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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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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5일 06시 50분 등록

6.24일은 성인 세례자 요한의 축일입니다. 지난 주, 직원미사에서 영명축일을 맞은 제 이름이 호명되자, 누군가가 제 등을 칩니다. 돌아보니 평소 친했던 교수님이 속삭입니다. “최팀장! 축일 축하한다. 저녁에 보자. 술 한잔 사 줄께.”

 

오후 6시, 술 먹기엔 이른 시간이라 정육식당에는 사람이 한산했습니다. 평소 구경도 못하는 부채살, 살치살, 치마살 등 이름도 화려한 비싼 한우들을 마음껏 골라먹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님! 여때까지 몇 명의 환자들을 진료하셨어요?”

“의사 된 지 30년이 다 돼가니, 수만명 봤겠지”

“와..대단합니다. 기억나는 환자도 많으실 것 같은데요?”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어..”

 

그는 척추질환과 뇌혈관 질환, 특히 뇌 Brain 를 전문으로 하는 신경외과 전문의 입니다. 냉철하고 예리한 판단력, 뛰어난 뇌수술 실력을 지니고 있어서 우리끼리 ‘유능한 칼잡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직선을 좋아합니다. 정면승부, 성과창출, 수익우선, 원칙 같은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늘 직선이고 사무적인 말투여서, 차갑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고, 환자들도 어려워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환자들을 돌보면서 생명을 살리기도 하시지만, 늘 수많은 죽음을 가까이 하시잖아요?”

“그렇지”

“교수님은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말문이 열렸습니다.

“인턴이 되고 30 대의 산부인과 환자를 한 명 맡았는데, 꽤 친했어. 그런데 그 환자가 자궁암으로 사망했지. 하필이면 인턴 시작하고 한 달만에..그 환자를 나름대로 열심히 돌봐주었거든..아마 정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 그때부터였지. 환자에게 정을 주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먹은게..”

 

웃음기하나 없는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얘기하는 것을 보니, 만화 주인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강하고, 능력도 뛰어나고 불친절하고 거친 듯 보이나, 내면은 순순하고 여린 영혼을 지닌...사춘기 소녀들의 순정만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캐릭터 말입니다. 갑자기 장난기가 생겼습니다.

 

“교수님! 행복 좀 처방해주세요”

“뭐?”

“제가 환자에요. 교수님에게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환자! 행복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으면,

저에게 어떻게 처방해 주실래요?”

“행복? 아..그거...야..그건..참 어려운데..”

 

30년 동안 수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고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의사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해졌습니다.

소주 두어 잔이 더 들어갔는데도, 계속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툭 내뱉었습니다.

 

“고난이 인생보다 짧다.”

“예? 뭐라구요?”

“고통과 불행이 아무리 길다 해도, 인생보다는 짧다”

“....”

 

앞 뒤 설명도 없는 불친절한 처방전입니다. 뭔가 리액션을 해줘야 하는데...갑자기 할 말을 잃었습니다.

대신 고기 한점을 싸서 입에 넣어 드렸습니다.

 

“자. 아~ 해보세요”

“야, 남들이 보면 게이라고 놀려”

“별 걱정을 다하시네요. 진료보실 때, 환자들에게 그 얘기도 좀 해주시죠. 얼마나 힘이 되겠어요?”

“야, 임마, 언제 일일이 다 얘기하냐, 밥은 안 먹냐? 빨리 빨리 환자를 봐야 밥이라도 제때 먹지..”

 

정년퇴직을 하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 의원을 차려, 낮에는 진료하고 휴일에는 낚시를 하며 살고 싶다고 합니다.

밤은 깊어가고,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도 더 없이 깊어갑니다. 사람은 깊이 알아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깊어갑니다.

IP *.30.2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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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11:37:36 *.122.237.16

형도 글도 깊어가네요.

저도 그렇게 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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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16:10:17 *.30.254.21

고마워. 승완아..

가을 준비로 몸은 바쁘겠지만

마음은 바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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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18:20:16 *.136.209.2

성우입니다. ^^

턱~ 한대 맞은 느낌...

깊어진 형님 마음에 추천 도장 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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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6 16:31:12 *.30.254.21

오랜만이야. 성우야...

네가 만들 어 준 만년필....잘 쓴다.

밝고 환한 얼굴로 큰 소리로 웃던

네 얼굴이 생각난다... 

대학로에서 먹었던 동동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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