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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3일 20시 46분 등록

미래,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눈먼 시계공』

김탁환·정재승 글, 김한민 그림, 민음사, 2010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눈먼 시계공』은 로봇공학과 뇌과학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에서 벌어질 가상의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테크노스릴러 소설이다. 소설가 김탁환과 과학자인 정재승 KAIST 교수의 공동작업을 통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문학과 과학의 통섭을 시도해 화제를 모았다. 때는 2049년, 세계는 국가와 민족개념이 폐기된지 오래고 기계와 인간이 몸을 섞으며 새로운 진화를 꿈꾸는 시대다. 장소는 서울특별시, 유비쿼터스 기능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21세기형 메트로폴리탄으로 인간과 사이보그, 로봇이 공존한다. 기계는 좀더 인간 같아지고, 인간은 좀더 기계 같아진다. 자동차가 자동항법장치를 통해 알아서 운전을 하고, 사람몸의 상당부분은 기계로 대체되었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로봇과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은석범 검사가 팀장으로 있는 서울특별시 보안청 ‘스티머스 수사팀’은 스티머스라는 기계를 통해 전전두엽에 저장된 최근 10분의 단기기억을 복원해,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뇌에서 마지막 단기 기억을 영상으로 재생해 범인을 체포하는 특별 임무를 수행한다. 특별시 안에서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피해자의 뇌가 사라진다. 단기 기억 재생 장치의 존재를 아는 누군가의 소행으로 짐작되지만, 사건의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특수 수사대의 형사들도 하나하나 희생당한다. 같은시간, 과학과 자본의 욕망이 어우러져 지상 최강의 로봇을 가리는 로봇 격투기 대회인 ‘배틀원’은 점점 더 광분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한쪽에서는 자연 회귀주의자들의 테러와 투쟁이 격화된다. 무엇보다 로봇격투기라는 SF적 요소와 연쇄살인이라는 스릴러를 결합한 흥미로운 소재에, 기발하고 유쾌한 상상력이 보태져 지루할 틈이 없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숨가쁜 추격과 액션, 그 사이에 흐르는 로맨스와 세계 최강 격투 로봇들의 극적이고 생생한 한판 승부가 책읽기를 좀처럼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눈먼 시계공’이라는 소설의 제목은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같은 제목의 책에서 따왔다. 리처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이란 작품을 통해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명쾌하게 설명해냈다. 자연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보니 자연은 목적도 설계도 없는 자연 선택의 산물이고 그저 잘 짜여진 시계와 같더라는 이야기다. ‘신’이라는 초자연적 존재의 힘이 아닌 바로 ‘자연선택’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의 창조주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 책 『눈먼 시계공』은 여기서 조금 더 많이 나간다. 인류가 로봇공학과 사이버네틱스 그리고 정보기술 같은 기계문명을 통해 스스로를 진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로봇에게 인간의 지적 능력을 부여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로봇이 인간처럼 욕망하고 자의식을 가진 존재로 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를 가능하게 만들려는 사람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핵심인물 중 하나인 뇌 과학자 노민선 박사다. 독자들과 만난 한 강연회에서 저자들은 제목에 숨겨진 뜻이 있다고 말했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있는 로봇 ‘글라슈트’는 사실 유명한 수제 시계 이름이다. 소설 속에서 글라슈트를 만든 이가 노민선 박사다. 즉, 글라슈트를 만든 과학자가 ‘눈먼(어리석은) 시계공(로봇공학자)’이라는 것이 연상된다. ‘눈먼 시계공’은 로봇을 우승시키기 위해, 어머니의 복수를 하기 위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어리석은 로봇공학자 노민선을 뜻하기도 한다. 소설에 담긴 인류의 미래는 충격 그 자체다. 그렇다고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허황된 소설로 치부해버리고 지나칠 수가 없다. 테크노스릴러로 포장했지만 과학기술이 가져 올 미래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과 인간 생존 문제 등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21세기 들어 이미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유전학, 나노기술, 로봇공학이라는 심원한 혁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소설에서 재미 이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소설의 大尾는 에필로그인 ‘눈보라’다. 은석범 검사와 남앨리스 형사는 연쇄살인을 해결한 일등 공신이었지만 보안청을 사직할 수밖에 없었다. 노민선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스티머스 수사팀의 실체를 폭로한 석범에게는 기밀 누설죄가 적용되었고, 사고로 75%의 기계몸을 갖게 된 앨리스는 인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석범은 죽은 어머니의 뜻을 잇기 위해 특별시를 떠나 생태주의자들의 마을로 가기로 하고, 눈보라 마을로 사람들을 초청하는 안내문을 작성한다. “우리는 결코 우리끼리만 평화롭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눈보라 ‘속’에 있습니다. 깨어 움직이지 않으면 쓰러지고 맙니다.” 그때 방송국 PD인 왕고모 이윤정이 새 작품을 의논하자고 들이닥친다. 이를 피해 석범은 앨리스와 밖으로 뛰쳐나가는데 앨리스가 묻는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석범이 답했다. “눈보라 속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줄곧 들었는데, 특히 이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멋진 장면이 연출될 것 같아 마음이 설레기까지 한다.

  매주 한차례씩 나가는 독서모임에서 최근에 읽은책이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n Near)』였다. 이 책의 저자인 미래학자이자 발명가인 레이 커즈와일 박사는 2030년쯤 유전공학, 나노공학, 로봇공학 등 과학기술의 발전속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는 급격한 변화의 시점인 ‘특이점’이 온다고 예언했다. 그때쯤이면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게 되며 인간이 자신의 기억을 기계에 이식해 정신적으로 불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처음에는 그의 주장이 무척 엉뚱하고 과격하게 들렸는데 이 소설을 읽다보니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2010년의 인류는 집단지성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고 정보기술의 발전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나가고 있는 중이다. 컴퓨터의 기능이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이 지속된다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컴퓨터의 출현은 결국 시간문제다. 그러나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가 특이점 이후를 ‘유토피아’로 부르지만, 특이점대를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시도로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 정신적 불멸을 추구하는 부류와 현재의 모습을 지키려는 부류로 인류가 나뉠 가능성도 있다.『눈먼 시계공』에서 그리는 미래사회의 모습도 결코 ‘유토피아’ 는 아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푸르스트는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아마 인류가 맞이하게 되는 미래모습이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는지는 결국 우리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과연 인류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상상력은 어디까지 실현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미래의 인간은 그래서 더 행복할까.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의문이다. “가장 좋은 시간이었으면서도 가장 나쁜 시간이었다. 지혜로움의 시대였으면서도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두 도시이야기》에서 찰스디킨스가 한 말이다. 우리시대를 두고 그렇게 말하지 않게 되기를 바랄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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