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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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만물이 원자(atom)로 구성 되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알고는 있지만 ‘원자’를 실제로 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라고 생각한 최초의 인물 가운데 한명은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입니다. 그는 만물의 근본 요소를 ‘원자(atomos)’로 명명했습니다. ‘atomos’는 ‘나눈다’는 의미의 ‘-tomos’ 앞에 부정을 의미하는 ‘a-’가 붙은 것입니다. 즉 원자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존재’입니다.
현대물리학은 원자 보다 더 작은 전자(electron)와 중성미자(neutrino)와 같은 아원자(subatomic particle)의 존재를 규명했습니다.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은 원자처럼 작은 것과 그 보다 더 작은 것의 세계를 다룹니다. 다시 말해 ‘가장 근본적인 입자와 빛의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이 양자역학입니다.
루이자 길더가 쓴 <얽힘의 시대>는 난해하기로 유명한 양자역학의 역사를 다룹니다. 책 제목의 첫 단어 ‘얽힘(entanglement)’은 양자 세계(Quantum world)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현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상식으로는 내가 여기에서 하는 행동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것들의 세계에서는 이 상식이 무너집니다. 두 개의 쌍둥이 입자가 아주 멀리, 가령 서울과 뉴욕 사이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고 가정해 보지요. 두 입자 중 하나에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다른 입자에 즉각 영향 미칩니다. 이른바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입니다. 양자 세계의 ‘즉각적인 영향 미침’은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는 아인슈타인조차 ‘도깨비 같은 작용’으로 여겨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양자역학은 현대 물리학의 초석이지만, 이해하기 어렵고 설명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양자 세계는 ‘양자 얽힘’처럼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납니다. 요컨대 아주 작은 것들의 세계는 우리의 상식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루이자 길더는 독특하고 흥미로운 접근으로 우리에게 양자론을 ‘이야기’합니다. <얽힘의 시대>의 부제는 ‘대화로 재구성한 20세기 양자물리학의 역사’입니다. 저자는 양자 물리학자들이 주고받은 말과 편지, 인터뷰와 회고를 대화 형태로 요리하면서 양자역학의 핵심을 풀어냅니다.
또 이 책에는 양자역학의 선구자들이 고전역학과 전혀 다른 양자론에 관한 원리들을 정립해나가는 장면으로 가득합니다. 존 스튜어트 벨이 지적한 것처럼 ‘모순성’으로 불러야 마땅한 ‘상보성의 원리’를 닐스 보어가 어떻게 발견했는지가 높은 산에서 보는 장엄한 일출과 같은 장면으로 펼쳐집니다. 또 에어빈 슈뢰딩거가 유명한 자신의 방정식을 만들어낸 과정과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의 원리’를 정립하는 결정적 순간이 영화 속 장면처럼 펼쳐집니다. 이런 장면들은 고독 속에서 과학자가 연구 대상과 나누는 대화, 그 동안 쌓아온 지식과 연구 결과와 나누는 대화입니다. 요컨대 스스로와 나누는 정신적 대화입니다.
과학의 역사는 연구 대상에 관한 실험과 관찰과 증명과 검증의 과정인 동시에, 연구 방식을 고안하고 실행하는 과학자들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과학사(科學史)를 보면 연구 대상과 연구자가 얽히고설켜있고, 같은 대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서로 얽혀 있습니다. <얽힘의 시대>는 ‘양자 얽힘’ 현상을 중심으로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펼치는 ‘양자역학 100년의 드라마’입니다. ‘드라마’와 ‘자연과학’은 안 어울릴지 모르지만 이 책만큼은 드라마라 부를 만합니다. 양자론을 둘러싸고 벌이는 과학자들 간의 공격과 방어,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과 연구 과정을 돋보기로 보듯 세밀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또 이 책에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최고 지성들의 성취와 좌절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물리학의 양심’으로 불린 파울 에렌페스트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과학책을 읽으며 울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촉망 받는 물리학자에서 도망치듯 고국을 떠나 방랑해야 했던 데이비드 봄의 삶도 남의 일 같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와 나는 아주 다른 사람임에도, 길더가 술술 풀어내는 이야기에 감정이입이 되어 내가 마치 그가 된 듯했습니다. <얽힘의 시대>를 읽으며 여러 번 감동했습니다. 한 마디로 놀라운 책입니다.
루이자 길더 저, 노태복 역, 얽힘의 시대, 부키,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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