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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1일 00시 05분 등록

안녕하세요.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가부장제, 가족의 의미와 상속에 관한 이야기를 이번 주와 다음 주 2회에 걸쳐 해보겠습니다.

종손은 최고의 재테크 수단이다?

그 무렵 만난 또래 여성들 중에 기억에 남는 A의 사례입니다. 대기업 출신의 A는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람이 대대로 독자이자 종손임을 알고 삶의 방향을 180도로 전환했습니다. 대기업의 고난도 업무효율을 따라가려면 출산은 꿈도 못 꿀 지경인데다 여자 나이 마흔다섯이 넘으면 승진의 한계선에 도달해 만년 차장으로 후배들의 눈치를 보며 오십대를 보내는 것이 대기업 여성 직원의 진로임을 직장 내 여러 선배 여성들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도 다를 바 없을 것 같아 회의를 느끼던 차,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종손부가 되면 아들 출산과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일을 맡게 될 것을 예상하자, 대기업 직원과 종손부를 겸업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A는 결혼할 때 아파트 한 채를 미리 상속받는다는 조건과 자신이 낳을 미래 종손의 교육비 등을 지원받는다는 조건을 걸고 종손 출산을 약속하며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자신의 커리어와 종손부로서의 권리를 맞바꾼 셈이었습니다.

“정은 씨, 잘 생각해봐요. 우리가(여성이) 직장에서 일을 한다고 자아실현이 되나요? 잘리기 전까지 일을 해도 부모 도움 없이 아파트 한 채 마련하기 어렵잖아요? 아들 낳고 일 년에 몇 번 시댁에서 봉사하는 게 어른들께 효도이고 동시에 내 삶도 편해지는데, 괜찮은 딜 아닌가요?”

A의 일상은 이랬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남편 아침밥을 챙겨주고 집안일을 마무리한 다음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시댁에 갑니다. 시부모님이 아들을 돌보는 사이 점심을 차려서 함께 먹고 저녁 먹을거리를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남편이 돌아오면 시댁에서 싸 온 음식으로 저녁을 차려줍니다. 아들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매일 직장에 가듯 시댁에 출근 도장을 찍었답니다. 시댁에서 무릎을 꿇으라고 하면 무릎을 꿇고 밤을 새우라고 하면 밤을 새겠다는 각오로 A는 아파트 값에 맞먹는 역할을 했답니다. 직장에서도 그러지 않았냐고, 집과 아들 교육비가 나오는데 그까짓 거 못하겠냐는 것이 A의 논리였습니다.

“정은 씨, 똑똑한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종손부가 되기로 한 거예요? 종손부에게 종손은 최고의 재테크 수단이에요. 더 늦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봐요.”

A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A의 삶을 21세기 여성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시부모님께서 저에게 원하는 바가 바로 이런 삶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낳은 자식을 담보로 무언가를 얻겠다는 말을 소화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억만금을 준대도, 아무리 부모라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굴종하며 일생을 사는 삶을 살아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가난하게 살더라도 나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제사상 뒤엎는 가족 간 싸움의 원인, ‘상속’이란 무엇인가?

A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종가의 재산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관심이 생겼습니다. (시댁을 관찰하고 시어머니로부터 들은 바를 옮기므로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10대 종손부이자 11대 종손의 어머니인 시어머니는 종가의 곳간 열쇠를 맡고 계십니다. 10대는 5남 5녀의 총 열 명의 자손이 있고, 9대 시조부모님께서는 다섯 딸을 제외하고 다섯 아들에게만 재산을 균등하게 상속하셨습니다.

“내가 1원이라도 더 가져갔으면 내 머리털이 다 뽑혀서 남아나질 않았을 거야.”

상속받은 재산 중 다섯 형제가 공유하는 물권을 처분하면 장자 말자에 관계없이 1/5로 공평하게 나누었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을 때면 그 살벌함에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습니다.

“며느리가 다섯이라 일도 나눠서 하고 좋을 것 같지? 아니야, 외며느리가 나아. 일은 혼자 하나 여럿이 하나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돈 때문에 싸울 일은 없잖니?”

어머니께서 오히려 제 입장을 부러워할 정도라면 돈이라는 것이 가족 사이를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어쩌면 시어머니께서는 마흔을 앞두고 직장을 그만둔 며느리에게 몇 푼이라도 더 챙겨줄 목적으로 ‘아들, 아들’ 하셨던 게 아닌가 싶어 부모님 도움 없이 잘 살아야지 싶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시댁이란, 대를 이을 아들 출산을 중심으로 재산을 물려주고 노동을 제공하는 일종의 이해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어떠신지요? 가부장제를 지탱하는 아들 출산과 상속, 상속을 둘러싼 가족 간의 다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상속을 둘러싼 가족 간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다음 주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습니다, 스물한 번째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정은(toniek@naver.com)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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