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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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자인 짐 콜린스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원고를 완성했을 무렵, 그에게 문득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얼마나 받으면 내가 이 책의 출간을 포기할 수 있을까?’ 바윗길을 달려 올라가 경치를 구경하던 중에 우연히 떠오른 질문이었습니다. 내면의 뭔가가 던진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지난 5년간을 오로지 이 연구 과제와 씨름하며 이 책을 쓰는 데 모든 것을 바쳐온 걸 감안하면, 이것은 참 재미있는 생각이었다. 이걸 묻어 두도록 나를 유혹할 수 있는 금액이 없진 않겠지만, 1억 달러의 문턱을 넘어설 즈음 아쉽게도 길을 되돌아 내려올 시간이 되었다. 그 엄청난 금액조차도 그 정도면 이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주진 못했다.”
이 일화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서문’에 나옵니다. 9년 전에 이 구절을 처음 읽으며 ‘저자가 과장된 느낌으로 책을 홍보하는 건 아닌가’하는 의심과 함께 ‘특이하고 재밌는 서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짐 콜린스라는 사람이 일반적인 경영학자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2010년 가을 짐 콜린스가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콜린스의 존재 이유이자 핵심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제 삶의 원동력은 호기심입니다. 제가 연구 주제를 택할 때도 가장 큰 기준은 길고 고통스러운 작업 과정을 이겨낼 만큼 호기심을 계속 자극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제 핵심가치 넘버원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호기심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고요. 제게 호기심은 곧 삶이고,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비롯하여 그가 쓴 책을 모두 읽고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짐 콜린스라는 인물의 소명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소명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명이란 개념은 두 가지 핵심 성분과 본질적인 특성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소명의 핵심 성분은 ‘존재 이유’와 ‘핵심가치’입니다. ‘존재 이유’는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이자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 즉 삶의 이유입니다. ‘핵심가치’는 내가 살면서 지키고자 하는 내면의 가치이자 양보할 수 없는 의사결정의 기준입니다. 소명의 본질적인 특성은 ‘나를 넘어서는 더 큰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소명을 쫓는 사람은 존재 이유를 실현하고 핵심가치를 살릴 수 있는 ‘역할’을 선택하고 그에 헌신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역할’은 핵심가치와 존재 이유로 이루어진 소명의 외적 표현입니다.
‘마음 편지’가 길어지겠습니다만 짐 콜린스를 사례로 들어 소명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콜린스에게 ‘호기심’은 ‘넘버원 핵심가치’이자 그것이 ‘곧 삶이고’, 그가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호기심’이라는 자신의 소명의 외적 표현, 즉 콜린스가 소명을 실천하기 위해 선택한 역할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서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교육자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터득해 온 것을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나누지 않는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것도 바로 그런 배움과 가르침의 정신에서다.”
이제 콜린스의 소명에 대해 마지막 질문을 던질 차례입니다. 그의 소명과 연결되어 있는 ‘자신을 넘어서는 더 큰 무엇’에 대한 질문 말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 역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1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콜린스는 “이 책은 낡은 경제에 관한 책이 아니다. 새로운 경제에 관한 책도 아니다. 나아가 이 책에 소개된 특정 회사, 또는 비즈니스 그 자체에 대한 책도 아니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는 한 가지, 즉 좋은 것에서 위대한 것으로 도약하는, 시간을 초월하는 원리에 관한 책이다”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놀랍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이 책이 본질적으로 경영 연구서라고 생각지 않는다. 근본적으로는 비즈니스 서적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이 책은 그보다는 분야에 관계없이 영속하는 조직을 만들어내는 게 무엇인지를 찾아 나서는 책이다. 나는 위대한 것과 좋은 것, 탁월한 것과 평범한 것의 근본적인 차이를 무척 알고 싶다. 그 블랙박스 안에 발을 들여놓는 수단으로 기업을 이용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내가 기업을 선택한 것은 공개적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기업이 다른 유형의 조직들과는 달리 연구 대상으로 두 가지 커다란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성과를 정의하는 데 있어 폭넓은 합의가 이루어져 있고(따라서 조사 집단을 엄선할 수 있다), 접근하기 쉬운 데이터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좋은 것이 크고 위대한 것의 적이라는 것은 단지 비즈니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문제다.”
짐 콜린스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무엇을 연구하고, 어떤 책을 쓰든지 간에 그 밑바탕에는 호기심이라는 핵심가치와 존재 이유에 기반을 둔 소명이 자리 잡고 있을 거라 나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연구와 그가 수행하는 역할에 짐 콜린스라는 한 개인의 성공이나 안위를 넘어서는 큰 뜻이 자리 잡고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짐 콜린스를 좋아하고 그의 책을 신뢰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의 다음 책을 고대하는 이유입니다.
소명이라는 만만치 않은 주제에 대해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을 사례로 들어 이야기했습니다. 사례의 주인공이 연구하는 분야가 비즈니스와 기업이라는 점에서 적합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그의 인터뷰와 책의 내용을 근거로 잡았으니, 근거가 주관적이고 피상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소명이란 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이고 영적인 개념만은 아님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짐 콜린스의 책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경영 분야에서 그 정도의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헌신하고 그 만한 신뢰도를 보여주는 전문가와 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 짐 콜린스 인터뷰 출처 :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2010년 10월 3일 기사
* 짐 콜린스 저, 이무열 역,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김영사, 2002년
* 홍승완 트위터 : @SW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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