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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8일 01시 47분 등록

안녕하세요.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이번 주 편지는 지난주에 이어 가부장제 가족의 의미와 상속에 관한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가족이란 정말 이해집단일까?


아들을 중시하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은 사실 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이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가족의 권력과 재산을 대물림하는 중심축이 아들에서 아들로 이어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대한민국 법에서조차 폐기된 지 오래입니다. 현행 민법이 가족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법조항을 몇 가지 옮겨보겠습니다. 가족의 범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
① 다음의 자를 가족으로 한다.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② 제1항 제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에 한한다.


<가족도 리콜이 되나요?>에서 저자 양지열 변호사는 위의 법조항을 예로 들며 대한민국 민법이 남성중심성이 아니라 성중립적인 가족관을 표방한다고 강조합니다.


‘다행히 현재의 법은 달라졌다. 일단 민법에 따르면 누구까지를 가족으로 보는지 한 번 보자. 1차로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이다. 2차로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이다. 직계혈족이란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녀들을 가리킨다. 방계혈족은 형제자매와 그들의 자녀들 그리고 부모님의 형제자매들 등을 가리킨다. 헷갈리는데 꼭 그런 용어를 써야 하나 싶겠지만 이유가 있다. 저 표현들은 양성중립이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장인, 장모라는 표현에는 그런 구별이 없다. 여기에 더해 가족의 범위를 1차, 2차로 나눠놓은 이유가 있다. 2차의 경우 생계를 함께 할 때만 가족이다. 그러니까 시어머니라도 가족이 아닐 수 있고, 결혼 후에도 친정어머니는 가족일 수 있다.’ (<가족도 리콜이 되나요?> 150쪽, 양지열)


어떠신가요? 법에 의하면, 가족이란 남녀 구별 없이 배우자와 나의 자녀, 나의 직계혈족, 나의 형제자매입니다. 즉 저의 가족은 남편과 부부의 두 아이, 나를 낳고 길러주신 친정 부모님과 유년기를 함께한 친정의 형제자매입니다. 배우자의 직계혈족인 시부모님과 배우자의 형제자매인 시누이와 시동생 등은 함께 살지 않는 이상 가족의 범위에 들지 못합니다. 


법은 이미 평등하다 


이번에는 민법에서 상속에 대해 규정하는 법조항을 살펴보겠습니다. 장자 중심의 사고방식은 법조항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민법 제1000조(상속의 순위)
① 상속에 있어서는 다음 순위로 상속인이 된다.
   1.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2. 피상속인의 직계존속
   3. 피상속인의 형제자매
   4. 피상속인의 4촌 이내의 방계혈족
② 전항의 경우에 동순위의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최근친을 선순위로 하고 동친 등의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공동 상속인이 된다.
③ 태아는 상속 순위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제1006조(공동 상속과 재산의 공유)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상속재산은 그 공유로 한다.


제1007조(공동 상속인의 권리의무 승계)
공동 상속인은 각자의 상속분에 응하여 피상속인의 권리의무를 승계한다.


위의 법조항이 어떤 의미인지 <가족도 리콜이 되나요?> 저자 양지열 변호사의 해설을 보겠습니다. 


‘1순위는 자기로부터 직계로 이어져 내려가는 자녀 혹은 손자녀인 직계비속이다. 아들딸 구별하지 않고, 혼인 중에 가졌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는다. 태아는 아직 사람이 아니지만 상속순위를 정할 때는 예외적으로 이미 태어난 것으로 본다. 2순위는 조상으로부터 직계로 내려와 자기에 이르는 혈족인 부모, 조부모 등의 직계존속이다. 자식 앞세우게 하는 것보다 불효는 없다고 하는데, 떠난 자리까지 정리해야 한다면 사실일 듯싶기도 하다. 아버지, 어머니 구별하지 않는다. 3순위가 형제자매이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다른 형제인 경우는 어떨까? 아들딸 구별을 없앤 취지에 비추어 모두 상속 자격이 있다고 법원은 본다(대법원 1997.11.28. 96다5421). 마지막 순위가 같은 성씨를 쓰는 4촌까지의 혈족이다. 앞선 순위에 해당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뒤쪽 순위는 상속을 받지 않는다.

그럼 배우자는 몇 순위일까? 1순위, 2순위 상속인이 있을 때는 그 상속인과 같은 순위를 가지고, 그 상속인이 없을 때는 단독으로 상속인이 된다.’ (<가족도 리콜이 되나요?> 166쪽, 양지열)


가족의 재산을 상속하는 관점도 대한민국 민법은 아들딸 구별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가부장적 가족관은 분명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을 공부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선대의 사고방식을 보고 배우며 아들 중심의 상속제도만을 유일한 제도로 인식합니다. 변화는 불효(不孝)라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효도’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재산상속권’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상속이야말로 가족을 이해집단으로 만드는 주범입니다. 


아무것도 받은 게 없으니, 자유다!


‘17세기만 해도 한국에서는 균분상속이 지배적이었다. 이후 장자상속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부계혈연을 중심으로 종법 질서를 구현하려는 의지가 강렬했기 때문이다. 유교 도덕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우리 조상들은 장자상속의 장점이 더 많다고 확신했다. 상속제도가 장자 중심으로 변화하자 한국의 유교화는 더욱 가속되었다.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에는 민주화의 열기가 높았다. 그러자 한국인들은 장자상속제도를 폐기하고 자녀 균분상속제도로 되돌아갔다. 성별과 출생 순서에 관계없이 자녀들의 권익을 균등하게 보장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로써 종래의 가부장적 권위주의 역시 비교적 빠른 속도로 청산될 수 있었다.’ (<상속의 역사> 8쪽, 백승종)


가족의 범위와 상속에 관한 법이 과거와 달라진지(1997년) 이미 오래지만, 시댁의 시간은 남녀는 차별하되 출생 순서는 상관없는 17세기 균분상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게다가 장자상속제로 바꾸지도 않았으면서 종손부에게 과한 의무를 지우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균분상속을 받았으면서, 지난 45년간 장자상속제의 상속을 받은 종손부처럼 과중한 역할을 묵묵히 하셨던 겁니다. 


신혼 초 제사 후에 시어머니께서 교통비나 수고비를 주셨을 때 받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가부장제 제사노동에 동조하지 않았고 그저 시어머니를 돕는 정도여서 그 돈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 어머니는 어른이 주시는 걸 마다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하시면서 역정을 내셨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받아들이셨습니다.


종가의 재산을 둘러싼 이해관계를 파악하면서 저는 더욱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받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태 도움을 받은 적이 없는 것도 참 다행이었습니다. 작게는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부터 금액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일체 받지 않았습니다. 가끔 시어머니께서 용돈을 주시면 다시 용돈으로 돌려드렸습니다.


민법 제1007조(공동 상속인의 권리의무 승계) 공동 상속인은 각자의 상속분에 응하여 피상속인의 권리의무를 승계한다.


이미 균분상속으로 상속을 받은 시숙모님들의 제사노동에 있어서는 더 이상 제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로 했습니다. 권리는 의무에서 나오는 법이니, 조상의 재산을 물려받았다면 조상의 예를 지키는 의무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시부모님께는 직계혈족의 형제자매인 시숙부님들과 시숙모님들이 가족이지만, 남편과 저 우리 가족에게는 그분들이 가족의 범위에 들지 않습니다. 저는 어른으로 대접하는 것 이상은 생각하지 말자고 선을 명확히 그었습니다. 대가족 경조사에서 뵐 때 예의바르게 인사를 드리는 것 정도로 예를 갖추기로 말입니다.


“쟤들한테 준 게 멸치 똥만큼도 없다. 니들은 다 챙기지 않았니?” 


종손부가 된지 만 14년이 되던 지난 2018년 한식 제사 때 시어머니께서는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하셨고, 시숙모님들은 시어머니께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당신들은 여태 제사노동을 했는데 우리 부부에게 제사를 물려주지 않는 건 불공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종가의 재산을 ‘멸치 똥’만큼도 안 주신 시부모님께 너무나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시숙부님들과 시숙모님들은 아무 말도 못 하셨습니다.


지난주 편지에 등장했던 A가 종손부로서 재테크를 했다면, 저는 종손부로서 권리와 의무 모두 승계 받지도 않고 승계하지도 않겠다는 데 목표를 두었습니다. 아무것도 받지 않았기에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이해집단이 아닌 가족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습니다, 스물두 번째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정은(toniek@naver.com)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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