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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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친구를 만나서 깜짝 놀라듯이 어떤 낯선 도시를 앞에 두고 깜짝 놀랄 때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다.”
- 장 그르니에, <섬>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해 여름 다녀온 이탈리아 여행을 기점으로 여행과 나는 서로 좋은 친구가 된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은 ‘지금 여기’라는 현재를 즐긴 여행이었습니다. 여행 중에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왜냐면 나는 자주 과거에 매이고 미래를 걱정하는 성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게 현재는 ‘언제나 손에 잡으려면 벗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행 초기에는 내가 현재를 살고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여행의 끝 무렵에 머문 루카(Lucca)에서였습니다.
루카는 오래 전에 지어진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입니다. 성벽은 아주 높지는 않지만 견고해보이고 너비가 10m가 넘습니다. 성벽 위에 가로수가 죽 이어져 있어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산책하거나 자전거 타기에 아주 좋습니다. 성곽 위에 서면 루카의 안과 밖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성벽 밖에는 큰 나무들이 커튼처럼 서 있고, 성벽 안쪽은 잘 보존된 중세 도시입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성벽 위를 달렸습니다. 천천히, 빠르게, 루카의 바람에 맞춰, 마음의 리듬에 맞춰 달렸습니다. 성곽을 달리다 도시 중심지로 들어가면 돌연 중세의 풍광이 펼쳐졌습니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욱 놀랐고,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마치 수백 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풍경과 분위기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내 마음은 <지상의 양식>의 앙드레 지드처럼 “우리에게 생(生)은 야성적인 것, 돌연한 맛”이라고 외쳤습니다.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단 하나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하나는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이곳을 다시 못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루카의 모든 것이 더 간절하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루카의 모든 것에 녹아들었습니다. 나는 바람이었습니다. 구름이었습니다. 성벽이었고, 좁은 골목이었습니다. 오래된 건물이었습니다.
루카의 바람은 달랐습니다. 청명한 하늘처럼 푸르게 시원한 바람이었습니다. 바람이 마음을 깨웠고, 마음은 바람 속에서 속삭였습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충실하라, 그게 무엇이든’. 불현듯 팝송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왜 밥 딜런이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고 노래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루카의 바람은 내게 ‘충만한 순간의 연속, 현재를 살라’고 했습니다. 바람 속에서 나는 자각했습니다. 내가 현재를 살 수 있음을, 이 순간을 즐길 수 있음을!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
- 장 그르니에, <섬>
* 장 그르니에 저, 김화영 역, 섬, 민음사, 1997년
* 안내
변화경영연구소의 수희향 연구원이 번역한 <신세대 기부자들>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경영 사상가인 찰스 핸디와 그의 아내이자 인물사진 전문 사진 작가인 엘리자베스 핸디가 함께 쓴 책입니다. 많은 분들의 축하와 관심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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