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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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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1일 10시 37분 등록

"선생님, 저는 정이 너무 많아서 힘들 때가 있어요."
2008년 여름, 코칭 교육을 통해 만난 그녀의 말이다. 세련된 커리어 우먼이었던 그녀의 외모에 걸맞지 않은 고민이었다. 하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높은 구두, 세련된 옷차림, 값비싼 브랜드는 종종 낮은 자존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무조건 그렇다는 것은 아니기에 '종종'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녀의 고민은 이랬다. 사람들의 모든 요청을 들어주다 보니, 삶이 힘겨워졌다는 것이다. 자신이 너무 정이 많다는 것이 원인이라도 진단했던 게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오래 들었다. 서로 간에 신뢰가 형성될 때까지.
감정적인 상태를 벗어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정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어쩌면 정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지 않아 힘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의 원인은 두 가지였다. 첫째, 그녀는 (자신의 생각보다) 정이 그다지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 둘째, 그녀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 둘째 이야기부터 해 보자. 그녀는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다른 이들의 상황을 잘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좋은 사람이었고 역설적이게도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힘들게 했다. 그녀는 거절하는 것이 나쁜 행위가 아님을 알아야 했다. 거절이란, 상대방의 '인격'이나 '관계'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한다고 해도 그녀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이제 첫째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자. 그녀가 자신이 생각했던 만큼의 정이 많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점 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탈진이란, 너무 많이 주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없는 것을 주었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강연을 하는 일로 탈진한 적이 없다. 가끔씩 준비 부족으로 강연을 '말아먹었기에' 사람들에게 미안하여 힘든 것이지, 지식과 지혜를 나누는 것 자체가 힘들지는 않다. 내 삶의 양식이 이미 끊임없이 학습하는 모습을 갖추었기 때문이고, 나의 강점이 지식을 흡수하여 탐구하고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 안에서 날마다 소생하는 것이다. 글을 쓰거나 지식을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어떤 사람이 그저 블로그의 유익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날마다 포스팅 하려 한다면, 머지 않아 지칠 것이다. 사실, 탈진은 반가운 것이다.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는 메시지이므로.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다시 포스팅 할 힘을 얻게 될 것이므로. 

다시 그녀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어쩌면 그녀는 정이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낮은 자존감 때문에 상대방의 인정을 받아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인정을 받기 위해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럴 경우의 해결책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무석 박사의 『자존감』이 도움을 주기에 머지 않아 소개할 예정이다.) 자신에게 가진 것으로 섬기고 공헌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자신에게 있는 만큼만 주는 것이 최종 해결책이다. 이리 말한다고 하여, 그녀를 나쁘게 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강한 면과 연약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녀의 경우,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점과 낮은 자존감이라는 점, 이 두 가지의 원인으로 인해 힘겨움에 처했던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두 사람의 가르침 덕분이다. 그 중 하나는 지난 번에 소개했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의 저자 파커 파커다. 이번 주 동안, 이십 대 중반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서 저자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재능을 통한 공헌이 무엇인지, 탈진의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나름의 견해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이 모두 저자 덕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재능십일조로 봉사 강연을 시작한 것도 저자 덕분이었음을 책에 쓰인 나의 메모를 읽고서야 알았다. 배우고 받은 것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는 나의 모습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오늘 글과 관련한 저자의 명문을 소개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 내 본성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선물이 나의 참다운 본성, 유기적인 실체 속에서 생성된 것이라면 내가 그것을 주어 버린다 해도 스스로 다시 생겨날 것이다. 또한 그러한 베풂의 결과는 탈진이 아니라 비옥함과 풍요로움이며 나를 새롭게 할 것이다. 오직 내 안에 자라지 않는 어떤 것을 주려할 때, 그 행위는 나를 고갈시키며 다른 사람에게도 해가 된다. 강요되고, 기계적이며, 실체가 없는 선물을 해악만 불러온다."
- 파커 파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한문화, p.76

  Parker J. Pamer 『Let Your Life Sp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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