 궁극적인 붕괴의 씨앗이었다.

P100. 불관용은 로마 쇠퇴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지만, 제국의 분열을 재촉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

P100. 기독교는 처음에는 불관용 정책의 표적이었고, 나중에는 불관용 정책의 주요한 원천이었다.

P101.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대제국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열망 속에서 로마에 동화되지 않은기독교인들을 절명시키려는 결심을 굳혔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가 대제국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 썼던 방법은 전성기의 로마의 가치관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P101. 로마 몰락의 원인은 로마가 공식적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고 치명적인 불관용 정책을 펼침으로써 제국의 다양한 주민들을 성공적으로 통합시켜왔던 동화 및 통합전략을 훼손 시킨 데 있다.

3
장 중국의 황금기 -

 

P111. 시황제는 세 차례가 넘는 암살 시도를 넘기고 목숨을 보전했지만, 블로장수의 명약을 찾아 나선 여행길에서 죽고 말았다.

P112. 중국인들은 수백 년 동안 그 지역에서 가장 큰 통일 집단이자, 도시화와 교양의 정도가 가장 높고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가장 선진적인 집단이었다.

P113. 시황제는 중국에 차이나라는 이름 말고도 만리장성 등 수많은 유산을 남겼다.

P115. 한 사람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1만 명 위에 서라. ?고조

P116.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내세관은 극소수만이 영생을 얻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암울한 지하 감옥에 떨어진다는 것이었는데,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보다는 극락에 대한 불교의 약속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P116. 관용적인 태도를 인격적으로 구현했던 인물은 바로 당의 두 번째 황제인 태종이었다. 태종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중국의 통치자들 가운데 가장 현명하고 영웅적인 인물로 존경받고 있고, 일부 역사학자들로부터 당 완조의 실질적인 창건자로 대접받기도 한다.

P117. 당의 군사적 성공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이방 민족의 활용이었다. 그의 가문은 이방 민족의 군대를 통합하고, 이방 민족의 지도자들이 군대 지휘권을 유지한 채 제국에 편입된 영토를 다스릴 수 있게 함으로써 정벌군을 꾸렸다.

P118. 태종의 꿈은 중국의 황제이자 돌궐족의 칸으로서 중국인과 야만인을 동시에 다스리면서, 중국인과 야만인이 동등한 자격을 가지는 세계적인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P119. 초원 지대 민족들도 똑 같은 인간이다. 그들의 본성은 중국인의 본성과 다르지 않다. 군주는 자신의 자비로운 힘이 그들에게 미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고, 민족이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P123. 도의 이름은 하나만이 아니고, 현인 역시 하나만이 아니다. 교의는 나라마다 다르고, 그 교의들은 모든 인간에게 이익을 준다 ? 태종

P124. 측천무후 ? 궁인 출신으로 황비가 된 그녀는 중국을 공식적으로 통치한 최초의 여성이자 유일한 여성이었다.

P125. 무조(측천무후의 이름)는 빼어난 용모와 비상한 지혜를 가진 여성으로 비정하기 짝이 없는 정치적 기회주의자였다.

P126. 측천제는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약삭빠르게 불교를 이용했다. 그녀는 694년에 정분을 나누던 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미래의 극락을 다스릴 구세주인 미륵보살의 현신이라고 공표했다.

P126. 새로 확립된 국가시험 제도는 세습적인 특권이 아니라 교육과 학문적 재능만을 근거로 정부 관리들을 선발해야 한다는 급진적이면 새로운 원칙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P128. 장안은 대제국의 훌륭한 수도를 넘어서는 공간이었다. 장안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는 세계적인 도시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장안은 동아시아 전역으로 문명을 전파시키는 중추적인 도시였다.

P131. 당의 황제들은 중국의 다른 왕조의 황제들과는 달리 동시대의 제국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외국 도시들의 일상생활을 파악하려고 애를 썼다.

P136. 당이 채택했던 전략적인 관용 정책은, 당이 중국인이 아닌 피지배민에게 한족의 정체성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당 제국은 그 덕분에 크게 뻗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당 제국이 야만인들과 중국인들을 한데 묶어줄 공통된 정치적, 언어적, 문화적 접착제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P137. 당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것은 755년에 일어난 안녹산의 난이었다.

P140. 중국은 로마와는 달리, 중국 민족과 비중국 민족에게 동등하게 적용될 수 있고, 똑같이 매력을 끌 수 있는 공민권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P143. 당이 멸명한 뒤, 중국의 외국인 혐오증은 점점 심해졌다. 어마어마한 수의 중국인들이 야만인들의 위협이 심한 북쪽을 떠나 남쪽으로 이주해오면서, 남쪽은 거대한 중국 인구의 대다수가 거주하는 근거지가 된다. 그러나 바로 이 야만인들이 수백 년 후에 중국인들을 너그럽게 대우하고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강대국을 세웠으니,참으로 모순이라 할 만하다.


4
장 유럽을 삼킨 초원의 지배자 - 몽골

 

P145. 몽골의 칸들은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면서도, 로마제국보다 훨씬 넓은 제국을 다스렸다.

P147. 몽골족이 세계의 패권을 손에 넣고 유지할 수 있었떤 비결은 잔혹함이 아니라 인종적, 종교적 관용에 있었다.

P150. 테무친은 승리를 거둘 때마다 늘 똑 같은 기본 전략을 사용했다. 그는 패배한 부족의 지도자와 대부분의 남자 귀족들을 죽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노예가 아니라 동등한 성원으로 자신의 수하에 편입시켰다.

P150 테무친은초원 지대를 분열시켜왔던 전통적인 씨족별, 혈통별 분할 제도를 타파하기 위해서 몽골 군대를 재조직했다. 그는 여러 민족 출신의 병사들을 섞어 열 명으로 이루어진 분대를 만든 다음, 그들에게 출신 부족에 관계없이 형제가 되어 함께 살고 서로를 지키라고 명령했다.

P151. 부족을 초월한 십진제는 군대뿐 아니라 몽골의 모든 사회조직의 구성 원칙이 되었다.

P151. 전통적으로 초원 지대의 지도자들은 늘 가까운 친척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테무친은 재능과 충성도를 기준으로 부관과 자문관을 선발했다.

P152. 장군은 허기와 갈증에 대해 생각하면서 부하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부하들과 동물들의 힘을 아껴 쓸 줄 알아야 한다. ? 테무친

P155. 칭기즈칸은 싸움이 끊이지 않던 초원 지대의 수많은 부족들, 씨족들, 그리고 가문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민족을 만들었다.

P158. 몽골 군대는 보병이 없고 전원이 기마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기동석이 뛰어날 뿐 아니라. 기습 공격을 감행할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칭기즈칸의 병사들은 용감하고 규율이 잡혀 있었으며 꾀가 발랐다.

P159. 칭기즈칸은 몽골족이 지니지 못한 기술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열심히 끌어 모았다. 몽골 군대는 전투가 끝날 때마다 포로들을 꼼꼼히 조사하여 기술을 가진 사람을 찾아냈고, 자진해서 투항한 기술자들에게는 후한 보상을 내렸다. 칭기즈칸은 이런 방법으로 수많은 중국인 기술자들을 확보하여 성벽을 두른 난공불락의 도시들을 함락하는데 필요한 강력한 공성장비를 만들 수 있었다.

P163. 칭기즈칸은 상식을 깨고 그 지역을 횡단하기 위해서 겨울까지 기다렸다. (…) 수만 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을 칭기즈칸 군대의 중앙아시아 횡단은 오늘날까지도 역사상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단한 군사적 업적으로 남아 있다.

P165. 포위전을 펼 때 칭기즈칸은 늘 똑 같은 기본 전략을 구사했다. (…) 먼저 방어 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 성 주변 농촌 마을을 공격하고 불을 지른 후 포로를 잡아들이고 수많은 주민을 학살했다. 그리하여 공포에 질린 피난민들이 물밀듯이 도시로 몰려들어 혼란, 기아, 그리고 두려운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P166. 칭기즈칸은 천수와 영광을 맘껏 누리다가 임종을 맞아 아들들에게 중국을 정복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P167. 마음속에 목표를 새겨두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생은 물론이고 자기 인생도 제대로 경영할 수 없다. ? 칭기즈칸

P170. 유럽 기사제도의 정수를 쓰러뜨린 몽골 군대의 승리는 유럽 봉건제도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P171. 유럽의 숱한 제후들이 숙련된 기술을 가진 비기독교도 주민들을 박해하고 추방하고 있을 때, 민족이나 종교를 따지지 않았던 몽골인들은 자유롭게 피정복민들로부터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P174.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는 단순한 유목민 무리에게 굴복한 것이 아니라 중국, 중앙아시아, 러시아, 카프파스, 그리고 이란의 통합된 인적, 재정적, 물질적, 기술적 자원에 굴복한 것이었다.

P177. 몽케칸은 칭기즈칸과 마찬가지로 신과 자연(그들은 자연은 결코 변화시킬 수 없다고 보았다)이 전 지구를 정복할 민족으로 몽골인들을 선택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예술,과학, 학문, 그리고 행정 능력이 취약했던 몽골인들은 편견없는 태도로 자신들이 정복한 문명 민족들에게서 쓸모있어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얻어냈다.

P179. 쿠빌라이의 송나라 정복은 군사적인 정복이라기 보다는 중국인들의 마음을 정복한 것이었다.

P180. 쿠빌라이는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군사적인 승리를 거둘 때마다 천명이 자신에게 지워졌다는 생각을 퍼뜨렸다.

P183. 쿠빌라이의 통치 원칙은 불관용이 아니라 세계주의였다.

P185. 어떤 사람들은 몽골이 세계를 지배했던 세기를 최초로 세계화가 고조된 시기로 본다.

P185.몽골인들은 비할 데 없는 문명의 전달자였다. 그들은 중국에는 교회를, 러시아에는 이슬람 학교를, 페르시아에는 불탑을 세웠다.

P186. 몽골인들은 뭐든지 효과가 가장 좋은 것들을 찾아다녔고, 그런 것을 찾으면 당장 다른 지역으로 퍼뜨렸다.

P187. 쿠빌라이의 할아버지는 마음속으로는 늘 초원의 유목민이었지만, 쿠빌라이는 단일한 세계를 추구하며 세계화를 추진했다.

P187. 쿠빌라이의 가장 큰 야망은 세계의 모든 언어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인 알파벳을 만드는 것, 그리고 아랍의 음력, 유럽의 태양력, 중국의 12간지를 통합한 보편적인 달력을 만드는 것이었다.

P190.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인들은 그렇지 못했지만, 칭기즈칸은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정체성은 초원의 유목 민족들만을 포용할 뿐 비 몽골 민족들과 국가들을 포용할 수는 없었다.

P191. 몽골의 통치자들은 광대한 제국에 몽골의 정체성을 강요하는 대신 문명화된피지배민들의 문화를 점점 대폭적으로 받아들였다. 중국에서 쿠빌라이 칸은 중국식 호칭을 만들고, 중국 왕조를 세웠으며, (…) 중앙아시아에 자리잡은 몽골의 칸들은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페르시아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했다. 날이 갈수록 뿔뿔이 갈라지는 이들 왕국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접착제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 때 세계를 지배했던 몽골제국은 단기간에 네 개의 커다란 덩어리로 갈라졌고, 각 덩어리는 갈수록 편협해지고 종교적 광신에 사로잡혔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몽골 제국은 붕괴되고 말았다.


2
부 계몽화된 관용
5
장 신세계를 향한 최초의 탐험자 - 스페인

P195.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스페인의 극심한 불관용 정책은 성장해가던 스페인의 힘을 갉아먹고 세계 제패의 기회를 삼켜버렸다.

P200. 스페인이 신세계를 향한 최초의 탐험에 나설 때 자금을 댄 것은 바로 이들 유대교도 금융업자들이었다.

P200. 1478년 교황의 교서에 따라 스페인에 이단 심문소가 설치되면서 상대적인 관용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P203. 스페인은 당시 가장 큰, 값비싼 자원의 저장고를 발견하고도 국고는 텅 비어 있는 기이한 상황을 맞았다.

P205. 스페인에는 왜 산업이 발전하지 않았을까? 이단 심문소 때문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왜 게으를까? 이단 심문소 때문이다. 스페인에는 왜 투우가 있을까? 이단 심문소 때문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왜 낮잠을 잘까? 이단 심문소 때문이다.

P205. 이단 심문소의 무수한 재판과 고문은 엄청난 비용을 소모했지만, 증오와 편집증만 빚어냈을 뿐 지식이나 부는 일체 창출하지 못했다. (…) 스페인의 정화활동은 사회의 모든 계층을 파괴했다.

P206. 우리 자신에게는 큰 손해가 되겠지만, 우리 자신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보다는 영혼의 구원을 우선시하기 위해서

 

6장 자본주의 경제를 제패한 최초의 제국 - 네덜란드

P209. 네덜란드에는 유명한 것이 많다. 나막신, 풍차, 튤립, 렘브란트, 베르메르. 그러나 네덜란드 사람들이 한 때 영국보다 앞서 세계를 주름잡던 해상무역 제국이었따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네덜란드가 한때 세계 최대의 사향 생산국이었다는 사실 역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P212. 네덜란드 사람들은 어찌보면 신이다. 그들은 바다의 경계를 정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바닷물을 들고 나게 한다.”

P217. 목동이 양떼를 보호하듯이, 군주는 백성의 통치자로서 백성들을 압제와 폭력에서 보호할 임무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한 사실이다. 신은, 군주의 노예가 되어 옳든 그르든 무조건 군주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백성들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해서 군주를 창조했다.

P218. 작은 네덜란드 연방공화국은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쫓겨난 진취적인 사람들의 피난처 역할을 한 덕분에 17세기에 이르러 세계적인 경제강국이 되었다.

P219. 누구나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어느 누구도 종교를 이유로 심문을 받거나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P220. 이처럼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라 우리 선조들의 순수함이 살아 있는 나라.

P221. 관용은 네덜란드 여러 도시의 경제를 성장시키고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서 긴급히 요구되는 이주 정책을 촉진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었다. - <네덜란드의 이익>

P221. 네덜란드 연방공화국은 (…) 유럽 전역으로부터 종교적인 망명객들을 줄지어 끌어들이는 자석이었다.

P222.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이 50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경제 각 분야에서 패권을 장악하는 데에는 이 이주민들이 엔진 역할을 했다.

P222. 네덜란드의 경제성장에 기름을 부은 것은 대부분 합스부르크 왕조의 스페인에서 박해를 피해 빠져나온 유대교도들과 개신교도들이었다. 이들은 네덜란드에 공동체를 건설함으로써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을 세계적인 무역, 산업, 금융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P224. 17세기 중엽에는 리스본과 앤트워프 대신 암스테르담이 유럽 다이아몬드 산업의 중심지이자 유대인의 금융 및 무역 네트워크의 중심지가 되었다.

P225. 펠리페 2세 치하에서 개신교에 대한 박해가 점점 심해지자, 이 도시들은 개신교도들의 기술과 자본이 대거 빠져나가는 시련을 겪었다.

P229. 네덜란드의 제국주의에 연료를 공급한 것은 칼뱅주의가 아니라 이윤 추구였다.

P229. 네덜란드 사절이 종교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자, 5세는 호주머니에서 동전을 하나 꺼내고는 보시오, 여기 당신네 종교가 있고라고 말했다.

P230. 1600년대 초에는 네덜란드의 상업주의와 식민주의가 폭발적으로 팽창하여 전 세계를 휩쓸었다.

P233. 그들은 엄청난 양의 사치품을 공급하면서도 결코 직접 소비는 하지 않으며, 기호품들을 거래하면서도 결코 직접 향유는 하지 않는다.

P234.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던 네덜란드연방공화국에서는 미숙련 노동자들조차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높은 수준의 생활과 질 좋은 식사를 향유할 수 있었다.

P236. 남자들은 하찮은 핑계를 대가면 술을 마신다. 벨이 울려도 술을 마시고, 방가가 돌아가도 술을 마시고 (…) 악마가 직접 양조장을 차린 모양이다.

P236.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의 냄새는 담배냄새이다 ? 셰머

P241. 중세 초기의 베네치아와 마친가지로, 바다를 끼고 있던 네덜란드는 영토의 팽창이 아니라 상업의 팽창을 꿈꾸었다는 점이다.

P244. 네덜란드와 영국의 힘이 합쳐지면서 영국이 막대한 이득을 얻게 되는, 참으로 모순이라 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은 관용 정책과 진취적인 금융업자들과 현대적인 사업방식을 영국에 수축했고, 이로써 영국은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을 대신하여 다양한 이주민들과 종교 교파들에게 자유와 기회를 제공하는 특별한 지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얼마 후 영국은 네덜란드로부터 세계 최고의 해상 국가로서의 지위까지 넘겨받아 사상 최고 규모의 세계 상업과 식민 정책을 주무르는 제국으로 탈바꿈 했다.

P245. 영국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계몽주의 원칙과 유럽의 자민족 중심주의, 그리고 로마식 전략을 결합함으로써 피지배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 피지배민들은 대영제국의 군대를 채우고, 대영제국의 영토를 관리하고, 대영제국의 예법을 따르고, 대영제국 왕실의 재신을 증식하는데 기여했다.

 

7장 불관용의 덫 - 오스만, , 무굴

 

P248. 위대한 이슬람 제국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나라가 바로 오스만제국이었다.

P249. 바예지드는 가톨릭 왕국의 페르난도 군주를 현명하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는 유대교도들을 추방하여 스페인을 가난하게 만들고 터키족을 부유하게 만들었다.”고 비웃었다.

P249. 술레이만은 지혜와 공평함, 그리고 남다른 관대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날렸으며, 1525년에는 베네치아 대사로부터 황제들 가운데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P253. 고귀한 품성이란 선천적인 것, 혹은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 신의 은총인 동시에 적절한 훈련과 대단한 근면성, 그리고 열정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P253. 오스만제국의 전략적인 관용은 지금은 누구나 익숙해있는 인권을 존중하는 태도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몹시 전근대적인 것이었다.

P255. 술레이만의 수상들이나 예니체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오스만 사람들은 전략적인 개종 정책으로 충성스러운 하인들을 길러낼 수 있었다.

 

P260. 명대의 중국은 인쇄술, 화약, 나침반을 발명하는 등 기술적인 면에서 후진적인 유럽을 훨씬 앞서 있었다.

P261. 1424년 이후 명의 황제들은 해군을 해체하고 외국과의 무역과 외국의 사상을 거부하면서 병적이라고 할 만큰 폐쇄적인 태도를 취했다. 중국은 1600년 무렵에는 기술적, 군사적, 상업적으로 유럽에 크게 뒤처지게 되었다.

P265. 유일한 문명사회인 중국은 내놓을 만한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위험한 야만족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낡은 생각이 부활했다. 명의 황제들은 몽골의 침입을 두려워하여 만리장성을 쌓고, 교역 등 외국과의 접촉을 금지함으로써 스스로 문을 닫아 걸었다.

P265. 명 왕조는 거대했던 해군을 방치하여 고사시키고, 해외 진출 정책을 폐기함으로써 유럽인들에게 여러 대양에 대한 패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P266. 무굴제국은 칭기즈칸 후손들이 세운 나라이다.

P268. 악바르가 선택한 해결책은 한편으로는 외교정책을 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문화의 결합 정책을 쓰는 것이었다.

P269. 악바르는 결혼을 통해 후궁들의 남자 친척들과 동맹 관례를 형성했고, 그들에게 지지와 지원을 호소했다.

P271.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통의 굴레에 묶여 있습니다.그리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주장이나 이유를 따져보지도 않고, 자신의 아버지와 선조들을 따라가고, 타고난 또는 교육받은 종교를 따릅니다. 이것은 인간 지성의 가장 숭고한 목적인 진리 탐구로부터 스스로를 배제하는 것입니다.

P272. 악바르의 목적은 기존의 교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종교, 즉 마호메트나 그리스도, 혹은 크리슈나를 섬기는 종교가 문자 그대로 신을 섬기는 종교를 확립하는 동시에 악바르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데 있었다.

P277. 나는 홀로 왔다가 이제 이방인으로 떠난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도모른다. 이제까지 끔찍한 죄를 저질러온 내게 어떤 징벌이 기다리고 있을 지 두렵다. ?아우랑제브


8
장 세계 최대의 해상국가 - 영국

P280. 대영제국은 그 이전에 존재했던 세계적인 패권 국가와는 달리, 자유, 평등, 민주라는 되돌아나갈 수 없는 근대성의 문턱을 넘어서고 나서야 세계적인 권력의 정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P283. 가장 귀중한 보물은 영국 백성들 가운데 있다. ? 엘리자베스 여왕

P291. 다리엔의 참극은 스코틀랜드를 파산으로 몰아넣었다. (…) 1707년 기가 꺾이고 기근에 시달리던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의 합병조약에 서명하면서 대영제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P291. 스코틀랜드인들에게 합병조약은 완전한 굴복이자 악마의 협상이었으며 고국의 소멸이었다.

P292. 합병 조약 이후 영국인들은 스코틀랜드인들을 통합시켜 충성심을 이끌어낼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억압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영국인들은 전자를 선택했고, 그 덕분에 엄청난 이득을 보았다.

P295. 20세기가 시작될 즈음 대영제국은 세계 지표면의 25퍼센트라는 어마어마한 땅덩어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영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던 대양까지 합치면, 그 면적은 지국의 70퍼센트에 육박했다.

P296. 1860년 당시 전 세계 상선의 4분의 1 이상이 영국 국기를 휘날리며 항해했고, 그 비중은 꾸준히 늘어났다.

P298. 브리튼은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민족적, 인종적 경계를 뛰어넘는 개념이 되었다. 대영제국은 고육의 권리는 가진 하나의 국가였지만, 각기 고육의 국가적 정체성을 주장할 수 있는 세개 이상의 다른 민족들, 즉 잉글랜드인, 웨일스인, 스코틀랜드인을 통합시킴으로써 탄생했다.

P299. 영국은 노예무역을 반대하는 운동을 펼침으로써 주요 경쟁국인 프랑스뿐 아니라, 과거 식민지였던 미국에 대해서까지 도덕적인 우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

P304. 잉글랜드인들은 웨일스 사람들을 정복하여 영국사람으로 만들었고, 오랫동안 멸시해왔떤 유대교도들을 런던으로 불러들었으며, 프랑스어를 쓰는 위그노교도 5만명을 포용하고 동화시켰다. 그들은 멸시하고 두려워하던 스코틀랜드인들을 설득하여 가장 적극적이고 가장 유능한 대영제국의 건설자로 만들었다. 아일랜드를 제외한 이 모든 경우에 잉글랜드인들은 편견을 뛰어넘어 충섬심을 이끌어내고, 모두의 재능을 십분 이용하여 이득을 얻었다.

P314. 영국의 가장 큰 실수는종교에 간섭한 것사람들의 습관과 희망에 어울리지 않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었다.

P319. 영국이 인도를 상실하게 된 것은, 아일랜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관용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P319. ‘테러리스트들을 비롯해서 극단적인 성향이 강한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영국식 교육을 받던 특권층으로 영국이 마련해준 인생 경로를 따라가다가 영국인들의 인종주의 때문에 출셋길이 봉쇄된 사람들이었다.

P320. 영국식 교육은 양날의 칼이었다. 갈수록 많은 인도인들이 교육과정에서 배웠거나 해외에거 직접 보았던 각종 자유를 요구했다.

P323. 영국 출신 이주민들의 극심한 인종주의는 인도 엘리트층의 분노를 격화시켰고 인도 엘리트층은 차츰 대중적인 민족주의 운동과 영국 기업의 민족 기업화 또는 추방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P326.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을 힘도 얻을 수 없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 그곳에서 걸어나는 것뿐이다.


3
부 세계 제패의 미래
9
장 최첨단 과학 기술의 개척자 - 미국

 

P332. 아메리카 대륙의 토착 주민들의 눈으로 보면, 미국의 탄생의 관용의 역사가 아니라 무자비한 억압의 역사였다.

P332. ‘이민자들의 나라는 피부색이 하얗고 개신교를 믿는 앵글로 색슨족에 의해 세워졌고, 여러 세대가 흐르는 동안 정말로 이들의 나라라고 정의되었다.

P333. 미국이 초라한 식민지에서 북아메리아 대륙의 강국으로, 다시 강대국으로, 그리고 다시 초강대국으로 지위가 상승하게 도니 것은 미국이 끊임없이 다양한 집단들의 활력과 재능을 유인하고, 보상하고, 흡입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후일에는 경쟁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수많은 인재를 끌어들임으로써,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 발전과 기술혁신을 창출했고, 이것을 토대로 유례없는 최고의 부와 막강한 군사력을 확보했다.

P339. 미합중국의 국민은 인류 앞에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여러 정책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는 자신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야 한다. 이 정책들은 모방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모든 사람들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 조지 워싱텀

P347. 유럽의 무수한 두뇌유출덕분에 19세기의 미국은 기술의 벽지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산업국가로 변모하게 되었다.

P347.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만든 주요한 요인은 상대적인 개방성과 다원주의였다.

P347. 미국에서는 기회가 하늘 끝까지 열려 있었다.

P351. 홈스테드법 토착민이든 이주민이든 관계없이 미국 시민이 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5년 이상 그 땅을 개간하는 정착민에게 65만 평방미터의 땅을 교부했다.”

P353. 19세기 미국 사회의 3가지 중요 장점

1)      종교적 다원주의 2) 민주적인 정부 제고 3) 활발한 자유시장

P357. 전쟁은 여러 면에서 미국의 유례없는 경제 발전에 엄청난 연료를 공급했다.

P365. 미국 공군은 지구상의 그 어떤 군대보다 몇 광년 앞서 있었다.

P366. 세계화랑 곧 잉여자본이 주변국가에서 중심 국가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중심은 바로 미국이다. ? 조지 소로스

P366. 미국이 세계적인 패권국으로 상승할 수 있었던 이유

      1) 소련의 붕괴 

2) 망명한 물리학자->원자폭탄 개발

3) 이주한 과학자들->정보 혁명(컴퓨터 시대), 금융 혁명(실리콘 밸리)

P372. 디지털 혁명은 산업혁명이 19세기 후반기를 뒤바꾸어 놓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20세기 후반기를 바꾸어 놓았다.

P374. 미국이 세계적인 패권 국가로 부상한 데에는 첨단 기술 경쟁에서의 승리가 결정적인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1년 9월 11 과학 기술은 미국에게 등을 돌렸다.


10
장 추축국의 야욕 - 독일, 일본

 

P376. 인종적 순수성, 인종 청소, 또는 종교적 광신을 토대로 세계적인 패권 국가로 부상한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P378. 호전적인 민족주의와 인종적 배타주의, 종교적 증오심이 효과적으로 혼합되어 있는 나치의 이데올로기는 굴욕을 당했던 독인 국민들로부터 충성과 희생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P379. 히틀러는 아리아인 우월론과 유대인 공산주의자들의 음모설, 열등한 인종의 청소론을 두루 짜 맞춘 다음 자신의 지도력으로 독일을 최초의 과거로 복귀시키고 모든 면에서 강력한 팽창주의적 국가로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P380. 우리는 빵 값이 오르는 걸 원치 않는다! 빵 값이 내리는 것도 원치 않는다. 빵 값이 변하지 않는 것도 원치 않는다! 우리는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당이 빵 값을 정하기를 원한다.

P380. 나치가 내세우는 핵심적인 주장은 아리아인은 우월하며 지배자 민족으로서 세계의 통치자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확신이었다.

P382. 독일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시어도어 폰 카르만, 유진 위그너, 레어 실라르드, 한스 베테, 에드워드 텔러, 리제 마이트어를 비롯한 수많은 훌륭한 과학자들을 잃어버렸다. 이들 중 많은 수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개발에 일익을 담당했으며, 미국은 바로 그 원자폭탄을 사용하여 전쟁에서 승리했다. 독일이 잃어버린 위대한 인물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P384. 히틀러에 따르면, 세계 평화는 하나의 강국, 그것도 인종적인 면에서 가장 우수한 강국이 그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완벽한 우위를 달성할 때에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P387. 불관용은 일본이 세계 제패라는 꿈을 키울 수 있었던 토대인 동시에, 제국주의 일본의 파멸을 불러온 촉매제였다.

P388. 9세기 이후 일본에서는 하얀 피부가 높이 평가되었고, 얼굴빛이 하얀 사람은 인격이 훌륭하고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P391. “순수한 혈통을 지닌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세계가 순수한 혈통이 아닌 것을 그대로 넘길 수 없었다. 일본인들은 더 놓은 수준의 완벽성과 순수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아시아 대륙 전체를 정화하고 그곳의 불결하고 야만적이고 사악한 주민들을 교정하는 데 앞장섰다.

P396. 점령지에서 이루어진 일본의 만행은 일본인에 대한 강렬한 증오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증오심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는 당시에 형성된 증오심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P398. 나치 독일과 제국주의 일본에게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힘을 안겨준 이데올로기가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세계 제패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추구하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11
21세기 새로운 도전자들 - 중국, 유럽연합, 인도

 

P401. 이번 세기에 미국의 힘은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중국의 힘은 상승할 것이다 케이크는 벌써 오래 전에 구워졌다. ? 마이클 엘리엇

P402. 중국은 현재 휴대폰과 가전제품의 최대 소비국이며, 멀지 않아 자동차의 최대 소비국이 될 것이다.

P405. 중국인이라는 개념자체가 전략적인 관용의 성공적인 결과이다.

P405. 문화적, 지리적, 언어적으로 이질적인 배경을 가진 수많은 개인들을 단일한 정치적 정체성 안에 소속시키고 통합시켜온 것이다. 중국 문명자체가 다양한 문화의 거대한 융합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해온 것이다.

P406. 스페인 사람들과 리비아 사람들이 2세기에 로마인으로 탈바꿈한 것과 마찬가지로, 민나라 사람들, 월나라 사람, 위나라 사람 등 과거에는 뚜렷이 구분되었던 민족 집단들이 모두 한족이 되었다.

P411. 이제 중국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왕래하고 거주한다는 의미에서 당 왕조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세계적인 나라가 되었다.

P415. 중국이 여러 나라의 제도, 과학기술 등을 도입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1)                         민족이라는 이름의 카드를 적절히 이용하여 해외 중국인들의 자부심과 충성심에 호소하는 전략

2)                         비 중국계 대기업으로부터 서양의 노하우를 얻는 전략

(중국 시장에 진입하려면 기술도 함께 내놓아라)

P418. 외국인들은 우리에게 어디에, 어떻게 구멍을 뚫어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왜 거기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지 모른다.

P418. 중국이 초강국의 지위까지 상승하리라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의 앞길에는 엄청난 환경오염, 부패,지역 간 경제 격차, 지나친 대량 소비를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내부적인 도전들이 늘어서 있다.

 

P420. 애초에 공산주의가 서쪽으로 팽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설립되었던 공동체가 유럽연합으로 발전하면서 과거의 공산주의 세력까지 받아들이게 되었다.

P421. 유럽연합은 선진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으로 알려져 있고, 13조 달러에 이르는 국내 총생산은 미국의 국내 총생산과 엇비슷하다.

P422. 유럽연합은 다른 나라를 침공하겠다고 위협하는 대신에경제적인 측면에서 당근을 흔들어댐으로써 영도를 확장하는 탈제국주의 강국이다.

P424. 유럽연합의 진정한 목적은 미국과 경쟁할 수 있을 만한 힘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P424. 유럽연합의 관용은 원칙적으로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향한 관용이다. 유럽의 관용은 유럽을 통합시키는 전략일 뿐이지, 3세계의 이미자들을 유럽으로 끌어들이거나 유럽 국가를 미국과 같은 다민족 이민자 사회로 변화시키려는 전략이 아니다.

P426. 세계적으로 유능하고 똑똑한 인재들을 확보하는 경쟁에서 나라들을 유인하는 유럽연합의 전략은 개인들을 유인하는 미국의 전략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P429. 유럽의 이슬람교도들은 고립된 지역에 거주하면서 유럽의 다른 주민들과 물리적, 문화적, 심리적으로 격리되어 있는 경향이 강하다. (…) 이런 고립 지역들은 더 큰 사회로 흡수되기에는 적절치 않은 실체들로, 호전적인 이슬람교도들을 길러내는 근거지가 되고 있다.

 

P434. 인도는 과학 기술 분야에서 연간 40만명의 학위 보유자들을 배출하고 있고, 영어를 사용하는 다수의 전문가들을 확보하고 있으며, 최근 4년 동안 평균 7퍼센트의 경제 성장을 달성하는 드 많은 학자, 정치인, 투자자로부터 21세기에 주목되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P435. 현재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이 IT업무를 인도에 아웃소싱하고 있고, 인텔, IBM,, 야후 등 다국적 기업들은 인도에 주요 사업체를 두고 있다.

P437. 인도는 미국을 훨씬 능가할 정도로 민족적, 종교적으로 다양한 나라이다.

P438. 인도가 여러 세기에 걸쳐서 성공한 비결은 유별난 이질성개방성에 있다고 주장했다.

P440. 인도 사람들은 인도만 아니라면 세계 어디를 가도 성공할 수 있다.

P441. 인도는 다음번 경제 성장을 이끌 준비가 된 학위 보유자들을 대거 확보하고 있다.


12
장 제국의 미래

P445. 미국은 여전히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해외에서 미국의 신용은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태이다.

P448. 미국이 제국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정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이다.

P449. 초강대국의 의미는 수백 년에 걸쳐서 서서히 근본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가장 단순한 관점에서 보면, 정복으로부터 교역으로, 침략으로부터 이주로, 전체정치로부터 민주정치로 변모가 이루어졌다.

P449. 21세기 미국의 권력에 대해 전망할 수 있는 열쇠는 이런 옛 것과 새 것의 결합에 놓여 있다.

P454. 예전에 세계가 로마화되었던 것처럼, 지금의 세계가 급속하게 미국화되어가고 있다면, 그 까닭은 우리가 지닌 무기에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가진 것을 원하고 그것을 가질 목적으로 자진해서 우리의 행동 방식을 따르기 때문이다.

P454. 미국의 결정적인 힘은 17세기 네덜란드연방공화국과 마찬가지로 군사력에 있지 않고 부에 있다.

P457. 미국의 민주적인 패권은 반미주의의 만연과 폭발이라는 기이한 결과를 낳았다.

P460. 역사에 존재했던 모든 초강대국들 가운데, 멀리 떨어진 피지배민의 충성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공통의 정체성을 만드는 과업에 가장 성공했던 제국은 바로 로마였다.

P464. 민주정체를 지난 초강대국은, 세계 만민에게는 지구라는 사회에 참여하고 번영할 권리가 있음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미국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른 모든 나라들은 미국이 이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P467. 미국으로서는 전 세계를 자신과 똑 같은 모습으로 개조하려는 무의미한 일을 자청하기보다는, 자국의 역사와 원칙에 더욱 충실한 채 세계를 위한 본보기, 언덕 위의 도시가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 훨씬 낫다.

P469. 공포감을 조장하면서 미국 국경을 폐쇄하는 지나친 대응의 잘못된 점

1)      외국인 혐오라는 반감을 조성할 수 있다.

2)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이민 정책은 미국과 비미국인 간의 호의적이고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3)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것은 세계에서 가장 값진 인적 자본을 끌어들이고 동기를 부여하는 면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앞질렀기 때문이다.

P471. “9.11 이후 미국의 이민정책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우수하고 똑똒한 인재들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그들을 쫓아내고 있다” ? 빌 게이츠

P471. 오늘의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숙련도와 훈련도, 그리고 노하우를 갖춘 이민자들을 찾아내고 끌어들이기 위한 적극적인 유인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P475. 미국인들은 새로운 다자주의를 굴복이 아니라 기회로 여겨야 한다. 만일 미국이 스스로 세계적인 문제들에 원인을 제공했음을 인정하고, 그 문제들이 해결될 경우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닫고, 국제적으로 주도적인 입장에서 그 문제들에 대처한다면, 미국은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민주적인 초강대국의 존립에 반드시 필요한 다른 나라들과의 연대감 즉 결속감과 공동의 목적의식까지 창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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