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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1일 17시 25분 등록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참다운 삶을 바라는 사람은 주저 말고 나서라.

싫으면 그뿐이지만, 그럼 묘자리나 보러 다니든가.



아이쿠!  나는 설마 묘자리나 보러 다닐 사람은 아니겠지.  첫 페이지에 인용된 오든의 시는 침대에 기대어 흐느적거리던 내 몸을 순식간에 꼿꼿이 세워버렸다.  그만큼 이 짧은 문장 하나가 나의 헐거운 정신 상태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건방지기 짝이 없는 작가의 태도 앞에 나는 살짝 오기가 생긴다.  아니 그럼 참다운 삶이란 게 도대체 어떤 삶이냐고, 나를 포함해 묘자리나 보러 다녀야 할 수많은 사람들은 쓸쓸히 죽음을 맞는 것 외엔 다른 대안이 없는 거냐고!      

다행히도 저자는 일말의 자비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묘자리나 보러 다닐 불쌍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었다.  어서 빨리 내 손을 잡으라고, 후덕해 보이는 그의 인상을 믿고 나는 덜컥 그가 내민 손을 잡아 버렸다. 


모름지기 삶이란, 한낱 생물체로서의 ‘생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인간의 삶은 생존을 넘어 정신적이고 영적인 차원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참다운 삶, 바람직한 삶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 영성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는 철학자나 성직자처럼 굴지 않았다.  하루하루 살며 우리가 맞닥뜨리는 평범한 사건들, 바로 일상에 초점을 맞춘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상.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일상이다.  ‘삶’의 모호하고 형이상학적인 느낌이 ‘일상’이라는 현실로 받아들여지자 삶은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수많은 경험들이 우리의 삶을 만드는데, 경험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시간은 매우 귀한 자산이다.  ‘시간이 돈이다’라는 말이 비 물질과 물질을 한 데 놓는 다소 자본주의적 발언이긴 하지만 결국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따지려면 투입된 시간과 결과물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고 생산성이, 효율성이 얼마냐에 따라 그 값어치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위의 등식에 따라 시간과 삶의 관계는 비례적 입장을 띄게 된다.  그런데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단지 소비한 시간이 아니라 경험의 내용이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바람직한 삶, 아름다운 삶, 참다운 삶을 운운하며 이상향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이상향의 삶은 저 멀리 물안개에 가린 듯 희미하고 불분명하게 비춰질 뿐이다.  왜일까?  그 이유는 이들의 이상향 속에 삶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자원인 ‘일상’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막연한 희망, 부풀려진 미래는 현재와 일상을 고려하지 않는다.  일상은 화려하지 않다.  일상은 또한 과장이 없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애인과 포옹을 나누며 가끔은 토라진 채 잠자리에 드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일상의 모습일진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이 가지는 보편성을 쉽게 무시해 버리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핑크빛 미래가 이런 일상위에 세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의 무지와 경솔함에 경악할 위인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일상은 중요하다.  참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종국엔 일상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삶 전체를 좌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경험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것이다.


저자는 얘기가 재밌게 솔솔 풀려 갈 즈음, 놀랄만한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바로 ‘몰입’이었다.  일상을 흐르는 수많은 경험들 가운데 우리가 진정으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경험은 몇이나 될까?  단순한 의식주 행위와 하릴없이 보내는 휴식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루하루의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기 일쑤이다.  예를 들자면, 퇴근 후 친구와 만나 즐겁게 술을 마시면서도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시간과 돈을 낭비한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한다.  또 여러 생각은 논리적 인과 관계에 따라 가지런히 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두서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얽혀 있다. 

이렇듯 가슴과 의지와 정신이 일치하는 순간이 많지 않아 우리는 늘 조급하고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할 때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보자.  나의 경우엔 글을 쓸 때, 식사 시간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누가 불러도 도통 들리지 않을 만큼 정신이 온통 거기에 쏠려 있게 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를 볼 때,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일을 할 때, 누구나 그 순간에 완전히 빠져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경험을 몰입이라 명했다.  몰입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무아(無我)지경, 황홀경, 몰아(沒我)일체 등 몰입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이 순간의 의식이 경험으로 꽉 차 있다는 것이다.

어떤 잡생각이나 상념도 끼어들 틈 없이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의 상태.  어떤 경험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화초를 가꾸거나 음악을 들을 때, 운동을 하거나 요리를 할 때 사람마다 몰입을 경험하는 순간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몰입을 경험할 때 우리는 모두 행복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몰입에 대해 열을 올리는 것일까?  오히려 저자는 삶을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그저 깊이 빠져드는 몰입 그 자체의 상태라고 말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경우는 다양하고 많다.  배고픔 뒤 찰진 밥알을 천천히 씹어 넘길 때의 그 달짝지근함, 일요일 오후 봄 햇살에 찾아오는 기분 좋은 노곤함, 사랑하는 사람과의 달콤한 속삭임 등등.  하지만 이런 유형의 행복감은 상황에 따라,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눈 녹듯 사라지기에 ‘몰입’과는 차원이 다르다. 


까다로운 수술을 하는 외과의나 고난도의 작품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위와 같은 달콤한 행복감을 느낄 여유가 없다.  오히려 긴장감과 불안감이 이들을 더욱 죄어오고 심지어는 두려움까지 생길 정도이다.  그들은 모든 일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다.

깨끗하게 마무리된 수술 부위를 살펴보며, 청중들의 기립박수에 몇 번이나 뛰어 나오면서 그때에야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 

일상의 총족감이나 편안함이, 행복의 거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던 내 뒤통수를 거침없이 후려치는 일격이었다. 


우리가 바라는 참다운 삶, 행복한 삶의 이면에는 일상이라는 경험이 전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일상 안에는 단편적인 행복감을 넘어선 완전한 몰입의 상태가 존재했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깊게, 지속적으로 몰입을 경험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일상, 즉 삶이 온전해 질 수 있다.  참다운 삶, 행복한 삶을 바라는 사람은 그야말로 주저 말고 나서야 한다.  도처에 깔린 몰입의 순간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제 정말 묘자리나 보러 다녀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은 나도 어찌 해 볼 요량이 없다.


몰입의 즐거움.  그렇다.  저자의 말대로 몰입은 즐거운 것이다.  즐겁고 황홀한 경험이다.  우리 삶이 먼 미래의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허황되지 않기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일상의 재발견을 통해 순간순간을 깊이 있게 음미하기를, 그리하여 그 몰입의 순간들로 우리가 고대하는 참다운 삶을 이룰 수 있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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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2 09:19:27 *.51.12.117
좋은 책이 참 많은데...읽어야 할 책이 참 많은데...아쉽습니다.
서버이전으로 인한 버그현상일 수도 있지만 다른 카테고리에 비해 <좋은 책 이야기>에 글이 많이 없어요.
뇌와 가슴을 울리는 좋은 책 한권의 나눔이 모두에게 강력한 자양강장제가 될 수 있을텐데...
많이 많이 나누어 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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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s0053
2009.06.13 00:57:28 *.117.250.153
위 게시판에 올리는 여러 분들을 포함해 나리님의 좋은 책 나눔 평도 잘 보고 있습니다.

곧 한 권 한 권씩 쌓여 강력한 시너지 효과가 될 수 있겠죠.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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