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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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성실맨, 민수.
민수는 작년에 우리반이었다. 작은 키에 하얀 얼굴 가득한 주근깨가 녀석의 장난끼를 짐작하게 했다. 내가 본 민수는 웃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개구쟁이 증힉생이다.
학기초에 처음 대청소를 하는 데 정해진 당번이 있어도 서로 미루고 대충 시간을 때우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자신이 맡은 구역을 정말 열정적으로 열심히 하는 1명이 보였다. 옆에 다가가니 온 힘을 다해서 바닥을 닦아서일까 얼굴에 땀이 범벅이 되고 땀냄새가 진동을 한다. 나를 본 민수가 자신이 맡은 일은 완벽하게 다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다들 대충하는데 자신에게 정해진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은 나도 사실 힘든데 그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날 교실에 들어갔는데 칠판이 너무 지저분해 칠판담당인 주번에게 잔소리를 했다. 아직 가루분필을 쓰는 터라 시간마다 칠판청소를 하지 않으면 너무나 지저분하고 분필가루가 선생님과 아이들 몫이 된다. 주번인 아이는 자기는 하느라 했는데 다른 아이들이 또 어질러 놓아 그렇게 된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불평을 한다. 갑자기 민수가 자기 잘 닦을 수 있다며 작년에 자기가 칠판담당이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주번에게 닦는 방법을 전수해주라고 부탁을 했다. 그 뒤로 매일 민수는 자신의 담당구역이 아닌데도 칠판을 닦기 시작했고 다른 청소구역 대신 칠판을 닦고 싶다고 부탁을 한다. 정말 민수의 칠판닦는 솜씨는 교직생활 8년만에 최고였다. 분필대 사이사이 가루를 빼내고 칠판전체를 골고루 닦는 방법이 전문가였다. 이때 이후 민수는 학년이 끝날 때까지 우리반 칠판도우미였다.
작년엔 1학기에 3개월정도 아침자율학습시간에 아이들에게 ‘굿바이게으름’이란 책에 나오는 오문오답(五問五答)을 매일 쓰는 일기처럼 쓰도록 했다. 사실 5가지 질문에 5가지의 대답을 짧게 하는 것이기에 5분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엔 아이들에게 매일쓰기의 습관을 들이기 위해 쓴 후에 확인을 했다. 1달정도가 지나서는 아이들의 자율에 맡겼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와서 아이들에게 방학동안 꾸준히 써온 사람에게 푸짐한 상을 주겠다고 했다. 사실 푸짐한 상을 걸었으나 과연 써올 아이가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학교전체에서 내주는 과제물에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이거 안써오면 혼나요'라고 물었을 때 '혼나지 않는다고 자신이 지금의 자기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자신을 위해서 도전해보라'고 했다. 이 말에 매일매일 5분이라도 글을 쓸 아이가 있을까 제안하는 나조차도 의심을 했다. 개학날 아이들이 방학숙제를 내는 데 민수가 오문오답공책을 내민다. 공책안을 들여다보니 정말 방학내내 하루도 빼지 않고 써왔다. 내가 지겹지 않았냐고 하니까 그럴 때도 있긴 했지만 마지막에 긍정적인 말로 꿈을 적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한다. 우리반에서 유일한 1명이었다. 민수에게는 정말 푸짐한 상품이 돌아갔다.
민수의 성실함에 내가 부끄러웠다. 이렇게 어린 친구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하면 성실하게 이루어내는데 나는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인지.
민수의 생활을 보면 무엇을 해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물론 성적이 상위권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수가 어느 곳이든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직장에 들어간다면 자신이 위치한 그곳에서 최선을 다할 녀석의 인품에 사람들이 누구나 감동할 것이기에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민수는 3학년이 되어 공부를 잘 하고 싶다며 정말 열심히 한다. 하지만 아직은 열심히 하는 만큼 결과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중학교 2학년 내내 민수는 틈만나면 종이에 빈 공간만 있으면 그림을 그렸다. 주로 만화캐릭터를 그리고 나름 스토리를 구성해 쓰기도 하는데 자기가 만든 얇은 만화책도 있다. 때마침 교외에 그림대회가 있어 민수에게 넌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리니 대회에 나가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민수는 자기는 단지 재미 삼아하는 것이지 재능이 없다고 우리 반에 그림 잘 그리는 애들 이름을 댄다. 학기초에 민수의 장래희망은 경찰관이었다. 그래 민수의 성실함과 봉사정신이면 잘 어울리는 직업이다. 그런데 난 아직도 민수를 떠올리면 자기만의 그리기 전용노트에 그림을 그리며 혼을 다하여 집중하는 모습이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