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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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소개해드린 영화, ‘구름속의 산책’은 불에 타 망해버린 포도밭이 다시 완벽하게 회복된 모습으로 끝났습니다. 영화는 해피엔딩이지만 사실 미국의 와인 역사는 그렇게 해피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영화보다 앞선 시대이긴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진딧물로 옮겨지는 풍토병, ‘필록세라(Phylloxera)’가 발병하여 미국의 와인산업은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원인도 치료법도 발견할 수 없었던 이 병 때문에 포도 생산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이 병으로 인해 20년 이상 미국 뿐 아니라 유럽의 포도나무도 죽어가서 ‘와인은 끝났다’라는 절망적인 상황까지 됩니다. 다행히도 25년이 지나서야 원인을 알아냈고, 미국 종 포도가 필록세라에 저항력이 있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결국 미국 종 포도뿌리(Rootstock)를 유럽 포도 가지에 접붙이면서 필록세라의 공포는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1, 2차 세계대전, 1920년대 금주법 등을 거치며 미국의 와인 사업은 지속적인 위기 상태에 빠집니다. 1933년 약 14년 만에 금주법이 폐지되고 1945년 전쟁이 끝나면서 와인 산업에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키아누 리브스(Keanu Reeves)가 연기했던 폴은 2차대전을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한 군인이었지요. 그가 “구름” 농장으로 들어가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한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농장 화재 후 폴과 빅토리아는 10여년은 흘러서야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텐데요. 실제로 미국의 와인 산업은 1960년대가 되어서야 활기를 띠기 시작합니다.
신세계 와인의 기적
와인 산업이 활기를 띠면서 규모면에서는 크게 발전했지만 질적 성장까지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60년대를 지나 70년대가 되어서도 미국의 와인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습니다. 아니 ‘존재하지 않는 와인’ 취급을 받았으니, 아예 평가를 할 수 없었다고 보는게 맞겠네요. 그런데 1976년 미국의 독립 200주년을 맞아 프랑스 와인과 미국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으로 비교하는 대결이 펼쳐집니다.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이라고도 불렸던 이 대결의 결과는 전세계 와인 애호가들을 경악하게 만듭니다. <와인 미라클(Bottle Shock)>은 이 사건을 바탕으로 2008년에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포도밭에 가장 좋은 비료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야. 충적토와 퇴적토, 화산지대 토양이야.”
“건조하네요.”
“그래. 물을 제한해야 포도가 몸부림을 칠테고 향기가 더 좋아져. 물도 많고 기름진 땅에서 편하게 자란 포도는 저질 와인이나 만드는 재료 밖엔 안 돼.”
“고생을 해야 깨달음을 얻는 거네요.”
“포도에겐 그렇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잘 나가던 변호사였던 짐 바렛(Jim Barret)은 나파 벨리에서 샤토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라는 와이너리를 운영합니다. 그동안 모아뒀던 돈을 모두 투자하고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아가며 완벽한 와인을 만들려고 애씁니다. 포도에게 가장 좋은 비료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라며 하루 종일 포도밭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 합니다. 예전 동료 변호사들에게 그의 노력은 ‘비싼 취미’ 정도로 치부됩니다. 그와 함께 와인을 만드는 일꾼들조차 완벽한 와인을 만들려는 그의 꿈을, ‘돈으로 살 수 있는게 아니다’며 평가절하 합니다. 와인 양조는 돈을 많이 들이거나 배워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핏 속에 배어 있어야 한다’면서 말이지요.
“그럼, 파리에 있는 ‘아카데미 두 바인’에서 캘리포니아 와인을 고객에게 소개하시게요?”
“직접 품질을 확인하려고요. 엉터리 와인은 절대 소개 안 하니까.”
“여기도 좋은 와인 많아요. 걱정 안 해도 돼요.”
“내가 말하는 맛은 당신들 생각과는 좀 다를 거요. 긴 세월을 나라 전체가 온전히 몰두해서 모든 노력을 와인에 바치거든요. 양조업자가 되고 싶어도 쉽게 될 수 없는 거죠. 와인 명가들이 많지요.”
“와인 스놉(snob)이시군요. 그럼 거기에 갇힐 수 밖에 없어요.”
캘리포니아 와인을 맛 보는 스티븐 스퍼리어_영화 <와인 미라클(Bottle Shock)>의 한 장면
파리에서 와인 샵과 와인 아카데미(Academie du Vin)를 운영하는 영국인 스티븐 스퍼리어(Steven Spurrier)는 프랑스에 신세계의 와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마침 미국 출신의 친구 말을 듣고 캘리포니아 와인을 맛보고자 직접 캘리포니아의 나파 밸리를 찾지요. 와이너리를 찾아가던 중에 우연히 스티븐을 만난 짐. 그가 왜 캘리포니아에 왔는지 이유를 듣자 짐은 그를 ‘와인 스놉(snob)’이라며 비웃습니다. 스놉(snob)은 고상한 척 하며 상류층을 동경하는 속물적인 사람을 낮춰 부르는 말입니다.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 중에는 비싼 와인, 이름난 와인을 무조건적으로 좋아하며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이런 사람을 ‘와인 스놉’이라고 합니다. 신세계 와인을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에 소개하기 위해 캘리포니아까지 날아온 스티븐이 와인 스놉이라니요. 스티븐은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와인을 최고로 치고 캘리포니아 와인은 마셔보기도 전에 한 수 아래라고 무시하는 스티븐은 전형적인 와인 스놉의 모습입니다.
짐의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화이트 와인 샤르도네(Chardonnay)를 마셔본 스티븐은 캘리포니아 와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게 됩니다. 열린 마음으로 여러 와이너리의 와인을 맛본 뒤 캘리포니아 와인에 반한 스티븐. 결국 26병의 캘리포니아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용 후보 와인으로 파리에 가져가려 하지요. 그런데 그의 노력은 공항에서부터 장애물을 만납니다.
“흔들리는 수화물 칸에 넣어 갈 순 없어요. 이게 흔들리거나 부딪히지 않게 들고 가야해요.”
와인은 진동에 민감합니다. 와인을 부주의하게 다루거나 이동과정에서 많이 흔들리면 나쁜 냄새가 나거나 맛이 변하기도 하지요. 이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보틀 쇼크(Bottle Shock)’는 이런 현상을 뜻하는 말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만, 공정해야 할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겠지요. 26병의 와인을 애지중지하며 직접 운반하려 하지만 항공사 직원은 단호하기만 합니다. 항공법상 한 사람이 운반할 수 있는 와인은 한 병 뿐이라며 나머지는 수화물로 보내라고 하지요. 이 때 스티븐의 사정을 들은 승객들이 한 병씩 들고 가 주기로 합니다. 캘리포니아 와인이 공정하게 테스트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요. 캘리포니아 와인은 파리의 와인 전문가들로부터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전세계 와인 애호가들을 경악시킨 파리의 심판 결과는 다음주에 알아보겠습니다.
너무 덥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30도를 훌쩍 넘고 폭염주의보까지 내렸었네요. 기운 잃지 않게 잘 먹고 잘 쉬는, 맛있는 한 주 보내세요~^^
*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
: 와인의 종류나 레이블을 밝히지 않고 와인의 맛을 평가하는 방법. 와인의 맛을 본 후 종류와 메이커, 빈티지 등을 맞추는 테이스팅도 있고, 이 영화에 등장한 것처럼 여러 종류의 와인의 맛을 비교, 평가하기 위한 테이스팅도 있다.
---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
1. [팟캐스트] 공부하는 식당만이 살아남는다– 박노진 작가 2부
66번째 팟캐스트 에피소드는 <공부하는 식당만이 살아남는다> 2편이 이어집니다. 1편에 이은 남다른 생각과 실행력을 가진 박노진 작가의 우아한 외식업 이야기입니다. 가성비에 대한 경쟁력 확보와 범용성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떤 방법을 모색하였는지 이야기 나눕니다. 또한 어떤 서비스로 고객 감동을 안겨주게 되고, 단골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으니 방송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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