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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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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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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8일 07시 51분 등록

“당장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마십시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그 해답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그 해답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궁금한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먼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해답 속에 들어와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젊은 시인 지망생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궁금한 문제를 직접 몸으로 살아보라”는 말이 가슴을 칩니다. 마치 나에게 하는 말인 듯합니다. 우리는 삶에 문제가 없기를 바랍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고, 불완전한 인간에게 문제없는 삶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삶이란 문제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문제가 발생하면 얼른 해결되기를 바랐습니다. 릴케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합니다. 문제를 받아들이고 성장의 계기로 삼으라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발판으로 여겨 내면을 확장하라고 권합니다. 또 그 동안 나는 문제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유명한 격언처럼 문제 역시 지나가겠지만, 중요한 것은 지나가는 과정입니다. 문제와 함께하는 과정이 문제의 해결은 물론이고, 추후에 만나게 될 사건 혹은 문제에 대한 반응을 좌우합니다. 돌아보면 쉽게 넘긴 문제는 대부분 더 험악한 모습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성공의 기술보다 과정의 기술이 더 중요합니다. 삶은 무엇보다 과정이니까요.


“문제를 직접 몸으로 살아보라”는 릴케의 말을 보고 세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조지프 캠벨, 빅토르 프랑클. 니체는 철학자이고 캠벨은 신화 연구가이며 프랑클은 정신과 의사입니다. 시인인 릴케를 포함해 외모만큼 성격이 다르고 전문 분야도 제각각인 네 사람이 서로 똑같다고 할 만 한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우리말로 ‘운명애(運命愛)’로 번역되는 니체의 인생관이자 삶을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그는 “운명애, 이것이 나의 사랑이 되게 하라”, “운명애, 이것이 나의 가장 내적인 본성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캠벨은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쁨으로 참여하라’를 자기 삶의 ‘주제가’로 삼았다고 하면서 ‘전사(戰士)의 방식’을 이야기합니다. “전사의 방식이란, 삶에 대해 ‘예’라고 하는 것, 그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극한적인 체험을 정신분석과 실존주의 철학과 결합해 ‘로고데라피(Logotherapie)’라는 새로운 정신 치료법을 창안한 프랑클도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에도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해야 한다”고, “운명을 견디는 자세를 통해 의미는 채워지고 삶은 여전히 시간과 노력을 들일 가치를 갖는다”고. 릴케는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에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1926년 12월 중순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시는 그가 자신의 수첩에 적은 마지막 시입니다.


오라, 그대, 내가 알아보는 마지막 존재여,

육체의 조직 속에 깃든 고칠 수 없는 고통아.

정신의 열기로 타올랐듯이, 보라, 나는 타오른다.

그대 속에서. 그대 넘실거리는 불꽃을

받아들이기를 장작은 오랫동안 거부했다,

그러나 이제 나 그대를 키우고, 나는 그대 속에서 타오른다.

이승에서의 나의 부드러움은 그대의 분노 속에서

여기 것이 아닌 지옥의 분노가 되리라.

아주 순수하게,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없이 자유로이

나는 고통의 그 어지러운 장작더미 위로 올라갔다,

속에 든 모든 것이 이미 침묵해버린 이 심장을 위해

그토록 뻔한 어떤 미래의 것도 사지 않기 위함이다.

저기 알아볼 수 없이 타고 있는 것이 아직도 나인가?

불꽃 속으로 추억을 끌어들이지는 않겠다.

오 생명, 생명이여, 저 바깥에 있음이여.

그리고 불꽃 속의 나여, 나를 알아보는 이 아무도 없구나.


여기서 ‘그대’는 죽음을 의미하고, ‘장작’은 릴케의 육신내지는 자아를 말하는 듯합니다. 시를 읽어 보면 릴케가 죽음마저 받아들였음을, 그 안에서 불타올랐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니체는 말합니다. “생나무 장작에 불태워지는 고통만이 비로소 우리들 철학자로 하여금 우리가 지닌 궁극적인 깊이에 이르게 한다.” 캠벨도 말합니다. “그대가 견뎌 내는 재난은 그 무엇이건 간에 그대의 성격, 그대의 됨됨이, 그대의 삶을 향상시킨다. 이야말로 그대 자신의 본성을 자발적으로 샘솟게 할 기회다.” 프랑클도 말합니다. “인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이거나 심리적인 질병에도 불구하고, 또는 강제수용소의 운명 속에서도,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할 수 있다.”


릴케와 니체, 캠벨과 프랑클은 순탄한 삶을 산 인물들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은 파란만장했고, 바로 그 삶의 여정을 통해 각자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이들의 말이 창이 되어 나를 찌르는 이유이고, 이것을 내가 피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네 사람이 입을 모아 내게 말합니다. 지름길, 쉽고 빠른 길을 좇지 말라고, 문제를 그냥 지나가게 하지 말라고. 이들은 오히려 지름길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문제가 없는 척 하려는 태도가 삶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강조합니다. 어디 문제만 그렇겠습니까. 피할 수 없는 화두(話頭)로 다가온 사람과 책도 다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온몸으로 겪어봐야 합니다. 소중한 것일수록 체험으로 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만큼 존재는 확장될 것이고 삶은 깊어질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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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 저, 김재혁 역,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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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8 21:03:25 *.1.160.49

깊은~공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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