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 조회 수 546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날이 어둑해지자 마을 확성기를 타고 트롯이 흘렀습니다. 이 알아들을 수 없으나 익숙한 음악은 아마 이장님, 혹은 마을 주민
대다수의 취향일 것입니다. 이제 곧 이장님의 방송이 시작된다는 예고 음악이니까요. 창문을 닫고 있을 때는 전혀 들리지 않지만, 요즘은 창문을 열어두어
모처럼 이장님의 방송을 멀게나마 들을 수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신청할 농가는 언제까지 신청하라는 이야기가
두 번 반복되었고, 이어서 마을 상수도를 이용해서 밭에 물을 주는 일을 삼가라는 내용이 들렸습니다. 가뭄이 극심해서 마을 상수도의 저수량이 위협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뉴스에서
말하는 104년만의 가뭄이 우리 마을에도 닥친 것입니다.
나의 밭과 주변에도 그 지독한 가뭄이 찾아 들었습니다. 밭에 심어놓은 옥수수가 꽃을 피운 상태로 일부는 말라 죽고 있고, 일부는
말라 죽기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숲으로 오르는 비포장길을 걷노라면 발을 뗄 때마다 먼지가 폴폴 일어섭니다. 입구에 새로 들어선 전원마을에 조경수를 심은 업체는 연신 조경수에 물을 주는 모습입니다. 실개천의 물도 말라붙기 시작하자 두어 주 전까지 숲 언저리의 밤 하늘을 수놓았던 반딧불이들의 수도 급격히 줄어들었고, 급기야 어젯밤에는 딱 두 마리의 반딧불이만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해에는 이 즈음 거의 하루도 빤한 날이 없을 만큼 많은
비가 내렸는데, 올해는 이토록 극심한 가뭄이 찾아 들고 있습니다. 치수(治水)를 명목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온 정부가 곤경에 몰릴 만한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을 인근에 있는 댐의 수문은 아주 좁게 열려 있고, 달천으로 흐르는 하천은 자연스레 검은 돌을 다 드러내고 있습니다. 말라
죽어가는 옥수수를 보면서, 숲 언저리에서 사라져가는 반딧불이를 보면서 나는 본능적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104년 만에 찾아 든 이 가뭄이 제발 더 지속되지 않기를 날마다 빌고 있습니다. 많은 농부들이 하늘을 우러러 비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 염원이
참으로 간절합니다.
염원한다는 것은 간절함을 전제로 합니다. 간절한 염원이란 어떤 바램일까요? 그것은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다면
내가 가진 귀한 어떤 것을 기꺼이 바칠 수 있다는 마음을 담은 바램일 것입니다. 100년 만의 한파나
폭설, 기상 관측이래 최고로 긴 시간 동안의 강우, 혹은 104년만의 가뭄이라는 기후의 이상 징후를 마주하면서 우리는 그 안정을 기원하는 대신 무엇을 바칠 수 있을까요? 민방위 본부가 에너지 위기 대책 훈련을 실시하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쳐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할까요? 문명을 통째로 바칠 수는 없는 상황이니, 각자 저마다
바칠 수 있는 목록 몇 개씩은 품고 꼭 실천해야 할 때에 이른 것 아닐지요?
나의 첫 번째 목록은 더 많은 나무를 심고 지키기 위해 내
삶의 상당 시간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대 목록의 처음은 무엇인지요?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437 | 희망과 절망 | 최우성 | 2012.07.16 | 6931 |
1436 | 퍼팩트 실패, 불행을 찾아 떠나왔지요 | 부지깽이 | 2012.07.13 | 5408 |
1435 | 머물지 않기 [1] | 김용규 | 2012.07.12 | 9320 |
1434 | 내면의 안테나 | 문요한 | 2012.07.11 | 5603 |
1433 |
내 손으로 만드는 기쁨 ![]() | 승완 | 2012.07.10 | 4201 |
1432 | 휴가 보내는 법 | 최우성 | 2012.07.09 | 5396 |
1431 | 아무도 따라 올 수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 [2] | 부지깽이 | 2012.07.06 | 4528 |
1430 | 멋진 직업의 세 가지 요건 | 김용규 | 2012.07.04 | 6046 |
1429 | 제일 좋은 방법 | 문요한 | 2012.07.04 | 5725 |
1428 |
헤르만 헤세의 마지막 여름 ![]() | 승완 | 2012.07.03 | 6859 |
1427 | 마법의 주문 | 최우성 | 2012.07.02 | 5812 |
1426 | '내 영혼을 키운 불후의 명언들' 이라는 주제 [11] [2] | 부지깽이 | 2012.06.29 | 6329 |
» | 104년만의 가뭄 | 김용규 | 2012.06.28 | 5463 |
1424 |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 문요한 | 2012.06.27 | 6412 |
1423 |
열 가지 즐거움 ![]() | 승완 | 2012.06.26 | 8156 |
1422 | 깊어간다 [4] | 최우성 | 2012.06.25 | 3644 |
1421 | 아니,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 주세요 [2] | 부지깽이 | 2012.06.22 | 5923 |
1420 | 지향과 밥 사이 | 김용규 | 2012.06.21 | 5229 |
1419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뜻을 품을 때 | 문요한 | 2012.06.20 | 5453 |
1418 | 영감을 부르는 기도문 | 승완 | 2012.06.19 | 12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