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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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바보처럼 노려보는 텅 빈 캔버스를 마주할 때면 그 위에 무엇이든 그려야 한다. 너는 텅 빈 캔버스가 나를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 지 모를 것이다. 비어있는 캔버스가 날 뚫어지게 쳐다보며, "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캔버스의 백치 같은 마법에 홀리면 화가들은 결국 바보가 되어버리고 말지. 많은 화가들이 캔버스 앞에 서면 그래서 두려워하지. 반대로 텅 빈 캔버스는, "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라는 마법을 깨부수려는 열정적인 화가를 가장 두려워한다.”
- 반 고흐,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글을 쓰는 것이 힘겹습니다. 진득하게 앉아서 쓰면 될 것인데,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립니다.벌떡 일어나 찬장을 열어보고 냉장고를 뒤져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밖에 나가 담배를 입에 뭅니다. 다시 들어와서 파이팅을 외치고 모니터 앞에 앉아 보지만, 텅 빈 백지가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안절부절. 몇 줄을 적다가 다시 고양이를 품에 안아 쓰다듬기도 하고, 인터넷을 켜고 뒤적거리다가 결국 TV를 켭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시계를 보면 점점 속은 타 들어가는데 무엇이 아쉬운지 종료 버튼을 누르지 못합니다.
제 글쓰기의 문제가 자꾸 ‘생각하려’ 든다는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 문장을 쓰고 나면 ‘이게 뭐야. 이것밖에 못해?’라고 울려 나오는 목소리를 무시하지 못하고 백 스페이스를 여러 번 두들겨 지워버립니다. 자연스런 흐름이 끊기고, 문장은 힘을 잃어 평범해집니다. 내부 검열자의 목소리를 무시하라.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속으로 수백 번도 더 되뇌인 그 말이 손으로 옮겨지기는 너무나 힘이 듭니다.
의식 하나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저의 그런 패턴을 멈추어줄 매일의 의식 말입니다.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108배를 시작했습니다. 땀만 후드득 떨어질 뿐 글쓰기에는 별 도움이 되질 않았습니다. 산책을 다녀 보기도 하고, 아로마 오일을 물에 동동 띄워 그 아래에 초를 켜기도 했지요.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다시 2주 전부터 ‘워밍업 페이지’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줄리아 카메론의 모닝 페이지처럼 글을 쓰기 전에 한두 페이지 정도 의식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을 적는 것입니다. 쓸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에는 그저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없다.’ 라고 적기만 했습니다.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때에는 그저 ‘그래, 넌 바보다. 하지만 넌 글을 쓸 수 있어.’라고 다정하게 말해 주었지요.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그저 떠오르는 것을 적다 보니 자연스레 생각이 느슨해지고, 감정이 살아나는 것을 느낍니다. 특별한 준비 없이 언제든 할 수 있고, 마음을 다잡게 하고, 제 글쓰기의 강박을 플어 놓을 수 있으니 괜찮은 주술입니다..
조셉 캠벨은 “나는 본질적으로 인간이며, 신의 은총을 입음으로써 신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평범한 우리의 내면에 영웅이 살아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영웅성(英雄性)을 깨울 특별한 주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찾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 “넌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텅 빈 백지의 마법을 깨부수는 열정적인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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