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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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죽음은 ‘우리에 관한 중요한 사실’이다. 물론 다른 중요한 사실도 많다. 인간은 사랑하고, 일하고, 성 행위를 즐기고, 우정을 맺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온갖 감정을 느낀다. 이것 모두는 사소한 일이 아니고 이중 일부가 부재하면 진정한 삶이 아닐 것이다. 죽음은 인간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사실은 아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나기 때문이다.” 철학교수 토드 메이의 말이다.
우리의 사랑과 우정은 죽음으로 단박에 끝난다. 그동안 개입했던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죽음이 가져온 끝은 완성이 아니라 그냥 거기서 멈추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 죽음은 '완성'이 아닌 '중단'임을 작가들의 사례로 설명하겠다.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마지막 작품을 못 다 쓴 채로 세상을 떠났을까? 고대 로마 최고의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도 <아이네이스>를 완성하지 못하고 떠났다.『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머릿 속에 구상한 소설을 못 다 쓰고 떠나야 했다.
“난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아. 나는 세 개의 웅대한 주제, 세 개의 새로운 소설 때문에 또다시 고통을 받게 되었어. 하지만 난 우선 『영혼의 자서전』을 끝마쳐야 해.” 그에겐 『영혼의 자서전』을 마무리한 것이 마지막 축복이었다. 그는 이 소설의 시작을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선 작가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명문이다.
“시각,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지성. 나는 내 연장들을 거둔다. 밤이 되었고, 하루의 일은 끝났다. 나는 두더지처럼 내 집으로, 땅으로 돌아간다. 지쳤거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날이 저물었다. 해는 졌고 언덕들은 희미하다. 내 마음의 산맥에는 아직 산꼭대기에 빛이 조금 남았지만 성스러운 밤이 감돌고 있으니, 밤은 대지로부터 솟아 나오고,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빛은 항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구원이 없음을 안다. 빛은 항복하지 않겠지만, 숨을 거두어야 하리라.”
니코스도 결국 떠났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 철학적 질문에는 답하기 어렵지만, 죽음에 대한 니코스의 생각을 통해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는 직관적으로 깨닫는다. “우리들은 매를 맞고 눈물을 흘리는 노예가 아니라, 배불리 먹고 마셔서 이제는 아쉬운 바가 없는 왕처럼 이 땅을 떠나야 한다.” 나는 정말 왕처럼 떠나고 싶다. 내 가진 재능을 한껏 소진하고 열정을 다한 삶을 살고서 말이다. 여러분도 나와 같다면, 저렇게 죽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거나 혹은 해야만 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한 답변이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우리를 더욱 우리답게 만드는 가치가 되지 않겠는가.
니코스는 이런 말도 했다. “난 베르그송의 말대로 하고 싶어. 길모퉁이에 나가 서서 손을 내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는 거야. <적선하시오, 형제들이여! 한 사람이 나에게 15분씩만 나눠 주시오.> 아, 약간의 시간만, 내가 일을 마치기에 충분한 약간의 시간만이라도 얻었으면 좋겠소. 그런 다음에는 죽음의 신이 얼마든지 찾아와도 좋아요.”
언젠가는 우리도 남은 시간이 부족하여 아쉬워할 날이 올 것이다. 젊은 날에 탕진했던 시간들을 되찾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카잔차키스의 아내는 강렬한 어조로 이렇게 덧붙였다. “저주 받을지어다! 죽음의 신은 찾아와서, 젊음의 꽃이 처음으로 피어나려는 니코스를 꺾어 버렸다. 그렇다, 친애하는 독자여, 웃지 마라. 그대가 그토록 사랑했고, 그대를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가 시작한 모든 일이 꽃피고 열매를 맺으려는 때에 꺾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대는 웃으면 안 된다.”
니코스의 마지막 순간을 대하며 누가 웃고 있겠는가. 그러니 나는 웃지 마라는 당부보다는 잊지 말자고 당부하고 싶다. 누구나 젊음의 꽃이 어느 때고 꺾일 수 있음을 잊지 말자고. 죽음에 대한 인식, 다시말해 죽음의 필연성과 불확실성을 인식할 때 우리의 삶이 경이롭게 보이고 새로운 의식을 창조할 수 있음을 잊지 말기를, 아니 진하게 맛보기를 바란다. 죽는 것은 확실하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른다. 이것은 우리 삶에 어떤 교훈과 의미를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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