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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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지 않기
습관과 삶의 패턴을 가만히 살펴보니 나는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어느 곳을 여행해도 여러 곳을 찾아 다니며 계속 움직이는 여행을 하는
것보다 마음에 드는 한 곳에 깊이 머무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는 스쿼시처럼 격렬한 운동도
즐기긴 했지만, 운동이 끝나고 운동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그는 것을 즐겼습니다. 산행 역시 즐겼지만, 나의 산행은 느리게 걷다가 마음에 둔 장소에서
오래 머물다가 내려오기가 특징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느리고 움직임이 덜한 것에 마음이 끌리고 또
편안해서 이렇게 숲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외로움이나 두려움이 아닌 깊은 기쁨일 수 있나 봅니다. 그래서
한편 ‘여우숲’과 숲학교 ‘오래된미래’를 열고부터 지금까지 서너 달 동안 내게 혼란과 스트레스가 컸던 모양입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일이 몰려왔는데 그간 몇 년 동안 지나칠 만큼 고요하게 살다 보니 홀로 일을 감당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혼란스러웠던 모양입니다. 여우숲에 머물고 싶다거나, 프로그램 참여에 대해 문의하는 분들의
전화를 받는 일, 찾아 오는 손님들을 대하는 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 시설을 관리하는 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벗어나고 싶을 만큼 버거운 순간들이 꽤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버거움을 벗자고 키워온 꿈인 여우숲과 숲학교의 복잡한
일상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마음을 가누고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아주 강하게
해왔습니다. 드디어 오늘 마음에 가닥 하나를 잡았습니다. 요약하면
그 가닥은 ‘머물지 않기’입니다. 문제의 핵심이 지나치게 한 국면에 머물렀기 때문이라고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써두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고 어떤 국면이건 그것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말아야겠다. 너무 오래 머물면 늘 갇히기 마련이니까. 이를테면 지나치게 정적인
것에 몰두하고 머물면 게으름에 갇힌다. 물이 한 곳에 너무 오래 고여 있으면 썩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상처에 너무 오래 머물면 상처는 분노에 갇히고, 하나의
성취에 너무 오래 머물면 그 성취 역시 덫으로 바뀐다. 나무나 풀이 그러하듯 고요함을 잃지 않되 단
한 순간도 어제와 같지 말아야겠다. 머물지 않기, 다만 계류처럼
흘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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