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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8일 06시 14분 등록
김구라가 진행하는, MOT(the moment of truth)가 화제다. 유명 인사가 나와서, 질문에 끝까지 답하면 상금으로 1억을 준다. 질문이 더해갈수록 수위도 올라간다. 녹화방송중, 한 연예인에게 '유부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난감한 질문이다. 방청석에서 듣고 있던, 매니저가 방송을 저지했다고 한다. 방송은 나가지 못했다. '사람은 진실을 원하지만, 진실과 대면하기는 두려워한다'고 담당 피디는 말한다.
 
카를 융 덕분에 인간 무의식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인간은 공짜를 좋아한다. 돈 없이 일이 진행되기를 바란다. 돈을 내야 열심히 누린다. 앞서 말했듯이, 또 한가지는 자기의 치부에 대해서 숨기는 본성이다. 카를 융에 대해서 알기 위해선, 자서전만 보아서는 안된다. 부끄러운 과거를 명문화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순간순간 의도하지 않는다면 슬그머니 이야기를 빠뜨린다.
 
그래서, 전기 작가가 쓴 책도 읽었다. 1200페이지를 육박하는데,(서양철학사 이후, 두꺼운 책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분량만큼이나 융에 대한 이야기들이 시시콜콜 들어가 있다. 자서전에서도 감 잡았지만, 융의 부모는 건강한 사람들이 아니다. 둘은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다기 보다는, 결혼해야하니까 했다. 융의 어머니 에밀리는 외모를 가꾸지 않아서 뚱뚱했다. 아버지 파울은 아내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처지가 못되었나 보다. 그는 돈이 없었는데, 그런 자신에게 시집온 에밀리를 감지덕지하는 것 같다.
 
결정적으로 에밀리는 유산을 많이한다. 기록에 의하면, 융이 태어나기 전까지 모두 세아이가 죽었다. 여자로서 당연히 우울증을 겪었을 터. 융을 낳고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어린 융을 전적으로 하녀가 돌보았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나이에도 혼자 놀았다. 융의 부모는 유별나서, 동네 사람들은 융이 자기 자식들과 어울리기를 바라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주로 상상을 했다. 융은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을 것이고, 요즘 말하는 다중인격자 같은 시선을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자신의 눈으로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분리되어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본다.
 
융은 자서전에서 진술한것 보다는, 더 궁핍했던 것 같다. 대학에 진학할 무렵 아버지, 파울은 바젤 대학에 상당량의 장학금을 신청한다. 융의 학교생활이 바를 경우에만 지급되는 장학금이었다. 융은 이 사실을 알고 매우 부끄러워했다.
 
융의 부모를 보면, 4차원 사람들 같다. 상식적이지가 않다. 파울은 암에 걸려서, 초췌해지는 반면 에밀리는 더 살이 불어갔다. 둘의 대비가 더 극명했을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부부의 전형이다. 결국 아버지는 1896년 암으로 죽는다. 이때, 에밀리는 융에게 <너를 위해 적당한 때에 죽었구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융과 아버지, 파울이 종교적으로 갈등을 하고, 논쟁을 일으켰으나, 잘 죽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에밀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대학을 졸업하고, 스위스에서 두번째로 거부의 둘째딸, 엠마와 결혼한다. 융은 잘 생겼고, 능력이 있었기에 여자를 유혹하는데도 능수능란했나 보다. 그 뒤로도 여자 환자들과 이런저런 일이 생긴다. 융은 취리히 대학에서 강의를 했는데,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하고 진지하게 진행했다. 때문에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그의 강의에 청강했다. 청강생은 대부분 여자였다.
 
엠마와 결혼하고, 재정적인 안정을 이룬 융은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만약 엠마가 없었다면, 융은 오늘 같은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의와로 위인들은 혜택받은 사람들이다. 개인적인 노력도 있었겠지만, 그들이 충분히 연습하거나 연구할 만한 상황이 주어진다. 빌 게이츠는 컴퓨터가 귀한 시절, 마음껏 실습할 수 있었고, 비틀즈도 대중에 나오기 전 충분히 연습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당장 우리 주변만 보아도, 부모가 재정적으로 여유로우면 자식들도 안정된 여건에서 공부한다. 이런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 외고, 자사고 학생의 서울, 연고대 진학 비중이 높다. 이들 학생은 공부도 열심히 하겠지만, 한결같이 잘 사는 집안 자식들이다. 비록 결별하지만, 프로이트와의 만남도 융에게는 절대적이다. 그를 통해서 많이 성장했을 것이다.   
 
그다지 좋지 않은 성장환경에도 불구하고, 행운을 누릴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스캇펙은 '신은 나의 무의식'이라고 했다. 융은 외부의 상황에 그때 그때 반응하기 보다, 꿈을 분석해서 더 심층적인 의미를 파악할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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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시대다. 어떤 책이든, 일단은 재미있어야 한다. 좋은 영화는 돈 많이 버는 영화고, 돈 많이 버는 영화는 재미있다. 많이 팔린 책이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없지만, (특히 '시크릿') 좋은 책은 많이 팔린다. 물론 마켓팅도 해야하고, 운도 필요하다. 그래도 기본은 책 자체의 매력이다. 재미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최근에 재미있게 본 책은,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이다. 이 책도 자서전 같다. 베일에 가려졌던 그룹의 실상을 낱낱이 드러낸다. '까발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책에 나오는 당사자들은 뒤통수 얻어맞은 느낌을 가질 것이다. 그들에게는 안됬지만, 까발린 이야기는 재밌다.
 
팩트에 김변호사의 의견을 덧붙였다. 소재 자체도 재미있지만, 문체도 명료하다. 자기가 경험한 일일수록, 글쓰기가 편하다. 만약 기자나, 논픽션 작가가 썼더라면 아무리 글을 잘 썼다할지라도 재미는 떨어졌을 것이다. 3자는 본질을 들출수가 없다. 좋은 글쓰기 소재는 나 자신의 경험이다. 소설가 김훈은,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많이 축적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 좋은 글을 만든다.
 
자서전으로서, 어린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를 시간의 순서대로 기술했다. 내용이 좋다면, 특별히 구성을 따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콘텐츠에 있어서, 내 믿음은 편집을 하지 않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요리는 원재료의 속성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손이 많이 갈수록 좋은 요리가 못된다. 물고기를 요리할 때도, 사람 손을 많이 타면 신선도가 떨어진다. 이리 저리 손을 보고, 모양을 낸다는 것은 소스 자체가 부실할 때이다. 콘텐츠는 하나의 덩어리로서 완전무결할 때, 바람직하다. 디자이너, 편집자 모두가 기뻐한다. 작가가 완성도 있는 소스를 출판사에 주면, 작업 과정이 명료하고, 명료한 만큼 시간이 단축된다. 게다가 결과물도 만족스럽다.
 
소설가 이창동은 '해체'는 쓸 이야기가 없을 때 한다고 말했다. 소스가 허접할수록, 없는 것 가지고 이리저리 틀어보기도 하고, 짜맞추기도 하고, 해체한다. 파격적인 구성, 형식 파괴는 조미료이지, 의미 전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구성력이 아니라 이야기 생산능력이다. 재료가 없는데, 요리실력이 의미가 있는가? 원본이 없으면, 디자인도 편집도 불가능하다. 미네르바는 글쓰기 훈련이 안된 사람이다. 글 자체만 놓고 보면 무식하다. 주어와 서술어도 맞지 않는 문장이 수두룩하다. 그의 글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내용때문이지, 문체나 형식이 아니었다.    
 
구상해야 할 것은, 콘텐츠가 아니라, 글 쓰는 시스템이다. text-machine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는, 함수 상자라고 상상할 수 있겠다.
 
'f(소재)=결과물'
 
김훈의 말처럼, 많이 축적하기 위해선 2가지가 필요하다. 1.저수지, 2.파이.
 
수압이 높고, 대역폭이 넓을수록 줄기차게 터진다. 연구원 활동도 결국 저수지와 파이프 만들기다. 관건은 '양'이다. 어느정도 읽고, 써야할까? 천명관 '고래'를 읽어보았는가? 평론가들은 이 책을 일컬어, '폭발'한다고 말한다. 내가 읽어본 바, 폭발까지는 아니고, 폭포같다. 혹은 전립선이 건강한 사람의 오줌발 같다. 시원시원하고, 줄기차다. 이번에 신간을 냈는데, 인터뷰에서 자기 키만큼 원고지를 습작했다고 한다.(참고로 그의 키는 180이다.) 장정일은 독서일기 7권을 폈다.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하는데, 어떻게 읽어나갈 것인지를 생각하면 또 한번 주춤한다.
 
알게 모르게, 한국인이 쉽게 휘둘리는 관념이 있다. '체계적인 교육'에 대한 강박이다. 학원 마켓팅도, 한결같이 '체계적'인 시스템을 강조한다. 가뜩이나 스마트 폰으로 정보가 폭발하는데, '체계'라는 개념이 어울릴까? 여기에, 체계적으로 '정리하겠다'고 까지 생각한다면 답이 안나온다. 읽는 족족, 블로그에 정리하고, 신문 스크랩을 한다면 주객이 전도된 처사다. 그냥 단순하게 상상할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저수지에, 텍스트를 채운다고 생각하자. 닥치는 대로, 읽는다. 작가는 걸신들린 듯이 텍스트를 먹어야 한다.
  
번역하시는 분이 독일어, 영어 번역본을 대조하며 공을 들였다고 하셨다. 공을 들인 것은 알겠는데, 코드가 맞지 않는다. 무슨 코드?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맞지 않기에 잘 들어오지가 않는다. 최근 문학동네에선 근대문학을 소설가가 번역했다. 김영하는, '위대한 게츠비'를 번역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창작이 전차가 진군하는 것이라면, 번역은 지뢰찾기 라고 한다. 한국말로 옮겼다고 앞으로 쭉쭉 나갈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김영하는, 위대한 게츠비가 쓰여진 뉴욕에서 작업을 했다. 번역을 할 때는, 자기 답게 옮길 수 밖에 없다. 게츠비 번역본은 많지만, 김영하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김영하가 번역한 소설도 김영하의 작품을 닮았다는 사실을 안다.
 
자기 답게 번역해야 좋은 번역이다. 번역에도 철학이 필요하다. 원서를 아우를 수 있는 지적능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이 책은 작가가 번역하기 급급했다는 느낌이 든다. 벅찬 것이다. 문장과 문장이 유기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어렵다. 문장 옮겨 적기에 바빠서, 자기 다운 번역은 기대못한다. 나라면 이시형 박사같은 전문의에게 번역을 의뢰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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