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습관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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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름이 두 개나 된다. 하나는 이철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범용이다. 철민이란 이름은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된 이름이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범용이란 이름으로 개명했다.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2개의 이름을 갖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난 태어나서 2달이 지나면서부터 심각한 홍역을 앓았다고 한다. 열 때문에 갓난아기였던 내 머리에서는 진물이 계속 났고 오래된 진물은 딱지로 변했지만 멈추지 않는 활화산의
용암처럼 새로운 진물은 계속해서 세상 밖으로 솟구쳐 나왔다고 한다.
그때 나의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내가 곧 죽을 것이라고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불사조처럼 나는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그런데 병이 완치되고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한 스님이 우연히 우리 집 앞을 지나가다가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저 아이는 운명적으로 약하게 태어났고 띠도 쥐띠라 이름이라도 강하게
지어야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내가 죽음의 문턱을 넘어온 이력이 있는 아이란 걸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부모님의 귀에 쏙쏙 박혔고 그렇게
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범용이란 이름으로 거듭 태어났다. 범과 용이라니 얼마나 강한 이름인가? (범용이란 한자의 뜻이 힘센 동물의 상징인 범과 용을 지칭하는 것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그리고 개명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나는 큰 병치레 없이
잘 살아오고 있다.
하지만 철민이는 행복하지 않았다. 이름을 개명한다고 철민이의 가난까지
세탁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그 몹쓸 가난과 싸우느라 자식들을 다정하게 대해 줄 여유가 없었다. 폭언과 폭력은 유일한 아버지의 훈육 방법이었다.
더 심각한 사실은 어른이 된 범용이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철민이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혼나고 주눅 들어 있는 아이,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잘했다고 인정을 받지 못한 서글픈 아이가 아직도 살고 있다.
그런데 작은 변화의 기회가 찾아왔다. 2019년에 <아들러 심리분석 전문가 자격과정>을 수강하면서 초기 기억을
재해석하는 경험을 했다. 초기 기억 재해석이란 아프고 슬픈 어린 시절의 기억을 성인이 된, 성숙한 내가 다시 그 어린 시절 기억을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신념을 세울 수 있는 과정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사랑 받고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는 아이는 열등감 없이 삶의 과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자녀를 둔 부모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아이를
사랑 받는 아이로 가치 있는 아이로 성장시켜야 하는 것은 오직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지겹도록 여러분도 들었을 것이다. 내가 더 떠들어봐야 입만 아프다.
그 수업 후 내가 발견한 새로운 신념의 내용은 이렇다.
“나는 사랑 받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선하다.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그러므로 나는 자신감 있게 누구보다 더 나 자신을 신뢰하며 타인의 소중함을 알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서로
도우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어떤가? 이 새로운 신념 속에서는 주눅 들고 서글픈 철민이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나는 초기 기억을 재해석 함으로써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는 철민이로 살아가는 것을 과감히
끊어 내고 새로운 신념대로 행복하게 살아갈 선택권을 갖게 되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 대하여 다시 추억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 졌다. 그래서 그들에게 오래 전에 보냈으면 좋았을 편지를 지금부터 천천히 쓰고 싶어 졌다.
오래된 편지를 받고 기뻐할 그들의 얼굴이 벌써부터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