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종
- 조회 수 920
- 댓글 수 2
- 추천 수 0
화요편지
2021.1.25
종종의 종종덕질
너를 만나기 위해 나를 넘어 성장하는 기적, ‘그 해 우리는’
‘그해 우리는’을 다들 보고 계시는 거겠죠, 설마?
아직 안 보셨다면 그 다음 드릴 말씀은 당.연.히. 꼭 보세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보시면 됩니다~ 왜냐하면 김다미랑 최우식은 진짜 어우, 그냥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너무 귀여운 커플인데다 어쩌면 그렇게 영리하게 연기들을 잘 하는지… 나와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두
주인공의 입장에 저절로 빙의하게 만든다니까요, 참. 요즘 저는 로맨스물이라면 하품만 나오는 평소 취향을 극복하고 몰방 12회를
앉은 자리에서 하고는 드디어 본방을 사수하게 되었어요. 제가 TV중독자에
장르 안 가리고 보는 전천후 드라마덕후이긴 한데, 그래도 가리는 게 없진 않아서 달달하기만한 로맨스물은
지루해서 끝까지 보질 못하거든요. 호러, SF, 판타지, 미스터리가 섞이면 무조건이고, 병맛 & 블랙 코미디도 없어서 못 보는데다, 스릴러물도 넘넘 좋아하는데
그냥 대놓고 로맨스는 정말…아… 송혜교 나오는 그 뭐죠, ‘남자친구’던가요? 저의 최애 박보검님이 나오는데도 보다 몇 번이나 소파에서
잠이 들어 허리만 아팠던 기억이… 여튼 중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해 우리는’은
상당히 비전형적인 로맨스예요. 그냥 로맨스,라고 규정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싶게 조금 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인물부터가 재벌과 신데렐라, 능력만빵 실장님과 어리버리 인턴 따위의 전형적 구성이 아닙니다. 굳이
스테레오타입을 찾자면 평강공주와 온달, 요 정도가 되려나요? 일단
인물 설정은 공부도 잘해, 일도 잘해, 얼굴까지 이쁜 여주와
꿈도 의지도 없는 천상 백수에 호구 그 자체인 남주로 시작하니까요. 시간 낭비와 비효율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억척 여주 국연수, 낮에는 햇빛 쬐며 누워있고 밤에는 별 밤 아래 누워지내는 게 꿈인 남주 최웅의
다큐 같은 현실연애가 어떻게 진행될 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아, 저는
아무래도 이 드라마를 연애기, 또는 로맨스라는 단순한 분류로 한정짓는 게 영 내키지 않습니다. 그런 단순화가 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를 놓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야기는 전교꼴찌와 전교일등을 짝꿍으로 붙여두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라는
만화 같은 설정으로 실제 고등학생들을 캐스팅한 공중파 방송 다큐 촬영을 계기로 시작됩니다. 방송사의
개입이 없었다면 평생 만날 일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부대끼다 보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줄 지가 극중 다큐 프로그램의 selling point였고요. 두 사람의 앙숙 케미와 현실 고딩들의
생활이 어필하면서 다큐는 의외로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심지어 10년이
지난 이후 입소문으로 되살아나는 좀비 히트작이 되는 바람에, 전교꼴찌와 전교일등 친구의 10년 뒤 후일담으로 다큐를 다시 찍기로 하면서 둘은 만화처럼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10년의 시간이 지난 뒤 두 주인공을 다시 찾아간 카메라는
조금은 역전된 것 같은 두 사람의 관계와 위치를 보여줍니다. 유능한 홍보회사 팀장이지만 일에 쫒기며
사느라 자기 생활이랄 게 없는 국연수와 성공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널찍한 스튜디오와 돈과 유명세를 다 가진 최웅으로요. 사실 이 둘은 십년 전 촬영을 하던 기간 동안 앙숙에서 사귀는 사이로 남모르게 진화했고, 이후 5년간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다 결국 다시 안 보는 사이가
된 지도 5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답니다. 그런 두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카메라 앞에 서고 다시 부대끼게 되는 한 달의 기간 동안, 카메라는 두 사람이 함께 존재하는
현실의 촬영 시간을 넘어서 연수의 시간, 웅이의 시간, 그리고
늘 깍두기 같기만 했던 카메라 뒤의 절친 지웅의 시간까지, 세 사람 각자의 시선과 10년의 기간 동안 말하지 못한 사연들이 존재하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지요. 와, 그런데 이 드라마 진짜 어찌나 절묘하게 (시선과 시간 두 가지 측면에서
다) 쪼개기를 잘 하는지, 진짜 굉장한 K드라마들이 줄줄이 등장한 2021년을 통틀어 보더라도 편집의 묘를
가장 잘 살린 드라마로는 주저하지 않고 ‘그해 우리는’을
꼽을 겁니다, 저는요. 줄거리는 보는 재미를 위해 여기까지. 전교 일등 고딩과 꼴찌
고딩이 만나 앙숙에서 친구로, 친구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어가는 10년의 시간 동안, 이
드라마는 두 인물이 어떻게 연인이 되는가 만큼, 혹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각자의 성장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리고 제게 그 성장사가 남다르게 느껴졌던 것은 말이죠.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개인의 성장은 각자 몫이라는 평소 제 지론을 뛰어 넘어서,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 서로를
의지하며 일어나는 ‘도약’이라는 점이었던 것 같아요. 둘은, 여기서 말하면 스포가 될 치명적인 ‘상처’를 갖고 있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친구로 연인으로 사랑한 둘 사이에도 차마 공유하지 못한 비밀이죠. 드라마가 완전 후반부에 접어들어서야
연수의 입장에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웅이의 행동, 웅이는 죽었다 깨나도 알 수 없었던, 이별을 통보한 연수의 사정이 조금씩 설명되기 시작합니다. “우리 그저 그런 사랑한 거 아니잖아. 우리가 왜, 정말 왜 헤어져야 했어?”라는 웅이의 말에 차마 답할 수 없는 연수의 팍팍한 현실과 내면이 가슴을 다시 헤집어 놓는 지금, 드라마는 이제 마지막 두 번의 회차만 남겨 놓고 있네요. 연수는 과연, 과거와 같이 ‘버릴 수 있는 게 그 애 밖에 없어서’ 다시, 웅이를 놓는 실수를 반복할까요? 웅이는 연수의 현실을 넘어 자신을
넘어 온전히 그녀와 함께 할 수 있게 될까요? 드라마 세계에서 만나기 힘든 현실과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은, 오히려
현실 세계에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헤어지는 이유, 같이 할 수 없는 이유들에 더 다가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가 아니라 나를 이기지 못해 결국 이뤄지지 못하는 커플의 이야기들을 저는 제 주변에서 더 많이 접했던 것
같아요. 아이고, 이야기가 또 너무 길어졌네요. 이제 밥을 먹으러 가야해서…^^; 하여간 이 드라마 너무 좋습니다. 요약하자면 너를 만나기 위해 나를 넘어설 수 있는 용기를 ‘그해
우리는’을 통해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드라마의 OST로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V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들려드리며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담 주에 또 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lj8TV9q59P4 "씨유쑨~"
헤헷, 저는 TV 중독자라 안 보는 게 별로 없는데.... 극대조군이시군요. ^^ '그해 우리는' 같은 드라마들이라면 시간 들여 볼 가치가 있지 않나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분은 사실 드라마 한 개도 안 볼 것 같은, 진지한 철학과 젠더에 대한 책을 주로 쓰시는 분인데 글공부를 드라마로 하신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지금 동시대인들이 가장 관심있는 주제를 포착해 가장 이해하고 공감하기 쉽게 대사로 절차탁마해서 만들어 내는 게 드라마 작가들이기 때문에 라인 하나 하나를 분석하면서 본다고 하시더라고요. 여튼 공부천재들은 뭘 보든 배움으로 승화하는구나 싶기도 한데, 저는 또 그런 작가분의 변을 오늘도 드라마를 봐야하는 핑계로 저장해놓고 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