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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편지 2022.2.8 종종의 종종덕질
엄마, 여자, 사람, 그리고
나로 살고 싶은 당신에게 ‘엄마는 아이돌’ ‘엄마는 아이돌’을 챙겨볼 틈들이 있으셨을까요? 지난 연휴에 종방된 tvN의 예능 프로그램말입니다. 설이건 추석이건 우리 고유의 명절을 낀 연휴라는 것들은 대체로 결혼한 여자들에게 달갑지 않은 숙제를 잔뜩 낀 빨간 날이죠. 이 편지를 받아볼 독자들 중 결혼한 여성, 특히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분들의 비중이 어느 정도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이 편지를 읽을 여유는 없으실 것 같은, ‘엄마는 아이돌’ 같은 프로그램의 최종편을 본방사수하거나 몰아볼 틈은 더더욱 없으셨을 것 같은 이 특정한 독자들을 위해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엄마는 아이돌’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한 번도 없었을 엄마이면서 나이고 싶은 당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었거든요. 가희, 박정아, 양은지, 현쥬니, 별, 그리고 선예는 전직 아이돌 출신의 엄마들입니다. 아니, 엄마가 된 전직 아이돌인가요.? 어찌 됐건 간에 이들은 결혼과 함께 일단 경력 단절, 여기에 육아로 확실히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는 특수직업군의 전문직 여성들이라 같은 직업으로 다시 현직이 될 가능성은 전무한 존재들이더라고요. 엄마들의 경력단절이란 현실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아이돌은 아예 존재 자체가 결혼과 양립할 수 없다는 면에서 수녀나 신부? 승려? 같은 성직자랑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튼 진짜 극한직업입니다, 아이돌이나 엄마나 말입니다. 아무리 TV를 안 보는, 걸그룹 따위 나는 몰라 하시는 분들이라도, 원더걸스와 쥬얼리 정도는 기억하시겠지요? ‘텔미’랑 ‘베이비원모어타임’, 요건 그냥 제목만 들어도 멜로디와 그 유명한 땐스가 떠오르잖습니까요. 그런데 그 원더걸스와 쥬얼리의 리더였던, 그 중에서도 원탑이자 메인 보컬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아티스트들이 엄마가 되더니 10년을 무대에 한 번 서 볼 엄두도 못 내고 살았다는 거 아닙니까. 저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사랑하긴 하나 특정한 아이돌그룹의 덕질은 사실 못 해봤어요. 취향이 워낙 고급해 아이돌 따위 관심 없다, 이런 게 아니라 사실은 좋은 노래, 좋은 그룹이 정말이지 너무나도 많아서, 이것도 듣고 저것도 봐야 하는데 도저히 하나에 매진하기 힘들잖아요. 그래도 원더걸스의 리더 선예가 그룹이 이제 막 글로벌한 존재가 되려는 찰나에, 그것도 그 어린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고 결혼해서 캐나다로 떠버린 사건은 실로 충격이었습니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데 그녀는 마치 돌아올 다리를 불태워 버리듯 은퇴 선언과 함께 아예 이민을 가버렸고, 선교사와 결혼해 애를 무려 셋이나 낳고 살고 있다는 소식만이 후일담으로 들려왔지요. 가희는 뭐 다들 아시겠지만, 명불허전 걸크러쉬 아이돌 그룹인 애프터스쿨의 리더이자, 걸그룹계를 통째로 접수한 왕언니 같은 카리스마와 춤실력으로 여전히 유투브나 SBS 문명특급 등에 종종 소환되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솔로로 가수활동을 계속하진 못했어요. 어쩌다 심사위원이나 트레이너로서 예능에 등장했을 뿐, 발리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가 된 가희는 여전히 짱짱한 실력에 파워 넘치는 모습이었지만, 그녀가 설 무대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간간히 배우로서 얼굴을 내민 쥬얼리의 리더 박정아, 인디밴드 보컬 출신으로 시크함 그 자체였던 현쥬니, 그리고 데뷔와 동시에 명품 발라더로 인정받았던 별도, 모두들 결혼 이후엔 약속이나 한 듯 본업인 가수로서 무대에 오르는 일은 없었지요. 엄마는 아이돌은 이런 전설의 레전드 같은 아이돌 출신 엄마들을 하나하나 불러 모아서, 아직도 남아 있는, 그러나 갈 곳 없이 방치되어온 그들의 무대 본능에 불을 지핍니다. 전세계에서 하나 뿐인, 멤버 전체가 죄다 엄마인 그런 그룹으로 한 번 다시 무대에 서 보자고 말예요 저는 엄마들로만 이뤄진 아이돌그룹이 전세계에서 하나 뿐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 촌스럽고 빤한 의도에 넘어가지 않을 결심이었습니다. 아, 진짜 너무 속 보이잖아요. 한창 손 많이 가는 아이들을 두고 엄마가 다시 일로 돌아간다는 것, 그것도 아이돌이라는 신체적 한계와 매력지수를 극대화하는 특수직업군으로 돌아가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보여주고 그 다음은 대체 뭐죠? 그냥 집에 가서 다시 애 보겠지요, 뭐. 기껏해야 애 데리고 예능 몇 번 출연하든가 그게 다일 텐데. 나는 못 보겠네 이 프로그램, 그런 생각이었던 거죠. 그런데 평소처럼 채널 서핑을 하고 있던 느지막한 주말 오후, 우연히 마주친 화면에 마침 선예의 현실 점검용 노래 장면이 막 시작되려는 참이더라고요. 그래도 전직 레전드 그룹 리드보컬인데, 프로듀서들로부터 현직 아이돌로 데뷔해도 좋을 지를 상중하로 평가받아야 하는 잔인한 무대였습니다. 저는 그녀가 대체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부를 지 궁금했어요.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의지할 데 없이 세 아이를 키우는 그녀가 지난 10년 간 꾸준히 노래 연습을 해왔을 것 같진 않았거든요. 별 기대 없이 호기심에 채널을 고정시켰습니다. 선예가 택한 곡은 윤하의 ‘기다리다’였고요. 무대를 기다려온 팬들의 마음, 본인의 심정을 담은 선곡이라 했습니다. 언제부터 내 안에 숨은 듯이 살았나요 꺼낼 수 조차 없는 깊은 가시가 되어 아홉 번 내 마음 다쳐도 한번 웃는 게 좋아 그리고 한 소절이 끝나기도 전에 저는 이 프로그램을 본방사수하겠다고 맘 먹었습니다. 선예의 노래는, 그리고 선예는 국민걸그룹의 메인보컬로 사랑받던 10년 전보다 훨씬 깊고 단단해졌더라고요. 아무도 감히 그 노래의 중간에 어떤 코멘트도 하기 힘들 만큼요. 이후 8회차라는 비교적 짧은 분량의 시리즈로 3개월의 강행군을 이어가는 동안, 이 다채로운 멤버들은 무대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각자의 상황을 되짚으며, 한 순간의 여유도 허용하지 않는 독박 육아의 현실을 잠시 유예한 채 시한부 아이돌의 데뷔이자 은퇴 무대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면서 발견합니다. 아이돌 그룹의 얼굴로 포지션되어 한 번도 기대 받지 못한 보컬의 잠재력을 새롭게 발견한 양은지, 예스런 보컬이라 주눅 들었던 박정아는 사실상 그 어떤 스타일도 소화가능한 본인의 실력을 확인했고요. 십년 세월이 무색하도록 자기관리와 훈련으로 댄싱퀸이자 새롭게 보컬로서 가능성까지 증명한 가희, 소녀 감성의 발라더 별은 변치 않은 가창력과 더 깊어진 감성으로 이제 다시 무대에 돌아올 때가 되었음을 예감케 했습니다. 인디밴드의 보컬에서 연기자로 방향 선회를 했던 현쥬니는 배우로서 다져진 표현력과 끼를 되살려 전성기 시절에도 없었던 덕후들을 양산하는 상황에 이르렀지요. 불과 3개월이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데뷔곡을 만들고 콘서트를 채울 곡을 연습하느라 망가진 성대와 삐걱대는 관절을 달래고 몰아 부치면서 아티스트로서의 자신과 마주하려는 그녀들의 노력은 아줌마들 특유의 폭풍 수다와 땀 범벅, 눈물 범벅으로 아수라장이었지요. 그런데 그 뻔하다 싶은 결말을 다 알고 따라가는데도 참, 내내 같이 울고 웃게 되더라고요. 시간이 허락한다면 꼭, 8회 차 전체를 처음부터 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말 시간이 없으시다면 과거의 절친들과 함께 무대를 꾸미는 5회와 마지막 8회차를 놓치지 않으셨으면 해요. 전설 같은 그들의 다시는 볼 수 없을 무대를 관전하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제 나는 끝난 게 아닐까’ 싶어 불안하고 지친 엄마들, 그 어떤 이유로든 좌절의 늪에 빠져 있는 분들에게 공감과 위로와 희망을 주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현실이 감당하기 힘든 무게로 날 짓누르더라도, 인생은 예측불허! 견뎌온 그 시간 안에 나도 몰랐지만 더 단단하게 다져진 자신을 믿으며 다가올 날들을 기다려 보는 거죠. 사실 이 프로그램은 한 편 한 편을 따로 분석해도 되겠다 싶을 만큼 다양한 사연과 어쩌면 제작자들도 의도치 않았을 것 같은 날카로운 현실이 노출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선예의 재발견! 저는 이제부터 그녀를 덕질하기로 맘을 굳혔습니다. 프로그램의 종료와 함께 캐나다로, 세 아이의 엄마이자 전업주부인 현실로 떠나야 하지만, 그녀가 다시 멋지게 무대에 설 수 있는 날들을 기대하고 기다려 볼랍니다. 그리고 더 많은 분들이 이 프로그램에 담긴 현실과 메시지를 발견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을 전하며 오늘의 편지를 마무리할께요. 그럼 ‘엄마는 아이돌’이 배출해낸 유일무이한 그룹, ‘마마돌’의 데뷔곡 ‘우아힙’을 들려드리며 이만 총총! 다음 주에 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MR8ZIKmYjk8 "Au rev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