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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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해서 기본 체력이나 근육이 적다 보니 처음 자세나 움직임을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한 가지를 할 수 있게 되면 바로 다음에 벽을 만나서 꾸준히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수업 내내 잘못된 자세를 지적받고 약간 어리둥절한 채로 집에 돌아오는 길엔 저절로 '아, 내가 알고 봤더니 골프 천재여서 몇 번만 채를 휘둘러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바로 알면 좋겠다'같은 생각이 듭니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 같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도 압도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요? 그러나 내가 그런 입장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보통
잘하는 것 한두 가지는 있게 마련이지만, 운동처럼 건강이나 사교를 위해 하게 되는 일에서 재능을 발견한다는
건 확률이 극히 낮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이상과 '그렇지 못한 나'라는 현실의 간격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한 명을 떠올렸습니다.
고등학교 남자 배구부 만화 '하이큐!'에 나오는
세터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인물입니다.
'하이큐!'에는 주인공들이 따로 있습니다. 아주 작은 키에도 높은 점프력이 있어서 윙 스파이커(공격수)를 맡는 한 명과 앞서 말한 엄청난 재능으로 정확하게 공을 토스해 주는 천재 세터 한 명입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그중 천재 세터와 중학교 때 같은 팀이어서 그를 잘 알고 있는데, 주인공의 재능을 시기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절대로 질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훈련합니다. 두 사람은 포지션이 같아 언젠가는 한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될 거라는 심리적 압박이 오이카와에게 크게 작용했던
것이겠지요. 실제로 초중반부까지 주인공 콤비가 넘어서야 하는 가장 크고 무서운 장벽으로 오이카와가 등장합니다.
오이카와의 무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강하고 정확하며 빠른 서브로 서브에이스 득점을 노리는 것(안
싸우고 점수를 따는 것), 다른 하나는 팀의 100%를 이끌어내는
세터로, 처음 합을 맞춰보는 팀원들과도 몇 번의 랠리에서 각자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해서 어떤 상황이든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스스로 재능은 없다는 걸 확인했으면서도
자신이 뭘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키우면 좋을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집요하게 훈련해왔던 것이 이런 무시무시한
세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주인공 팀과의 진검승부에서 오이카와 토오루는 말합니다. '재능은 꽃피우는 것, 센스는 갈고닦는 것!' 그리고 패배하고 맙니다. 압도적 재능 앞에.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실력을 믿어 의심하지 않고, 지금의 승패는 갈리지만 이게 끝은 아니며 계속해서 이 길에 매진할 것이고 최선을 다할 거라는 다짐이자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든, 재능이 있든 없든 아름답게 피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꽃이 피어야 꽃나무인 줄 알게 되는 우리들로서는 봄이 되니 저절로 꽃이 생겨난 것
같지만 나무 입장에서는 매일 꽃을 피워올리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을 것입니다. 핵심은 꽃이라는 결과가
아닌, 꽃이 없는 모든 계절이라는 과정인 것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머릿속에 있는 '잘 하는 나', '재능 있는
나'는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빨리 완결 짓고 싶다는 조바심이
만들어낸 환상 같은 것이지요. 이런 것에 사로잡히는 것보다 매일 연습하러 가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오이카와를 떠올리며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일단 시작을 했으니 열심히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