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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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일찍 어느 CEO 모임 조찬회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7시에 호텔에 모여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1시간 정도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아침 메뉴는 간단한 한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끼를 채우기에 넉넉한 양이었습니다. 사회를 맡아 보는 한 여성 CEO가 한식으로 아침을 먹는 데도 겨우 10 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해 모두 웃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날마다 동분서주 하는데 정작 밥 먹는 시간은 한 끼에 10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장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개미처럼 미래에 먹을 것들을 모으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기 때문에 정작 지금을 즐기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삶은 ‘지금 이 순간’이라는 점들이 모여 만든 궤적인데 말입니다.
문득 어느 날 밤에 읽은 시 한 편이 생각납니다. 이렇게 나의 밤이 그대의 아침이 되는군요.
무슨 인생이 이럴까. 근심에 찌들어
가던 길 멈춰서 바라 볼 시간 없다면
양이나 젓소들처럼 나무 아래서서
쉬엄쉬엄 세상 바라 볼 틈 없다면
.......
한 낮에도 밤하늘처럼 별이 총총한
시냇물을 쳐다 볼 여유도 없다면
이 시의 제목은 ‘여유’ leisure 랍니다. W.H. 데이비스라는 시인이 쓴 시입니다. 원래 영국 사람이지요. 시시하고 어두운 성장기를 보내다 금맥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거기서 사고를 당하게 되고, 무릎 위까지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외다리가 되었습니다. 걸인이 되었는데 외다리로는 걸인 생활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 걸인시인으로 명성을 얻었다는군요. 비극이 그를 시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보다는 비극이 그의 마음 속에 숨어 있던 시인을 깨워 놓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군요.
경영자란 일생을 경영에 자신을 바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하루를 경영할 수 없고, 일과 다른 삶의 균형을 잡을 수 없고, 소중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을 만큼 바쁘다면 내가 무엇을 경영하고 있는 지 물어 보아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여유는 비극이 우리를 덮치기 전에 자신과 세상을 잇는 다리가 튼튼한 지 묻게 합니다. 나와 아내를 잇는 다리가 튼튼한 지, 나와 내 자식을 잇는 작은 오솔길이 여전히 아름다운지, 나와 다른 사람들을 잇는 그 통로가 서로 인사하고 웃고 믿을 수 있는 것인지 묻게 합니다. 그리하여 이해관계에 기초한 시장경제적 거래 말고도 세상과 교통하는 비시장경제적
관계망이 우리의 또 다른 기쁨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5월의 금요일입니다. 이번 주말엔 어떤 좋은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요 ? 나는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9명의 사람들과 2박 3일 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가이드 역할을 하려 합니다. 그러고 보니 늘 나를 떨리게 한 것은 사람이었고 만남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엔 어떤 사람들을 새로 만나게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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