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으로 강연 여행 다녀왔습니다
아내와 강연여행을 다닌 지 벌써 4년째입니다. 2016년 1월,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을 아내와 공저로 내고서 주로 도서관이나 학교로 강연을 다녔습니다. 주로 아내가 강연을 하지만 때때로 저도 휴가를 내고 아내와 듀엣강연도 합니다. 특히 지방 강연이 잡히면 아내와 단둘이 여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동안 조수석에 아내를 태우고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여러 지방을 다녔습니다.
지난 금요일 충남 서천을 찾았습니다. 서천여자중학교 글쓰기 동아리에서 아내의 글쓰기 강연이 있었습니다. 충남 서천은 금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도 군산과 익산과 접해있습니다. 작년에 서천 문헌서원에서 듀엣 강연을 하면서 처음 서천을 가보았으니, 이번이 두 번째 방문입니다.
금요일 하루 휴가를 냈습니다. 파주 집에서 차를 몰고 오전 10시 반경에 출발했는데 길이 많이 막혔습니다. 한번 쉬지 않고 내리 밟아서 서천특화시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 50분. 서천특화시장 주차장에 차를 대고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건너편 먹거리동 건물로 들어섰습니다. 길게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가장 처음 마주친 ‘한마당’이라는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당차게 들어왔지만 막상 메뉴판을 보니 무엇을 골라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아내는 잔치국수를 주문했는데, 저는 순대국과 소머리국 사이에서 한참을 갈등했습니다. 이때 식당 주인 아주머니가 한마디 하셨습니다.
“거기 남자 분은 소머리국밥 잡숴봐유! 맛나니께!”
음식 솜씨 자부심이 충청도 사투리에 가득 담겨 전해왔습니다. 이럴 땐 냉큼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맛있다면 먹어야쥬. 저는 소머리국밥으로 주세유”
소머리국밥과 잔치국수 모두 일품이었습니다. 특히 아내는 잔치국수를 먹으며 연신 엄지를 치켜 올렸습니다. 백합으로 국물을 낸 잔치국수는 서울이나 경기권에서 맛보기 어렵습니다. 현금으로 계산을 하며 주인아주머니에게 서천의 명물 갑오징어를 어디서 맛봐야 하는지 여쭤봤습니다. 아주머니가 손가락으로 서천특화시장을 가리키며,
“쩌어기 특화시장에서 ‘판교연호네’를 찾어유. 여기 ‘한마당’에서 보냈다카면 잘해줄꺼유.”
아내가 강연를 마친 오후 4시반, 다시 서천특화시장을 찾았습니다. 당연히 ‘판교연호네’를 찾아서 갑오징어 횟감을 사러 왔다고 하니, 이번에는 1번 ‘태양이네’를 가라고 합니다. 자신들은 데쳐서 먹을 죽은 갑오징어를 취급하고 회로 먹을 생물은 취급하지 않으니, ‘태양이네’를 가라는 겁니다. ‘태양이네’에서 갑오징어 횟감을 사면서 다른 횟감을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생물 갑오징어)
“꼴뚜기가 좋겠네유. 다른 건 몇 개 집어들고 따로 데치는 비용까지 지불하면 가성비가 안나와유. 꼴뚜기 회를 드셔봐유. 횟감 가지고 윗층으로 가셔서 ‘조은데’를 가세유. 저어기 1번 ‘조은데’ 보이쥬? 거기로 가서 ‘태양이네’에서 보냈다고 하면 되유.”
갑오징어와 꼴뚜기 횟감을 비닐봉투에 담으면서 생합과 멍게를 덤으로 챙겨주셨습니다.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2층으로 올라가 ‘조은데’ 식당을 찾았습니다.
(2층에서 본 서천특화시장)
꼴뚜기와 갑오징어의 만남이니 ‘꼴갑’이라 불러봅니다. 서천을 여행할 이유는 분명코 ‘꼴갑’에 있었습니다. 건어물가게에서 파는 말린 꼴뚜기만 알다가 난생 처음 꼴뚜기를 회로 먹었습니다.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입에 넣고 씹으면, 처음에는 뭉텅거리지만 곧바로 졸깃한 식감이 나면서 내장의 향이 입 안 가득 퍼졌습니다. 갑오징어 회도 서울에서 먹던 오징어 회와 식감이 다릅니다. 꼬들꼬들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입니다. 꼴뚜기 회와 갑오징어 회를 어느 정도 즐기고 나서 매운탕을 주문했습니다. 팔팔 끓는 매운탕에 꼴뚜기와 갑오징어를 샤브샤브처럼 익혀 먹었습니다. 아! 매운탕 국물 맛도 좋았습니다. 공깃밥 한 그릇을 맛나게 해치웠습니다.
(갑오징어 회)
(꼴뚜기 회)
서천 국수가 유명하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국수공장이 어디냐고 식당을 나서며 여쭤봤더니 특화시장 입구 과일가게 옆집이라며 위치까지 알려주셨습니다. 서천에 와서 난생처음 본 게 하나 더 늘었습니다. 선풍기와 제습기까지 동원해 국수 면발을 말리는 풍경을 처음 봤습니다. 당연히 국수면발 몇 다발 기념품처럼 사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서천국수공장 국수 말리는 모습)
(서천옛날국수)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경험을 서천에 가서 제대로 해봤습니다. 서울에서는 낯선 곳을 가더라도 사람에게 묻기보다 스마트폰에게 묻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됐습니다. 어디를 가든 볼거리 먹을거리를 모두 스마트폰이 해결해 줍니다. 그러나 서천은 아직 사람 향내가 거리에 가득했습니다. 사람에게 물어서 길을 찾았습니다. 외지에서 온 여행객에게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충청도 사투리까지 푸근하게 엮인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서천 특화시장에서 맛 본 꼴뚜기 회와 갑오징어 회 맛이 여전히 입가에 맴돕니다. 월요일 점심으로, 백합까지는 아니더라도 멸치로 국물을 낸 잔치국수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유형선 드림 (morningstar.yoo@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