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 조회 수 898
- 댓글 수 4
- 추천 수 0
[일상에 스민 문학] - 한 청년과의 만남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책을 읽고 처음으로 저자를 찾아 이렇게 인사를 드립니다.
라고 시작하는 페이스북 톡 문자가 첫 만남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페이스북 어플리케이션을 지운지 꽤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은 어느새 자신을 홍보하는 '선전 광장'이 된 것 같아 피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누군가 급하게 저에게 페이스북 톡을 확인해달라고 이야기를 했고, 어플을 지운지 거의 3개월 만에 그간 그 '선전 광장'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다운을 받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변한 게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보를 사진에 담아 ‘홍보’하기 바빴고,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있다,며 뽀샵처리 된 사진들이 즐비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달 전에 누군가 보낸 페이스 톡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청년의 문자였습니다.
선생님. <파산수업>을 읽고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는 올 해 37살 사업 10년차 청년입니다. 두 아이의 가장이기도 하구요. 지금 50억 가량 부도를 앞두고 있어 중요한 결정을 할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 와중에 선생님의 책을 보고서 많은 위안이 되어서 감사한 마음과 어디라도 기대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연락을 드려 봅니다. 제가 겪고 있는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제가 조금이나마 현명한 판단과 결정과 생각을 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꼭 한번 뵙고 싶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재는 것 없이 바로 저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저희 만날까요? 밥 한 끼 사드릴께요. 밥 잘드셔야 해요.
저는 만나자 마자 직감했습니다. 이 청년은 이 어려움을 지혜롭게 해결할 것임을요. 제가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음을요. 이미 그는 답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단지, 제가 할 것은 그를 위해 귀를 열고, 치킨에 맥주를 주문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어색함도 잠시, 그는 청년 사업가답게 자신을 어필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상대방에게 어떻게 하면 호감을 얻어 낼 수 있는지, 무일푼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자산을 모았는지 그만의 노하우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눈에서는 절망감이 느껴졌습니다. 그에게서는 다가올 거대한 쯔나미 앞에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저 막연한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그가 사업을 하는 목표는 장애우들을 위한 재단 설립에 있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와 어른이 공존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도록 시스템화 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의 꿈이 ‘아이가 죽은 다음날 자기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 이 아닐 수 있는 희망을 주는 것이 그의 사업 비전이었습니다.
이미 그에게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삶에 대한 질긴 열정이 숨 쉬고 있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미 그는 그의 가슴 속에 ‘파산수업’을 겪고 일어섰음을. 이미 그는 ‘회생수업’이라는 삶의 책을 쓰고 있음을. 그리고 아마 그는 ‘행복수업’과 ‘성공수업’이라는 두 겹의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을요.
집에 돌아온 저는 그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H. 너에게 닥친 이 어려움, 이미 너를 사랑하는 신의 예견된 정교한 지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길... 늘 너를 지지하는 여기, 한 사람도 있음을 기억하길... 너를 위해 이 밤, 기도하고 있음을- 굿나잇.
그와 약속했습니다. 내년 같은 날,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를요.
정재엽 드림 (j.chung@hanam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