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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2일 17시 05분 등록

음악이 깃든 시 - 부록

: 사연이 있는 가곡 이야기

 

이번 33편의 시 채집을 하면서 그동안 좋아했던 가곡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행복하고 신기 하던지요. 제가 느낀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어 사연이 있는 가곡 이야기를 부록으로 만들었습니다.

 

☐ 임이 오시는지 - 박문호 작시/ 김규환 작곡/ 황영금, 양희은, 조수미 노래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빛 먼 길 임이 오시는가

갈숲에 이는 바람 그대 발자췰까

흐르는 물소리 임의 노래인가

내 마음은 외로워 한없이 떠돌고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만 차오네

 

백합화 꿈꾸는 들녁을 지나

달빛 먼 길 임이 오시는가

풀물에 배인 치마 끌고 오는 소리

 

꽃향기 헤치고 임이 오시는가

내 맘은 떨리어 끝없이 헤매고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이 이네

바람이 이네

 

<임이 오시는지>는 정중동(靜中動)의 동양적인 멋을 느끼게 한다. 새벽이 다가오도록 잠 못이루고 강가에서 임을 기다리는 마음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곡이다. 한 평론가는 이 곡을 "풍부한 정서가 말없이 눈내리듯 쌓이는 가곡"이라고 평했다

정지해 보이는 것 같은 강물에서도 작사자는 강물 속에 흐르는 이별과 기다림의 정한을 끄집어 냈다. 이 강심(江心)은 강의 마음이 아니라 강에 감정이 이입된 시인의 마음이다. 작곡가 역시 작사자의 감정에 부합하여 차분하고 예쁜 곡을 붙였다.

 

<임이 오시는지>가 작곡된 것은 1966년 5월 13일. 작곡가 김규환(74세. 한국작곡가회 회장)씨가 KBS합창단 상임지휘자로 근무할 때였다. 당시 KBS라디오는 남산, 지금의 영화진흥공사 건물의 맞은편 통일원 건물이었다. 그 날 김씨는 우연히 구겨진 오선지를 사무실 휴지통에서 발견했다. 누구의 악보일까. 그는 집어서 폈다. 곡은 박문호 작사, 이흥렬 작곡의

<임이 오시는지>였다. 그 가곡은 KBS가 작곡을 의뢰했던 것인데 담당자가 곡이 마음에 들지 않아 묵살시켜 버린 것이다. 김씨는 같은 작곡가의 입장에서 가사를 주의 깊게 읽다가 너무 곱고 아름다운 시상에 감흥을 느껴 양복주머니에 넣고 집에 와서 새로 작곡을 했다. .<임이 오시는지>를 작곡한 며칠 후 소프라노 황영금씨가 자신이 노래할 신작이 없느냐고 물어와서 선뜻 이곡을 주었다. 이래서 황씨가 초연하고 레코드에 취입했다.

 

그러나 김씨는 작사자 박문호씨를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다. 연고자가 스스로 나타난 일도 없고 이흥렬에게 직접 문의할 처지도 못 돼 혼자 시인 협회나 문인협회 인명사전을 뒤져봤지만 연락처를 알지 못했다. 그는 선배작곡가에 대한 예우로서 아직 <임이 오시는지>의 본래 작곡가가 이흥렬이었다는 사실을 공개한 일이 없다. 그러나 이흥렬씨가 이미 작고하였고, 한 소설가의 모든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듯이 공개해서 역사적 자료로 남긴다 해도 고인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으리라 믿으며 이 책을 통하여 최초로 공개한다.

김규환씨는 이 곡이 레코드에 취입될 기회가 와도, 작사자의 저작권 문제가 생겨 좌절되거나 그 자신이 권리행사를 하는 등 불편이 있어서 박문호를 찾으려고 무척 애를 쓰다가 포기해 버렸는데 그런 상황에서 1985년 일간스포츠에 "지금도 유족을 만나기를 원한다"는 기사가 게재된 후 박문호의 차남 박영식 씨가 연락을 취해 와서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김씨는 공교롭게도 그 며칠 전인 10월 중순경에 <김규환 합창곡전집>을 출판했는데 여기에 <임이 오시는지>의 합창곡을 수록하면서 처음으로 작사자를 김규환으로 바꿔 넣었다가 박씨를 만남으로써 그는 황급히 정정하는 성가신 일을 치루기도 했다.

 

이향숙 저 <가곡의 고향>에서 발췌

출저: 내 마음의 노래

 

☞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곡 중 하나입니다. 역시 사람의 감성을 통하는 게 있는지 초연을 한 황영금님 이외에도 양희은, 조수미 등 우리에게 친근한 가수들이 다시 불렀습니다. 조수미씨의 목소리로는 들어봤는데, 양희은님 버전도 멋질 것 같습니다.

 

☐ 얼굴 - 심봉석 작시/ 신귀복 작곡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올라갔던

하아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는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젊은 두 교사의 영원한 연인 '얼굴'

「얼굴」은 사춘기 소녀가 풋사랑 소년의 모습을 생각하는 노래 같다. 소녀취향의 로맨티시즘과 수줍고 풋풋한 사랑의 감정이 표출돼 있다. 그러나 실상은 소녀도 아니고 사춘기도 오래 전에 안녕을 고한 두 청년 교사가 즉흥적으로 나름의 구원의 여인상을 머릿속에 상상하며 만들었다.

 

 

때는 1967년 어느 날, 두 사람은 서울 동도공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이 학교 교무실이 「얼굴」의 요람이다. 아침에 교무회의가 열리고 있었는데 교장의 말이 몹시 지루하게 느껴졌다. 지리함에 지친 생물교사 심봉석씨가 먼저 소근대며 말했다.

“교장 얘기 따분한데 서로 애인 생각하면서 노래나 하나 지읍시다. 제목은 ‘얼굴’이 어떻습니까?”

“좋죠. 심 선생이 가사를 짓고 나는 곡을 지어서 나중에 연결하면 좋겠군요.”

음악교사 신귀복씨도 대찬성이었다. 두사람은 열심히 메모지에 작업을 시도했다. 드디어 조회가 끝난 후 두 교사와 동료교사 10여 명이 음악실로 갔다. 악보에 심씨의 가사를 써 놓고 피아노를 쳤다. 대부분 교사들은 썩 좋다고 칭찬했고, 어떤 교사는 “맹물(생물)교사가 무슨 가사를 쓰느냐”며 농담도 걸었다.

 

심씨는 좀 더 멋진 노래를 만들고 싶어서 보름 동안을 매일 퇴근 후 소공동 모 음악다방에 두 시간씩 앉아 다듬었다. 1절 마지막 구절의 ‘맴돌다’를 ‘맴돌곤 하는 얼굴’로 바꾸면서 멋을 부리는 데만 일주일 동안을 고심했다. 신귀복씨는 작곡 후 “누구 얼굴을 그리워하며 작곡했느냐”는 추궁을 부인과 친지로부터 귀찮을 정도로 많이 당했다고 한다.

이런 추궁은 심씨도 마찬가지여서 후에 결혼한 부인에게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심씨는 이렇게 해명한다.

“양정고교를 다닐 때 매일 우리집 앞을 지나가던 동그란 얼굴의 여학생이 있었지요. 말도 한 번 건넨 일이 없고 이름도 모르는 소녀였으나 매일 만났으므로 통통한 얼굴이 인상에 남았나 봅니다.”

억지로 얼굴의 모델을 찾으라면 그 여학생의 이미지를 닮은 허구의 여인이 모델이라는 설명이다. 그때 신씨는 KBS라디오의 ‘노래 고개 세 고개’프로의 심사위원으로 있었는데 담당 프로듀서에게 「얼굴」의 악보를 보여주었다. 그 노래가 방송을 타고 전국에 소개되자 여학생들의 팬레터가 쇄도했다. 악보를 보내 달라는 요청으로 3개월간 무려 8,000매를 복사해서 우송했다. 일본의 한 교포는 청와대로 편지를 보내 악보를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1937년생인 신씨의 고향은 경기도 안성군 안성읍 구포동 184의 2. 안성초등학교 옆집이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한참 걸어 깨끗한 거리에 서 있는 학교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뒤쪽에 붙은 몇 채의 작은 집 틈에 그의 생가가 있다. 지금은 학교와 그의 생가 사이가 담으로 막혀 있는데 그가 어릴 땐 담이 없었다.

“집 마당을 지나면 곧장 학교 운동장이 되었지요. 30초면 등교를 했으니까요.”

학교는 그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학교는 지대가 좀 높은데 그의 생가와 학교사이엔 축대가 없이 언덕에 호박 등을 심어 경계를 삼고 그리로 올라서 학교로 갔다.

학교 수업이 끝나도 그는 계속 남아서 놀고 오르간도 혼자 쳐 보았다. 매일 혼자 아무렇게나 두들겨 보며 신기해했고 점점 흥미를 느꼈다. 교과서에서 배운 노래도 혼자 흉내 내어 쳐보곤 했다. 매일 연습을 하는데 나중에 음악을 아는 담임 선생 눈에 띄어 그에게 악보 읽기 등의 기초 이론을 지도 받았다.

그의 생가는 지금 방이 5개 되는 ㄷ자형의 낡은 기와집으로 여러 가구가 옹기종기 산다.

카톨릭집안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천주교 학교인 안법 중고교에 진학해서 밴드부에 들어가 트럼펫을 불었다.

안법교교 재학시절 군청의 의뢰로 작곡가 이흥렬이 ‘안성의 노래’를 작곡한 일이 있었다. 작곡 후의 멜로디는 안법교교 밴드부가 시연을 했다. 이 학교 밴드부는 KBS주최 전국관악경연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을 한 밴드의 명문이다. 학생들은 힘껏 연주를 하고 제법 잘했다고 자신에 차 있었는데 이흥렬은 박자가 안 맞는다고 노래로 불렀다. 노래는 과연 학생들이 냈던 소리와는 달리 절묘했다. 신씨는 그에 감동을 받고 “나도 저런 훌륭한 작곡가가 되고 싶다: 고 결심했다.

 

신씨의 첫 작품은 1966년 ‘말하기 좋다 하고(정철 시)’. 이 곡도 KBS합창단을 통해 방송으로 소개되었다.

「얼굴」은 그의 두 번째 작품이자 대표곡이다. 1983년까지 김성태편 교과서에 수록됐고 TV드라마 배경음악으로 사용돼 대중적으로 애창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여고생과 여대생들의 애창곡이 되기도 했다. 멜로디가 쉽고 콧노래로 부르기도 쉽다. 「얼굴」에는 에피소드가 많다. ‘자신이 작사.작곡’했다는 가짜가 수없이 나타나 직접 그들을 만난일도 있다고 한다. 관악구 모학교 학생들은 ‘우리 학교 교감선생님이 작사,작곡 둘 다했다고 말씀하셨다“면서 주장하기도 했다. 어느날엔 검문소에서 신분증이 없어 곤란을 겪었을때에 「얼굴」을 불러주고 작곡가라고 말하고 통과하기도 했다.

 

한편 작사자 심봉석씨는 현재 상봉교역이라는 조그만 의류수출업체를 경영하고 있다. 그는 충남 공주군 탄천면 안영리에서 1941년에 태어났다. 서울 사대 생물과를 졸업하고 여러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얼굴」의 작사 당시는 미혼이었으나 그 후 서울 사대 동기동창생과 결혼했다. 신촌의 어느 술집 여주인은 「얼굴」의 열렬한 팬이어서 지금도 술값을 안받는다고 한다. 한때 대중가요로 편곡돼 불리기도 한 「얼굴」은 그래서 대중가요로 아는 이도 있지만 결코 대중가요는 아니라고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강조한다.

 

- 이향숙 '가곡의 고향'

 

☐ 푸르른 날에 - 서정주 작시/ 송창식 작곡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오래 전 가수 송창식이 노래로 불러 널리 알려진 서정주의 시「푸르른 날」. 이 시는 미당이 34세에 펴낸 둘째 시집『귀촉도』(선문사,1948)에 실린 24편의 작품 가운데 하나다.『귀촉도』는 미당이 첫 시집『화사집』(남만서고,1948)에서 보여준 “麝香 薄荷의 뒤안길”로 “병든 수캐만양 헐덕어리며” “石油 먹은듯…石油 먹은듯…가쁜 숨결”이 온전히 극복되고 무한(無限)의 깊은 내면 세계로 이행(移行)하는 그의 시적 도정(道程) 앞머리에 놓여있는 시집이다. 표제시「귀촉도」를 비롯하여「밀어」「꽃」「견우의 노래」「문열어라 정도령아」「푸르른 날」등이 예의 그 명편(名篇)들이다. 시「푸르른 날」을 눈으로 읽으면 나도 모르게 자꾸 가락이 솟아난다. 꼭 송창식의 노래 때문만은 아니다. 전체 시행의 4음보 처리, 수미상응(首尾相應)의 구조, 3․4연의 각 1행과 2행이 갖는 대구와 반복이 시의 가락(음악)을 절로 솟구치게 한다. 그리고 “저기 저기 저,”와 “또오면”의 시적 수사(修辭)는 또 어떤가. 삼십대 초반의 젊은 시인이 감히 말해버린 “초록이 치처 단풍드는데”라는 귀기(鬼氣)서린 표현에 내 심장이 찔려서 지금껏 그의 시를 읽고 또 읽는다. 바야흐로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 철이다. 산과 들로 미당의 이 노래를 들고나가 노래 부르며 빛바래가는 가을 초목들에게 눈 한 번 맞춰보면 어떨까. 그리하여 혹 나를 볼 수 있다면.

 

-이종암(시인)

 

서정주(徐廷柱:1915- ) 시인. 호는 미당(未堂). 중앙불교전문학교 졸업.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 등단.

 

☞ 자기 시를 노래로 만드는 것을 왠만해선 허락치 않는 서정주가 어느 날 송창식에게 ' 이 시는 곡을 만들기 쉬울거야...'

     라고 슬쩍 속내를 비췄고 송착식은 그 뜻을 알아채고 곡을 붙여 들려 주었는데, 이곡을 서정주는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 송착식의 '푸르른 날'을 듣노라면 가슴이 뻥~하고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송창식님의 목소리..

     정말 끝내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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