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eiw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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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작은 외삼촌이 삶이 무거워 스스로 삶을 내려 놓았다. 30여 년 전,이혼의 아픔을 겪고 혼자 지내 오셨지만 낙천적 성격으로 인생을 즐기셨던 분이었다. 배움이 짧아 용접 일을 하고 장사도하고, 전국의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며 품삯을 파는 유랑의 삶을 사셨다. 문상 가서야 삼촌이 몇 개월 전, 공사현장에서 다리를 크게 다친 것을 알았다. 사고 후유증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실의에 빠졌고 거기에 생활고까지 겹쳐 환갑을 앞에 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더 이상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없다는 짧은 유서를 남긴 채. 삼촌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이 일이었는데 그것마저 잃고 나니, 남은 삶은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집 앞 산책길에 자주 만나는 노부부가 있다. 70대 중 후반 되어 보였다. 할머니는 중풍으로 발걸음도 힘들고 언어장애 증상도 보였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무언가를 더듬더듬 물으면 ‘아무 말 말고 앞을 보고 잘 걷기나 해! ‘하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아주 천천히 걸었다. 할아버지가 살아가는 이유는 아마도 남은 인생, 할머니의 손과 발이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장애아를 자식으로 둔 부모의 심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때가 있다.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극소수의 사람들은 자살로 고통스런 삶을 마감한다. 하지만 절망의 순간에도 삶을 부여잡는 사람도 있다. 역사 속의 인물 중, <사기>의 저자 사마천(기원전 145~기원전 90)은 49세에, 죽음보다 더 치욕적인 생식기가 잘리는 형벌을 당했다. 그가 세상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면서 살아간 이유는 처자식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42세부터 집필하기 시작한 역사서 <사기>를 완성하기 위한 일념뿐이었다. 궁형을 당한 후 <사기>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사마천은 “하루에도 아홉 번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가만히 집에 앉아 있으면 멍하니 무엇인가를 잊은 듯 어처구니가 없고 자꾸만 부끄러워 언제나 등골에 땀이 흘러 옷을 적신다” 고 토로했다. 사마천은 56세에 14년에 걸친 <사기> 집필을 완성하고 곧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삶의 목표인 <사기>를 완성한 이상, 그에게는 더 이상 구차하게 삶에 매달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한때, 베에토벤( 1770~1827)의 음악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그의 음악도 좋지만 삶의 비극을 예술적 작품을 창조하는 에너지로 승화시킨 인간 승리에 더 감동을 받았다. 그의 56년 삶 중에서 거의 반은 귓병에 시달려야 했고 죽기 전, 약 10년은 완전히 청각을 상실해 의사소통을 메모로 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대부분의 작품이 귓병에 시작된 이후 만들어졌다. 그는 1812년 어느 날 일기에서 “ 운명에 충실한 순종! (...)너는 이제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오직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너 자신 안에, 너의 예술 안에 있는 것 외에 너를 위한 행복은 없다 “라고 썼다. 청각이 완전히 손상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다가올 인간을 위해 예술작품을 만들겠다는 그의 열정과 결연한 의지에 가슴이 뭉클했다.
누군가 얘기한다. 신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과 고통만 준다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신은 그렇게 남의 사정을 배려하지 않는다. 혼자서 감당 하지 못할 일들이 너무 많다. 사람마다 그것을 받아 들이는 정도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시험 실패, 실연, 실직, 배신 등의 아픔을 감당하지 못해 삶을 등지는가 하면, 어떤 이는 신체적 고통보다 더 심한 정신적 상처를 입고도 삶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 있다.
지금도 주위에는 치유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과 장애, 정신적 질병, 그리고 마음의 상처를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죽기 전까지 그 짐에서,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으니 살아보라는 진부하고 뻔한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 살아갈 희망이 없을 때, 살아갈 이유를 계속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사마천처럼 거창하고 대승적인 목적일 필요는 없다.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이 많음을 알고 삶의 고통과 짐을 경감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6개월째 실직 중인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홀어머니와 미지의 삶의 모험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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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버지, 어머니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데, 절대 빈말아닙니다. 절절하지요. 자신과 배우자의 삶의 무게가 더 무거워지기도 하고, 자식의 고민거리 속되게 말하면 경제적 고민이죠, 그게 커져버리니까요. 미안하게도 그렇네요. 요즘처럼 살기 팍팍할 때는 더운 여름에도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해야지요. 재용님의 말대로 이건 개인이 감당할만한 시련을 신이 준게 아닌데 말이예요.
재용님의 이전글을 다 읽지 못해 미안해요.
이 글은 '이제는 거울 앞에 선 내 누이같이' 장식이 없어 좋아요. 진솔하게 자신의 삶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게 저는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