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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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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1일 12시 57분 등록

현대 물리학의 토대인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은 난해합니다. 짧은 지면에서 양자역학의 불가사의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홉 장님과 코끼리’라는 우화를 활용해 은유적으로 표현해보겠습니다.

 

아홉 명의 장님은 그들이 처음 만난 코끼리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첫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길고 평평한 귀를 만져 보고 “코끼리는 부채처럼 생겼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 장님은 파리를 쫓는 코끼리의 꼬리에 얼굴을 맞고는 “코끼리는 밧줄처럼 생겼다”고 하고, 세 번째 장님은 두껍고 튼튼한 다리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어서 “코끼리는 단단한 나무처럼 생겼다”고 단언합니다. 네 번째 장님은 부드러운 상아를 만지고는 “코끼리는 창처럼 생겼다”고, 또 다른 장님은 코끼리 코에 걸려 물에 빠진 경험을 떠올리며 “코끼리는 호수처럼 생겼다”고 말합니다.

 

여섯 번째 장님은 코끼리라는 같은 대상을 여러 사람이 다르게 묘사하는 것은 기괴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문제의 관건은 우리가 코끼리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점이기 때문에, 결정적인 정보만 습득하면 코끼리의 실체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일곱 번째 장님은 좀 더 복잡하게 생각합니다. 코끼리라는 낯선 동물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부채와 밧줄, 나무와 창, 호수처럼 서로 다른 것으로 설명 되는 모순을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고, 완벽한 설명을 하려면 이 모든 것이 다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다른 장님은 우리가 코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즉 한참 후에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의견입니다. 마지막 아홉 번째 장님은 코끼리를 모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처럼 코끼리를 타고 다닐 수 있으면 됐지 그 실체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루이자 길더가 쓴 <얽힘의 시대>에 나오는 수피교의 옛 이야기 ‘일곱 장님과 코끼리 이야기’를 내가 각색한 것입니다.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장님들이 코끼리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제시하듯이 물리학자들은 양자론(quantum theory)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마지막 장님처럼 양자론의 원리가 아닌 실용적 응용에 초점을 맞추는 과학자도 있습니다. 그에 비해 앨버트 아인슈타인과 에어빈 슈뢰딩거 같은 물리학자는 여섯 번째 장님과 같은 입장이고, 이들과 반대로 닐스 보어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이들은 일곱 번째 장님의 관점을 대변합니다. 또 폴 디랙은 여덟 번째 장님처럼 양자론을 이해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는 쪽에 속합니다. 이들 모두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20세기 최고의 지성입니다. 이렇게 뛰어난 학자들의 의견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점이 놀랐습니다. 물리학이 사실과 실험, 측정과 증명, 방정식과 수학이 핵심인 학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여기서 짚어볼 점이 있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해석’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양자론에 대한 과학자들의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뜻은, 양자론의 의미를 서로 다르게 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엄격성과 정확성으로 무장한 물리학에서 의미가 중요하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양자론은 해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에 관찰과 실험과 측정만큼 해석이 중요합니다. 길더는 말합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여러 반응들은 양자역학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왜냐하면 물고기에게 물이 필요하듯 그 이론에는 해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양자역학은 기존의 과학과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양자역학 이전의 고전적인 방정식은 그 용어들이 정의되고 나면 본질적으로 자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양자혁명이 일어나자 그러한 방정식들은 조용해졌다. 해석이 뒤따라야만 방정식이 자연계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양자론은 공학이나 경제적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만물의 근원과 실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입니다. 이는 인간의 세계관 혹은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별을 ‘신’으로 보는 사람과 ‘핵융합 반응으로 밝게 빛나는 뜨거운 천체’로 보는 사람의 세계관은 같을 수 없습니다. 천동설을 무너뜨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heliocentric theory)을 생각해보십시오. 인류의 정신사(精神史)는 지동설 출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괴테는 “모든 발견과 견해 중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만큼 인간 정신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다시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예로 다윈의 진화론이 촉발한 논쟁과 인류에 미친 영향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양자론도 그에 못지않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처럼 양자론의 정신 및 사상적 의미를 조명한 책이 있고, 신과학운동(new science movement)을 시작으로 양자론을 포용하려는 노력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자기계발 분야에서는, 또 다른 장님처럼 코끼리를 추정하듯 어설프고 위험한 접근이 없지 않지만 인간의 의식과 삶의 신비를 양자론으로 풀기 위한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양자론이 과학을 넘어 물리적 실재와 인간 존재의 실체를 규명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양자론은 물리학자가 아닌 우리도 관심을 가져볼 만한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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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자 길더 저, 노태복 역, 얽힘의 시대, 부키,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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