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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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어머님이 갑상선 암으로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요새 갑상선 암은 너무 흔한 질병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암 발병률이 높아진 것보다 예전에 비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검사 기술이 발달해서 발견률이 높아졌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어머님은 화요일날 입원하셔서 수요일날 수술하시고 토요일날 퇴원을 하셨습니다. 수술하는 날부터 병실을 지키며 다음날까지 그곳에서 머물며 알게 되었는데, 그 병실 전체가 갑상선 암 환자분들 이었습니다. 아침 8시부터 두 세시간 간격으로 환자들이 순서대로 수술실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꼭 공장의 조립라인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환자들은 수술 후에도 똑같은 시간에 주사 맞고 약을 먹고, 교육도 받았습니다. 퇴원 후에도 평생 병원에서 처방하는 호르몬약을 먹어야 합니다. 게다가 토요일 날 퇴원하시는데 다음 암환자들이 미리 와서 수술이 끝난 환자들이 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병이 생긴 후에 의사나 또는 기계에게 내 운명을 맡긴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병을 가진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더욱 통탄할 일입니다.
큰 병이 아니라 갑자기 몸살이 오기만 해도 우리는 몸의 중요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아프면 숨 잘 쉬고 잘 먹고 잘 싸는게 얼마나 그리운지 모릅니다. 저도 군대시절 허리를 다쳐 근 백 일간을 고생했었습니다. 낮에 시멘트 포대를 수없이 나른 후 밤에 근무를 위해 일어서다가 삐끗한 것입니다. 허리 아픈 것이 티도 안 나고 애매합니다. 휴가 나가서 검사를 해도 근육이 약해져서이니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 했습니다. 할 수 있는 치료는 진통제 주사와 물리치료 정도였습니다. 군대에서 마냥 눈치 보며 쉴 수도 없고, 매일 아픈 티를 내며 얼굴 찌푸리고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번뜩 그냥 몸으로 부딪히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해왔던 태권도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고통을 참으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고통 속으로 뛰어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무리한 것은 아닙니다. 천천히 몸을 잘 관찰하며 근력을 키웠습니다. 다리도 찢고 발차기도 하면서 변해가는 내 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날들이 지나자 어느샌가 허리의 통증은 사라졌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세상에는 머리만으로는 뚫고 나갈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그때는 직접 몸으로 부딪혀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가 저에겐 온 몸으로 부딪혀야 할 때였나 봅니다.
제대 후에도 가끔 잊을 만 하면 허리가 삐끗하는 했었습니다. 졸업논문을 쓴다고 학교 실험실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실험하고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맡고 있는 프로젝트 또한 과중한 부담감을 주어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여지없이 허리가 삐끗하더군요. 그런 경험을 몇 번하고는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머리만으로 뚫고 나갈 수 없는 벽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학교생활은 거의 끝이 났고 우연히 '요가'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첫 수업의 마지막에 송장자세로 누워 있는 순간 온 몸에 긴장이 완전히 풀리고, 내 몸의 모든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일어나는 느낌 그대로를 바라보세요."라는 선생님의 멘트에 그냥 눈물이 주루룩 흐르더군요. 태어나서 삼십년 가까이 나와 매순간을 함께 해온 몸뚱이를 제대로 느낀 것이 그때가 처음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계속해서 요가수련을 했고, 뭔가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에 요가를 배우러 인도에 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는 허리로 고생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작가나 철학자가 되고 싶다면 먼저 운동선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몸을 느끼지 않고 사는 것은 반쪽짜리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삶을 위해서는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뛸 수 있어야 합니다. 일흔 살 넘게까지 달리기를 하며 글을 썼던 <달리기와 존재하기>의 저자 조지 쉬언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10킬로미터를 달렸다고 합니다. 시간으로는 한 시간 정도. 이분이 이렇게 쓰셨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해서 처음 30분 동안은 내 몸을 위해 달린다. 그리고 마지막 30분 동안은 내 영혼을 위해 달린다." 그의 말처럼 운동의 목표는 몸을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제대로 살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연구원 활동과 직장, 가정생활 등에서 맡은 역할을 한다는 핑게로 운동을 꾸준히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꾸준히 붙잡고 있는 것은 잠자기 전 간단한 스트레칭과 일어나서 108배, 그리고 가끔 동네 한 바퀴를 달리는 것 정도입니다. 그런데 마감이라는 압력에 끙끙대다보면 다른 어떤 것도 할 생각을 못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아무 글도 쓸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되서야 운동화를 신고 뛰쳐나갑니다. 처음의 터질 듯한 심장을 누르고 규칙적인 발걸음과 호흡을 하다보면 어느새 심장 박동 수가 안정됩니다. 단조로운 몸의 움직임과 호흡만이 남게 되면 문득 영감이 떠오릅니다. 달리기 후에 그 영감을 붙잡고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노트에 대략적인 구상을 적습니다. 그러다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씁니다. 지금 처럼이죠. 이건 글쓰기의 시작에 불과할 뿐입니다. 더 깊어지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운동이든 글쓰기이든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려면 힘든 훈련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훈련을 통해 어떤 장벽이 무너질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저에게 달리기는 몸으로 사는 법을 알려줍니다. 몸을 잘 관찰하며 단련하는 것이 삶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기도 합니다. 일을 망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수수방관하는 것이지요. 살다보면 몸을 부딪쳐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를 준비하기 위해 몸 만들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단지 S라인과 초콜릿 복근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지금보다 더 잘 달릴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달리기나 글쓰기나 매일 매일의 삶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며칠 전 달리기를 하며 똑딱이 카메라로 찍었던 풍광을 함께 싣습니다. 뛰면서 사진기로 담은 세상은 뭉개지고 흔들려 있습니다. 이런 사진들은 휴지통에 들어가거나 하드디스크에서 잠자야 하겠지만, 달리기 이야기를 할 때 꺼내 놓으니 조금은 어울리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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