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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2008년 3월 12일 11시 36분 등록
어제 아침의 해프닝입니다.

제가 좋은 엄마인지, 고민이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보통 6시에 일어나 모닝페이지 쓰고,

6시 30분에 주방에 나가 전날 밤에 쌓인 설거지를 시작으로 아침준비를 합니다.

그 사이 6시 50분에 세째(고2) 아이를 깨웁니다.



그런데 어제는 눈을 뜨니 8시 30분인 겁니다.

"으악____"



어쩌다 밤을 새고 새벽 4시 30분쯤 잠이 들었는데

알람만 믿고 있다 낭패를 당한 것입니다.

(알람을 잠시 변경해둔 걸 잊었습니다)

아이는 내가 깨워줄 걸 믿고 만빵 편히 잠을 잔거지요.



새학기 시작해서 겨우 첫 주를 지냈을 뿐인데..

우리 아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어 이것봐라, 벌써부터 군기가 빠졌어!' 할 것이 분명한

선생님 얼굴이 떠올라 아무래도 맘이 편치 않습니다.

'엄마가 안깨워줬으니 책임져!'

징징대며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래봤자 소용없다는 건 지가 더 잘 압니다.



사실 그애의 고민은 '지각의 이유를 어떻게 대느냐' 하는 것입니다.

늦잠을 잤다고 솔직히 말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그건 엄마인 저도 원치 않습니다.

'엄마가 깨워주지 않더냐' 는 소릴 분명히 하실테고,.

저는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엄마로서의 저의 자존심입니다.ㅎㅎ.



그 때 우리는 눈을 서로 마주치며,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는 데 무언의 동의를 합니다.

그 방법은 이미 오래 전에 우리가 한 번 써먹어 본 방법입니다.



'감기로 할까, 배탈로 할까?

그래 그게 좋겠다. 몸살!!'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겁니다.



"선생님, 저 **이 엄맙니다. **이가 여태 학교에 안나오니 걱정하고 계셨죠?

아이가 어제 밤부터 열이 나더니 몸살기가 심하네요. 그래서인지 속도 불편해하구요.

지금 병원에 갑니다. 오늘 하루 쉬면 어떨까 하는데요."



"아, 그러세요, 그렇잖아도 **이가 학교를 안나올 애가 아닌데 무슨 일인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신학년 초니까 웬만하면 병원 다녀와서 학교에 나오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네, 이따 상태 봐서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걱정은 진짜로 병원엘 가야한다는 데 있습니다.

학교에서 병가 처리를 하려면 '진단서'가 필요하니까요.



A형인 우리 아이는 대담하지 못합니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너무 생각이 많습니다.

의사 앞에서 할 말을 여러번 리허설해 봅니다.



"열이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구요, 배가 아프고 목도 따끔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될 것 같은데..!"



"열이 난 표시도 없고, 배도 안아프고 목도 괜찮은데, 청진기로 진찰하면 다 알텐데, 어떻게 해!"



"아휴, 의사들, 몰라요 몰라. 환자들이 말해주는 증상 가지고 처방하는거야."



어쨌든 일단 병원엘 갔습니다.



애가 아픈 증상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할 때 제가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몸살기가 오는 것 같은데, 미리 방지해두지 않으면 힘들 것 같아서요.

얘가 한 번 앓으면 호되게 앓거든요."



목, 배, 등을 살피던 의사,



"목이 약간 부은 것 같지만 염려할 정도는 아니고, 속이 안좋다니 소화제 넣어서 이틀 처방해주겠습니다."



우리 애와 나, 속으로 '으후후후..' 웃음이 나와서 혼났습니다.



"야, **, 오늘 쉬는 김에 푹 쉬고 이따 저녁에 미술학원에나 가라."
"네, 좋습니다 어머니!!"



선생님께는 '오늘 아무래도 학교 가는 것 보다 하루 쉬는 게 낫겠다'고 문자를 날렸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우리는 맛있는 오수를 즐겼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이래도 되는 겁니까?
IP *.51.218.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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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당팔
2008.03.12 20:08:30 *.121.243.227
살면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할 수 없이 공범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거짓말은 일상의 가벼운 변격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요.
나는 요즘 동네에 새로 이사 온 5살짜리 여동생(?)이 생겨 사는 재미가
팍팍납니다.
처음에 농담으로 <오빠라 불러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걔 부모들도 웃으며 넘깁니다.
지난 주말에는 동네 근처에 운동도 가고, 마당에서 배드민턴도 쳤습니다. 내가 걔 집에서 맥주를 마시면 술도 따라줍니다.
하는 행동이 아주 귀엽습니다.
그런데 걔가 내가 사실은 오빠뻘이 아니라는 것을 어렵풋이 아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기분 상해할까봐 그냥 <오빠>라고 부르는지도 모릅니다.
선생님도 알고도 속아주는 거겠지요.
살아가다 보면 알고도 속아주는 것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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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8.03.15 09:07:11 *.208.192.28
세상에. 누나는 내가 아는 최고로 열려있는 엄마입니다.
ㅎㅎㅎ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네요. 오마이갓, 병원까지 가다니.

어당팔 형님도 ㅋㅋㅋ
왠지 조그마한 꼬마가 '오빠!'하고 외치는 모습이 상상이 되어
아침부터 이래저래 웃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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