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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9일 23시 22분 등록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23. 최진석 교수가 술친구를 집으로 데려오지 않는 이유

 

최진석 교수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이며 EBS에서 노자(老子)를 강의했다. 지금은 서강대학교를 떠나 건명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몇 해 전, 최진석 교수 강연 자리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 한 토막 소개한다

 

저에게 못된 버릇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밤이 되면 친구들을 제 집으로 데리고 가서 집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제 아내가 음식솜씨가 좋습니다. 늦은 밤이지만 아내는 술상을 멋지게 차려주었고 친구들과 기쁘게 술을 마셨습니다. 술과 안주를 멋지게 대접받은 제 친구들은 집을 나서기 전에 제 아이들에게 용돈을 쥐어 주며 두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집에 데려오는 사람은 달라도 제 아이들은 용돈을 받으며 항상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그러나 이제는 술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 않습니다. (웃음) 밤 늦게 술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는 못된 버릇을 싹 고친 계기가 있었습니다. 캐나다에서 교환교수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캐나다에서도 외국인 친구들을 집으로 초청해 술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제 집에 온 외국인 친구들은 제 아이들에게 좀 다른 이야기를 하더군요. 제 아이들이 농구 모자를 쓰고 있으면, ‘너 A팀 팬이니?’하고 묻습니다. 제 아이가 ‘네! A팀 팬 맞아요!’라고 대답하면 은근 슬쩍 A팀을 공격하는 논리를 폅니다. A팀은 이러이러해서 안 돼! B팀 팬인데, A팀에 비해 B팀이 훨씬 잘하지 않니?’ 그러면 제 아이가 반론을 제기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A팀은 이러이러한 점이 약할지 몰라도 저러저러한 강점을 가지고 있어요. 조금만 지나면 훨씬 좋은 경기를 할 거예요.’ 그러면 외국인 친구가 빙그레 웃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번에 A팀과 B팀 경기가 열리는데, 내가 티켓을 구해올 테니 함께 경기를 보러 가자! 그리고 어느 팀이 이기는지 내기를 하자!

 

한국인의 핵심 교육관은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입니다. 복종과 순명이 한국인의 교육관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소위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의 교육관은 다릅니다. 학생 개개인의 관심과 애정을 묻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는 지, 왜 좋아하는지 묻습니다. 네 자신만의 생각과 의견을 말해보라고 합니다. 나는 네 의견과 다르지만 네 의견을 존중한다고 표현합니다. 사회가 이미 정해 놓은 코스를 익히고 외우는 한국의 전통적인 교육방식과 너무나 비교되지 않습니까? 한국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는 게 제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이 못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쨌거나 덕분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술친구들을 밤늦게 집에 데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웃음)

 

어릴 적 집에 찾아왔던 아버지 친구분들도 나에게 용돈을 주며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한국의 전통적인 교육은 자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묻지 않았다. 학교와 가정에서 정해진 해답(정답)은 늘 교과서에 있으며, 교육이란 정답을 찾아 정해진 길을 밟는 거라고 배웠다. 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것 이외의 것에 관심이 가면 왠지 학생의 본분에 어긋나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호기심을 쫗아 주어진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알아보는 행위는 ‘공부’가 아니라 일종의 ‘취미’ 혹은 ‘기호’라고 이름 붙여졌고, ‘공부’가 지닌 가치에 비해 한참 뒤쳐지는 후순위 가치라고 배웠다

 

복종과 순명만을 외치는 교육은 미래를 창조할 수 없다. 틀에 맞춘 공부를 해온 이들과 스스로 길을 찾아낸 이들 중에 누가 과연 진짜배기 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가? 한 개의 정답을 찾아가는 교육과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모든 길이 곧 답이며 저마다 아름다운 가치를 지녔다고 고백하는 교육 중에 무엇이 진짜 교육이겠는가

 

인문고전이 좋은 책이라는 점은 누구나 동의한다. 그렇다고 어른이 인문고전을 골라서 자녀에게 읽으라고 숙제 내주는 방법은 복종과 순명을 강요하는 어리석은 교육을 반복할 뿐이다. 인문고전도 자녀가 고르게 하자. 부모는 그저 환경을 조성해 주고 기다리면 되는 거다

 

자녀 눈높이에 맞도록 편집한 인문고전을 집에 깔아 놓거나,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인문고전을 많이 보유한 도서관에 함께 가서 자녀 마음대로 책을 골라 읽을 시간을 넉넉히 주는 것이야 말로 자녀가 인문고전에 친해지는 지름길이다. 자녀가 특정 인문고전에 관심을 보이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첫째, 열렬히 응원하기

둘째, 부모도 동일한 주제로 공부하기

셋째, 자녀와 토론을 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기

 

 

유형선 드림 (morningstar.y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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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30 13:29:32 *.144.57.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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