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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2일 11시 20분 등록
<자살을 꿈꾸는 그대에게>

그대,
지금 자살을 꿈꾸고 있는가.
젊었던 시절에는 나도
자살을 꿈꾸어 본 적이 있었네.
내 젊었던 시절은 빈곤의 연속이었어.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지.
끝없는 굶주림
뼈저린 고독
참담한 절망감
그런 것들만 끊임없이
내 목덜미를 물어 뜯고 있었지.
젊음이 아름답다는 말은 정말로 개소리였어.
어디를 가도
내가 안주할 요람은 없었지.
도처에 무덤만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어.
모든 공간이 폐쇄되고
모든 소통도 단절되고
모든 시간이 부패되고
모든 신념도 매몰되고
빌어먹을,
맹목의 오랜 방황을 거쳐
마침내 당도한 벼랑 끝
나를 위해 준비된 안식은 오로지 자살뿐이었네.

삶은 언제나 행복을 전제하고
힘겨운 고난들을 극복해 주기를
내게 종용했지만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마지막 집결지에는
언제나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어.
어떤 무소불이의 능력을 가진 놈이라도
종국에는 어차피 도달해야 하는 필연의 자리
먼저 가는 편이 한결 행복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지.
사람들은 내게서 오래 전에 등을 돌리고
세상은 사막같이 황량한데
도대체 어디에 희망이 있단 말이냐
나는 수시로 세상을 향해 가래침을 뱉았지.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는 구절을 장신구처럼
목에 걸고 다니는 문학소녀들을 만나면
차라리 함부로 길바닥에 쓰러뜨리고
강간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어.
차마 자살하지 못한 내게는 그 구절이
냉정하면서도 은밀한 자살 독촉 같아서
차라리 도끼로 내 머리통을 찍어 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네.

그대여.
나는
자살을 꿈꿀 수밖에 없는 그대의 심경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오늘 양지 바른 담벼락에 기대어
그대 머릿니를 솎아내는 정겨움으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인생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세상은 썩을대로 썩어서
한 걸음만 밖으로 나가도
악취가 진동하고
소박한 희망
순수한 열정
진실한 사랑
그대 작은 화분에 파종했던 향일성 식물들은
척박한 토양과 지독한 목마름에
싹도 한 번 내밀어 보지 못한 채
참혹한 몰골로 말라 죽고 말았겠지.
그대는
범람하는 인생의 급류 속을 떠내려 가면서
가느다란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기를
간절히,
너무도 간절히 소망했겠지.
그리고 기대는 언제나 무산되고 말았겠지.
정말로 이 세상에는
그대를 위해 준비된 희망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안타깝지만
현재의 그대 입장으로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 어떤 위로의 말이나 동정의 손길도
그대에게는 일시적이고 부질없는
대일밴드에 불과하겠지.
그대의 상처는 너무 깊어
편작이나 화타가 다시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완치불능.
이제 그대는 더 이상 절망을 감내할 기력이 없겠지.

언제부터인가
자살 풍조가 도처에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자살 사이트가 생기고
거기서 자신을 죽여 줄 사람을
공개적으로 물색하고
거기서 만난 생면부지의 목숨들끼리
동반자살을 감행한다.
하지만 젊음이여.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광고 문구를 저승길로 떠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말라.
실연을 비관해서
신병을 비관해서
생활고를 비관해서
날마다 자살이 속출하고 있다.
어느 대기업 회장까지
자신의 목숨을 집무실 창 밖으로
훌쩍 내던져 버렸다.
그대는 그런 뉴스들을 접할 때마다
아직도 초라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그대 자신에 대해
극도의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대여.
알고 보면
아무리 잘난 놈들도
아무리 못난 놈들도
누구나 고통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생(生)
노(老)
병(病)
사(死)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일렬 종대로 한 놈씩 정렬해 놓으니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유사이래로
이 여덟 가지 인생 메뉴를
식성대로 골라먹을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수도 골라 먹지 못했고
부처도 골라 먹지 못했다.
그것을 골라 먹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다가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말아 먹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오로지 생(生)과 희(喜)와 락(樂)만이
계속적으로 식탁에 오르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손가락질 한 번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세도가라 하여도
그런 것들만 골라 먹으면서
일생을 보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대도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생로병사(生老病死) 희노애락(喜怒哀樂)
여덟 가지 인생 메뉴 중에서
멀리 하고 싶은 것들은
노(老). 병(病). 사(死). 노(怒). 애(哀).
다섯 가지나 되는데
가까이 하고 싶은 것들은
생(生). 희(喜). 락(樂).
세 가지뿐이다.
그것들은
멀리 하고 싶다고 멀어지는 메뉴들도 아니고
가까이 하고 싶다고 가까워지는 메뉴들도 아니다.
그런데 왜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좋아하는 메뉴들보다
싫어하는 메뉴들을
더 많이 인생 식탁에 차려 놓으신 것일까.
여기에 오묘한 하나님의 계략이 숨어 있다.

그대여.
인간들이 하루 세 끼 차리는 밥상도
달콤하고
고소하고
향기로운 음식들만으로는
훌륭한 밥상이 될 수 없다.
시고
맵고
쓰고
짠 것들이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쁨과 쾌락만 있는 인생은
진실로 행복한 인생이 아니다.
그러나 그대의 밥상은 너무나 극단적이다.
날이면 날마다
보리개떡이 아니면 초근목피다.
사나흘 정도만 계속되어도 미칠 지경인데
삼사년 씩이나 계속된다면
살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대여.
현재 상황만으로 그대의 모든 인생을 속단치 말라.
살아온 날들은 비참의 연속이었으나
살아갈 날들은 기쁨의 연속이리니
보라,
인류사 이래로 그 이름을 역사에 길이 빛낸 인물들은
대다수가 비참한 과거지사를 간직하고 있었노라.
내 말에 믿음이 가지 않으면
위인전집을 한 번 독파해 보기를 권유한다.
그대는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다.
하나님은 큰 일을 수행할 인물에게 먼저
참기 어려운 고난부터 내리시나니
고난을 기꺼이 감내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그것이 인간에게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계략이었다.
인내하라.
한겨울 설한을 견딘 나무일수록 그 꽃이 아름답고
한여름 폭염을 견딘 나무일수록 그 열매가 향기로운 법.
지금은 보리개떡이 아니면 초근목피인 그대 인생도
언젠가는
주지육림 산해진미로
상다리가 부러지는 날이 오리라.

그대여.
그대가 진실로 행복한 인생을 기대한다면
그대에게 부여된 생노병사 희노애락을
모두 사랑으로 껴안으라.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에
그대가 태어났다는 사실도 사랑하고
그대가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도 사랑하고
때로는 독감을 앓거나
두통으로 시달릴 수 있다는 사실도 사랑하라.
분노해야 할 때는 분노할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슬퍼해야 할 때는 슬퍼할 수 있는 인간이 되라.
기쁨이 있으면 기쁨을 느끼고
즐거움이 있으면 즐거움을 느끼는 인간이 되라.

그러나 그대의 목숨은
그대 자신의 소유가 아니다.
지금까지 그대를 생존케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물들이
그대에게 목숨을 바쳐 왔는가를 생각하라.
수많은 벼들과 수많은 배추들
수많은 닭들과 수많은 멸치들.
그리고
감자. 양파. 부추. 미나리. 마늘.
사과. 대추. 토마토. 호박. 참외.
고사리. 더덕. 머루. 다래. 송이.
산에 있는 것들도
들에 있는 것들도
심지어 저 깊은 심해를 유영하던 것들까지도
기꺼이 그대 뱃속으로 들어가 똥이 되었다.
그대는 그것들에게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보답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그것들이 그대의 죽음을
만장일치로 찬동할 때까지
그대의 목숨은 그대 스스로 끊을 수 없다.

그대여.
한 평생을 지독한 가난과 핍박 속에서
아름다운 시를 쓰다가
천수를 다하고 하늘로 돌아간 시인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겠다던 시인처럼
그대도 천수를 다할 때까지
천지만물을 눈물겹게 사랑하고
그대 자신을 눈물겹게 사랑하라.
이 세상에 아직도
외롭고 가난한 시인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분명 그대도 살아 있을 가치와 희망이 있다.
용기를 가져라.
분연히 일어서라.
그대는 젊다.

IP *.152.178.19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07.10.23 00:52:46 *.131.127.35
사랑합니다...
글을 읽다가 문득 그 말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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