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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0일 22시 05분 등록


지난 4월 중순, 임실의 한 성당에서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장례미사를 마치고 관을 밖으로 옮길 때 였습니다. 조문객들이 눈물을 닦으며 하나, , ‘만남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대중가요라니흔치 않은 일이었는데요. 돌아가신 분의 평소 소원이 자신의 장례식장에 만남이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모든 만남은 하나라도 우연이 없고 소중하다는 이유로 말이지요.

 

한국 치즈의 역사

임실주민의 소득 창출을 위해 유럽으로 치즈 유학을 떠났던 지정환 신부. 그는 이탈리아 치즈 제조업자에게 치즈 만드는 방법을 배워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각종 치즈 제조 비법과 기대감을 가득 안고 3개월 만에 돌아온 임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단 한 사람만 남고 모두 떠나버린 텅 빈 치즈 공장이었습니다.

 

“와보니 한 명 빼고는 다들 산양을 팔아 치우고는 떠났더라고요. 그들 입장에선 앞날을 기약할 수 없었겠죠. 제가 돌아올지도, 치즈 만들기에 성공할지도 불투명했을테니까요.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몰라요.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이탈리아에서 받은 기적같은 선물이 있었으니까요. 그 비법 덕분에 균일한 치즈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다시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모두 떠났다는 사실보다 자신을 믿지 못했다는 사실에 더 마음이 아팠던 지정환 신부. 하지만 마냥 실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단 한 명이지만 자신을 믿고 남아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힘들게 배워온 비법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지나친 의욕 때문이었는지 첫번째 시도는 실패였지만, 그 이후에는 계속 성공합니다. 당연하지요. 어떻게 배워온 기술인데요. 그가 처음 만들었던 치즈는 포르살뤼(Port Salut)라는 프랑스 치즈입니다. 반경성 치즈로 발효기간이 짧아 냄새가 순하고 맛이 강하지 않습니다. 치즈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도 거부감 없이 먹기 쉬운 치즈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1969년에 일부러 치즈를 사 먹는 한국인은 많지 않았습니다. 자연히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판매를 했지요. 치즈 판매가 점점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치즈를 개발하기 시작하는데요. 그 첫번째는 체더(Cheddar) 치즈였습니다. 체더 치즈도 대 성공이었지요. 이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은 너무 작았습니다. 판매를 확대하기 위해 지정환 신부는 당시 서울에서 가장 큰 호텔이었던 조선호텔을 찾아갔습니다. 거기에서 무작정 주방장을 찾아 치즈를 맛보게 했습니다. 주방장은 치즈의 맛에 감탄했습니다. 그때는 국내에서 치즈를 만드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호텔 등에서 사용하는 치즈는 모두 미군 부대를 통해 불법 유통되는 치즈였습니다. 국내에서 한국인이 손으로 만든 신선한 치즈라는 데 거부할 이유가 없었지요. 조선호텔을 뚫고 나자 그 다음은 쉬웠습니다. 신라호텔 등 다른 유명 호텔에서도 임실의 치즈를 경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서울에 최초의 피자 가게가 생기면서 공급하기 위해 모짜렐라 치즈도 생산하게 됩니다. 1969년 포르살뤼, 1970년 체더, 1972년 모짜렐라까지. 그가 만든 치즈는 그대로 한국 치즈의 역사입니다.

치즈는 잘 팔렸지만 마냥 쉬운 꽃길은 아니었습니다. ‘치즈를 만드는 곳이 없었다 보니 관련된 법이나 규정 등이 전혀 없었지요. 사업자 등록을 내고 업체를 설립하고 판매, 유통하는 것, 하나 하나가 모두 도전이었습니다. 임실군청에서 보건소로 다시 농림부를 거쳐 군수와 도지사까지 설득해야 했습니다. 마침내 축산물 가공 처리법이 만들어졌고 임실치즈 공장은 합법적인 치즈 생산업체가 되었습니다.

임실 치즈.jpg

출처: https://www.imsilin.kr/product/list.php?sword=

 

출가외인의 도움으로 살아난 임실치즈

12명의 조합원들과 함께 시작했던 산양협동조합은 이제 250이 넘는 조합원들이 함께하는 커다란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임실치즈가 한국 치즈의 역사가 되고 농민들의 삶이 되는 동안 지정환 신부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치즈 사업 초기부터 다리에 마비 증상이 나타나곤 했지만 그저 너무 열심히 일해서 피곤해서 그런줄 만 알았었지요. 점점 걷는 게 불편해지더니 결국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병명은 다발성신경경화증’. 국내에서 치료가 불가해 벨기에로 가서 치료를 하기로 결심합니다. 치즈와 관련된 일은 모두 임실 주민에게 맡기고 말이지요. 1981년 그는 20년간 살았던 한국을 뒤로 하고 벨기에로 떠납니다. 그가 떠난 빈자리는 컸습니다. 치즈는 계속 생산했지만 임실 치즈 산업은 얼마간 휘청했습니다. 까망베르 등 신제품을 개발하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신부님이 떠난 후 리더십의 부재도 원인이었지만 세상이 바뀐 탓도 있었지요. 86 아시안 게임, 88 올림픽을 거치며 외국 문물의 개방이 확대되고 치즈 등 서양 음식에 대한 수요도 커졌습니다. 대기업이 이를 놓칠 리가 없었겠지요. 90년대 중반 이후 치즈 시장이 개방되면서 값싼 외국 치즈가 수입된 것도 큰 원인입니다. 최초의 국산치즈라는 이름만으로는 임실치즈가 버틸 재간이 없었습니다. 97년에 있었던 외환위기는 눈 위에 내린 서리와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임실치즈는 사라지는가 했는데요. 다행히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습니다.

1981년 벨기에로 떠났던 지정환 신부는 이미 한국에 돌아와 있었고요. 이런 상황을 모두 가슴 아프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비록 자신은 출가외인이라며 치즈 사업에 거리를 두었지만 자신이 키운 아이가 잘 자라지 못하고 죽어가는 걸 지켜보는 건 가슴 아픈 일이었지요. 이 때 한가지 제안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임실에서 만드는 모짜렐라 치즈를 피자업체에 납품하자는 것이었지요. 그건 이미 하고 있는 일 아니었나요? 이번에는 좀 다릅니다. 그냥 치즈만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환신부의 이름을 넣자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넣은 피자 브랜드라니당연히 지정환 신부는 반대했습니다. 그는 애초에 사업가가 아니었습니다. 돈을 벌자고 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임실 농민들의 삶을 바꿔보고자 한 일이었는데, 이름을 건 피자 브랜드를 만들자니 기가 막혔지요. 하지만 임실치즈가 그냥 무너질 수도 있다는 설득에 지친 신부님은 마음을 바꿨습니다.

나는 더 이상 모르겠습니다. 알아서들 하십시요.”

 

지정환임실치즈 피자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지정환 신부가 이름 사용료로 받은 금전적 이익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임실치즈를 살리기 위한 결정이었지요.

다행히도 아이디어는 적중했습니다. 임실에서 만든 신선한 치즈가 올라간 피자는 냉동 치즈를 쓴 피자에 비해 맛의 차이가 컸고 지정환임실치즈 피자는 전국으로 체인망을 확대했습니다. 피자 사업은 크게 성공했지만 임실치즈는 그저 살아남을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외부인이 만든 피자 브랜드에 치즈를 납품할 뿐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애초에 임실치즈가 자체적으로 피자 브랜드를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고, ‘임실치즈를 넣은 브랜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업체가 늘면서 원조 논란이 생기면서 지정환 신부에 대한 불만과 오해도 커갔습니다.

 

치즈로 만든 무지개

자신의 이름을 사용되면서도 금전적 이익은 전혀 없고 오히려 돈에 눈이 먼 파렴치한이라는 오해만 받던 지정환 신부. 배신감에 치가 떨리지는 않았을까요. 이것 저것 다 싫고 그냥 벨기에로 떠나고 싶었을 것도 같은데요. 그의 선택을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계약서 없이 이름을 빌려주었는데요.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게 한 피자 업체를 불러 수익금의 일정부분을 장학금으로 제공하라고 했습니다. 대신에 다른 업체는 그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걸로 정리했지요. 그가 장학금을 사용한 곳은 장애인을 위한 장학재단이었습니다. 그는 2002년에 한 재단에서 사회봉사상을 받으며 상금으로 1억을 받았는데요. 이 돈을 이용해 장애인을 위한 장학재단을 설립했던 거지요.

사실 지정환 신부는 다발성신경경화증을 앓으며 걷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이제 그는 휠체어에 의존하는 장애인이 되었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치즈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장애인을 위한 사목을 하기로 했지요. 자신이 치료받던 병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나는 모임을 시작으로 장애인 가족 공동체를 만들었지요. 이 공동체의 이름은 무지개 가족이었습니다. 장애인의 자활을 돕고 가족을 만들어 주자는 의미로 만든 무지개 가족. 무지개 가족이었던 사람은 무지개 가족을 떠나 새로운 무지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치즈로 시작됐던 지정환 신부의 사랑은 무지개를 만들며 계속 이어졌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지정환 신부.jpg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4141140001

 

“음…, 하나 있긴 해요. 내 장례식에 노사연의 ‘만남’을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들의 모든 만남은 하나라도 우연이 없거든요. 그렇게 귀하게 만났으니 서로 사랑해야지요.

2019413, 지정환 신부는 오랜 지병으로 선종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소원대로 만남이 울려 퍼졌다고 합니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시작한 무지개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아름답게 떠 있겠지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이번주도 따뜻하고 맛있는 한 주 보내세요~^^

 

 

참고문헌

치즈로 만든 무지개, 고동희 박선영 지음, 명인문화사, 2007

경향신문: 한국 치즈 대부 지정환 신부 불모의 땅에 피워낸 기적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8251449001&code=100100

경향신문: 벨기에에서 온 ‘한국 치즈의 아버지’ 한국 땅에 묻히다···지정환 신부 선종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4141140001



---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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