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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5일 11시 38분 등록

* 칼럼. 성실맨, 민수.

민수는 작년에 우리반이었다. 작은 키에 하얀 얼굴 가득한 주근깨가 녀석의 장난끼를 짐작하게 했다. 내가 본 민수는 웃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개구쟁이 증힉생이다.

학기초에 처음 대청소를 하는 데 정해진 당번이 있어도 서로 미루고 대충 시간을 때우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자신이 맡은 구역을 정말 열정적으로 열심히 하는 1명이 보였다. 옆에 다가가니 온 힘을 다해서 바닥을 닦아서일까 얼굴에 땀이 범벅이 되고 땀냄새가 진동을 한다. 나를 본 민수가 자신이 맡은 일은 완벽하게 다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다들 대충하는데 자신에게 정해진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은 나도 사실 힘든데 그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날 교실에 들어갔는데 칠판이 너무 지저분해 칠판담당인 주번에게 잔소리를 했다. 아직 가루분필을 쓰는 터라 시간마다 칠판청소를 하지 않으면 너무나 지저분하고 분필가루가 선생님과 아이들 몫이 된다. 주번인 아이는 자기는 하느라 했는데 다른 아이들이 또 어질러 놓아 그렇게 된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불평을 한다. 갑자기 민수가 자기 잘 닦을 수 있다며 작년에 자기가 칠판담당이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주번에게 닦는 방법을 전수해주라고 부탁을 했다. 그 뒤로 매일 민수는 자신의 담당구역이 아닌데도 칠판을 닦기 시작했고 다른 청소구역 대신 칠판을 닦고 싶다고 부탁을 한다. 정말 민수의 칠판닦는 솜씨는 교직생활 8년만에 최고였다. 분필대 사이사이 가루를 빼내고 칠판전체를 골고루 닦는 방법이 전문가였다. 이때 이후 민수는 학년이 끝날 때까지 우리반 칠판도우미였다.

작년엔 1학기에 3개월정도 아침자율학습시간에 아이들에게 ‘굿바이게으름’이란 책에 나오는 오문오답(五問五答)을 매일 쓰는 일기처럼 쓰도록 했다. 사실 5가지 질문에 5가지의 대답을 짧게 하는 것이기에 5분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엔 아이들에게 매일쓰기의 습관을 들이기 위해 쓴 후에 확인을 했다. 1달정도가 지나서는 아이들의 자율에 맡겼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와서 아이들에게 방학동안 꾸준히 써온 사람에게 푸짐한 상을 주겠다고 했다. 사실 푸짐한 상을 걸었으나 과연 써올 아이가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학교전체에서 내주는 과제물에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이거 안써오면 혼나요'라고 물었을 때 '혼나지 않는다고 자신이 지금의 자기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자신을 위해서 도전해보라'고 했다. 이 말에 매일매일 5분이라도 글을 쓸 아이가 있을까 제안하는 나조차도 의심을 했다. 개학날 아이들이 방학숙제를 내는 데 민수가 오문오답공책을 내민다. 공책안을 들여다보니 정말 방학내내 하루도 빼지 않고 써왔다. 내가 지겹지 않았냐고 하니까 그럴 때도 있긴 했지만 마지막에 긍정적인 말로 꿈을 적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한다. 우리반에서 유일한 1명이었다. 민수에게는 정말 푸짐한 상품이 돌아갔다.

민수의 성실함에 내가 부끄러웠다. 이렇게 어린 친구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하면 성실하게 이루어내는데 나는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인지.

민수의 생활을 보면 무엇을 해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물론 성적이 상위권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수가 어느 곳이든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직장에 들어간다면 자신이 위치한 그곳에서 최선을 다할 녀석의 인품에 사람들이 누구나 감동할 것이기에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민수는 3학년이 되어 공부를 잘 하고 싶다며 정말 열심히 한다. 하지만 아직은 열심히 하는 만큼 결과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중학교 2학년 내내 민수는 틈만나면 종이에 빈 공간만 있으면 그림을 그렸다. 주로 만화캐릭터를 그리고 나름 스토리를 구성해 쓰기도 하는데 자기가 만든 얇은 만화책도 있다. 때마침 교외에 그림대회가 있어 민수에게 넌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리니 대회에 나가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민수는 자기는 단지 재미 삼아하는 것이지 재능이 없다고 우리 반에 그림 잘 그리는 애들 이름을 댄다. 학기초에 민수의 장래희망은 경찰관이었다. 그래 민수의 성실함과 봉사정신이면 잘 어울리는 직업이다. 그런데 난 아직도 민수를 떠올리면 자기만의 그리기 전용노트에 그림을 그리며 혼을 다하여 집중하는 모습이 기억이 난다.

IP *.68.18.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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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9.05 13:05:59 *.67.223.107
연주 화이팅....
연주 칼럼 보던중 제일 반가운 순간........
시계를 눈 비비며 다시 보았어요. ㅎㅎㅎ

덩달아 민수도 화이팅....
민수는 장거리 경주에 기대되는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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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06 16:20:36 *.203.200.146
화이팅 감사합니다~^^
저도 민수처럼 장거리 선수가 되고 싶어요~
단거리는 너무 숨이 차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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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9.06 10:16:24 *.131.127.50
재미있어요!  연주 선생님! ..
.아  낭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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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06 16:21:26 *.203.200.146
감사합니다!
낭만적으로 사시는 백산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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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6 11:29:46 *.230.26.16
그런 민수의 마음과 자세가 연주샘같은 좋은 격려를 만나 흐트러지지 않고 계속 피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당~
나도 지금 빛이 약해도 긴 삶에서 결국 환한 자신만의 빛을 밝히리라는 것을 알게해주는 어른이 되고 싶당 ㅎㅎ
연주 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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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06 16:25:16 *.203.200.146
민수의 성실한 마음과 노력하는 자세에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있어요.
敎學相長 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언니는 자체발광되시니...벌써 제에게 많은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있으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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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9.06 17:23:31 *.10.44.47
연주야.
아이들 이야기가 벌써 스무꼭지가 넘었지?
이쯤되면 중간점검을 한번 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넘 나다운 발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별로 너의 관찰 포인트, 문제의식, 솔루션 등등을 정리해놓고 보면
좀 더 깊은 관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지도교사의 입장에서 더 공부하고 싶은 부분이나 뭐 그런 영역이 눈에 띌 것 같기도 하고..

너만 괜찮담 내가 함 해볼까?
혹시 칼럼 모은 파일 있음 하나 보내줘 볼래?    

                                                                                                                 오지랖 대마왕 묙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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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06 22:04:40 *.228.87.198
중간점검 참 좋은 아이디어~ 훌륭하세요~
역쉬 미옥언니!!!
언니가 분석해주신다면야 이건 뭐 호박이 넝쿨째~^^
감사감사감사요~ㅎㅎ
염치불구하고 보냅니당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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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9.06 17:24:30 *.42.252.67
연주야 우리 작은 아들 이름이 민수라 깜딱 놀랐다.
ㅎㅎㅎ 이 이름이 참 반갑고 좋네. 왜냐하면 민수의 성실함과 노력하는 자세
그리고 장거리 경주에 기대되는 선수이니 말이야.
우리 아들에게도 이 응원의 메세지가 전달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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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06 22:02:34 *.228.87.198
아하~ 언니 아들 이름이 민수였구나~
제가 본 민수들은 다 멋진 녀석들이었어요.
이름에도 기운이 있다니 언니의 소중한 민수도 당연 멋진 친구일듯^^
성실함과 노력하는 자세를 지닌 친구들을 보면 내가 잘 못해서 그런지 더 정이 간다는 ㅋㅋ
그런거 쉽지 않은데 너 참 대단하다 이런 눈빛을 보내게 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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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09.06 22:20:07 *.236.3.241
한여름 뙤약볕보다 더 목말랐을 연주에게

힘든 여름 한철을 보냈구나. 아직 종지부를 찍은 건 아니지만.
잘 이겨내었다. 훌륭히 소화해 내었구나. 가장 적절한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시간이 갈수록 더 자유롭고 풍성해지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귀뚜라미를 가장하여, 달빛을 가장하여 너에게 속삭이는 세레나데를
놓치지 말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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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08 19:57:07 *.5.17.225
정말 멋진 말이군요 ㅋㅋ
감이 딱 왔습니다요 ㅎㅎ
엎어져 자고 일어나서 얼굴에 패인 주름이 원상복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느끼며
 금새 한 때가 지날 것을 예감하고 있는 요즘입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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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9.07 12:54:01 *.10.44.47
귀뚜라미를 가장하여, 달빛을 가장하여 너에게 속삭이는 세레나데를 놓치지 말기를 ^^

연주야! 상현오빠가 9월들어 한 말중에 젤 멋진 말같지 않냐?
그것도 한 때다. 잘 챙겨 즐겨라!!  부럽당..연주야~!!
( 선형언니의 명을 받들고 성실히 질투 수집중!!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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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0.09.06 22:35:42 *.186.57.45
혹시..틈틈이 사진 찍어두남?
칼럼의 주인공이 되는 아이들의 표정이나 그림, 뒷모습.. 교실배경..
학교에 드리운 구름.. 교실 창문 뒤로 펼쳐진 파란 하늘.. 교무실 풍경..
복도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의 모습.. 매점에서 라면먹는 수다쟁이들..
연주 책에 같이 담기면 좋을 그림같은.. 사진들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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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08 19:59:46 *.5.17.225
사진은 행사때 주로 찍는데
예전에 자주 찍고 했는데 사진 저장용량이 늘어나 정리하는데 시간이 들어 요즘은 자제중요
그런데 사진찍는 맛이 나중에 한장한장 넘기며 추억에 잠기는 맛이 없으니 아쉽기도 하데요
오빠 말을 듣고 다시 시작해야 겠다는 생각이 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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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9.07 10:10:17 *.30.254.28
진철의 의견이 좋아보여..
사진과 더불어, 초기에 니가 시도했던,
컬럼과 연계되는 좋은 문장도 골라서 넣으면 좋겠다..
너, 막내라서 요즘 무지 대우받는 것 아니?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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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2010.09.08 20:02:23 *.5.17.225
그쵸...그 문장들 저도 넣는게 좋을 것같은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이번만 건너 뛰어야지 하던 것이 오늘까지 왔네요
그것도 다시 시작하고 진철 오빠의 아이디어도 바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아..막내라고 너무 과분하게 대우받는 중이죠...다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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