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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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20대를 위한 나침반 프로그램’을 젊은이들과 진행 하면서 재미있는 실험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름하여 ‘7천원의 행복’ 프로젝트. 단돈 7천원으로 하루의 모든 먹거리를 해결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굳이 ‘7천원’인 이유는 물가가 비싼 탓에 콘도 내 음식점의 가장 싼 한 끼 가격이 7천원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한 끼 식사 값으로 세 끼를 해결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5천원으로 하루를 먹고 사는 셈입니다. 이게 가능할까요?
저는 ‘영양, 배부름, 맛, 시간적 효율성’ 네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세 끼 식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강사를 포함한 모든 참가자들은 2인 1조가 되어 머리를 맞대고 갖은 전략을 짜내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경쟁하듯 따로 움직였습니다. 어떤 조는 ‘얼리 버드(Early bird) 전략’으로, 아침 일찍 빵집에서 ‘떨이’로 파는 빵들을 사서 우유와 함께 먹었습니다. 어떤 두 조는 ‘얌체 전략’으로, 돈을 모아서 음식점에서 찌개 1인분에 밥 세 공기를 추가하여 따라 나오는 반찬들로 양푼 비빔밥을 만들어 찌개와 같이 먹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자 누군가 자신들이 만든 음식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마트에서 햄과 가래떡, 갖은 야채를 사서 젓가락에 꽂아 구운 왕꼬치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 준 것이지요. 얻어 먹으니 참 맛있더군요. 그리고 곧 미안해져서 우리 것도 퍼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경쟁 모드로 자신들의 ‘비법’을 공개하지 않던 수강생들이 그 꼬치를 맛본 후부터 조금씩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의욕에 넘쳐 재료와 양념들을 사는 바람에 돈이 거의 떨어졌지요. 주머니에 잡히는 것은 딸랑 2천원. 배는 꼬르륵 아우성을 쳤습니다. 배가 고프니 ‘뭉쳐야 산다’는 말이 떠오르더군요. 제안한 사람도 없었는데 자연스레 남은 돈과 재료들을 모았습니다. 돈이 많이 남은 조도 있었고, 거의 남지 않은 조도 있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어디 가니까 고기를 싸게 팔더라’ 하는 아이디어들이 모였고, 재료들을 합치니 훌륭한 요리들이 하나 둘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걱정을 하던 모두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고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불고기를 굽고, 계란을 말고, 남은 재료와 양념들로 훌륭한 부대찌개가 만들어졌습니다. 야채들을 다져서 영양 주먹밥을 만들어 나무 도마 위에 올리고 색색깔의 단풍잎으로 스타일링을 하니 탄성이 터져나옵니다.
왁자지껄, 즐겁게 식사를 준비하며 누군가 말했습니다.
“와, 이거 정말 7천원의 제약이 없었다면 맛볼 수 없는 행복인데요?”
그렇게 즐겁게 식사를 해 본적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배불리 먹은 적도 없었습니다. 가슴과 배가 모두 꽉 차는 감동의 만찬이었습니다. 커다란 주먹밥이 다섯 개나 남아서 단풍잎과 함께 잘 포장하여 1층의 프런트 직원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는 허연 이를 드러내며 연신 ‘안그래도 식사를 못했는데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아주 조금 먹고도 잘 살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배우려고 시작한 실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아주 많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잘 살았습니다. 조금의 소유로도 충분한 행복을 살 수 있었습니다. 모두를 웃게 만들고도 남아 주변 사람의 허연 이를 드러낼 수 있을 만큼이었습니다. 행복의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음을, ‘적다’는 생각이 ‘나눈다’는 행동을 방해하지 못함을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배운 날이었습니다.
@ 위 편지는 11월 17일 월요일에 발송되어야 했으나, 감기가 심하게 걸려 오늘 발송하는 것을 양해해 주십시오. 추워진 날씨에 감기 유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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