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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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수술을 받았습니다. 위험한 수술은 아니라고들 했지만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런가요? 눈물 가득 고인 두 눈을 끔벅이며 간호사님 손을 잡고 수술실로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에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요. 대기실에 걸려있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을 원망하기를 한 시간 남짓, 다행히도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수술을 받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다시 병원에 들렀습니다. 수술 부위가 잘 아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겨우 한숨 돌립니다. 진찰실에서 나와 의자에 앉아 짐을 정리하고 있는 잠깐 사이 아이가 사라졌습니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붐비는 복도에서 아이의 모습이 사라지자 순간적으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다행히 멀리 가지는 않았더군요. 아이는 저만치 복도 끝에 놓인 풍선 자판기 앞에 서있었습니다. 처음 알았습니다. 풍선 자판기가 있다는 사실을.
아이가 슬슬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사줘야 할지, 그냥 달래서 돌아서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손에 풍선 하나 안 든 아이가 없더군요. 수술까지 무사히 받은 아이가 고맙고 기특해서 사주고 싶기는 한데, 또 한편으론 금새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려질 풍선의 운명을 생각하니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눈물 나게 아깝더군요.
고민이 그리 길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으로 금새라도 눈물을 떨굴 듯 올려다보는 아이를 이길 방법이 없지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기계 속으로 밀어 넣고 파란 풍선 하나를 뽑아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서둘러 자리를 뜨려는데 이번엔 둘째 아이가 벼락처럼 울어댑니다. 오빠 손에 들린 풍선을 가리키며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통에 별 수 없이 다시 천 원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번엔 노란 풍선이네요.
예상대로 풍선은 아이들의 관심을 오래 붙들지 못했습니다.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잊혀져 차 안을 이리저리 떠다녔지요.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지난 번 한 잔치 자리에서 얻어온 풍선 몇 개가 구석에 조그맣게 쪼그라든 채 뒹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풍선 따위는 잊고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애초에 이렇게 될게 뻔했는데, 왜 좀더 버티지 못했을까요? 때늦은 후회뿐입니다.
우리 주변엔 온통 급하다고 아우성치는 일들뿐입니다. 당장이라도 해결하지 않으면 눈물을 쏟아낼 듯 자신부터 봐달라 매달립니다. 풍선을 사달라고 벼락처럼 울어대는 아이마냥 생떼를 부립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지요. 문제는 이렇게 급한 일들이 중요한 일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급한 일들을 처리한답시고 허둥대다 보면 중요한 일은 늘 미뤄질 뿐입니다.
자기경영의 실천은 ‘급하기만 한 일’을 줄이고 ‘덜 급하지만 중요한 일’의 비중을 높이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하고 그 일에 더 높은 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우선 순위를 고집스레 지켜나가는 거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거금 이천 원을 들여 잠시나마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샀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래며 한 주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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