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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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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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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9일 03시 11분 등록

살다보면 견디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에게는 마흔 즈음이 그런 시기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은 세상뿐만 아니라 헤세에게도 지진을 일으켰습니다. 나라가 흔들렸고, 가정이 흔들렸고, 사회적 역할이 흔들렸고, 정신도 흔들렸습니다. 모든 것이 흔들리다가 거의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늘의 위기는 현재와 미래를 함께 암담하게 만듭니다. 헤세는 어떻게 견뎌야 할지 고민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는 은신처를 찾아 도주했습니다. 스위스 테신 주(州) 루가노 근처의 마을 몬타뇰라를 도피처로 삼고, ‘카사 카무치(Casa Camuzzi)’라고 불리는 사냥을 위해 지은 바로크풍 작은 성(城) 한편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1919년 5월의 일입니다. <테신,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여기에서 나는 전혀 소유한 것이 없었다. 성채를 전부 사용하지도 않았다. 방 네 개가 딸린 조그만 거처만을 빌렸을 뿐이다. 나는 집과 아이들과 하인을 거느리고 개를 부르며 정원을 손질하는 그런 집주인이자 가장(家長)이 아니었다. 이제는 빈털터리의 대단치 않은 시인이었다. 남루하면서 다소 수상쩍기도 한 이방인이었다. 우유와 쌀과 마카로니로 살고, 낡은 옷을 너덜너덜할 때까지 입고, 가을이면 숲에서 알밤 따위를 저녁 식사용으로 주워오는 그런.”

 

새로운 거처는 벽지가 너덜거리고 욕실도 없고 온수와 난방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헤세는 카사 카무치에서 12년을 살면서 이곳을 ‘나의 궁전’이라 부르며 사랑했습니다. 궁전에서 그가 소중히 여긴 곳은 서재와 이어진 작은 발코니입니다. “너비는 한 걸음이요, 깊이는 반걸음이다. 이 발코니는, 내가 가장 아끼는 자리이다. 이 발코니 때문에 나는 수년 전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하였다”고 그는 말합니다. 발코니 아래로는 정원이, 그 앞은 숲이 펼쳐졌습니다. 이 작은 테라스는 외부 세계와 은신처의 경계였습니다. 이곳에서 헤세는 사색하고, 관찰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헤세가 패잔병으로 도망쳐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확고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존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고자 했습니다. 외부 세계가 아닌 자기 내면을 연구하고, 세상이 준 일이 아닌 스스로의 과업을 진행하고자 했습니다. 카사 카무치와 작은 발코니는 위기를 문학적 르네상스로 전환시키는 작업장이었습니다. ‘고귀한 폐허’ 카사 카무치는 그의 실험실이었고, ‘마법적’ 발코니는 성소(聖所)였습니다. 헤세는 말합니다.

 

“나의 실험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 시대를 힘들게 만든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나날은 아름답고 풍요로웠다. 오랜 세월 지속된 악몽에서 벗어난 양, 나는 자유와 공기와 태양과 고독과 일을 호흡하였다. 처음 여름에 벌써 <클라인과 바그너>와 <클링조어>를 연달아 썼으며, 마음의 긴장을 풀고 계속 해서 그해 겨울엔 <싯다르타>를 시작할 수 있었다. 따라서 나는 파멸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힘을 모아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나의 카사 카무치, 마법이 흐르는 성소를 발견하고 싶습니다.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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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만 헤세 저, 정서웅 역, 테신, 스위스의 작은 마을, 민음사,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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