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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3일 00시 08분 등록
아주 오래 전에 아버지가 제게 말씀 하셨습니다. “승완아,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의 파란불을 기다릴 때는 차도에서 1m 정도 떨어져 있는 게 좋아.” 이렇게 떨어져 있으면 비오는 날 지나가는 차로 인해 물벼락을 맞지 않고 차가 인도로 들이닥쳐도 피할 수 있으며 1m를 걸어가는 잠깐의 시간 덕분에 급하게 지나가는 차에 사고를 당할 확률도 적다는 게 아버지의 설명이었습니다.

아버지 말씀을 따르니 비오는 날 길을 건너다 빗물을 뒤집어쓰거나 급정거하는 차 때문에 낭패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살다보면 경험에서 나온 어른들의 지혜가 유용한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학자인 닐 로즈는 <If의 심리학>에서 저와 비슷한 경험을 들려줍니다.

“나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 여윳돈이 있어 어떤 물건(옷, TV)을 살까, 어떤 경험(여행, 음악회)을 할까 망설여진다면 경험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고. 경험이나 물건을 사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비슷하지만 경험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갔던 휴가 여행은 기억해도 오래전에 가지고 있었던 TV는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로즈가 말하는 ‘어머니의 지혜’는 여러 심리학 연구로 확인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심리학자인 리프 밴 보번과 길로비치는 2003년에 진행한 설문 조사를 통해 사람들이 물건(옷)보다 경험(음악회)에 돈을 썼을 때 더 큰 행복과 만족을 느낀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이 연구의 설문에 참가한 한 사람은
“물질적인 소유물은, 그것은 일종의 배경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경험은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제가 쓴 가장 큰 지출은 1주일간 혼자 여행한 것과 노트북을 구입한 것입니다. 혼자 여행하는 데는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돈이 들었습니다. 둘이나 셋이 갔더라면 분담할 수 있었던 숙박비를 혼자 지불하려니 만만치 않았습니다. 노트북 역시 글을 쓰는 제게 기본 연장과 같은 것이어서 조금 욕심을 냈습니다. 4월에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 신중하게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여행하기와 노트북 구입은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습니다. 돌아보면 여행이 노트북 구입보다 더 기억에 남고 더 큰 만족을 줬습니다. 몇 달밖에 사용하지 않은 노트북은 더 이상 나를 설레게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혼자 한 여행은 몇 번이나 다시 생각해도 나를 행복에 잠기게 하고 내 가슴을 뛰게 합니다.

예전에 저는 소유물(물건 구입)이 여행과 같은 경험보다 더 큰 만족감을 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변화경영연구소에서 매년 진행되는 연구원들의 해외연수에도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해외여행을 할 돈으로 다른 유용한 것을 사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제 생각은 바뀌었습니다. 같은 돈을 투자한다면, 그리고 그 물건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면 저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보다 경험을 택할 겁니다. 

“사람들은 새로 산 물건들에는 굉장히 빨리 익숙해지지만 오래 전의 아름다운 순간들은 두고두고 기억하며 즐거워한다.”
- 닐 로즈 지음, <If의 심리학> 중에서
IP *.49.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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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2009.12.08 01:00:30 *.59.199.241
정말 맞는 말씀인 것 같아요. 돈이 많으면 여행을 떠날 것 같지만 누구나 돈이 있다고 떠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소유의 욕구와 존재의 욕구와도 관련이 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여행에서 만든 아름다운 추억으로 일년을 버틸 힘을 얻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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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09.12.08 12:58:19 *.238.40.80
아, 그렇네요.
에리히 프롬이 말한 존재 중심의 삶과 소유 중심의 삶의 차이인 것 같네요.
여행과 같은 경험은 자연스럽게 존재와 섞이기 때문에 만족감이 더 오래가는 것 같아요.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햇살님 이야기를 들으니 잘 정리되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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