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좋은

함께

여러분들이

  • 현운
  • 조회 수 4284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9년 10월 13일 22시 42분 등록

알랭 드 보통은 걸출한 작가다. 지식과 상상력이 풍부하여 간단한 상황으로도 한 챕터의 글을 써 낸다. 정확하고 뛰어난 사고력은 독자들이 생각하도록 자극한다. 특유의 차분하고 냉소적인 유머는 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유쾌하게 읽히니 독서를 즐기려는 대중들도 좋아하고, 깊은 통찰을 보여 주니 책을 통해 배우려는 식자들도 그의 책을 읽는다. 어떤 소재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즐거운 교훈'이 된다. 읽을 때엔 즐거움이 가득하고 책을 덮은 때엔 남는 것이 묵직하다. 말하자면, 알랭 드 보통은 유쾌하면서도 능력 있는 교사다. (책을 통해 그를 만날 때에는 정말.)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책 한 권을 읽은 후 그의 다른 책을 집어 들었고, 두 권의 책을 읽고 나서 그의 팬이 되었다.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만드는 작가를 만난 셈이다. 나는 아직 읽을 수 있는 그의 책이 많이 남아 있으니 흐뭇하다.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는 마르셸 프루스트의 읽히지 않는 명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소재로 하여 풀어낸 드 보통이 전하는 인생살이 수업이다.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법, 여유 있게 사는 법, 훌륭하게 고통을 견디는 법, 책을 치워버리는 법 등의 주제를 다뤘다. 주제 하나하나마다 즐거운 교훈을 건질 수 있다. 무엇보다 그러한 교훈을 독자들의 가슴에 정확히 위치시키는 그의 글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초보 저자로서 나는 알랭 드 보통이 부럽다. 나는 그에게 매료되었다. 책의 한 구절도 소개하지 못한 채 이렇게 그를 찬양하고 있으니.


"병(病)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주목하고 배우게 되며, 그것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을 과정들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매일 밤 침대 위에 눕자마자 즉시 잠에 들어서 깨어 일어나는 순간까지 죽은 듯이 자는 사람은, 반드시 위대한 발견일 것까지는 없지만, 분명히 수면에 관한 작은 관찰조차도 꿈꿔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자고 있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한다. 약간의 불면증은 우리가 잠에 대해 감사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을 던진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없지 않다. 기억을 잘하는 것은, 기억이라는 현상을 연구하는 데 그다지 큰 이점이 아니다."(프루스트)

물론 고통 없이도 우리의 정신을 사용할 수 있지만, 프루스트가 제시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때에만 철저한 탐구심이 생길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앓는다, 고로 생각한다.

- 알랭 드 보통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생각의나무, p.92


최근 나를 참 힘들게 했던, 마음이 아파 길거리에서 엉엉 울게 했던 일이 있었다. 덕분에(!) 프루스트의 저 말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안다. 내가 겪었던(사실은 지금도 진행 중인) 상실의 고통은 하루 종일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들었다. 말로만 들었던 관광 명소 앞에 서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친구들의 위로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모든 감각이 멈춰 버린 듯했다. 오직 그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는 앓았다, 고로 (평소보다 엄청 많이) 생각했다."
고통은 생각하게 만든다. 고통 없이 떠오른 생각은 동기부여의 중요한 원천 하나를 결여한다는 드 보통의 생각에 나는 동의한다. 고통 자체는 어둡고 하염없이 긴 터널 같이 막막한 것이지만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통과하면 우리는 성장의 빛을 경험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건강한 세계관과 사고력을 지닌 자는 고통을 통해 더욱 건강해지고, 인생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좀 더 폐쇄적이고 염세적이 되는 듯하다.) 건강한 이들이여, 고통을 환영하라!

IP *.166.82.219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북리뷰 안보이시는 분들 일단 파일첨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4] 관리자 2009.03.09 87494
718 첫번째, 신화와 인생 북 리뷰 윤인희 2010.02.15 4304
717 "신화와 인생"-6기 후보자 김창환 야콘 2010.02.15 4305
716 [예비 7기] 1주차_신화의 힘_조셉 캠벨 file 김서영 2011.02.21 4305
715 신화와 인생 file 박미옥 2010.02.15 4306
714 천하에 가르쳐서는 안 되는 두 글자, 소일(消日) 승완 2009.08.31 4307
713 위대한 리더는 섬기는 리더다 - 『최고의 리더』 현운 2009.11.15 4307
712 탈진을 예방하는 법 이희석 2009.12.11 4307
711 디지털 혁명의 미래_고든벨, 짐겜멜 맑은 김인건 2010.03.02 4307
710 [7기 연구원 지원] <공감의 시대> 북리뷰 [2] 이현정 2011.02.28 4307
709 [5기2회4차] '제국의 미래' - 북 리뷰 [1] 장성우 2009.03.08 4308
708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김용빈 2010.03.01 4308
707 다석 마지막 강의 맑은 김인건 2010.03.24 4308
706 [8기 지적레이스 4주차/ 정나라] 선배님들! SOS칩니다. 조... [17] 터닝포인트 2012.03.06 4308
705 북리뷰6 변신이야기 [5] 신진철 2010.04.13 4309
704 [북] 글로벌 소프트웨어를 꿈꾸다. - 김익환 (대한민국에는... [1] 하모니리더십 2010.11.07 4309
703 <북리뷰>눈먼 시계공 구름을벗어난달 2010.11.23 4309
702 나만의 여행 스타일 만들기 현운 2009.08.14 4310
701 [7기_1주차]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 리뷰 [1] 미나 2011.02.19 4310
700 [먼별3-25] <헤르만 헤세의 "예술"> 헤세는 예술이 뭐라 생... [2] 수희향 2011.03.02 4310
699 [7기]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file [2] 이루미 2011.03.07 4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