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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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B급 좌파, 야간비행 2001
어디에서 검색했는지 몰라도 읽을 책 리스트에 ‘B급 좌파’를 올릴 때만 해도, 김규항에 대해 전혀 몰랐었다. 막상 ‘B급 좌파’를 읽고 나니, 마치 고구마를 캘 때처럼 관련사항이 줄줄이 따라나왔다. 철학과 삶이 유리되지 않는, 열심히 움직이는, 영향력이 좀 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한겨레 21>에 딴지일보의 김어준과 ‘쾌도난담’을 진행하는 글빨 말빨 빵빵한 좌파의 논객으로서, <아웃사이더> 편집주간을 지냈으며, 강준만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이진경을 비판적으로 배척하며, 놀랍게도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를 발행하느라 허리가 휘청이는 식이다.
예수의 삶과 정신을 재조명한 '예수전'과 주류사회와 타협하지 않고 사는 아웃사이더들의 '인터뷰집'을 준비하고 있으며, 저서로 ‘나는 왜 불온한가’ 돌베개 2005, 가 있다.
어린 시절의 김규항은 감성이 풍부하면서도 조숙했던듯,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 온 동급생을 첫사랑으로 기억하는 그는, 고3 때에야 십여 년의 세월을 열 장의 편지에 담아 보낸다. 그리고 이듬해 그 여학생을 찾아가나, 그 시절은 지나갔다는 자각에 만나지 않고 돌아온 일이 있다.
그런가 하면 초등학교 5학년 때, 실존적 고민에 빠져 꼬박 1년을 가위눌려 살던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낭만적인 힘’을 얻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노래는 한 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였다.
조숙했던 소년 김규항은, 조금이라도 생각있는 사람이었다면 좌파가 안될 수 없었던 80년대에 한신대를 다니며, 사회문제에 눈을 뜨게 된다. 일찌감치 하드록에 반응하는 귀를 가졌던 그는, 자신의 귀를 부끄러워하며 분연히 드럼을 버리고 FM의 국악 프로그램을 듣고 또 들어 새로운 음악에 귀를 적응시킨다. 자신의 이념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몸을 개조하는 순수함은, 세상의 모든 권위와 위선과 부조리를 조롱하는 좌파의 독설가로 자리잡게 한다.
그러나 김규항 본인은 "글만 쓰면 파시스트를 저주하고 중산층을 까고 지식인을 비꼬고 근로 대중을 한없이 지지하지만, 그 글은 방구석에 앉아 세상을 재단하는 부도덕을 깔고 있는" 자신을 부끄러워 하고 있으며, 그런 뜻에서 후배가 붙여준 ‘B급 좌파’라는 별호를 기꺼이 수용하고 있는듯하다.
그는 원래 우리나라 학교체제-교육에 대해 비관적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가 접한 학교 선생들은 언제나 자기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인격을 폭력으로 벌충하는 그런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 빠가사리 수학선생 수업시간에 교실 문짝을 부순 경력이 있는 그는, 학교 다니는 일이 끝나고 문화계 언저리에서 건달 노릇을 하다보니 ‘사회의 선생’이 학교 선생과 다른 건 때리지 않는다는 점뿐이었다고 한다.
그런 김규항이 자신의 남매를 학교체제에 디밀어놓고 노심초사하는 장면은 사뭇 감동적이다. 자녀교육에 대한 시선이 남달리 뜨겁다 싶었더니, <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 잡지를 발행하느라 3년 째 출혈을 감내하고 있었다.
나는 이 잡지를 몰랐다. 절반 넘게 만화가 차지한 이 잡지를 빼곡이 채운, 민주주의, 인권, 생태·환경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내용의 여러 가지 형식의 연재들은 그 자체로 혁명이라는 평가이다. 〈고래〉를 읽는 아이들은 ‘경쟁력있는 상품’으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소년 전태일을 만날 수 있고, 장애인·이주노동자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할 이웃으로 받아들인다.
김규항의 글은 명쾌하고 신랄하여 아주 재미있게 읽힌다. 예리하면서 현학적이지 않아서 좋다. 또한 김규항의 관심은 가족과 교육, 음악, 영화 등 우리 일상을 떠나지 않는다. 이진경을 비롯한 수재형 ‘강단좌파’를 지적 허영파로 몰아세우는 걸 보면 김규항은 그의 어린이잡지 ‘고래가 그랬어’가 웅변하듯 ‘소박한 실천’을 우위에 놓는듯 보인다.
마가복음과 젊은 날의 김지하와 김수영을 좋아하는 김규항, 그의 글에 상당부분 동조하고 기꺼이 동참하고 싶은 걸 보면 - 여유가 있으면 <고래가 그랬어> 를 후원하고 싶은 - 나도 F<학점>급 좌파가 될 소질이 없지 않은가 보다. ^_^
@ 책에서 인용한 부분
-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그를 정치 지도자로 혹은 영혼의 지도자로 제각기 받아들였지만 그들이 예수를 좀더 알게 되었을 때 그를 정치 지도자라 여겼던 사람들은 그를 영혼의 지도자라 여겼고, 그를 영혼의 지도자라 여겼던 사람들은 그를 정치 지도자라 여기게 되었다. 정치적 해방만을 바라는 사람들에겐 영혼의 해방을 되새기고 영혼의 해방만을 바라는 사람들에겐 정치적 해방을 되새기는 예수의 방식은 사람들의 욕망을 거슬렸다. 완전한 인간 해방이란 그 둘간의 접점 속에 있는 게 분명했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정치 혹은 영혼의 해방전선이 상할까 두려워했다.
-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가장 올바른 노선을 좇는 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진보적 노력<혹은 운동>의 본능이다. 그러나 그 가장 올바른 노선은 언제나 그 노선에 기본적으로 합의하는 작은 이견들의 도움으로 완성된다. 문제는 그런 작은 이견은 필연적으로 밖에서 느끼기에 회색이고 안에서 느끼기에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경과가 보여주듯, 그런 작은 이견들이 묵살될 때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진보적 노력은 찬란한 대의에 담긴 졸렬한 내용으로 남을 뿐이다.
- 지하를 읽을 때 특히 ‘양심선언’이나 ‘고행-1974’ 같은 글을 읽을 때 나는 뜨겁다. 책 속에 든 지하는 따라잡을 수 없이 장엄하고 치열해서 나는 늘 주눅든다. 나는 오늘 ‘율려’라는 신상품을 내놓고 식어 가는 지하와 책 속에 든 뜨거운 지하를 분리하는 일로 열패감을 위무한다.
수영을 읽을 때 나는 늘 평화롭다. 내가 수영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뜨거움의 총량이 지하를 넘어서면서도 그 뜨거움의 방식은 나 같은 치졸한 인간에게도 적용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하의 뜨거움이 한 인간이 특별한 상황 속에서 한껏 고양된 뜨거움이라면 수영의 뜨거움은 한 인간이 일생에 걸쳐 성격처럼 지닐 수 있는 일상적 뜨거움이다.
IP *.81.12.53
어디에서 검색했는지 몰라도 읽을 책 리스트에 ‘B급 좌파’를 올릴 때만 해도, 김규항에 대해 전혀 몰랐었다. 막상 ‘B급 좌파’를 읽고 나니, 마치 고구마를 캘 때처럼 관련사항이 줄줄이 따라나왔다. 철학과 삶이 유리되지 않는, 열심히 움직이는, 영향력이 좀 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한겨레 21>에 딴지일보의 김어준과 ‘쾌도난담’을 진행하는 글빨 말빨 빵빵한 좌파의 논객으로서, <아웃사이더> 편집주간을 지냈으며, 강준만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이진경을 비판적으로 배척하며, 놀랍게도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를 발행하느라 허리가 휘청이는 식이다.
예수의 삶과 정신을 재조명한 '예수전'과 주류사회와 타협하지 않고 사는 아웃사이더들의 '인터뷰집'을 준비하고 있으며, 저서로 ‘나는 왜 불온한가’ 돌베개 2005, 가 있다.
어린 시절의 김규항은 감성이 풍부하면서도 조숙했던듯,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 온 동급생을 첫사랑으로 기억하는 그는, 고3 때에야 십여 년의 세월을 열 장의 편지에 담아 보낸다. 그리고 이듬해 그 여학생을 찾아가나, 그 시절은 지나갔다는 자각에 만나지 않고 돌아온 일이 있다.
그런가 하면 초등학교 5학년 때, 실존적 고민에 빠져 꼬박 1년을 가위눌려 살던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낭만적인 힘’을 얻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노래는 한 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였다.
조숙했던 소년 김규항은, 조금이라도 생각있는 사람이었다면 좌파가 안될 수 없었던 80년대에 한신대를 다니며, 사회문제에 눈을 뜨게 된다. 일찌감치 하드록에 반응하는 귀를 가졌던 그는, 자신의 귀를 부끄러워하며 분연히 드럼을 버리고 FM의 국악 프로그램을 듣고 또 들어 새로운 음악에 귀를 적응시킨다. 자신의 이념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몸을 개조하는 순수함은, 세상의 모든 권위와 위선과 부조리를 조롱하는 좌파의 독설가로 자리잡게 한다.
그러나 김규항 본인은 "글만 쓰면 파시스트를 저주하고 중산층을 까고 지식인을 비꼬고 근로 대중을 한없이 지지하지만, 그 글은 방구석에 앉아 세상을 재단하는 부도덕을 깔고 있는" 자신을 부끄러워 하고 있으며, 그런 뜻에서 후배가 붙여준 ‘B급 좌파’라는 별호를 기꺼이 수용하고 있는듯하다.
그는 원래 우리나라 학교체제-교육에 대해 비관적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가 접한 학교 선생들은 언제나 자기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인격을 폭력으로 벌충하는 그런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 빠가사리 수학선생 수업시간에 교실 문짝을 부순 경력이 있는 그는, 학교 다니는 일이 끝나고 문화계 언저리에서 건달 노릇을 하다보니 ‘사회의 선생’이 학교 선생과 다른 건 때리지 않는다는 점뿐이었다고 한다.
그런 김규항이 자신의 남매를 학교체제에 디밀어놓고 노심초사하는 장면은 사뭇 감동적이다. 자녀교육에 대한 시선이 남달리 뜨겁다 싶었더니, <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 잡지를 발행하느라 3년 째 출혈을 감내하고 있었다.
나는 이 잡지를 몰랐다. 절반 넘게 만화가 차지한 이 잡지를 빼곡이 채운, 민주주의, 인권, 생태·환경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내용의 여러 가지 형식의 연재들은 그 자체로 혁명이라는 평가이다. 〈고래〉를 읽는 아이들은 ‘경쟁력있는 상품’으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소년 전태일을 만날 수 있고, 장애인·이주노동자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할 이웃으로 받아들인다.
김규항의 글은 명쾌하고 신랄하여 아주 재미있게 읽힌다. 예리하면서 현학적이지 않아서 좋다. 또한 김규항의 관심은 가족과 교육, 음악, 영화 등 우리 일상을 떠나지 않는다. 이진경을 비롯한 수재형 ‘강단좌파’를 지적 허영파로 몰아세우는 걸 보면 김규항은 그의 어린이잡지 ‘고래가 그랬어’가 웅변하듯 ‘소박한 실천’을 우위에 놓는듯 보인다.
마가복음과 젊은 날의 김지하와 김수영을 좋아하는 김규항, 그의 글에 상당부분 동조하고 기꺼이 동참하고 싶은 걸 보면 - 여유가 있으면 <고래가 그랬어> 를 후원하고 싶은 - 나도 F<학점>급 좌파가 될 소질이 없지 않은가 보다. ^_^
@ 책에서 인용한 부분
-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그를 정치 지도자로 혹은 영혼의 지도자로 제각기 받아들였지만 그들이 예수를 좀더 알게 되었을 때 그를 정치 지도자라 여겼던 사람들은 그를 영혼의 지도자라 여겼고, 그를 영혼의 지도자라 여겼던 사람들은 그를 정치 지도자라 여기게 되었다. 정치적 해방만을 바라는 사람들에겐 영혼의 해방을 되새기고 영혼의 해방만을 바라는 사람들에겐 정치적 해방을 되새기는 예수의 방식은 사람들의 욕망을 거슬렸다. 완전한 인간 해방이란 그 둘간의 접점 속에 있는 게 분명했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정치 혹은 영혼의 해방전선이 상할까 두려워했다.
-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가장 올바른 노선을 좇는 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진보적 노력<혹은 운동>의 본능이다. 그러나 그 가장 올바른 노선은 언제나 그 노선에 기본적으로 합의하는 작은 이견들의 도움으로 완성된다. 문제는 그런 작은 이견은 필연적으로 밖에서 느끼기에 회색이고 안에서 느끼기에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경과가 보여주듯, 그런 작은 이견들이 묵살될 때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진보적 노력은 찬란한 대의에 담긴 졸렬한 내용으로 남을 뿐이다.
- 지하를 읽을 때 특히 ‘양심선언’이나 ‘고행-1974’ 같은 글을 읽을 때 나는 뜨겁다. 책 속에 든 지하는 따라잡을 수 없이 장엄하고 치열해서 나는 늘 주눅든다. 나는 오늘 ‘율려’라는 신상품을 내놓고 식어 가는 지하와 책 속에 든 뜨거운 지하를 분리하는 일로 열패감을 위무한다.
수영을 읽을 때 나는 늘 평화롭다. 내가 수영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뜨거움의 총량이 지하를 넘어서면서도 그 뜨거움의 방식은 나 같은 치졸한 인간에게도 적용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하의 뜨거움이 한 인간이 특별한 상황 속에서 한껏 고양된 뜨거움이라면 수영의 뜨거움은 한 인간이 일생에 걸쳐 성격처럼 지닐 수 있는 일상적 뜨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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