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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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는 내 안에서 밀어내고 싶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나쁜 습관일 수도 있고 자주 내면을 괴롭히는 어떤 기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그것은 지금 당장 처해있는 아주 특별하고 치명적인 상황 또는 국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시 지금 자신 안에서 혹은 곁에서 밀어내고 싶은 어떤 것이 있으신지요? 사는 게 숲 생활 처음에 누렸던 간결함의 국면을 벗어나 점점 다루어야 할 일과 대면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내게도 그런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제 나 하나의 삶이야 스스로 다스리며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나 아닌 존재와 대면하면서 생성되고 제멋대로 흘러가는 어떤 국면과 사안들은 쉽사리 어쩌지 못하게 됩니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단박에 밀어내고 싶지만 망설이게 됩니다.
불가의 가르침이 이르듯 그 모든 것이 여하튼 나로부터 연유한 것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리한 칼날로 환부를 도려내듯 단박에 그것을 갈라 떼 내버릴 수도 있지 하다가도 또 망설이게 됩니다. 도려내면 아주 깨끗하게 정리될 것 같지만, 그 도려낸 자리에는 무엇인가 남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빈자리일 수도 있고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나쁘게도 다른 부위로 곤란함이 더욱 퍼져갈 수도 있는 감염의 발화지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단박에 도려내는 것을 망설이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런 상황과 국면이 어쩌면 신이 내게 내리는 시험이요 과제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생명의 삶에는 종종 밀어내고 싶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국면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살아있음의 증거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밀어내거나 도려내고 싶은 것을 명확히 분류하고 매정하게 떼어내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껴안고 살아가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 곤란함의 원인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멀고 근원적인 자리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껴안고 사는 동안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명확하게 만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내가 경계하는 것은 떼어내고 싶은 그 부분이 나를 삼키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늘 그것에게 눈길을 주고 마음을 열어두는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생의 도전거리란 어쩌면 이 생을 시작하기 전, 자기 스스로 풀기로 약속한 숙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한 때 저 역시 유난히 풀기 힘든 숙제가 있었습니다. 맞서 싸울 때도 많았고 도망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피하거나 도려내버릴 경우, 형태와 대상만 달리 할 뿐 반드시 비슷한 일이 다시 반복된다는 걸 언젠가 알아차리게 됐지요. 그 깨달음 뒤, 다시 비슷한 불편함이 올 때 혼자 속으로 다짐했답니다.
'올 것이 또 왔구나.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 동안 계속 이 과목에서 fail한거구나. 이번 만큼은 다르게 해봐야겠다.'
그러면서 그 동안 불편하다고 생각되던 상황을 적극적으로 껴안아 보기로 했습니다. 점차 마음의 불편함 정도가 약해지더니, 어느 날부터는 더 이상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과목을 'pass'한 것 같았습니다.
상황 자체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거나 오히려 더 복잡해진 면도 있는것 같은데, 마음이 편해지니 점차 사는 것 역시 편해지더니 이제는 더 이상 어렵다고 여겨지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바깥 상황에 휘둘리는 것이 줄어드는 만큼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은데, 이럴 수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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