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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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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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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3일 00시 12분 등록

(구본형은 마흔을 인생 전환의 분수령으로 인식하였다. 그 역시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였고 전환에 성공하였다. 마흔은 단지 숫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마흔은 숙제처럼 살았던 과거와 단절하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출발점이다. 마흔의 고개를 넘어가는 이들에게 이 편지를 전합니다.)

 

나는 꿈을 꾸었다.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왔다. 지구 최후의 날이 온 것처럼, 나를 송두리째 집어 삼킬 것 같은 무시무시한 파도와 함께 마흔은 시작되었다. 나는 쓰나미를 피하기 위해 쏜살같이 산으로 뛰어 갔다. 파도가 내 턱 밑까지 차 올랐다. 간신히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피신했다. 그 후로도 같은 꿈이 수 차례 반복되었고 나는 식은 땀을 흘리며 꿈에서 깨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것은 마흔에 겪게 될 통과의례를 상징하는 꿈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그 꿈이 의미하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흔이 시작되던 그 해, 연초부터 회사는 구조조정을 시작하였다. 직원들은 앞이 보이지 않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우울의 늪으로 빠져 들어갔다. 공황상태가 계속되었고 이 와중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아픔을 겪기도 했다.  결국 나는 십 년을 넘게 다니던 회사를 내 발로 걸어 나와야 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질풍노도의 서막이었다. 새로운 회사에서도 적응이 쉽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불안이 그림자처럼 계속 쫓아다녔다. 마흔을 유혹에 흔들림이 없는 불혹이라고 말하지만 난 많이 흔들렸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다. 갓길 없는 도로를 무작정 달리는 기분이었고, 인생의 허허로움에 열병을 앓았다. 그 방황의 시기에 스승은 마음을 나누는 편지에 나에 대해 이렇게 써주셨다.

 

마흔이 그를 세게 치고 지나갔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처럼 정직하게 마흔이 가진 모든 유혹과 방황에 노출된 사람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흔은 마지막 남은 청춘의 모습으로 우릴 괴롭힙니다. 마치 젊음의 끝인 양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시그널을 뿜어 냄으로 젊어서 할 수 있는 무슨 일인가를 마지막으로 저질러 보도록 유혹합니다. 마흔이 되면 또 우리가 그 나이가 되도록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것을 겨울 나목처럼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마흔이 되면 미래를 위한 터닝 포인트로 새로운 인생을 위해 무언가 대단한 계획을 짜내도록 우리를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평균수명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비추어 보면 중년은 인생의 황혼이 아니라 인생의 반을 지나는 시기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실제 안을 들여다보면 절정기라기 보다는 쇠락기에 가깝다. 마흔이 넘으면 경제적인 측면에서 감가상각이 가속화된다. 불안한 고용 구조 속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엄습한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삶의 절정을 즐기기는커녕 먹고 살기 조차 쉽지 않다. 사회 현실에서의 마흔은 화사하게 피어나는 시기가 아니라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어둑하게 사라져 가는 시절이 돼버렸다. 그래서 잊혀지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당나귀처럼 더 열심히 일에 매달리고 중독되는 지 모른다. 뭐 하나 이루어 놓은 게 없는 나이를 실감하는 나이가 마흔이다.

 

40대의 10년은 급격한 감가상각이 이루어지는 시기다. 완숙한 성취의 시기가 아니라 정리의 시기가 된 것이다. 이때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은 먹고 사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것이 우리에게 명령했다. 그러나 마흔이 넘으면 그것이 모든 것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40대 최대의 위기를 불러온다. 과거가 사라진 상태에서 미래조차 만들어낼 수 없다면 갈 곳이 없다. 40대는 이제 특별한 사회적 상징을 담은 단어가 되었다. 그것은 가장 정력적인 나이에 버려진 나이다.

-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P32)

 

세계보건기구(WTO)의 국가별 남녀 사망률 자료를 보면 어느 나라던 예외 없이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높다. 특히 20대와 30대에는 남성 사망률이 여성 사망률의 무려 세 배에 달한다. 그러다가 40대에 접어 들면서 점차 비슷해진다. 그런데 유일하게 40대에 접어 들어 남성 사망률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나라가 하나 있다. 바로 우리 나라다. 비단 사망률의 상승을 떠나서 실제 살아있는 삶의 모습은 어떤가? 정유성 교수는 40대 직장남성을 심층 인터뷰한 후 영혼의 노숙이라는 보고서를 썼다. 영혼의 노숙! 이 얼마나 비감한 표현인가? 잠은 집에서 자고 있어도 40대의 영혼은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생각보다 40대 남성의 현실은 참담하고, 자기 인식은 비루하다고 보고서는 평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뒷방 노인이 된 마흔이여.

-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P33)

 

40대는 왜 이렇게 고단하고 힘들까? 그 동안 의무적으로 살아 왔던 삶의 궤적을 보면서 자신만의 세계가 없다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불안하고 자신 없어 보인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40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고 변화해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 한때 나는 40대는 막연하게 인생 2막이 시작되는 시기라고 생각했었다. 한 번의 기회를 더 모색하기 위한 그런 때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마흔은 인생 2막과 같은 연극이 아니다. 이 시기는 인생 후반부의 삶의 질을 좌우할 결정적 시기다. 마흔은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타인의 삶을 따라 살았던 상실의 시대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나의 모든 것을 걸어 변화를 꾀해야 할 분수령이다. 폭포에서 수직으로 강하할 수 있는 정신이 필요하다.

 

인생이라는 개울을 따라 천천히 흘러가다가 마흔이 되면 어느덧 넓은 강 하류로 나가기 위한 관문을 만난다. 폭포가 눈 앞에 다가온다. 점점 물살은 급해지고 저마다 폭포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둥거린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으려 하지만 결국 힘이 빠지고 떠밀려 내려갈 수 밖에 없다. 어차피 떠내려 갈 운명이라면 담담하게 물결의 흐름을 따라 수직으로 떨어질 수 있느냐? 이것이 마흔의 태도다.

 

전환과 변곡, 이 두 단어야말로 40대를 묘사하는 가장 적합한 언어다.

-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P53)

마흔 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P54)

 

전환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창조적으로 바꾸는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다. 당연히 혼돈과 방황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은 창조적 변화를 위한 모색이다. 하프타임을 가지고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고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삶의 균형을 찾고 자기 주도적인 중심을 얻어야 한다. 

 

공자는 마흔에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다”는 ‘불혹’(不惑)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했다. 물론 그런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공자 같은 성인인 까닭일 터이다. 마흔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미혹의 시기이나 견딤과 또 다른 도약을 이루어낸다면 아주 매력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딱 좋은 시절이다. 때때로 어두운 시절이 있을 수 있으나 그때를 어떻게 넘어섰느냐가 사람의 크기를 결정하게 된다. 그대,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을 가지시길. 그리하여 그대 인생을 빛나게 하시길.

 

마흔 살은 오래 끓어 걸쭉해지기 시작한 매운탕이다. 바야흐로 인생의 뼛속 진국이 우러나오는 시기다. 마지막 젊음이 펄펄 끓어 오르고, 온갖 양념과 야채들의 진수가 고기 맛에 배고 어울리는 먹기 딱 좋은 시절이다.

-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P17)

 

2013 변경연 몽골_송경남 - 26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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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3 16:02:31 *.1.160.49

장중한 출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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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5 01:16:42 *.38.189.27

글이 장중한 느낌이 드는구나. 사부가 쓴 마흔에 대한 글은 꼭 한번 다뤄보고 싶었거든. 다음 편지는 유머러스하게 써볼까 그러고 있는 중.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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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3 21:21:46 *.108.69.102

제일 아래, 마흔을 매운탕에 비유한 대목이 왜 이렇게 병곤씨와 잘 어울리는지! ^^

진국으로 제대로 끓여  동네 사람 다 불러 즐기는 시절이 되기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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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5 01:19:05 *.38.189.27

아, 그래요? 제가 약간 잡탕스러운데가 있죠.ㅋㅋ 제대로 끓이는 나이는 누님 때인 듯, 저는 초벌로 끓이고 있어요. 아, 문득 사부님이랑 홍천에서 빠가사리 매운탕에 한잔 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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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4 17:02:10 *.153.23.18

사진 속 얼굴이 행복해 보입니다. ^^

벵곤선배의 동네잔치에서 매운탕 한 그릇 얻어먹고 싶습니다. 이미 얻어먹고 있고요.

마흔에 대해 저리 절실했기 때문에 그 고개를 넘는 다른 사람들을 알아보고, 애정을 가지시는 거구나 싶었어요.  

정성이 든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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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5 01:21:06 *.38.189.27

좀 늙어 보이지 않나? 사진 교체할까 하다가 뭐 그게 그거일 듯해서 놔뒀네.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은 좀 있거든. 콩두랑 편지를 보내게 되어 무척 기쁘다네. 이런 정성이 든 댓글도 받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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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2 12:44:29 *.64.231.52

오래 끓어 걸죽한 매운탕이기는 커녕, 이제 제대로 내 식의 매운탕 한번 끓여봐야할텐데,

무엇으로 어떻게? 하는 막막함 앞에 서있고나. 어느새  마흔의 나이는 다 지나고 있으니...

 

다행히 마흔을 하나의 상징으로 읽으면 전환점에 선 모든 이의 시간이 마흔이 되는 것이니,

막막함을 거두고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묻게 되는구나. 

나는 '그것'에 나를 다 걸 수 있는가?

마흔의 흔들림을 딛고 선 그대의 이야길 나눠주어서 고마우이.

 

사진의 그대는 몽골에서 만난 그 사나이들 같네.

작지만 대륙의 호기가 그 몸 안에서 흘러나오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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