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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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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3일 13시 48분 등록

 

삼베이불에 풀을 먹여 널어 놓았다. 물에 젖은 베이불이 무거워서 힘겹게 짜면서, 내가 자발적으로 이 일을 하는 것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엄마가 재촉하거나 서둘러서 해 주시면 나는 쓰기만 했을 뿐.... 혼자 베이불을 짜는 동작이 영 생소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베이불은 모두 다섯 장이나 되었다. 누런 베 색깔이 살아있는 것이 두 장, 하얗게 탈색된 것이 세 장이다. 누런 것은 시어머니가 손수 짠 삼베로 만든 것이다. 내가 결혼생활을 한 충청도 마을에서는 아직도 삼베를 짜고 있었다. 삼베는 대마줄기 껍질을 쪼개서 이어 붙여 섬유로 만든 것인데, 공정이 복잡하여 동네 품앗이로 해결한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사람 키를 웃돌게 자란 대마를 잘라 통째로 찐다. 이파리가 대마초의 원료가 되므로 잘 수거하여 태워버리고 대궁만 쓴다. 대마가 기니까 기다란 슬레트 위에 얹어놓고 장작을 넣어 푹 찌면 누렇게 변색되고 축 늘어진 대마더미가 나온다. 날은 덥지 대마는 무겁지, 대마 더미를 자르고 묶어 찌고 옮기는 작업들이 모두 고되다. 다 쪄지면 삼삼오오 그늘을 찾아 앉아서는 대궁 껍질을 벗긴다. 여기까지가 공동작업이고 다음부터는 각자 자기 집 것을 개별적으로 다룬다.

 

아지매들은 말라서 뻣뻣한 대마껍질을 일일이 앞니로 가늘게 쪼개서, 넓적다리에 대고 꼬아 이어붙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다란 실을 양잿물과 쌀겨를 이용해서 탈색하고는 씨실과 날실로 구분해서 만들어 놓는다. 드디어 삼베를 짜기 위한 준비가 끝났다. 처음 본 베틀은 참 엉성하다는 인상이었다. 길게 감아놓은 날실 뭉치를 고정하고, 날실 하나 걸러 씨실을 엮어 넣으면 직조가 되므로 작업 자체가 복잡하지는 않은 탓이다. 쉴 틈 없이 촌부의 손길이 움직이면서 그 얇은 실만큼 섬유가 생겨난다. 나는 지금 몹시 궁금하다. 폭이 45cm쯤 되어 보이는 삼베를 아지매들은 하루에 얼마나 짤 수 있었을까, 그렇게 공들인 삼베 값은 또 얼마나 되었을까?

 

시어머니께서는 동네에 한 사람 있게 마련인 괴팍한 할머니였다. 시골 잔치를 하면 과방이라고 해서 남자들이 접시에 음식을 담는데, 남자 손이 닿았다고 잔치집에서도 국수만 드시는 분이었다. 깡마른 체격에 근검성실, 노동으로 일관된 분이라 백수하실 줄 알았는데, 요즘 세태로는 아쉬운 72세에 돌아가셨다. 어지럼증이 있어서 병원에 가자마자 회생불능입니다판정을 받았다. 그 때부터는 암의 부위가 어디인지를 찾는 작업이 진행되었을 뿐, 병원에 간 지 한 달만에 돌아가셨다.

 

그 때 산소호흡기 아래로 주르륵 흐르던 눈물을 기억한다. 징그러울 정도로 자식과 노동과 검약 밖에 모르던 분이 난생 처음, “삶에 끝이 있었네. 그것도 이렇게 예고도 없이 닥치는 거였어하는 생각을 하셨을지, 삶의 무망함에 가슴 떨리는 기억이다. 남매를 키우며 시집살이 하던 8년간 너무 힘이 들어 가출을 일삼다가 읍내로 나와 학원을 차리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더랬다. 이젠 결혼생활도 학원운영도 다 옛날 일이 되어 버렸지만 오늘 불현듯 삼베이불에서 그 분의 모습이 떠오른다.

 

많이 낡은 베이불은 친정엄마가 해다 준 것들이다. 국산이 비싸니까 중국산일 텐데, 거기서도 여전히 삼베는 수공예품일 테니, 최소한 20년은 써서 날긋해졌어도 여전히 베이불의 소임을 다 하고 있다. 사시사철 자식들의 살림을 헤아려 식기며 베이불을 나르던 엄마도 이제 예전의 엄마가 아니다. 오이소박이나 비빔국수를 보고서도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신다. 도대체 어떻게 해 먹고 살았는지 다 잊어버려서 신기하기만 하시단다.

 

베이불에서 두 분 어머니의 삶이 떠올라 생각이 깊어진다. 우리는 마치 노인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늙어 있었던 것처럼 생각한다. 보름달같이 환한 새색시 시절을 거쳐 수퍼맨이 따로 없을 육아시절, 자식들 다 여의고 한숨 돌리니 이번에는 손주까지 돌봐주어야 했던 생애는 다 잊어버렸다. 말씨가 어눌하고 행동이 굼뜨다고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노인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 나부터도 늙은 엄마의 의견을 싹둑 잘라버리곤 하지 않았던가! 애면글면 살아 온 생애의 끝이 홀대라면 이건 말도 안 된다.

 

빨리도 돌아가셨네

한 달 만에 시신이 되어 돌아 온 큰어머니를 보고, 사촌 동서가 이렇게 말했을 때, 인생에 대한 연민이라곤 찾을 길이 없는 말투에 많이 놀랐다. 대마를 찌는 시기에는 온 동네가 분주하다. 백세가 넘은 할머니도, 살짝 모자라는 처자도 모두 나와 거든다. 몸을 쉬지않고 놀리면서도 개중에는 입심좋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어서 농담을 나누며 왁자하게 웃던 장면이 축제처럼 활기차다. 삼베이불 하나에도 이렇게 긴 역사가 담겨 있는데 한 사람의 생애가 그대로 잊혀지고 마는 것은 너무도 가슴아픈 일이다.

 

문득 엄마의 생애를 기록하고 싶어진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할 수 없다고 쳐도, 아직 엄마의 총기가 그만하실 때 엄마의 생애를 들어드리고 싶다. 엄마가 시퍼렇게 젊던 시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큰살림을 돌보던 시절....을 삼베 올처럼 세세하게 재현할 수 있다면 끝까지 엄마의 존엄성을 지켜드리려 노력하지 않을까. 저 사촌동서처럼 무감하게, 노인을 그저 치워버려야만 하는 대상으로 보는 일은 없지 않을까. 삼베이불을 널다가, 보통사람의 자서전에 대한 아이디어가 촉발되었다. 오직 기록된 생애만이 이야기로 남는다. 저마다 애틋하고 절실했던 하나의 이야기덩어리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블랙홀로 사라지는 환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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