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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 식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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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14일 01시 16분 등록
제 자신에게 묻고 싶어졌습니다.
나는 왜 ‘좌충우돌 서점일기’를 쓰는가?

구본형 선생님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아님 사람들에게 주목 받고 싶어서?
아님 또 다른 목적이 있어서?

첫번째 질문에는 아니라고 말 못하겠어요.
나 선생님에게 이야기 하고 싶어요.
오늘 이런 저런 즐거운 일이 있었고,
이런 저런 가슴 아픈 일들이 있었고,
내가 어떻게 그 문제들과 싸우고 있는지,
또 어떻게 답을 찾았는지
그 과정을 선생님 앞에 고스란히 펼쳐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 모르지만
선생님이 그걸 바라고 계실 것 같아서요.

갑자기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 생각나네요.

영풍문고에서 근무하는 시절 많이 힘들었어요.
큰 조직의 일원이 되는게 저란 사람에게는 맞지 않았어요.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도 많고,
지켜야 할 규칙도 많고, 숨이 막혔어요.

서점은 여자들이 많은 업종이라 이런 저런 뒷이야기들이 많았지요.
엉뚱하고 특이한 제 행동들은 쉽게 사람들의 구설수에 올랐어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인데
하룻밤 지나고 나면 부풀리고 과장되어 다시 내 귀에 들어오고는 했지요.
그래서 하룻밤이 지나는 게 겁이 났어요.
그 밤 동안에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일들이 나에게 공포 그 자체였지요.
나는 무방비 상태였고, 나를 지킬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행동도 조심스러워지고,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그랬어요.
하지만 그래도 전 그들과 구분되는 이상한 존재였어요
왜 그들이 날 보고 웃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아침마다 조회를 하며 팀장님이 그러셨어요.
니네들이 여기서 나가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
다달이 급여 들어오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구요.
다른 직원들은 쉽게 그 말을 받아들이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내 안의 반항아가 불쑥 불쑥 치밀어 오르는데
그 놈을 타이르는데 애를 먹고는 했지요.

힘들어도 버텨야 하는 거야
화가 나도 참아야 하는 거야.
그래야 어른이 될 수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 봐.
다들 잘 참잖아.
넌 아직 아이같고, 충동적이고, 실수투성이 바보같아.
어른이 되려면 누구나 이런 과정을 거치는 거야.
그러니까 참아야 하는 거야.

그렇게 나를 누르고, 참고, 견뎠어요.
그리고 어느 날 부터 제 안에 샘 솟듯 올라오던 질문들이
자취를 감춰 버렸어요.
아무런 호기심도 생기지 않고,
궁금한 것도 없어졌어요.
그리고 제 안의 빛도 함께 꺼져 버렸어요.

결국 전 영풍을 나왔어요.
사표를 쓸 때 제 자신이 패배자처럼 느껴져
견딜 수 없었어요.
이런 바보, 멍텅구리
너란 인간은 결국 이것 밖에 안 되는 거야.
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라구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24시간이 주어졌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전 늘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아
하루가 아주 바쁜 사람이었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구본형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졌어요.
늘 글로만 만났던 분.
작가마다 독특한 분위기와 향이 있는데
그 분의 글에서는 피 냄새가 났어요.
그 분의 글을 읽다 보면 피를 흘리고 싶어져요.
과거의 내 심장에 칼을 꽂고
죽음 같은 고통 뒤에 찾아 오는 새 삶을 반기고 싶어져요.

그 분을 만나기 위해 꿈벗 프로그램에 참여했지요.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을 다 털었는데
하나도 아깝지 않았어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지금 상황을 이겨낼 묘안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손에 뜨거운 피를 잔뜩 묻힌 혁명투사가 나타나
“나를 따르라” 이럴 줄 알았어요.
그러면 전 두말 없이 그 뒤를 따라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것도 명령하거나 지시하지 않았어요.
답도 없는 질문들만 가득 제 앞에 늘어 놓았지요.
계속 묻기만 하는 거예요.
머리 속이 하얗기만 한 저에게 답을 찾는 과정은 고역이었어요.
새벽까지 강행군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이
힘겹고 버거웠어요.
그냥 쉬고 싶은 맘뿐이었어요.

다시 새벽같이 일어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토할 것 같더라고요.
머리 속이 빙글 빙글 돌아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결국 전 다시 제 방으로 돌아갔어요.
또 다시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 거예요.
침대에 누워 계속 울었어요.

그 후 ‘말도 안 되는 구본형 비판’이라는 글을 올렸어요.
피 묻은 혁명투사를 기대했는데
마을 훈장 같은 그 분의 모습을 용납할 수 없었어요.
난 그 분을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걸었는데
아무 것도 얻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침없이 그 분을 비난하는 말들을 퍼부었어요.
결국 그 말들이 나 자신에게 돌아와
제 심장을 갈기 갈기 찢어 놓을 걸 몰랐던 거예요.
아니 알았다 한들 그 순간 제 행동을 멈출 수 없었을 거예요.

그 때 내가 그토록 비난하고 싶었던 사람은
구본형이 아니였어요.
바로 나 자신이었지요.
늘 실수만 하고 어리석은 나 자신이 미워서
견딜 수 없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 당시에 저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었어요.
잠시 세상을 떠나 한숨 돌릴 필요가 있었던 거예요.

선생님은 그걸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저한테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절 같은 곳에 들어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잠시 쉬라고 하셨거든요.
(그 때 저는 그 말조차 순수하게 받아 들이지 못했어요.)

결국 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전 다시 씩씩해 졌어요.
하지만 존경하는 선생님을 잃었어요.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선생님이 저를 용서해 주시리라 기대 안 했거든요.)

두 달쯤 지나서 용기를 내
선생님께 용서를 구하는 메일을 보냈지요.
답장이 왔어요.
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후 레인보우 파티 날 다시 선생님을 뵈었는데
절 꼭 안아주셨어요.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지만
그 따뜻한 체온 속에 선생님이 저에게 하시고 싶어하는 말씀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나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도 선생님께 무언가 드리고 싶었어요.

근데 생각해 보니
전 가진게 아무 것도 없어요.
돈도 없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저였어요.
그러니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이였어요.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 그리고 현재는
초라하기 그지 없어요.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제 미래 뿐이였어요.
그래서 제 미래를 선생님께 선물하기로 결심했어요.

미래의 언젠가
반드시 선생님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겠다 결심했어요.
그의 이름으로 내가 높아지는 게 아니라
박안나라는 이름으로 그의 이름을 높일 수 있도록
만들겠다 결심했어요.
경영자가 되든, 작가가 되든,
학자가 되든 그 무엇이 되든 말이예요.

그리고 세상에 얘기 할 꺼예요.
그의 글을 읽고 내가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그가 내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남김 없이 말 할 거예요.
지금의 나는 부족하지만
내 미래의 어느 날에 난 얘기할 꺼예요.

그러니까 어제의 미래였던 오늘은
바로 선생님께 식염수가 드리는 선물이예요.
제가 하루 하루 흘리는 땀방울들은
그 선물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예요.
그 선물들을 조금씩 선생님께 보여 드리는 거예요.
왜 영화 개봉 전 예고편처럼 말이죠.
‘좌충우돌 서점일기’는 그렇게 태어났답니다.

하지만
글로 보여드리는 제 모습이 저의 전부가 아니예요.
저 또한 부정적이고 어둡고 약한 사람이예요.
하루 중 밝고 긍정적으로 살았던 일부분만
꺼내 보여 드리는 거예요.
이 일부분이 언제가 제 하루를 꽉 채우길 바라면서 말이죠.

그러니까 밝고 명랑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기대와 다르다는 말 하지 말아요.
그럼 저 할 말이 없어요.
그것도 저의 일부거든요.

오빠 이야기, 가족 이야기
아직 제 가슴 속에 아물지 않은 상처를
쉽게 얘기하지 말아요.
그럼 제 맘이 아파요.

.....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네요.
주절 주절 말도 많은 식염수 입니다.
아마 약 먹을 시간이 다 되었나 봐요.
아…
약 먹으러 가야겠다. ㅋㅋ
IP *.234.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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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8.01.14 08:08:39 *.128.229.81

안나야. 참 좋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 있다면 바로 네 서점일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난 매일 네 서점에 가고 싶구나. 가서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책을 보고 싶구나. 네 책방에는 웬지 그런 좋은 자리가 있을 것 같구나. 책 값은 한푼도 깍지 않을 것이니 갈때 마다 좋은 차를 한잔 씩 다오. 날마다 그곳에 가면 꿈벗들이 늘 한 두명 씩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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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8.01.14 08:44:01 *.92.16.25
안나님의 순수한 열정이 느껴집니다. 내 맘대로 풀리지 않은 날이 계속될 때 답답하고 또 억울한 마음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도 살아오면서 그런 기분을 많이 느꼈습니다. 사부님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 역시 사부님에게 실망을 시켜 드린 적이 있습니다.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모릅니다.

분노가 저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변화를 위한 힘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기답게 살기 위해 한발짝 내딛는 씩씩한 걸음소리가 들립니다. 뜻이 있는 곳에 분명 길이 열릴 것입니다. 앞으로도 솔직하고 싱그러운 글 기대합니다. 화이팅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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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8.01.14 09:46:55 *.218.205.57
식염수양 팬입니다. 안나님의 글을 보고 나면 x꼬에 털이 몇 개는 더 나네요. 울다 웃으니까요. 참고로 저희 아버지도 변경연 골수분자(?) 이신데, 안나님 팬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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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8.01.14 09:57:36 *.46.151.24

식염수님!

나도 스승님 그늘이 좋아!
볼 수 없는 것, 들을 수 없는 것, 읽을 수 없는 것들을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접할 수 있거든...

거 있쟎아...
마음 속의 불덩이들이 타고 있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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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희 근
2008.01.14 10:20:36 *.85.46.172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 빼 투자하고 싶어지는 아름다운 서점의 예비사장님!
사부님의자 옆에 신문지라도 한장 깔아주세요.
그 옆에만 읹아 있어도 너무 행복할 것 같네요.
확실한 꿈을 가진 당신이 너무 부럽습니다.
나도 빨리 구체화시켜야 하는데....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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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2008.01.14 11:47:09 *.187.232.205
식염수양의 글을 읽고 늘 웃기만 했었는데..
오늘은 눈물이 훌쩍 ^^;
사당 책창고에 오실 거면 꼭 그 전에 전화 주세요.
따듯한 차 한잔 같이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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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8.01.14 14:07:01 *.100.112.105
당신의 글을 읽다보니 많이 부끄러워지네요.. 그리고 그렇게 힘든 순간을 이겨내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있는 당신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이제야 모든 것이 환하게 밝혀지는 느낌이예요..

무엇이든지 좋으니 제가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좋겠군요. 당신이 꿈을 이루어나가는데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저까지 덩달아 힘이 날 것 같아요. 그리고 오늘에서야 느끼는건데 당신에게는 확실히 글쓰는 재능이 있어요. 당신만의 글쓰기가 꿈을 이루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씩씩한 그대 화이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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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08.01.14 17:54:04 *.160.46.64
꿈꾸고 계신 서점,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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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8.01.14 18:11:41 *.236.47.54
식염수님. 안녕^^
전에 홍대에서 뵈었던 소라입니다. 기억하실까요?
오늘의 글은 눈팅만으로는 그냥 지나칠수없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네요. 호기심많고 엉뚱한 님만의 맑은 이야기 많이많이 들려주세요. 그리고 조만간 또 뵙기를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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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염수
2008.01.16 01:02:11 *.234.208.1
나름 비장한 각오하고 쓴 글인데
다들 칭찬 일색이니 몸둘 바를 모르겠음.
역시 변경연은 이상한 조직이얌.
그중 구쌤이 젤 이상해.
저것봐. 답글도 젤 먼저 달아 놓은 거...
이상해~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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