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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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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31일 02시 56분 등록

[북리뷰 13] 난중일기

 

1. 저자에 대하여

 

이순신 (李舜臣, 조선중기 무관,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

1592년 나라에 난이 일어나면서 그의 일기가 시작된다. 삼군의 수군통제사로서 나라의 운명을 맡은 사람으로서 1598년 11월 노량해전에서 숨지기까지, 7년간. 그가 남긴 기록 <난중일기>를 통해, 만나 본 그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 늘 걱정이 많고, 다른 사람 미워할 줄도 알고, 타고난 전략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늘 철저히 준비하려고 했고, 늘 돌아보려고 했고, 늘 아파했다. 주머니 속 10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동전의 뒷면에 숨겨져 있던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그가 평상시에 주로 하는 일은 ‘보는 일’이었다. 하루의 날씨를 보고, 공무를 보고, 찾아오는 이들을 보았다. 매달 초하루와 보름, 그렇게 한 달에 두 번 망궐례를 드리고, 2~3일에 한 번씩 탐색선을 통해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다. 일기 속에 보여 지는 그의 구체적인 일상이 치고 때리고 술 먹이고 베고 죽이고 무찌르는 전투이야기와 맞물려 돌아간다.

 

부하들과 술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잠을 재우고, 활쏘기를 하고, 떡을 내며 사냥한 고기를 보내고, 장계를 보내고, 아침식사를 같이하고, 가끔씩 배 밑창에 앉아 청숭도 떠는. 그는. 칼을 쓰고 머리를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마음을 쓰는 사람이었다. 비가 오면 농사일을 생각했고, 바람이 차면 옷 없는 군사들을, 파도가 일면 격군들의 노고를 잊지 않았고, 노비들의 이름자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적어 두었다.

 

그렇게 매일 매일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썼던 삶이었다. 난중일기는.

1598년 11월 17일, 그가 죽음을 맞던 ‘노량해전’의 출전을 앞둔 전날까지.

 

난중일기, 글을 쓰는 일은 마음을 쓰는 일이다.

 

2. 가슴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글을 시작하기 전에

『난중일기』와 이순신에 대하여

겁을 먹은 거제 현령 안위가 도망하려 하자,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

 

1592년 왜적의 침략이 시작되다

성 밑에 사는 병졸 박몽세는 석수장이인데 선생원에 쓸 돌 뜨는 데로 가서는 동네 개를 잡아먹는 등 민폐를 끼쳤으므로 곤장 80대를 때렸다. p25

 

초1일 새벽에 망궐례를 드렸다. p27

 

통역하는 자들이 뇌물을 많이 받고 명나라에 거짓으로 보고하여 군사를 청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명나라에서는 우리가 왜국과 함께 딴 뜻이 있는가 의심했다고 한다. ... 어기가 없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p30

 

비가 몹시 쏟아져서 아랫사람, 윗사람 구분 없이 일행 모두가 꽃비에 흠뻑 젖었다. p32

 

방비가 다섯 진포 가운데에서 제일 못한데도 순찰사가 잘 되었다고 장계를 올렸다니... 죄를 제대로 검사하지 못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p33

 

서문 밖 해자와 성벽을 더 올려 쌓는 곳을 둘러보았다. 승군들이 돌 줍는 일을 게을리 하므로 우두머리 승려를 잡아다가 매를 때렸다. 아산에 문안 갔던 나장이 돌아와,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전했다. 매우 다행스럽다. p34

 

21일 맑다. 심기가 편안하지 못하여 아침 내내 누워 앓다가 늦게야 동헌에 나가 일을 보았다. p37

 

‘대마도주의 공문에 이미 배 한 척을 내어 보냈는데 만일 귀국에 다다르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바람에 파선한 것이리라.’ 하였다니 그 말이 극히 음흉하다. 동래에서 서로 바라보이는 바다라 그럴 리가 만무한데 말을 이렇게 꾸며 내니 그 간사함이 헤아리기 어렵다. 하였다. p38

 

그리고 거북선에서 대포 쏘는 것도 시험해 보았다. ... 활 10순을 쏘았는데 5순은 모두 맞고, 2순은 네 번 맞고, 3순은 세 번 맞았다. p38

 

해 질 무렵 경상 우수사가 통첩을 보냈는데, 왜선 90여 척이 와서 부산 앞 절영도에 정박했다고 하였다. p42

 

16일 밤 10시께 영남 우수사의 공문이 왔는데, 부산과 같은 큰 진이 벌써 함락되었다고 하였다. p42

 

왜적이 부산을 함락시킨 뒤에 계속 머무르면서 물러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p42

 

오후 2시께 경상 우수사의 공문이 왔는데, 동래도 함락되었고 양산, 울산의 두 수령도 조방장으로서 성을 지키다가 모두 패배하였다고 하였다. p43

 

방비할 고세 구덩이를 파도록 아침에 군관을 정해 보냈다. 나도 일찍 아침을 먹은 뒤에 동문 위로 나가서 방비할 곳을 직접 독려하였다. p43

 

22일 새벽에 망보는 일이 이상 없는지 조사하도록 군관들을 보냈다. p43

 

새벽 2시쯤 이언호가 급히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함해현 성 안의 관청 건물과 여염집들은 거의 비어 있고 집안에서 밥 짓는 연기도 나지 않으며, 창고의 문은 이미 열려 곡식은 흩어졌고, 무기고의 병기도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 사유를 물어보니 ‘적이 급박하게 닥쳐오자, 온 성 안의 사졸들이 소문만 듣고 도망했으며, 현령과 첨사도 따라 도망항 간 곳을 알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p44

 

성을 비우고 도망했다는 말이 그럴듯했다. 부하들이 보고하는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려워서 군관 송한련에게 “이 말이 사실과 같다면 적에게 무기와 양식을 주는 격이 되어 본도로 침입하여 오래 머물려 퇴각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 창고와 무기고 등을 불살라 없애라.” p44

 

이 왜적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벌써 달아났고, 무기 등 온갖 물자도 죄다 흩어져 남은 것이 없다고 했다. 참으로 놀랄 일이다. p45

 

본도 우수사가 수군을 끌고 오기로 함께 약속을 정하였는데, 방답 판옥선이 첩입군을 싣고 오는 것을 보고 우수사가 오는 줄 알고 좋아하였다. 그러나 군관을 보내어 알아보니 방담진의 배였다. 매우 실망하였다. p45

 

여도 수군 황옥천이 적의 소식을 듣고는 집으로 도망갔으므로 이를 잡아다가 목을 베어 내다 걸었다. p47

 

그런데 적진포 근처에 사는 향화인(귀화한 자) 이신동이란 자가 우리 수군을 바라보고 산꼭대기에서 어린애를 업은 채 울부짖으면서 내려 왔다. 작은 배를 보내 그를 실어 왔다. ... “왜적들이 어제 이 포구에 와서는 여염집에서 빼앗은 재물을 소와 말을 이용해 배에 실었습니다. 초저녁에는 바다 가운데 배를 띄워 놓고는 소를 잡고 술을 마시며 노래하고 피리 불기를 날이 새도록 그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그 곡조를 들어 보니 모두 저의 나라 곡조였습니다. ..” p52

 

원균은 싸움에 패한 뒬는 군사 없는 장수로서 지휘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싸우는 곳마다 화살이나 탄환에 맞은 왜인들을 찾아내어 머리 베는 것을 맡아 하였다. p54

 

“2일 당포에서 싸운 뒤에 왜인들이 죽은 왜인의 머리를 많이 베어 한군데 모아 불사르고 그 길로 육로로 향하는데, 길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도 죽일 생각도 못하고 슬피 울면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p56

 

사도 첨사 김완이 배 한 척을 고스란히 잡고 우후도 배 한 척, 녹도 만호 정운도 한 척을 잡았다. 목을 벤 왜적의 머리를 합하였더니 모두 36개였다. p58

 

그 가운데 나이가 대략 24,5세쯤 되어 보이는, 풍채가 건강하고 의복이 화려한 왜장이 칼을 짚고 혼자 서서 지휘했는데, 남은 부하 여덟 명과 함께 대항하면서 끝내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왜장을 향해 힘껏 쏘아 맞히니 화살을 10여대 맞은 뒤에야 소리를 지르며 바닷물로 떨어졌습니다. p59

 

왜선의 뱃머리에는 특별히 서늘하게 양방을 만들어 두었는데 방 안의 장막이 극히 화려했습니다. 옆에 문서를 가득 넣은 작은 궤가 있기에 집어서 보았더니 왜인 3천 4백여 명에 대한 분군기였습니다. 각기 자기 이름 아래 서명하고 피를 발랐으니 필시 맹세하던 문서인 듯 하였습니다. p60

 

피를 바르고 맹세한 글이 또 이와 같으니 일찍부터 우리를 침범할 마음을 품고 준비하였던 상황을 더욱 짐작할 수 있겠다. p60

 

머리 셋을 베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이름 모를 군관이 배를 타고 와서 위협하고 뺏어 갔습니다. 하였다. p61

 

먼저 판옥선 대여섯 척으로 적의 선봉을 쫒아가서 습격할 기세를 보였다. 그러자 여러 배의 왜적들이 일제히 돛을 달고 쫓아왔다. 우리 배가 거짓으로 물러나며 돌아 나오니 적들도 줄곧 쫓아왔다. 바다 한 가운데 와서는 다시 여러 장수에게 명령하여 학의 날개처럼 진을 치고 일제히 진격하였다. p63

 

그는 왜장을 쏘아 맞혀서 내 배로 묶어 왔는데 화살 맞은 상처가 깊어 말도 못할 정도여서 죄를 묻지 않고 곧바로 베었다. p64

맨 목을 베는 이야기들 뿐이다. 전쟁이야기란 그런 것인가? 베어진 적들의 머릿 수만큼이나 얼마나 많은 우리 군의 병사와 장수들의 목도 베어졌을 것인가. 얼마나 많은 유부녀들이 비참하게 유린당하고, 바다에 던져졌을터인가.

 

방답 첨사 이순신도 왜의 큰 배 한 척을 잡고 왜적 머리 넷을 베었는데, 다만 활을 쏘아 죽이는 데만 힘쓰고 머리 베는 일은 소홀하였기 때문이다. p64

 

그곳 백성 가운데 산골에 숨어 있는 자가 꽤 많았다. 만일 왜선을 모두 불태워 왜적을 도망할 곳 없는 막다른 골목의 도적이 되게 한다면 숨어 있는 우리 백성들이 살육을 당할지도 모르므로 잠시 1리쯤 물러 나와 밤을 지냈다. p67

전쟁의 공을 쫒는 자의 입장에서만 본다면야, 적의 머릿 수가 중요하겠지만, 백성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아픔을 같이 하는 자가 선택하는 전술은 달라 보인다. 지리적 여건을 고려했던 점도 있겠지만, 포구에 머물러 있는 적들을 바다로 불러내어 몰살시키고자 했다. 그는.

 

왜적들은 허둥지둥 닻줄을 끊고 밤을 타서 도망해 버린 뒤였다. 어제 싸움하던 곳을 탐색 해 보니 죽은 왜병을 열두 곳에 모아 불태운 모양이었다. 타다 남은 뼈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손발들이 흩어져 있었다. p67

적에 의해 목이 베어지고, 동료들에 의해 목이 베어지고, 어차피 전쟁은 누구에 의해서건 베어지고 마는 것인가 보다. 다만, 시간과 차례만을 달리할 뿐. 일단 전쟁이 시작되고 나면, 도망칠 곳이라곤 아무데도 없어 보인다.

 

28일 맑다. 새벽녘에 앉아 꿈을 생각해 보았다. 밤에는 나쁜 꿈인 듯했으나 곰곰 생각하니 도리어 길한 것 같았다. p70

 

초2일 싸우고 난 다음날 이다. 또 한 번 쳐들어가서 적들의 소굴을 불지르고, 배들을 전부 깨부술까 하였다. 그러나 위로 올라간 적들이 여러 곳에 꽉 들어 차 있는데, 그들이 돌아갈 길을 끊는다면 막다른 골목에 몰린 도적이 되어 버릴 게 걱정되었다. p75

 

비록 목을 벤 것은 없었으나 힘껏 싸운 공로는 먼젓번보다 훨씬 더하였다. 전례에 따라 공로를 참작하여 등급을 마련하였다. p75

이순신과 관련된 김훈의 ‘칼의 노래’를 보면, 공을 따지기 위해 적의 머리를 베는 일에 경쟁이 심하였던 모양이었다. 때론 적을 치는 일보다, 죽은 왜군들의 머리를 노획하는 일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면서, 전쟁의 의미와 그 난리 통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편린들을 관심 있게 보게 된다.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이순신은 1593년 들어 다시 부산과 웅천의 적 수군을 궤멸시키고, 남해안 일대의 적군을 완전히 소탕하였다. 7월에는 한산도로 진을 옮겨 본영으로 삼고 전쟁 물자를 준비하였다. 이러한 공에 힘입어 이순신은 8월 최초로 삼도수군통제사의 직책을 겸하게 되었다. 한산도는 그 뒤 1597년 파직될 때까지 그의 활동의 중심지였다. p77

 

또한 피난민들에게 여수 앞바다의 돌산도에 들어가 살면서 농사를 짓도록 허락하여 달라는 장계도 올렸다. p80

아무리 난리 통이라도 먹고 살아야 하는 백성들의 삶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삶과 조국의 운명은 먼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어쩔 수 없는 하나의 운명이라는 것, 전쟁 때는 누구든지 절박하게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들이 죽고, 누이가 적에게 끌려가 유린당하고, 살던 집과 마을이 한꺼번에 불타고, 애써 기르던 가축들을 끌고 가고 단 한마디 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전쟁이 아니던가.

 

초8일 맑다. 아침에 영남 우수사(원균)가 내 배에 왔다. 그는 전라 우수사(이억개)가 늦게 온다고 몹시 나무라며, 지금 바로 떠나겠다고 했다. 내가 애써 달래서 기다리게 하고,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도착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과연 한낮쯤 돛을 나부끼면서 들어왔다. 이를 보고 기뻐 뛰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도착하는 것을 보니 그가 거느린 배가 채 40척이 되지 않았다. p82

 

그러나 발포 2선, 가리포 2선이 명령도 없이 뛰어들었다가 얕은 곳에서 (좌초에) 걸려 적들에게 공격당하고 말았다. 분하고 분하여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얼마 뒤 진도 지휘선이 적에게 포위되어 거의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우후가 바로 들어가 구해 내였다. 경상 좌위장과 우부장은 그 모습을 보고서도 못 본 체하고 끝내 도와주지 않았다. 괘씸하여 말하기조차 싫다. 분하고 분하도다. 이 때문에 경상도 수사 원균을 꾸짖었지만 통탄스럽다. 오늘의 분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모두가 경상도 수사 때문이다. p87

 

원 수사는 너무도 음흉하여 말로는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다. p87

 

그런데 경상 수사의 군관과 가닥처사의 탐색선 두 척이 섬 사이를 들락날락하였다. 그 하는꼴이 황당하여 잡아다가 경상 수사에게 보냈다. 그랬더니 수사가 크게 화를 내었다. 그 본래 뜻이 군관으로 하여금 고기잡이 하는 사람들의 머리를 베어 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p88

 

30일 하루 내내 비가 내렸다. 배를 덮는 누추한 뜸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p89

 

초1일 맑다. 새벽에 대궐 쪽을 향하여 예를 드렸다. p92

 

정해년(1587년)에 왜적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나와 일본어를 잘 하는 본영의 진무 공태원을 시켜서 그들이 하는 일과 탐망하는 방법에 대하여 하루 내내 포로들을 심문하였다. p93

 

초4일 맑다. 오늘이 어머니 생신이지만 적을 토벌하는 일 때문에, 가서 오래 사시기를 축수하는 술잔을 올리지 못하니 평생의 한이다. p94

 

명나라에서 나에게 ‘은청금자광록대부’라는 작위를 주었다고 하나 아마 잘못 전해진 소문일 게다. p95

 

병역에 관한 일을 제댈 하지 않았으므로 순천 이방에게도 군법을 시행하려 하다가 그만두었다. p95

 

우수사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지금 창신도에 있는데 군사들이 모이지 않아 배를 타지 못했다고 했다. 바로 당포에 다다르니 마침 이영남이 와서 만났는데 수사가 망령 부리는 일이 많다고 상세히 말하였다. p95

 

밤에 달빛이 배에 가득한데 혼자 앉아 뒤척뒤척하였다. 온갖 시름이 가슴을 쳐서 자리에 들었으나 잘 수 없었다. 닭이 울 즈음에야 얕은 잠이 들었다. p97

 

피난 중인 왕의 사정과 명나라 군대가 하는 짓을 들었다. 애통하고 애통하였다! ... 술이 여러 배 돌자 경상 수사 원균이 왔는데 술주정이 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배 안의 장병들 중 분개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망령된 짓을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다. 영산령(선전관)이 취하여 넘어져서 정신을 못 차리니 우습다. p98

원균과의 관계는 매우 불편했던 모양이다. 일관되게 그의 행태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런데 원균이라는 자, 많은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합당히 처벌되지 않는 것을 보면 중앙과의 관계에서 남다른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마음이 매우 불편하여 드러누워 끙끙 앓았다. 명나라 장수가 증도에서 머뭇거리는 게 다른 생각이 있는 듯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 매우 걱정스러웠다. 일마다 이러하니 더욱 탄식이 나오고 눈물이 흘렀다. p98

 

아침 일찍 몸이 몹시 불편하여 온백원(위장약) 네 알을 먹었다... 조금 있다가 설사를 하고 나니 편안해진 듯 했다. p99

이순신은 강해 보이면서도 자주 아팠던 모양이다. 난리 중에 당하는 백성들의 삶과 임금과 존경하는 인물들의 억울한 인사 그리고 어머니와 가족들의 안부에 매우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모습들을 보면 몸과 마음이 함께 아플 수밖에 없어 보인다.

 

19일 맑다. 윤 봉사와 같이 아침을 먹었다. 여러 장수가 애써 권하여 몸도 불편한데 억지로 고기를 먹게 되니 매우 마음이 슬펐다. p100

퍽이나, 슬플 일인가. 아주 오래전 5백 원짜리 지폐에서 기억되는 이순신의 모습은 간데없다.

 

미시(오후1시에서 3시)에 비가 와서 농사에 대한 희망이 조금 살아났다. 이영남이 보러 왔다. 원 수사가 거짓 내용으로 공문을 돌려 대군을 동요하게 하였다. 진중에서도 속임을 쓰는 것이 이럴 정도이니 그 흉악스러움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p101

 

명나라 장수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랬더니 그의 속뜻은 알 수 없으나, 다만 왜적을 쫓아 보내려는 것뿐이라 하였다. 보고에 따르면, 송 시랑이 우리 수군의 허실을 알아보려고 그가 거느리는 부하 가운데 정탐이 일을 맡은 양보를 보냈는데 수군의 위세가 이렇게 대단하니 기쁘기 그지없다고 하였다. p103

 

관보를 가지고 왔기에 보았더니 저절로 분통이 터졌다. p104

 

원균이 송 경략이 보낸 불화살을 자기만 쓰려고 하였으나 병사 편에 공문을 보내 나누어 보내라 하니까, 공문의 내용을 매우 못마땅해하면서 이치에 맞지도 않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명나라 관리가 보낸 불화살 1천 5백 30개를 나누지 않고 혼자서 모두 쓰려고 하다니 그 잔꾀가 아주 심하여 말로 다 하기 어려울 정도다. ... 남해 현령 기효근이 배를 우리 배곁에 대었는데, 그 배에 어린 처녀를 싣고 남이 알까 봐 두려워 했다. 우습다. 나라가 위급한 이때 배에 예쁜 색시를 싣기까지 하니 그 마음 씀씀이가 꼴이 아니다. 그런 그 대장이라는 원균부터가 이러하니 어찌 하겠는가? p105

각 고을의 담당 서리 11명을 처벌하였다. 옥과현의 향소에서 지난해부터 군사를 동원하는 일이 부실하여 도망간 사람이 거의 1백여 명이나 되었다. 그런데도 매번 거짓말을 하기에 이날 목을 베어 매달았다. 모진 바람이 그치지 않고 마음도 어지러웠다. p107

 

아침에 흰 머리털 여남은 오라기를 뽑았다. 흰 머리카락이 있다고 하여 어찌 싫어할 일이겠냐만 위로 늙으신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뽑은 것이다. p108

 

29일 맑다. 서풍이 잠깐 불어오더니 날이 개어 밝게 빛났다. ... [진주성이 함락되었다. 황명보, 최경회, 서예원, 김천일, 이종인, 김준민 등이 전사했다고 한다.]

* 이 글은 뒷날 여백에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p114

 

진주성의 형세가 불리하다고 전했다. 놀라움과 걱정스러움을 이길 길이 없었다. 그러나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이는 반드시 미친 사람이 잘못 전한 것일 게다. p115

 

남해로 왕래하는 조붕에게서 왜적이 광양으로 쳐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고 광양 사람들이 벌서 관청과 창고를 불질렀다는 말을 들었다. 해괴하기 짝이 없다. p116

 

오늘 밤 달빛이 맑고 밝아서 티끌 하나 일지 않네. 물과 하늘이 한 빛이 되어 서늘한 바람이 선듯 불어온다. 뱃머리에 홀로 앉아 있으니 온갖 근심이 가슴을 치는구나. p117

 

또 포로가 도망쳐 와서 말하기를, 수없이 많은 적들이 창원 등지로 가더라고 하였다. 그러나 남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다. p117

 

* 교토의 비총 : 왜군이 죽인 조선 사람의 코와 귀를 잘라 소금에 절여 일본에 보내면, 이를 가지고 주민들에게 전승을 시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모아 1597년에 매장했는데 이것이 ‘비총’이다. p119

 

가을 기운이 바다에 들어 나그네의 가슴이 어지럽다. 혼자 배의 뜸 밑에 안장 있으니 마음이 몹시 산란하다. 달빛이 뱃머리에 들고 정신이 맑아지네. 누워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어느덧 닭이 우는구나. p120

 

같이 적을 토벌할 일을 의논했는데 원 수사의 하는 말이 매우 흉악스럽고 속임이 있었다. 이와 같이 사리 분별이 없으니 일을 같이 한다고 해도 뒷걱정이 없을까? p121

 

새벽에 꿈에서 아들을 얻었다. 이는 포로로 잡혀 갔던 사람을 얻을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p123

 

새벽에 꿈에서 대궐에 이르렀는데 마치 서울인 듯했다. ... 꿈에 영의정이 와서 인사를 하기에 나도 답례를 하였다. 이야기가 왕이 피난 가신 일에 미치자 눈물을 흘리고 탄식하였다. 적의 형세는 벌써 사그라졌다고 말하며 서로 실정을 의논할 즈음 좌우의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드는 꿈이 깼다. p124

 

방답 첨사 이순신이 집에 가서 부모님을 간절희 뵙기를 원한다고 했으나, 장수들은 아직 나가지 못한다고 답하였다. 또 원 수사가 망령된 말을 하였는데 나에 대해서도 좋지 못한 말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모두가 망령된 짓인데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p124

 

아침에 제만춘이 어제 왜국에서 도망쳐 왔다고 들었다. ... 제만춘을 불러와서 문초하니 분통 터지는 말이 많았다. 하루 내내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 [제만춘을 불러와서 문초하니 분통 터지는 말이 많았다] p127

* 제만춘 : 원균의 군교에서 훈련봉사가 되었으며, 원균의 군관으로 있다가 임진왜란 때 왜군에 잡혀 왜국까지 끌려갔다가 살아 돌아왔다. 이순신의 장계에 의해 사형을 면하고 이순신의 휘하에서 군관이 되었다.

 

원 수사가 또 와서 영등포에 빨리 가자고 독촉하였다. 흉악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가 거느린 배 25척은 모두 내보내고 다만 일고여덟 척을 가지고 이런 말을 하니 그 마음 씀씀이와 일하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p129

 

하루 내내 비가 내리고 큰 바람이 불었다. 혼자 배의 뜸 아래 앉으니 가슴속 생각이 만 갈래로 떠올랐다. p132

그가 배의 뜸 아래 혼자 앉으면, 생각은 만갈래가 되었다.

 

1594년 명․일간에 강화가 진행되다

3월에 당항포 등 싸움에서 이겼다. 명나라 수군이 구원을 구실로 들어왔으나 싸움에는 소극적이었다. 이같은 명나라의 태도에 항의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10월에는 육군의 곽재우, 김덕령 등과 함께 공격하여 거제 장문포의 왜군을 격파하였다. 그럼으로써 서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왜군의 전진을 막아 이들의 작전에 큰 차질을 가져오게 하였다. p135

 

초1일 비가 퍼붓듯이 내렸다. 어머님을 모시고 한 살을 더 먹게 되었으니 난리 중에나마 다행한 일이다. p137

 

도총섭 유정, 총섭 처영 등이 호남과 영남 지방의 승장에게 부역을 면해 준다거나 천한 신분을 면해 준다는 등의 위조공문을 만들어 주면서 군량을 배정하는 등의 일에 대하여 그 위조 공문을 올려 보내니 처치해 주기를 요청하는 장계를 올렸다. p138

 

아침을 먹은 뒤 어머니께 돌아가겠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잘 가서 나라의 욕됨을 속히 씻어라.”하고 말씀하시며 몇 번이고 거듭 타이르셨다. 헤어지는 데 대해여서는 조금도 슬픔을 나타내지 않으셨다. p140

그는 탐색선을 통해 하루가 멀다 하고 여든이 다된 어머니의 안부를 여쭙는다. 그러면 어머니는 거의 항상 ‘편안하다’라고 적혀 있다. 어머니, 정말 편안하셨을까? 나라가 욕을 당하고 있고, 자식이 사지에 나가 있는데, 어머니인들 정말 편안하셨을까. 자식과 자식이 하려는 일을 먼저 생각하신 어머니, 늘 ‘편안하다’라고 전하라고 당부하셨을 터이다. 아니, 어쩌면 편안한 척, 조금도 슬프지 않은 척 하셨을 터이다. 그런 어머니가 이순신을 길러낸 것은 아닐까?

 

전윤이 말하기를 “수군을 거창에서 모집해 왔는데, 이 편에 들으니 원수(권율)가 방해하려 했다고 합니다.”하였다. 우습구나. 예로부터 남의 공을 시기함이 이러하니 한탄한들 어쩔 것인가! p141

 

또 원 수사와 공연수, 이극함이 서로 좋아하던 여자들을 모두 다 사사로이 관계하였다고 한다. p142

속된 말로 사내들끼리 모여서, “누구랑 잤다. 누구 따먹었다.”라고.. 마치 무슨 무용담을 말하고, 훈장을 단 것처럼 자랑스레 떠벌이는 분위기.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단 말인가. 정말 역겨운 일이다.

 

21일 맑다. 아침에 본영의 격군 7백 42명에게 술을 먹였다. ... 저녁에 녹도 만호가 와서, 병으로 죽은 시체 2백 14구를 거두어 묻었다고 보고하였다. ... 녹도 만호가 병으로 죽은 시체 2백 17구를 모아서 묻었다고 한다. p142

왜군에게 베어 죽고, 관군에게 끌려가지 않으려다 죽고, 굶어 죽고, 전염병 돌아 죽고. 전쟁 통에 먹고, 치료받고 사는 일이 얼마나 가능했을까. 민초들의 삶이란. 이리 쓸리고, 저리 치이고... 그렇게 짓밟히는 삶이라니... 격군이면, 대부분 천민이고 노비였을 터인데, 배의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이들이 아니던가. 밑바닥 인생들마저도 술을 챙겨 먹이는 이의 마음 씀씀이가 보인다. 그들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그를 위해 죽기를 각오하기도 했을 것이다.

 

오후에 왜군에 붙잡혔다 도망쳐 나왔다는 진주 여인 항명, 고성 여인 한명, 서울 사람 두 명이 왔는데, 성루 사람은 정창연, 김명원의 종이라고 하였다. p143

가끔 ‘환향녀’라고 불리 우는 여인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정말이지 오고 싶었을 것이다. 약한 조국의 조공이 되어, 대국에 불려가 몸과 마음 다 유린당하고서도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고향과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정작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었다. 조국에게도 부담이 되었다. 누구의 잘못인가. 이 억울한 인생들을 정하신 것은 누구란 말인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억울해서 죽을 수도 없는 삶들.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저마다 한 번씩 가슴에 두고 물어 볼 일이다. 그들을 껴안을 가슴들인지를.

 

29일 비가 하루 내내 내리더니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새벽에 각 배에는 아무 탈이 없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몸이 불편하여 저녁에 누워 신음하였다. 세찬 바람에 파도가 일어서 배가 안정되지 못하여 마음속으로 매우 걱정이 되었다. p144

오죽했을까. 그 마음. 몸뚱아리 통째로 전란 속에서 던져두고 사는 운명, 세찬 바람에 파도가 일어 배가 안정되지 못하듯 몸도 그렇게 아프고, 마음도 그렇게 신음했으리라. 그는.

 

왕의 분부를 가지고 왔다. 그 내용은 “.... 왜적을 모두 무찌르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p145

왕의 교지는 매번 똑같다. “나아가 무찌르도록 하라” 어머니의 안부가 그러하듯 왕의 분부는 매번 똑같다. 누구의 사랑이 더 깊은가. 누구에게 더 충성하고, 누구에게 더 효도하는지. 그것을 따져 묻는 것 자체가 벌써 불온한 것인지.

 

새벽에 꿈을 꾸었는데 좋은 말을 타고 바위가 겹겹이 쌓여 있는 큰 고개를 바로 내려갔다. .. 봉우리 위의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에 잠에서 깨었다.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또 꿈에 미인 하나가 홀로 앉아 손짓을 했는데, 나는 소매를 뿌리치고 응하지 않았다. 우스웠다. p147

 

원수(권율)의 답장이 도달하였는데, 명나라 심 유격이 이미 화치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왜적의 간교한 꾀를 미리 알기 어려우니, 이미 술책에 빠져들었건만 또 이렇게 빠져드니 한탄스럽다. p147

 

또 백성들이 굶주려 서로 잡아먹는 비참한 지경인데, 앞으로 이들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물었다. p149

 

홍양 현감이 암행어사 밀계 초본을 가지고 왔다. ...나주목, 장성, 창평 등의 수령은 나쁜 짓을 덮어 두고 상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임금을 속이는 것이 이렇게 갈 데까지 갔다. 나랏일이 이 모양이니 나라가 평정될 리가 없다. 천장만 올려다볼 뿐이다. p151

 

21일 맑고 따뜻하였다. 몸이 불편하여 하루 내내 끙끙 앓았다. p153

 

초9일 비가 계속 내렸다. 하루 내내 빈 정자에 혼자 앉아 있었더니 온갖 생각이 가슴을 치고 머릿속이 매우 어지러웠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가슴이 막혀 취한 듯, 꿈꾸는 듯, 바보가 된 듯, 미친 듯하였다. ... 새벽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멀리 바라보았더니 수많은 우리 배가 온 바다에 깔려 있었다. 적이 비록 쳐들어오더라도 쳐부술 수 있을 것이다. p168

 

29일 비가 오고 거센 바람이 불었다. 29일이 장모님의 제삿날이 다가오기에 아들 회와 면을 보내고 계집종들도 보냈다. p170

 

저녁에 겸사복이 왕의 분부를 가지고 왔다. 그 글 가운데 “수군 여러 장수와 경상도의 장수가 서로 화목하지 못하니, 이제부터 예전의 나쁜 습관을 모두 바꾸라.”는 말씀이 있었다. 통탄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는 원균이 취하여 망발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p172

 

밤 10시경 급창 금산과 처자 세 명이 모두 전염병으로 죽었다. 3년 동안 눈앞에 두고 부리던 자가 하루저녁에 죽어 버리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무 밭을 갈았다. ... 무씨 두 되 다섯 홉을 심었다. p172-173

 

그런데 아내의 편지에는 면이 더위를 심하게 앓는다고 한다. 몸시 걱정스럽다. p175

 

혼자 앉아서 아들 면의 병세를 걱정하다가 글자를 짚어 점을 쳐 보았더니, 군왕을 만나 보는 것 같다는 괘를 얻었다. 아주 좋았다. 다시 짚으니, 밤에 등불을 얻는 격이라고 한다. 두 괘가 모두 좋아서 조금 마음이 놓였다. 또 유정승에 대하여 점을 쳤더니, 바다가 배를 얻는 것과 같다는 괘를 얻었다. 다시 점쳐 보았더니, 의심하다가 기쁨을 얻는 것과 같다는 괘를 얻었다. 매우 좋았다. 저녁 내 비가 내렸다. 혼자 앉아 있노라니 외로운 심정이 이길 길이 없었다. p180-181

 

정해진 날짜 안에 도착하지 못하여 원 수사에게 곤장 30대를 맞았다고 한다. 매우 해괴한 일이었다. 우수사가 군량 20섬을 꾸어 갔다. p185

 

늦게 녹도 만호가 도망한 군사 여덟 명을 잡아 왔다. 그 가운데 우두머리 세 명을 처형하고 나머지는 곤장을 때렸다. 저녁에 탐색선이 들어왔는데 그 편에 보내온 자식들의 편지를 보니, 어머니께서 평안하시고 면의 병이 차차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p186

 

초2일 비가 퍼붓듯이 내렸다. 초하루 한밤중 꿈에 부안사람(이순신의 첩을 가리키는 듯함)이 아들을 낳았다. 달수를 계산해 보니 낳을 달리 아니므로, 꿈에서도 쫓아 버렸다. 몸이 좀 편안했다. p187

 

원수(권율)는 군관을 보내어 만나자고 청하였다. ... 교서에 절한 뒤 원수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 다음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오해가 많이 풀어지는 기색이었다. 원수가 원 수사를 심하게 꾸중하니 그가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p191

 

아침에 울의 편지를 보니 아내의 병이 심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회를 내보냈다. p193

 

도양 말먹이꾼 박돌이의 죄를 다스렸다. 도적 세 명 가운데 장손에게는 곤장 1백 대를 때리고 얼굴에 먹물로 도둑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p193

 

아내의 병세가 매우 심하다고 한다. 이미 생사가 결정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랏일이 이러하니 다른 일에 생각이 미칠 수는 없으나 아들 셋, 딸 하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가슴이 아프고 괴롭구나. p193

 

앉았다 누웠다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촛불을 켜 놓고 뒤척거렸다. 이른 아침에 세수를 하고 조용히 앉아서 아내의 병세를 점을 쳤더니, 중이 속세에 돌아오는 것 같다고 하였다. 다시 쳤더니, 의심이 기쁨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매우 길하다. p194

 

새벽에 비밀 교지가 들어왔는데 “수륙 여러 장수가 팔짱만 끼고 서로 바라볼 분, 계책이라도 하나 세워서 토벌하려고 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p195

 

하루 내내 바람이 불었다. 초저녁에 촛불을 밝히고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나랏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데도 안으로는 구제할 방채이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p195

 

혼자 앉아서 간밤의 꿈을 떠올려 보았다. 바다 가운데 외딴섬이 달려와 눈앞에 주춤 서는데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모두들 놀라 사방으로 달아났지만 나만은 홀로 서서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이것은 왜놈이 화평을 구걸하다가 스스로 멸망할 징조다. p198

 

늦게 우수사가 오고 어사도 와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원 수사가 속임수를 썼다고 여러 번 이야기하였다. 아주 놀라웠다. 원균도 왔는데 그 흉측한 모양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p204

 

작은 아이가 있다고 하므로 데려오라고 일러 보냈다. ... 심부를 시키려고 머무르게 하여 재웠다. ... 그 아이가 아프다고 한다. ... 저녁에 아이를 전에 있던 곳으로 돌려보냈다. p205

 

새벽에 영의정의 꿈을 꾸었는데 모습이 변한 듯하였다. 나도 모자를 벗었는데, 같이 민종각 집에 이르러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에서 깨었다.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p207

 

11일 동지이자 11월 중이다. 새벽에 망궐례를 드리고 나서, 군사들에게 팥죽을 먹였다. p207

 

버리고자 하여도 그러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부모가 죽은 후에 남은 자식들이다. 남은 아이 셋은 끝내 의지할 데가 없기 때문이다. p208

 

1595년 휴전 상태가 계속되는 속에서

전쟁은 뜸하였으나 이순신은 여전히 다가올 싸움에 대비하였다. 둔전을 경작하여 군량을 준비하고 배와 무기를 만들고 개비하였다. 활쏘기를 하면서 단련하기도 하였다. 아직 웅천 등지에 웅크리고 있는 적들의 동태에 대해서도 항상 경계하였다. 그런 중에도 견내량 등지에서 작은 전투가 일어났다. p211

 

한식이다. 날이 맑았다. 원균이 포구에서 교대하려고 도착하였기에 수사 배설이 교서에 절하라고 하였는데 불평하는 기색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여러 번 타이른 뒤에야 억지로 행하였다고 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무식하기 짝이 없다. p219

 

수사 이계훈이 실수로 불을 내고는 자신은 물에 빠져 자살하고, 군관과 사공 모두 1백 40여 명이 타 죽었다고 하였다. 놀랍고도 놀라웠다. p222

 

이영남이 장계에 대한 왕의 회답을 가지고 내려왔는데 “남해 현령을 효수하라.” 하였다. p226

 

해남 현감과 공사례를 마친 뒤에 두 번이나 약속한 날짜를 어긴 하동 현감은 곤장 90대를 때리고, 해남 현감은 곤장 10대를 때렸다. p228

 

맑다. 오늘은 어머니 생신이다. 직접 잔을 올리지 못하고 먼 바다에 홀로 앉아 있으니 가슴속에 품은 생각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으랴! ... 아들의 편지를 보니, 요동의 왕작덕이 왕씨의 후손으로서 군사를 일으키려 한다고 하였다. 참으로 놀랍다. p229

 

어머니께서는 평안하시지만, 아내가 불이 난 다음 마음에 크게 상처를 받았고 담고 기침도 심하다고 한다. 매우 염려스러웠다. ... 17일 맑다. 아침에 나가서 본영 각 선박의 사부, 사공 등 급료 받은 사람을 점고하였다. ... 쇳물을 부어 소금 굽는 가마솥 하나를 만들었다. p231

 

아침에 나가 공무를 보고 있자니 항복한 왜인들이 와서, 동료 왜인 산소가 아주 흉악한 일을 하므로 베어 죽이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였다. p232

 

서울에서 정철이 와서 본영에 도착하였는데, 장계에 대한 회답 내용 중에 김으서가 멋대로 강화를 주장한 것을 죄로 돌린다는 말이 여러 군데에 거듭 나타나 있었다. 영의정과 좌의정의 편지가 왔다. p233

 

사직의 위엄과 영령의 도움으로 겨우 형편없는 공밖에 세우지 못했는데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너무 커서 분에 넘쳤다. 장수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티끌만 한 공로도 바치지 못하였으니 입으로는 교서를 외고 있으나 군사를 거느리기에는 부끄러울 뿐이다. p233

 

진주 서생 김선명이란 자가 군량 대는 일을 맡겠다고 왔는데 보증인으로 안득이란 자를 데리고 왔다. 그가 하는 말을 들으며 진실된지 어떤지 살펴보았으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알기 어려웠다. p234

 

나는 몸이 매우 불편하여 저녁 밥을 걸렀다. 하루 내내 몹시 아팠다. 종 경이 들어왔는데 이 편에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것을 알았다. 매우 다행스러웠다. p234

 

저녁에 원수의 군관 이희삼이 왕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조형도가 수군 한 사람에게 매일 양식 5홉, 물 7홉씩을 나눠 준다고 거짓 보고를 하였다. 세상일이란 정말 놀랍다. 세상에 어찌 이런 거짓이 있을 수 있을까? 저물녘에 탐색선이 들어왔는데 어머니께서 이질에 걸리셨다 한다. 걱정스럽다. p235

 

어머니의 병환이 좀 나아지셨다고 한다. 그러나 구순 노인이 이렇게 위독한 증세를 얻으셨으니, 근심스러워 눈물이 흘렀다. ... 새벽에 경상 수사 배설을 잡아 올리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또한 그 후임에는 권준이 임명되었으며, 남해 현감 기효근은 유임되었다고 하니 놀랍다. p235

 

순천 7호선의 장수 장일이 군량을 훔치다가 죄를 받았다. p236

 

우도의 각 관청과 진포에 있는 배의 부정을 조사하였다. 음탕한 여자 12명을 붙잡아서 그 대장과 함께 죄를 주었다. p238

 

혼자 수루에 기대어서 나라를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아침 이슬과 같았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만한 재목이 없고, 밖으로 나라를 바로잡을 기둥이 없으니 이 나라가 마침내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다. 마음이 어지러워서 하루 내내 뒤척거렸다. p239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신이다. 슬픔에 젖어 생각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 어머님이 평안하시나 밥맛이 없으시다고 한다. 매우 걱정스러웠다. p239

 

그대(경상 우병사 김응서)는 적과 마주하고 있는 장수로서 어찌 조정이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마음대로 적과 대면하여 감히 함부로 말을 늘어 놓았는가. 그대는 여러 번 사사로이 편지를 보내어 적에게 아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수호․강화하자는 말을 하여 명나라 조정에까지 그 말이 들어가게 하여 치욕을 남기고, 험담을 늘어 놓기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군율로 다스려도 아까울 것이 없거늘, 관대하여 용서하고 돈독하게 타일렀다. ... 내 뜻을 구두로 전하니, 그대는 마을을 고치고 힘써 후회를 남기지 말지어다. p240

 

몸이 매우 불편하였다. .. 군량이 떨어졌다는 말을 많이 하였으나 달리 계책이 없었다. .. 술 몇 잔을 마시고 아주 취하였다. 밤이 깊어 수루에 등을 대니 초생달 빛이 수루에 가득 차서 갖은 생각을 이길 길이 없었다. p241

 

군사들에게 휴가를 주었다. 녹도 만호 송여종을 시켜서 죽은 군졸들의 제사를 지내도록 백미 두 섬을 주었다. p242

 

휴가를 신청하는 서류를 올렸기에, 성 첨지(성윤문)는 10일, 김 첨지(김완)은 3일 휴가를 주어서 보냈다. p242

 

거제 현령이 거제의 적이 이미 모두 철수하여 돌아갔다고 급히 보고하였다. 곧 정항으로 하여금 가 보게 하였다. p242

 

같이 이별주를 마시고 밤이 깊어서 헤어졌다. 선 수사와 작별하며 짧은 시 한 수를 써 주었다.

북쪽에 갔을 때도 고락을 같이 하고

남쪽에 와서도 생사를 함께 하는구나

오늘 밤 달빛 아래 한 잔 술을 나누고 나면

내일은 이별을 아쉬어하겠구나 p251

 

항복한 왜적 여문련기, 야시로 등이 와서 왜인들이 도망치려 한다고 보고하였다. 우후에게 잡아 오도록 하여 그 가운데 주모자 준시 등 두 명을 찾아내어 목을 베었다. p258

 

1596년 왜적이 드디어 철수하다

3월에 이순신은 당항포 싸움에서 이겼다. 명나라 수군이 구원을 구실로 들어왔으나 싸움에는 소극적이었다. 이 같은 명나라의 태도에 항의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10월 거제현 장문포의 왜군을 육군의 곽재우, 김덕령 등과 함께 공격하여 격파함으로써 서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왜군의 전진을 막았다. 이는 왜군의 작전에 큰 차질을 가져왔다. p262

 

새벽 2시경에 첫 나팔을 불고 날이 새자 배를 띄웠다. p265

 

* 이순신 영정: 1952년에 장우성 화백이 그린 표준 영정으로, 아산 현충사에 소장되어 있다. p266

 

아침 일찍 이영남과 좋아 지내는 여인이 와서 말하기를 “권숙이 집적거리기 때문에 피해서 왔는데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다.”하였다.

좋아 지내는 여인? 요즘말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뜻인가? 도대체 무슨 관계를 말하는 것일까? 그냥 첩도 아니고...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아침 일찍 항복한 왜인 다섯 명이 들어왔다. 항복한 까닭을 물으니 저희 장수의 성질이 포악하고 일도 너무 고됐기 때문에 도망 나와서 항복했다고 하였다. 그들이 가진 크고 작은 칼을 거두어 수루 위에 간직하였다. p267

 

저녁 달빛이 더욱 맑았다. 풍년이 들 징조라고 한다. p270

 

18일 맑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군복을 말렸다. 늦게 곤양 현감과 사천 현감이 와서 술을 마시고 취해서 돌아갔다. 동래 현감이 급히 보고하거늘 “왜놈들이 많이 동요하는 모습이 보이고 또 심 유격이 소서행장과 함께 정월 16일에 먼저 일본으로 갔다”고 하였다. p270

 

맑았으나 바람이 찼다. ... 아침에 옷 없는 군사 17명에게 옷을 주고는 여벌로 한 벌씩을 더 주었다. 하루 내내 바람이 험하게 불었다. p271

 

맑았으나 바람이 고르지 못하였다. 활쏘기를 하였다. p272

날씨가? 마음이? 날씨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의 맘을 이야기 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그는 늘 마음 편하지 못하였던가... 마음 불편해서 활쏘기를 한 것인지.. 활쏘기를 해서 마음을 잡으려고 했던 것인지... ‘난중일기’가 갖는 역사사료로서의 가치 뿐만이 아니라 문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는 부분으로 이해된다.

 

순찰사가 나와 활쏘기를 겨루었는데 열에 일곱을 지고는 섭섭한 기색을 삭이지 못하니 가소로웠다. 군관 세 사람도 모두 졌다. 밤이 되자 술에 취해서 돌아갔다. 가소로웠다. p272

 

오후에 활쏘기를 하였는데 순찰사가 또 열에 아홉을 졌다. 김대복 혼자서 즐겁게 활을 쏘았다. p273

그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보인다. 제 욕심과 승부욕마저도 통제하지 못하는 위인에게 그는 당당히 ‘가소로웠다’고 한다. 전란 중의 장수로서 그의 활쏘기는 늘상 있는 일과처럼 보이지만, 훈련이기도 하고, 명상이기도 하고, 사람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했다.

 

“부산 왜놈 세 명이 성주에서 항복한 사람을 거느리고 복병한 곳에 와서 장사를 하겠다고 합니다.”하고 보고하였다. 곧 장흥 부사에게 전령을 보내어 “내일 새벽에 가서 타일러 쫓으라.”하였다. 이놈들이 왜 물건을 사려고 하겠는가? 우리의 허실을 엿보려 하는 것이리라. p274

 

아침에 벚나무 껍질을 벗겼다. 늦게 손인갑과 좋아 지내던 여인이 들어왔다. p275

 

꼬마 아이도 함께 왔는데 돌아가지 않고 남았다.... 꼬마 아이가 밤 8시쯤 돌아갔다. p276

 

제주 목사에게 청어, 대구, 화살대, 곶감, 삼색 부채 등을 보냈다. ... 경상 수사가 쑥떡과 초 한 쌍을 보내왔다. ... 저녁에 물을 부엌 주변으로 끌어들여 물 긷는 수고를 덜게 하였다. p277

 

장흥 부사와 체찰사의 군관이 같이 왔다. 장흥 부사는 체찰사의 종사관이 군령을 가지고 자기를 체포해 가려고 왔다고 했다. 또 전라도 수군 가운데 우도의 수군은 좌도와 우도를 왔다갔다 하면서 제주와 진도를 도와주라는 명령도 있다고 한다. 참 어이가 없다. 조정의 계책이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체찰사로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이렇게 무작정할 수 있는가. p281

 

장흥 부사가 체찰사에게 갔다. 늦게 우수사가 보고하기를 “이제 바람도 줄어들었고 계책을 세워야 할 때이므로 부하를 거느리고 급히 본도로 가겠습니다.”하는 것이었다. 그 마음가짐이 매우 의심스러워 그의 군관과 도훈도를 붙잡아다가 곤장 70대를 때렸다. p282

 

여종 덕금, 한대, 효대 그리고 은진에 있는 계집종도 왔다. p284

 

함평 현감, 남해 현령, 다경포 만도 등이 칼쓰기 연습을 하였다. 땀이 계속 흘렀다. ... 맑다. 새벽에 땀이 흘렀다. ... 하루 내내 취하도록 마신 뒤 헤어졌다. ... 아침에 우우후와 강진 현감이 돌아간다고 하기에 술을 먹였더기 잔뜩 취하여서 우후는 돌아가지 못하였다. 저녁에 좌수사가 왔기에 작별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에서 잤다... 비가 계속 내렸다. 아침에 다시 좌수사를 청해서 이별의 잔을 나누며 전송하였다. 하루 내내 크게 취하여 나가지 못하였다. 때도 없이 식은땀이 났다. p285

 

저녁 때 방답 첨사가 화낼 일도 아닌데 화를 내면서 지휘선에서 물 긷는 일을 하는 군사에게 곤장을 때렸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방답의 군관과 이방을 붙잡아들여 군관은 20대, 이방은 50대의 곤장을 때렸다. p285

 

13일 ..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몸이 피곤하여 누워서 신음하였다.

14일 ... 봄기운에 봄이 피곤해서 밤새도록 식은땀을 흘렸다.

15일 ... 저녁에 바다 위의 달이 희미하게 밝았다. 몸이 몹시 피곤하여 밤새도록 식은땀을 흘렸다. 자정쯤 비가 많이 쏟아졌다. 낮에는 피곤해서 머리를 빗었다. 식은땀이 한없이 흘렀다.

16일 ... 자정이 넘어서 비가 잠깐 그쳤다. 어제처럼 땀을 흘렸다.

17일 ... 밤에 식은땀이 등을 흠뻑 적셨다. 옷 두 겹이 다 젖고 이부자리도 젖었다.

18일 ... 몹시 추워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앉으나 누우나 편안하지 못하였다. 몸이 좋지 않았다.

19일 ... 어두워진 뒤부터 바람이 몹시 사나웠다.

20일 ... 몸이 몹시 불편하였다. 바람막이를 두 개 만들어서 달았다.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식은땀이 옷과 이불을 적셨다.

21일 ... 곽란이 나서 한참이나 구토를 했는데 자정이 되어서야 조금 가라앉았다. 몸을 뒤척거리다가 일어났다 앉았다 하였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는 것 같아서 매우 한스러웠다. 너무 심심해서 ... 불러다가 중정도 놀이를 하였다. ... 비가 그치고 새벽 2시쯤에는 이지러진 달이 비치기 시작하였다. 방 밖에 나가서 산보를 하였으나 몸이 몹시 피곤하였다.

22일 ... 작은 고래가 죽어서 섬으로 떠내려왔다고 하므로 박자방을 보냈다. 저녁에는 한없이 식은땀이 났다.

23일 ... 처음으로 미역을 딴 날이다. 자정쯤 옷이 식은땀에 흠씬 젖어서 갈아입고 잤다.

24일 ... 어두워지자 매우 피곤하고 때도 없이 식은땀이 흐르니 이는 분명 비가 올 징조다.

25일 ... 낮부터 식은땀이 옷을 적시더니 밤에는 두 겹으로 입은 옷을 다 적시고 다시 방바닥에까지 흘렀다.

음력 3월 14일부터 25일까지 그는 매일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 자주 묻던 어머니의 안부도 없고, 일기의 내용이 길어지고, 부하들의 휴가도 보내고... 이것 저것 잡다한 일들을 챙기는 것을 보니, 왜군과의 전투도 잠시 소강상태인가 보다. 날마다 흘린 땀이지만, 다 다르다.

 

체찰사의 전령이 왔는데 전날 우도의 수군을 돌려보내라고 한 것은 장계를 잘못 본 까닭이라는 것이다. 매우 어처구니없었다. p290

 

새벽에 부산 사람이 들어와서 명나라 사신이 달아났다고 하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p292

 

오랫동안 학질을 앓아서인지 몹시 마른 모양새가 보기에 매우 딱하였다. 낮게 어사가 들어와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을 밝힌 다음에야 헤어졌다. ... 어사와 아침을 들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 아침을 먹고 어사가 밥을 짓도록 명하여 군사들을 먹인 뒤에 활 10순을 쏘고 하루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어사와 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p292

단순히 밥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반복되는 일과처럼 보이지만, 매번의 기록이 조금씩 다르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그냥) 아침을 먹기도 하고, 하루 내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일까.

 

아침에 남여문을 통하여 풍신수길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기쁘기 그지없었으나 다만 믿기 어려웠다. 이 소문이 일찍부터 퍼졌는데 아직 정확한 기별은 오지 않았다. p294

* 실제로 풍신수길은 1598년 8월에 죽었다.

 

24일 ... 밥을 먹은 뒤 목욕탕에 들어갔다 ... 25일 ... 일찍 목욕탕에 들어가서 한참 동안 있었다. .. 다시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물이 너무 뜨거워서 오래 있지 못하고 곧 나왔다. 26일 ... 밥을 먹은 뒤 목욕을 하였다. ... 27일 ... 저녁에 목욕을 한 차례 하였다. ... 28일 ... 아침 저녁 두 차례 목욕을 하였다. ... 29일 ... 저녁에 목욕을 한 차례 하였다. ... 30일... 저녁에 목욕을 한 차례 하였다. .. 늦게 부산의 허내은만의 고목이 왔는데, 소서행장이 군사를 거두어 철수하려는 것 같다고 하였다. p295

 

밤이 깊도록 즐거이 뛰놀게 하였는데 그것은 내 스스로 즐기자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생하는 장수들의 수고를 풀어 주자는 생각에서였다. p296

 

김해부사가 급히 와서 “부산에서 적에 붙어 있는 김필동이 보낸 고목에도, 수길(풍신수길)은 비록 없을지라도 정사, 부사가 그대로 있으니 곧 화친하고 군사를 돌이키려고 한다고 합니다.”라고 보고 하였다. p298

 

부산 허내은만이 보낸 고목이 도착하였는데 “가등청정이란 왜적이 벌써 10일에 제 군대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갔고, 각 진에 있는 왜적들도 장차 철수할 것이며, 부산의 왜적들은 명나라 사신을 모시고 건너가려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p298

 

새벽에 망궐례를 드렸는데 우수사는 오지 않았다. p298

 

날이 어두워진 뒤에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잤다. 바다 위에 뜬 달은 매우 밝고 바람 한 점 없었다. p298

 

정화수井華水를 마시고 싶은 밤이었다. p299

 

허내은만에게 쌀 10말과 소금 한 곡을 보내 주고서 성심껏 염탐하여 보고하라고 일렀다. ...박옥, 옥지, 무재 등이 화살대 1백 50개를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 p300

부하들의 공을 챙기고 치하하는 일에 꼼꼼히 마음 쓰는 그의 모습이 엿보이는 구절이다.

 

25일 비가 계속 내렸다.

27일 가랑비가 하루 내내 내렸다.

28일 궂은비가 개지 않았다.

29일 궂은비가 저녁까지 내렸다.

초1일 궂은비가 하루 내내 내렸다.

초2일 비가 그치지 않았다.

음력 5월말 장마철인 모양이다. 내리 일주일을 비가 내렸는데, 다 다르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자연의 일상이지만,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참 다양하게 비가 내린다.

 

새벽에 망궐례를 올렸다. 우수사, 가리포 첨사, 나주 판관은 병 때문에 빠졌다. p303

그의 일기는 또한 업무일지이기도 했다. 관료들의 중요한 행사인 망궐례에 출석자의 이름과 빠진 이의 이름을 적고, 빠진 사유를 적어 놓았다.

 

늦게 우수사가 와서 활 15순을 쏘고 헤어졌다. 수사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p303

 

21일 남해 현령을 불러다가 아침을 같이 먹었다. 남해 현령이 경상 수사에게 갔다가 저녁 때 돌아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22일 하루 내내 남해 현령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23일 남해 현령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늦게 남해 현령이 경상 수사에게 갔다. .. 저녁 때 남해 현령이 경사 수사의 처소에서 돌아왔는데 술이 취해서 인사불성이었다.

24일 경사 수사도 와서 같이 쏘았다. 남해 현령은 자기 현으로 돌아갔다.

도대체 궁금증이 일게 만들어 놨다. 이야기를 나누고, 전하고, 술이 취하고, 와서 같이 활을 쏘고, 처음 이야기한 현령을 돌아가고. 셋이 어떤 관계였고, 도대체 무슨 일 때문이었을까. 나흘 동안에 걸쳐 진행된 이 작은 일이 의미하는 것은 죽은 이들만 알까?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일기>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일까? 아무리 궁금해도 따지지 못하게 만드는.

 

쇠화살로 5순, 편전으로 3순, 보통 화살로 5순을 쏘았다. .... 늦게 나가서 쇠화살과 편전을 각각 5순씩 쏘았다. ... 청전 5순, 편전 3순, 보통 화살 7순을 쏘았다. ... 조방장, 충청 우후, 나주 판관과 함께 쇠화살, 편전, 보통 화살 등 모두 18순을 쏘았다. p305

 

새벽에 꿈을 꾸었는데 어떤 사람이 화살을 멀리 쏘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갓을 발로 차서 부수었다. 혼자 점을 쳐 보니 ‘화살을 멀리 쏘는 것’은 적들이 멀리 도망하는 것이요, 또 ‘갓을 발로 차서 부수는 것’은 머리 위에 있어야 할 갓을 걷어차니 적의 괴수를 모조리 잡아 없앨 징조라고 하겠다. p307

 

해가 진 뒤에 항복한 왜인들이 광대놀이를 벌였다. 장수 된 사람으로서는 그냥 두고 볼 일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마당놀음 한 번 하기를 간절히 바라므로 금하지 않았다. p308

 

경상 우수사, 전라 우수사가 같이 모여 활쏘기를 하고 헤어졌다. p308

얼마 전 있었던 왕의 교지를 의식한 자리로 보인다.

 

충청도 홍산에서 큰 도적들이 일어나 홍산 현감 윤영현이 잡히고, 서천 군수 박진국도 잡혀갔다고 한다. 바깥 도둑을 없애지 못한 이때, 안에서도 도적이 일어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p309

 

회와 면, 완 등은 저희 어머니 생일에 잔을 올리려고 갔다. 정선도 나가고 정사립도 휴가를 얻어서 갔다. 수루에 앉아 아이들이 떠나는 것을 바라보느라고 바람에 몸이 상하는 줄도 몰랐다.

참 이상타. 어머니와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자주 등장하는데,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딱 두 번만 나온다. 몸이 많이 아팠을 때와 어머니의 소식을 편지로 전해왔을 때다. 지금도 저렇게 남이야기 하듯이 ‘저희 어머니 생일’이라고 에둘러 말하고 있다. 시대적 분위기인가? 아니면?

 

아침에 우가 곤장을 맞고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장사 지낼 물건을 약간 보내 주었다. p314

 

우수사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p317

 

하루 내내 노를 빨리 저어 밤 10시쯤 어머니가 계신 곳에 당도하였다. 백발이 성성한 채 나를 보고 놀라 일어나시는데, 숨이 끊어지는 듯하시는 모습이 하루하루를 지탱하시기도 어려운 듯했다. 눈물을 머금고 서로 붙들고 앉아서 밤새 위로하여 어머니의 마음을 풀어 드렸다. p319

 

지난온 곳이 온통 쑥대밭이 되어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다. 우선 전선 정비하는 일을 면제해 주어 군사와 백성들의 마음을 풀어 주어야겠다. ... 저녁에 들으니 아이들이 모두 시험에 뽑혔다고 한다. p319

 

원균이 흉한 짓을 하였으나 여기에 적지 않겠다. p321

일기는 남이 보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보지 말라고 쓰는 것일까.

 

나라의 제삿날이어서 아침상에 쇠고기 반찬이 차려졌으나 먹지 않고 도로 내놓았다. ... 국화가 활짝 핀 곳에 들어가서 술 두어 잔을 마셨다. 저물 무렵에 동산원에 와서 말에 여물을 먹였다. 다시 말을 빨리 달려서 임치진에 다다랐더니 여덟 살 먹은 이공헌의 딸이 그 사촌의 계집종 수경과 함께 보러 왔다. 공헌을 생각하니 애처로운 마음을 이길 수 없었다. 수경이는 누가 내다 버린 아이인데 이염의 집에서 데려다가 길렀다. p323

 

내 몸도 피곤하고 말도 고될 것 같아서 함평에 머물러 잤다. p323

 

옷을 담아 둔 농짝을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둘은 어머니가 계시는 고음천으로 보내고 하나만 본영에 남겨 두었다. 저녁 때 군관 신탁이 선유관으로 와서 날을 잡아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자고 말하였다. p326

 

맑고 따스하였다. 아침 일찍 어머니를 위해 수연을 베풀면서 하루 내내 매우 즐겁게 보냈다. 매우 다행스러웠다. p327

 

1597년 백의종군에 나서다

이순신은 당쟁의 희생물이 되어 관직은 파직되고 서울로 끌려가서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약 한 달 만에 특사되어 고향 아산을 거쳐 초계로 내려와 도원수 밑에서 백의종군하였다. 그러나 통제사 원균이 7월에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함에 따라 8월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모은 전선 13척으로 9월 명량 해전에서 적을 격파하였다. 그러고는 10월 고하도에 수군 진영을 설치하였다. p329

 

초1일 맑다. 옥문을 나왔다. p331

 

정으로 권하며 위로하니 사양하지 못하고 억지로 술을 마셨더니 몹시 취하였다. 이순신도 술병을 차고 또 왔으므로 같이 마시면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 p331

 

2월 6일 이순신은 체포되고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수사가 되었다. 26일에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체포되어 원균에게 업무를 인계하고 서울로 출발했다. 3월 4일 이순신이 서울 의금부 옥에 갇혔다. 그리고 12일에 이순신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p332

 

초3일 ... 술을 가지고 와서 위로하였다. 초4일 함께 취하도록 마셨다. .. 초5일 .. 아산에 있는 선영에 이르렀다. 그간 두 번이나 들불이 나 나무가 타고 말라 비틀어져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산소 아래에서 곡을 하며 절하고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하였다... 초6일 .. 친구들이 모두 와서 오랫동안 못 본 정을 풀고 갔다. 초8일 ... 늦게 홍백의 집에 가서 금부도사를 접대하였다. 초9일 동네 사람들이 각기 술병을 들고 와서 멀리 떠나는 길을 위로하였다. 인정상 거절하지 못하고 몹시 취하도록 마시고 헤어졌다. 초10일 .. 이언길, 허제가 술을 가지고 왔다. p334-336

 

조금 있자니 배에서 달려온 종 순화가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방을 뛰쳐나가 슬퍼 뛰며 뒹굴었더니 하늘에 솟아 있는 해조차 캄캄하였다. ...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모두 다 적을 수가 없다. 뒷날 대강 적으리라. ... 궂은 비가 내렸다. p337

 

어찌하리오, 어찌하리오? 천지에 나 같은 일이 또 어디 있을 것인가! 일찍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p338

 

새벽 꿈이 어지러웠다. ... 꿈에 돌아가신 두 분 형님을 만나 서로 붙들고 울었다. 형님들이 말씀하시기를 “장사를 지내기도 전에 천리 밖에서 종군하고 있으니, 누가 일을 맡아서 한다는 말이냐? 통곡을 하더라도 어떻게 할 것인가? 하셨다. 두 형님의 혼령이 천리 밖까지 따라오셔서 이와 같이 근심하고 걱정하시니 슬프고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 아침 저녁으로 그립고 슬퍼서 눈물이 엉기어 피가 되었는데도 하늘은 어찌 아득하기만 하고 나를 밝혀 주지 않는가? 어찌 빨리 죽지 않는가? p343

 

음흉한 원균이 편지를 보내어 조문하였는데 이것은 원수(권율)가 명령하였기 때문이었다. p344

 

밤이 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일찌기 임금의 분부가 있었는데, 그 속에 거북한 말이 많아서 마음속으로 의심스럽고 그 뜻을 알지 못하였습니다.”하였다. 또 말하되 “음흉한 사람 원균은 무고하는 짓이 매우 많지만 하늘이 살피지 못하니 나랏일을 어찌하겠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p348

 

죽을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여러 번 맞아 거의 죽게 되었다가 뇌물을 바친 다음에야 석방되었다는 것이다. 나라 안팎이 모두 바치는 물건의 많고 적음으로서 죄의 무겁고 가벼움을 결정하니, 이러다가는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이것이 이른바 ‘돈만 있으면 죽은 사람의 넋도 찾아온다.’는 것이리라. p348

 

체찰사가 군관 이지각을 보내어 안부를 묻고, 경상 우도 연해안의 지도를 그리고 싶으나 그리 수가 없으니 내가 본대로 그려 보내 주면 다행이겠다 하였다. 거절할 수 없어서 대강 그려 보냈다. p349

 

그 길로 석주관의 문에 이르니 비가 퍼붓듯 왔다. 말이 길을 가기 어려워 엎어지며 자빠지며 간신히 악양 이정란의 집에 이르렀는데, 이 집은 문을 닫고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p349

 

아들 열을 시켜 간청하여 겨우 들어가서 잤다. 짐이 모두 젖었다.

백의종군하는 이의 신세가 비에 젖고, 얻어 자는 잠을 자고... 억울하고 근심스러울 뿐이었겠다. 그저 눈물만 나고, 답답한 가슴 한숨만 나왔을 터이다. 머나먼 길. 어찌하겠는가.

 

이곳 현감은 이미 산성으로 가고 없어 주인 없는 공관에서 잤다. 고을 사람들이 밥을 지어 주었으나 나는 종들에게 먹지 말라고 타일렀다. ... 아침에 종들이 고을 사람들의 밥을 얻어 먹었다고 하여 이들을 매질하고 밥쌀을 도로 갚아 주었다. p351

난리가 나려면 쥐가 먼저 안다고 했다. 먼저 도망친다고 했다. 그 길을 쫒으면 살 수 있다고 했다. 사실일까?

 

11일 ... 작은 워라말이 먹지를 않으니 이는 더위를 먹은 탓이다.

26일 ... 작은 워라말이 죽어서 내다 버렸다.

 

꿈에 원균과 한자리에서 있는데 내가 원균 위에 앉아서 음식상을 받을 때 원균이 즐거운 기색을 보이는 것 같았다. 무슨 징조인지 알 수 없다. p364

 

새벽에 꿈을 꾸었는데, 내가 체찰사와 함께 한곳에 다달았더니 많은 시체가 널려 있기에 밟기도 하고 목을 베기도 하였다. p365

 

홍우공은 아버지의 병을 구실로 종군하고 싶지 않아서 나에게 팔이 아프다고 핑계를 대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p366

 

늦게 변의정이라는 사람이 수박 두 덩이를 가지고 왔다. 그 모습이 어리석으나 용렬해 보였다. 두메에 박혀 사는 사람이라 배우지 못하고 가난해서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 또한 소박하고 인심이 후한 모습이다. p367

 

16일 새벽 어둠이 걷히기 전, 수군이 기습을 당하여 통제사 원균과 전라 우수사 이억기, 충청 수사 최호 그리고 여러 장수들이 많이 피해를 입었으며 수군은 크게 패배하였습니다. p369

 

대장 원균이 적을 보자 먼저 뭍으로 달아나고 여러 장수들도 모두 그를 따라 뭍으로 달아나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 또한 대장의 잘못은 말로 다 할 수가 없고 그 살점이라도 뜯어먹고 싶다고들 하였다. p371

 

8월 4일에서 10월 8일까지는 중복된다. ... 이 기간은 6책을 기본으로 했다. 다만 5책 가눙데 중요한 내용은 덧붙여서 내용을 좀 더 풍부하게 했고, 서로 날짜가 다르게 기록된 내용은 표시를 하였다. p373

 

밤에 꿈을 꾸었는데 임금의 명령을 받을 징조가 있었다. ... 이른 아침 뜻밖에 선전관 양호가 와서 임금이 내린 교서, 유서와 유지를 가져왔는데, 삼도통제사를 겸하라는 명령이었다. p374

 

흩어져 달아난 까닭을 물었더니, 모두들 말하기를 “병사가 적이 쳐들어온다고 떠들면서 창고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 까닭에 백성들도 흩어져 도망갔습니다.”하였다. p376

 

배설은 교서와 유서에도 예를 올리지 않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그 아래 딸린 이방과 영리들을 붙들어다가 곤장을 때렸다. p379

 

당포의 포작이 피난민의 소 두 마리를 훔쳐 와서 잡아먹으려고 거짓으로 왜적이 왔다고 하였다. ... 배설은 벌써 도망쳐 버렸다. 거짓말을 한 두 사람의 목을 잘라 매달아 널리 보이게 하였다. p379

 

늦게 배설이 적이 많이 몰려올까 두려워 도망가려고 하기에 그 관하의 여러 장수들이 데려오려고 하였다. 나도 그 속마음을 잘 알지만 드러나지 않은 것을 먼저 발표하는 것은 장수로서 택할 방법이 아니어서 참고 있었다. 그랬더니 배설이 제 종을 시켜 소지를 올렸는데, 병세가 몹시 위태로워 조리를 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육지로 내려가 조리하라고 결제해 주었더니 배설은 우수영에서 육지로 내렸다. ... 새벽에 배설이 도망갔다. p380-381

* 배설은 칠천량 싸움에서 패한 죄 때문에 숨어 있다가 전쟁이 끝난 1599년 3월 6일 도원수 권율에게 잡혀 서울로 올라가 사형을 받았다.

 

꿈이 이상스러웠다. 임진년 크게 승리할 때의 꿈과 대체로 같았다. 무슨 조짐인지 알 수 없었다. p383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 밤에 신인神人이 꿈에 나타나 가르쳐 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하였다. p385

 

여러 장수의 배를 돌아보니 이미 1마장 정도 물러났고,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멀리 떠어져 가물가물하였다. 배를 돌려 바로 중군 김응함의 배로 가서 먼저 목을 베어다가 내걸고 싶지만, 내 배가 머리를 돌리면 여러 배가 점점 더 멀리 물러나고 적들이 더 덤벼들 것 같아서 나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할 형편이 되었다. p386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 p386

 

또 김응함을 불러 “너는 중군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원하지 않으니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처형하고 싶지만 전세가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하겠다.” 하였다. p386

 

그림 무늬 놓은 붉은 비단옷을 입은 자가 바로 안골진에 있던 적장 마다시입니다. .. 갈구리로 낚아 올렸더니, ... “정말 마디사입니다.”하고 말하였다. 곧바로 명령을 내려 토막토막 잘랐더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p387

 

거칠게 겉봉을 뜯고 열이 쓴 글씨를 보니 겉면에 ‘통곡’ 두 자가 쓰여 있었다. 면이 적과 싸우다 죽었음을 알고,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p394

 

내일이 막내아들의 죽음을 들은 지 나흘 째 되는 날인데도 나는 마음 놓고 울어 보지도 못하였다. 소금 굽는 강막지의 집으로 갔다. p395

 

군공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았더니 거제 현령 안위가 통정대부가 되고 그 나머지도 차례차례 벼슬을 받았으며, 내게는 은자 20냥을 상금으로 보냈다. 명나라 장수 양 경리(양호)가 붉은 비단 한 필을 보내면서, 배에다 붉은 비단을 걸어 주고 싶으나 멀어서 갈 수가 없었다고 전하였다. 영의정의 답장도 왔다. p402

 

영암 향병장 유장춘이 왜적을 토벌한 일을 보고하지 않았으므로 곤장 50대를 때렸다. ... 장흥 교생 기업이 군량을 훔쳐 실은 죄를 저질러 곤장 30대를 쳤다. p404

토벌하여 공을 세우고서도 보고하지 않은 죄로 곤장이 50대... 군량을 훔친 죄는 곤장 30대.. 무슨 의미일까? 보고 체계의 질서를 세우려던 뜻이었을까?

 

이번 선전관 편에, 통제사 이순신이 아직도 권도權道를 좇지 않아서 여러 장수들이 걱정스럽게 여긴다고 들었다. ... 경은 내 뜻을 잘 깨달아서 소찬 먹는 것을 그만두고 권도를 좇도록 하라. 아울러 고기 반찬을 내려주셨다. 비통하고 비통하였다.

임금이 친히 고기 반찬을 내려주었으면, 통상 매우 감지덕지 해야할 일이건만, 왜 비통하고 비통하였다고 했을까. 융통성 있게 좀 살라는 뜻인데... 고지식하고 원칙적인 자신의 삶이 이해받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고 답답함이었을까?

그가 채식을 했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중간에 나라의 제삿날 나온 쇠고기 반찬을 먹지 않았다는 내용이 맘에 걸렸었는데. 백성들의 고통과 나라의 환란 앞에 스스로 정한 일이었을까? 이것도 <파우스트적 계약>의 일종일까?

 

1598년 마지막 싸움에 나서다

2월에 이순신은 다시 진영을 고금도로 옮기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전쟁은 이제 막바지로 치달았다. 7월에 명나라의 수군 도독 진린이 내려와서 함께 연합 함대를 편성하였다. 그리고 11월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달아나는 적을 쫓다가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p409

 

이순신, 고금도로 진을 옮기고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다.

2월 7일 이순신은 강진 고금도로 진을 옮겼다.

7월 16일 명나나 수군 도독 진린이 5천의 병력을 끌고 왔다.

7월 18일 적선 1백여 척이 녹도를 침범했다.

8월 18일 풍신수길이 죽으면서 조선에서 철병할 것을 명령했다. p412

 

도독이 화를 벌컥 내면서 서천 만호와 홍주 대장과 한산 대장에게 각각 곤장 일곱 대씩을 때리고, 금갑도 만호, 제포 만호, 회령포 만호에게도 함께 15대씩 때렸다. p413

명나라 장수가 우리 군대의 장교들을 직접 체벌하였다. 그냥 흘려 보낼 수 없는 대목이다. 연합군이긴 하지만, 우리 군과 명군과의 관계가 어떠했던 것일까?

 

저녁에 유격 왕원주, 유격 복승, 파총 이천상이 1백여 척의 배를 거느리고 우리 진에 다다랐다. 밤 불빛이 찬란하여 적의 무리들의 간담이 떨어졌을 것이다. p414

 

초1일 도독이 새벽에 길을 떠나 유 제독에게 달려가서 잠깐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초3일 도독이 유 제독이 보낸 밀서를 받고는 초저녁에 나가 싸웠다. 자정이 될 때까지 서로 부딪치고 싸웠는데 사선 19척과 호선 20여 척이 불탔다. ...

초6일 도원수가 군관을 보내어 편지를 전하기를 “유 제독이 달아나려고 합니다.”하였다. 분하다, 분하다! 나랏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p415

 

* 이순신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술잔과 허리띠 : 1598년 10월 초 명나라 장수 왕원주와 진 파총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이라 전한다. p414

 

조금 있다가 도독이 보자고 청하였다. 바로 나갔더니 도독이 “순천 왜교의 적들이 초10일 사이에 철수하여 도망한다는 기별이 육지로부터 왔습니다. 급히 진군하여 돌아가는 길을 막읍시다.” 하였다. p416

 

15일 아침 일찍 도독을 만나보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왜선 두 척이 강화하자고 두 번, 세 번 도독의 진중으로 드나들었다.

16일 도독이 진문동을 왜적의 진영에 들여보냈다. 조금 있다가 왜선 세 척이 말 한 필과 창, 칼 등을 도독에게 가져다 바쳤다.

17일 왜의 중간배 한 척이 군량을 가득 싣고 남해에서 바다를 건너는 것을 한산도 앞바다까지 쫓아나갔던 일을 보고하였다. 왜적은 한산도에서 기슭을 타고 육지로 올라가 달아났고, 잡은 왜선과 군량은 명나라 군사에게 빼앗기고 빈손이었다. p417

 

11월 18일 조명 연합함대가 노량으로 진격하였고, 19일 새벽부터 싸움이 시작되어 왜적을 크게 쳐부수고 선두에서 싸움을 지휘하던 이순신이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p418

 

 

3. 내가 저자라면

 

<일기>란, 매일 쓴다는 것, 자신의 역사를 쓴다는 것.

 

용어를 과거의 고유한 맛을 살려 쓰려 했다. 대신, 해설을 달았다. 효과적이다.

 

이순신의 일기를 기본으로 구성하고, 중간중간 빠진 기간이나 중요한 내용은 별도자료를 인용하여 정리하였다. 빠진 부분에 대한 중요한 사건-임진왜란-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업무일지 같다. 맨 먼저 날씨를 적고, 전황과 관련된 소식, 송수신된 공문이나 유지, 장계 등이 기록되어 있고, 방문객과 처벌과 관련된 내용들이 공적으로 해당되는 내용들이고, 사적으로는 어머님과 가족들에 관한 안부 그리고 자신의 심정이 간혹 기록되어 있다.

 

해전도, 당시 출정한 장수들의 명부, 박물관에 전시된 유품들의 사진 등을 통해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주관적 성격이 짙은 일기에 객관적 사실성을 가미하고 있다.

 

책의 편집과 구성

읽기에 편하다. 글자의 크기와 줄 간격 그리고 좌우문장의 길이가 너무 길지 않아서 읽어가는데 부담이 적었다. 책 가운데를 과감히 비우거나, 또는 주석이나 참고 그림들을 삽입한 점은 매우 센스 있어 보인다. 어짜피 궁금한 사람은 아무리 작은 글씨라도 비집고 들여다 보겠지만,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사람은 한눈팔지 않고 본문의 흐름을 따라 갈 수 있도록 살짝 숨겨놓은 것 같은 배려가 보인다.

 

어디까지가 이순신의 필력이고, 송찬섭의 엮어 옮기는 기술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칫 반복되는 일상의 이야기들(특히 날씨를 비롯해서, 자고, 먹는 등)이 지루하게 흘러버릴 수 있을 것이지만, 그날마다의 느낌과 의미가 반영되어 있게 하는 문필력이 눈에 띄었다.

예를 들어, 1596년 음력 5월말이면, 대략 6-7월 장마철인 모양이다. 내리 일주일을 비가 내렸는데, 다 다르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자연의 일상이지만,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참 다양하게 비가 내린다.

 

25일 비가 계속 내렸다.

27일 가랑비가 하루 내내 내렸다.

28일 궂은비가 개지 않았다.

29일 궂은비가 저녁까지 내렸다.

초1일 궂은비가 하루 내내 내렸다.

초2일 비가 그치지 않았다.

 

이런 묘사는 화살쏘기, 술 마시는 것. 백의종군을 하면서나 관할구역을 순시하면서 묶게 되는 모습들에서 글의 묘미를 더해주고 있다.

 

<난중일기> 외에 전쟁과 관련된 일기문 하면, <안네의 일기>가 떠오른다. 자칫 개인적인 감성에 대한 기록으로 그칠 수 있는 일기라는 형식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잘 투영되어 있다. 일기문이면서도 문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힘이 있기에 가능한 것으로 이해된다.

IP *.221.2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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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1 09:50:24 *.106.7.10
앗, 오빠는 내가 본 책과 다른 책을 보셨구나!

오빠가 뽑은 문구들을 보니 왠지 더 내 마음을 찌른다.
좋았던 점도 내가 노승석 옮긴 책을 보면서 아쉬웠던 점이 많이 보완된 느낌이다.
나도 이 책 다시 찾아보아야겠다. 한 번 읽고 말기에는 이순신 장군이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오빠, 옮긴이가 송찬섭이예요? 어디 출판사, 언제 나온 책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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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 경수기
2010.05.31 11:58:56 *.145.204.112
정말 ...........
송찬섭의 난중일기가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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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5.31 12:26:52 *.221.232.14
임진년 아침이 밝아 오다  난중일기
이순신 지음, 송찬섭 엮어옮김 서해문집
초판 1쇄 발행 2004년 9월 6일
초판 6쇄 발행 2007년 5월 15일
11,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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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5.31 20:59:36 *.154.57.140
피~ 감사하긴... 늘... 고마워.. 그 맘에 기대고 사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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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1 13:34:33 *.106.7.10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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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saint laurent
2011.05.31 18:18:52 *.111.182.3
Wear your high heels in a sitting position and around the gianmarco lorenzi shoes home first. After a period of gianmarco lorenzi pumps time they will become comfortable and you gianmarco lorenzi boots will probably forget you are even wearing them.If you are giuseppe zanotti shoes planning to wear heels outdoors or at a club on the weekend, wear giuseppe zanotti boots them around the house for a few hours first until they feel na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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