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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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학교를 짓기 위한 첫 삽
뜨기
지난 주 목요일 군청으로 찾아가 건축허가를 담당하는 직원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도시를 떠나면서 까맣게 잊었던 온갖 욕설도 생각나는 대로 떠올려 함께 퍼부었습니다. 그날 밤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물처럼 바람처럼 살자고 산중에
오두막을 짓고 새로운 삶을 사는 내게 아직도 그런 노여움이 남아있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슬퍼서 잠을 설치며 새벽을 맞고 말았습니다.
이 숲에 들어올 때 나는 이곳에 가칭 ‘행복학교’라는 이름의 숲 학교를 지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계획하는 숲 학교는 자연으로부터 배운 삶의 지혜를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교육 공간, 자연농업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가족 단위나 조직 단위로 찾아와
지친 몸을 숲에 뉘고 스스로와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공간, 글 작업이나 그림 등 창작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먹고 자고 거닐고 노닐며 작업하는 것을 지원할 수 있는 숙소, 숲 속에 자리한 아름다운
찻집 공간 등을 포함하는 학교입니다. 지역주민에게는 건강한 먹거리를 농사하여 자부심을 갖고 팔 수 있도록
돕는 매개공간 역할을 하는 목표도 가진 학교입니다.
지난 해, 나는
지방자치단체를 설득하여 아무리 힘들어도 차마 버릴 수 없었던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산을 확보했습니다.
다시 1년여의 시간을 거쳐 세부설계를 마쳤고 4월 3일 드디어 건축허가를 요청했는데, 한 달 스무 날이 넘도록 담당자가
허가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자세한 내막을 다 말하기는 너무 길지만 담당 공무원은 전문성과 열정을 결여한
공무원이 보여줄 수 있는 복지부동의 절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최대한 협조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참을 수
없을 만큼 무책임한 언사와 행동을 보였습니다. 결국 그를 응징한 방법이 멱살 한 번 잡고, 한 삼십여 분 동안 격렬하게 욕설을 퍼붓는 것이었습니다.
슬퍼서 불면을 겪을 만큼 무지막지하게 그를 대한 이후 허가는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이 숲에 숲 학교를 세우기 위한 첫 삽 뜨기 행사를 가졌습니다. 이웃과 마을 주민들을 모시고 따뜻한 밥 한끼를 나누려던 행사에 군수을 비롯한 많은 관계자 분들도 참석하여 격려해주었습니다. 생명존중과 안전을 기원하는 고사 축문에서 나는 이 숲에게 다시 약속하고 다짐했습니다. ‘내어주는 땅, 내어주는 나무와 풀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숲의 일부 공간을 사람의 땅으로 바꾸는 것이 헛되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삶을 살 수 있게 돕는 공간으로 만들겠습니다. 첫 삽을 뜨기까지 아주 긴 시간 동안 크고
작은 절망과 분노를 품고 왔는데, 앞으로도 어려움이 있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릎 꿇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에게 해 준 것 없으니 바라는
것 없습니다. 다만, 공사하는 내내 이 숲의 생명을 존중하며
일할 것이니 무사히 준공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윽고 숲 학교를 짓기 위한 첫 삽을 떴습니다.
그리고 지난 날이 영화처럼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도시를 떠나기까지의 길었던 여정, 숲을 장만하고 오두막을 짓기까지
흘렸던 땀방울, 스스로 선택한 곤궁함을 껴안고 살다가 와락 서러워 흘렸던 수컷으로서의 눈물…
이 숲에 숲 학교를 완성하고 그 숲 학교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을 이루기까지 나는 앞으로도 더 많은 땀방울과 서러움과 눈물을 삼키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다시 묻게 됩니다. 너는 그 어려움과 함께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 안에 이미 그 대답이 담겨 있음을. 꿈의 힘이 나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 걸어가게 할 것이라는 것을.
결국 필요하다면 언제고 다시 공무원의 멱살을 잡는 일을 몇
번이고 더 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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