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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11년 9월 2일 06시 32분 등록

   그곳은 아름다웠습니다.    이천년 전 로마의 성벽은 그때 그 모습으로 루까의 마을을 빙둘러 수호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람한 사내들이 줄지어 침묵으로 고향을 지키듯이 말입니다.  성벽의 위는 양쪽으로 가로수가 우거진 넓은 흙길이었습니다. 푸른 하늘과 흰구름 그리고 가로수 성곽의 흙길은 내 마음을 점령하여 꼼짝할 수 없는 감동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습니다. 

   일행들은 서둘러 자전거를 빌려 그 흙길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여자들의 커다란 채양 모자들이 바람에 날리고 그녀들은 마치 하늘로 난 도로를 따라 오르듯 자전거 바퀴를 천천히 저어 나아갑니다. 스카프들이 날리고 맑은 웃음이 까르륵 주위를 가득 채웁니다.

   우리는 삼각형처럼 펼쳐진 세 그루의 커다란 버짐나무 그늘 아래 누웠습니다.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그 큰 나무 기둥을 타고 다람쥐 같은 눈길로 하늘로 펼쳐져 오르는 나무 줄기의 무성한 잎들과 그 사이로 보이는 이미 가을로 가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고요하여 시간이 멈춘 듯 했습니다.

   우리들은 소년 시절 피크닉 올 때처럼 싸 가지고 온 것들을 풀었습니다. 포도주 한 병 그리고 루까의 할아버지 가게에서 사 온 올리브절임으로 우리들의 여행을 축하했습니다. 햇살이 가을처럼 쏟아져 내리고, 바람은 시원한데, 여럿이 마시는 포도주 한 병은 금방 떨어지고 말았지요. 한 명이 나무에 기대 둔 자전거를 타고 루까의 가게로 다시 내려갔습니다.

   그가 돌아 왔을 때, 우리에게는 다시 포도주 한 병과 빵 두덩어리가 생겼습니다. 주위에서 우리를 떠나지 않는 루까의 비둘기들에게 빵부스러기를 떼어주고 우리는 다시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고향이야기였지요. 태어난 곳에 대한 이야기, 어린 시절, 그때의 기쁨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다 한 사람이 젊은 시절 오래 아껴왔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가사가 아름다워 그 제목을 물어 보았는데, 어찌된 까닭인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번 여행은 마치 시간 여행처럼 느껴집니다. 겨우 보름 전의 일들이 까마득하고, '언제'라는 시간에 묶이지 않고 사건과 장면들이 샤갈의 그림처럼 둥둥 하늘을 떠다니고 있으니까요.

나는 그때 나무에 기대어 내가 기억하고 있는 시 한 구절을 읊었습니다.

시집 한 권,
빵 한 덩어리,
포도주 한 병,
그리고 그대가 나를 위해 노래해 주니
이 세상은 살만한 것


  오마르 카이얌 (Omar Khayyam)의 시집 '루바이야트'에 실린 '그대가 나를 위해 노래해 주니' 라는 시지요.

겨우 두 시간도 못되는 시간이었지만 그날, 우리는 너무도 많이 웃어, 그 날은 웃음으로 기억됩니다. 오늘 책장을 뒤져 시집 하나를 꺼내 펼치세요. 그리고 첫 번 째 펼쳐진 곳의 시를 읊으며 하루를 시작하세요. 그러면 이 세상이 살만한 곳임을 알게 될 겁니다. 그것이 시의 힘이니까요. 우리는 모두 삶을 시처럼 살기 원하는 시인들이까요.
 
오늘만은 결코 시가 사라진 세상에 살지 않기를, 그리하여 모두 시처럼 사는 하루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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