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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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의 논 대부분에 벼 심기가 끝났습니다. 그대 아시듯, 벼는 논에 심습니다. 녀석들이 물을 좋아하는 식물로 길들여진 탓입니다. 논은 땅 위에 물을 가두어 둔 곳으로 녀석들의 생육에 최적인 공간입니다. 그런데 만약 벼를 밭에 심으면 어떻게 될까요?
밭은 오히려 배수가 잘 되는 곳입니다. 따라서 물을 좋아하는 벼에게 밭은 사막과도 같은 스트레스 환경일 것입니다. 많은 벼는 갈증과 대항하다가 꽃도 피우기 전에 시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척박한 환경에서도 제 삶을 지키고 이겨내는 벼가 있습니다. 그 사막과도 같은 땅에서 목마름을 견디고 벼 꽃을 피우며 이삭을 맺는 녀석들은 무엇이 다를까요?
지난해 나는 밭에 벼를 심은 적이 있어 압니다. 밭에서 살아남는 벼는 먼저 그 척박함을 이겨내는 교두보를 뿌리에 구축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뿌리에 근모(根毛, root hair)라고 부르는 아주 많은 털을 만듭니다. 근모는 다른 세포와 달리 액포를 키우고 세포벽을 얇게 합니다. 이는 당연히 양분과 수분의 흡수를 쉽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뿐만 아니라 잎의 끝까지 물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물관(vessel)도 상대적으로 더 강력하게 만듭니다. 부족한 물을 최대한 잘 포착하고 고르게 전달하여 갈증을 견디려는 것이지요.
비료도 농약도 주지 않는 농사법을 쓰는 나의 밭은 아직 척박합니다. 그 밭에서는 지금 심어놓은 작물과 잡초(?)가 뒤섞여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함께 자라는 잡초의 대다수는 명아주라는 풀입니다. 신기한 것은 심어놓은 작물보다 야생의 풀인 명아주가 훨씬 더 잘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자가 다르니까, 야생이 홈그라운드인 녀석이니까 라고 치부하기에는 조금 더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녀석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살펴보니 대다수 명아주의 뿌리에는 하얀색의 균사덩어리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흙 냄새라고 부르는 향기를 만들어내는 세균이었습니다. 그 흰 균사의 이름을 알아보니 방선균이라고 합니다. 생장속도가 느린 재배 작물이나 다른 풀의 뿌리에는 육안으로 포착할 수 있는 균사가 없었습니다.
요컨대, 밭벼는 자신의 뿌리조직을 바꾸어 사막 같은 환경을 이깁니다. 명아주는 자신의 뿌리를 세균에게 내어주고 그들을 원군으로 삼아 영양분을 더욱 잘 섭취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이 지금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자꾸 막히고 엇갈려 제 자리만 뱅뱅 돌고 있다면 먼저 나의 발 아래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목들은 그럴 때면 가장 먼저 뿌리를 살핍니다. 그들은 삶을 지탱하는 가장 근원적 힘이 바로 발아래 뿌리에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사진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풀의 뿌리 세포. 뿌리에 자신을 도울 균의 집을 내주었다. 각각의 네모 칸은 세포, 위쪽의 세포를 지나는 검은 가닥이 세균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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