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2007년 10월 28일 23시 26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신동엽(申東曄,1930.8.18 ~ 1969.4.7)

신동엽은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던 해 7월엔 함경남도 단천에서 군민 수천 명이 삼림조합에 반대해 군청과 경찰서를 습격했고, 그 와중에 일본 경찰의 발포로 1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8월에는 평양 고무농장 노동자 1,800여명이 임금 인하 조치에 항의하는 동맹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독자였던 그의 부친 신연순에게는 전처 소생의 남매가 있었으나 아들이 돌을 넘긴 얼마 후 사망해 신동엽은 2대 독자로 태어났다. 시인의 모친은 신동엽을 낳은 뒤로도 아이를 일곱이나 낳았지만 모두 딸이었고, 그 중 위로 셋은 일찍 죽고 만다. 아이가 태어나 성년이 될 때까지 생존하기 매우 어려운 시절이었던 데다가 아들로는 그 하나였기 때문에 그의 부모가 신동엽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컸다.

어려서부터 문학 소년이었던 그는 자신이 소유한 독특한 사상적 체계를 문학을 통해서 형상화 하시 시작했다. 1949년 단국대 사학과 재학 시절, 그는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진정한 민족주의가 좌절된 정치적 현실에 대한 좌절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한(恨)의 서정으로 표현한 <나의 나>를 쓴썼다.(발표는 1962년 6월)

1953년 졸업 후 서울에서 친구의 헌책방 일을 하며 자취를 했다. 여기서 소설가 아내 인병선을 만난다. 열렬한 연애 끝에 1956년 결혼, 부여에서 신혼집을 차렸으나 가난은 여전했다. 아내의 양장점 개업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되자 구상회 등 문학지망생들과 어울려 시인이 될 꿈을 키운다. 그 후 보령농고에 취직하였으나 디스토마가 발병해 각혈과 고열에 시달리게 되면서 가족과 헤어져 본가에서 요양한다. 이때 시쓰기에 몰두해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大地>를 썼고(1959년 조선일보에 20여행이 삭제되어 실림), 그 후 1969년 작고하기 까지 일관된 시세계를 밀고 나가게 된다. 그 내용은 서구의 압력에 파행적으로 진행되는 근대화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적 인식이었다.

1960년대 경험한 4.19혁명의 좌절로 정신주의에 침잠했다. 정지척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1962년 건국대학원에 입학, 정신주의로 도피해 버티고자 한다. 그 후 <주린 땅의 指導原理>(1963.11)에서야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함으로써 정신주의 우세로부터 돌아와, 현실 참여적 성격을 더 강하게 띠게 된다. 1964년 굴욕적 외교인 한일회담 일정합의와 정보기관의 학원사찰로 인한 학생 시위. 그러나 계엄 선포와 많은 학생들,정치인,언론인이 구속되는 결과를 낳고 좌절한다. 이로써 신동엽은 정신주의의 안주에서 현실로 뛰쳐나오게 된다.(한일 협정 비준반대 서명참여).적극적 현실 참여로 나온 <발>,<4월은 갈아엎는 달>등이 발표된다.

개인 시사에서의 절정기는 1967-1968년이다. 1967년, 참여시의 극점인 <껍데기는 가라>(1월), 대작 <錦江>(12월)을 발표, 1960년대 참여시인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 하게된다. 1968년, 시인으로서의 삶이 절정에 이른 시기. 세상을 하직하기 직전의 한 해 동안 가장 왕성하게 창작을 했다. <봄은>(2월), 오페레타<석가탑>, <술을 많이 마시고 난 어제밤은>(6월), <여름고개>(8월), <散文詩1>(11월),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 많은 유작이 창작되었다.

1969년 3월 간암 진단을 받은 후, 퇴원하여 한약으로 버티면서 투병하다 문병 온 남정현의 품에서 4월 7일 간암으로 숨을 거두었다.

신동엽 시인의 연혁(1930~1969)

1930년 8월 18일 충청남도 부여읍 동남리에서 출생 - 부여초등학교, 전주사범학교, 단국대 사학과 졸업.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으로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입선(여러 우여곡절 끝에 20여 행을 삭제하고 그나마 당선도 아닌 입선이었다.)

1961년 명성여고 국어교사로 취임(작고시까지 재직)

1963년 <산에 언덕에>, <아니오> 등을 담은 시집 『아사녀』 출간

1966년 詩劇 <그 입술에 파인 그늘>을 최일수 연출로 국립극장에서 상연

1967년 펜클럽 작가기금으로 장편서사시 『금강(錦江)』 발표

1968년 오페라타 <석가탑>(백병동 작곡)을 드라마센터에서 상연(김수영 사망)

1969년 4월 7일 간암으로 별세. 경기도 파주군 월롱산 기슭에 안장

1970년 4월 18일 부여읍 동남리 백마강 기슭에 詩碑를 세움

1975년 『신동엽 전집』이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되었으나 내용이 긴급조치9호 위반이라는 이유로 판매금지당함

1979년 유고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발간

1980년 『증보판 신동엽 전집』이 <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됨

1982년 유족과 <창작과비평사>가 공동으로 '신동엽 창작기금'을 제정, 첫 지원대상자로 소설가 이문구가 선정된 이후 2002년 현재 20회(수상자 시인. 최종천)에 이름

1985년 5월 유족과 문인들에 의해 '신동엽 생가' 복원

1988년 미발표 시집『꽃같이 그대 쓰러진』, 미발표 시집『젊은 시인의 사랑』이 실천문학사에서 간행

1989년 시 <산에 언덕에>가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

1993년 11월 20일 부여읍 능산리 왕릉 앞 산으로 이장



2. 감성을 자극하는 글귀

6-당신의 입술에선 쓰디쓴 풀 맛 샘솟더군요. 잊지 못하겠어요. / 당신은 가슴으로 날 불렀죠. 바다 언덕으로 나가고 싶어요. / 우리가 포옹턴 하늘에 솟은 바위, 그 밑에 깔린 구름 불 달은 바위 위에서 웃으며 잠들던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던 당신의 붉은 몸.

9-간밤에 밟히워 간 가난한 목숨들의 명복을 위하여, 지금 어디선가 아우성치고 있을 못된 아귀들의 진혼을 위하여, 그리고는 내일날 태양빛 찬란히빛나 있을 사형 집행장, 꽃바람 부는 교외, 잔디밭 언덕으로 끌려나갈 아름다운 인류들의 눈물을 위하여.

13-내 고향에 피는 꽃은 무슨 꽃일까. 봄, 갈, 여름, 내 생지에 펴나는 꽃은 무슨 꽃일까, 두견이, 패랭이, 들국?

20-흙에서 나와
흙에로 돌아가며,
영원회귀 운운 이야기는 없어도
햇빛을 서로 누려 번갈아 태어나고,
자넨 저만큼,
이낸 이만큼,
서로 이물을 두고
따 위에 눕고,
사람과 사람과의
중복됨이 없이.
흙속서 솟아
흙에로 흩어져 돌아갔을,

23-하여 하늘을 흐르는 날새처럼
한 세상 한 바람 한 햇빛 속에,
만 가지와 만 모래를 한 가지로 흐르게 하라.

47-이는 다만 또 다음 빙하기를 만몰래 예약해둔 뱀과 사람과의 아름다운 인연을 뜻함일지니라.

49-사월 십구일, 그것은 우리들의 조상이 우랄고원에서 풀을 뜯으며 양달진 동남아 고흔 반도에 이주 오던 그날부터 삼한으로 백제로 고려로 흐르던 강물, 아름다운 치맛자락 매듭 고흔 희 허리들이줄기가 3*1의 하늘로 솟았다가 또 다시 오늘 우리들의 눈 앞에 솟구쳐오른 아사달 아사녀의 몸부림, 빛나는 앙가슴과 물굽이의 찬란한 반항이었다.

51-온갖 영광은 햇빛과 함께,
소리치다 쓰러져간 어리 전사의
아른다운 손등 위에 퍼부어지어라.

53-노래는 떠 갔네, 깊은 들길
하늘가 사라졌네, 울픈 얼굴
하늘가 사라졌네
스무살 전지에.

54-내 고향은 아니었었네
내 고향은 아니었었네
허구헌 홍시감이 익어나갈 때
빠알간 가랑잎은 날리어 오고.

발부리 닳게 손자욱 부릍도록
등짐으로 넘나들던
저기
저 하늘가.

울고는 아니
허리끈은 졸라도
뒤밀럭,
뒤밀럭
목메인 자갈길에.

내 고향은 아니었었네
그 언젠가
먼산바리 소녀 떡목판 이고 섰던
영 너머 그 떨린 소문 들은 안개 도시.

------눈물론 아니
뱃가죽은 졸라도

열차창(列車窓)
꽃 언덕
목메인 면회길에------

내 고향은 아니었었네
허구헌 아들딸이 불리어 나갈 때
빠알간 가랑잎은 날리어 어고.

발부리 닳게 손자욱 피맺도록
조상들 넘나들던
저기
저 하늘가.
(藥業新聞, 1961년 10월>

56-아사녀의 울리는 축고
1
줄줄이 살뼈도 흘러나려 내를 이루고 원한은 물레밭을 이랑이뤄 만사꽃을 피웠다.

칠월의 태양과 은나래 짓는 하늘 속으로 진주(眞珠)배기 치마폭 화사히 흩어져 가고 더위에 찌는 황토벌, 전쟁을 불지르고 간 원생림(原生林)에 한가닥 노래 길이 열려 한가한 마차처럼 대륙이 기어오고 있었다.

오월의 숲속과 뻐꾸기 목메인 보리꺼럭 전설(傳說)밭으로.
가슴 뫼로 허리 논으로 마음 벌판으로 장마철 비바람은 흘러나리고.
산골 물소리 만세소리 폭폭이 두 가슴 쥐어 뜯으며 달팽이 장장마다 호미 세 자루 조밥 한 줌 흘려보낸 철도연변 원분(怨墳)은 천만리(千萬里) 멀었다.

구름이 가고 새봄이 와도 허기진 평야, 낙지뿌리 와 닿은 선친들의 움집뜰에 왕조(王朝)적 투가리 떼는 쏟어져 강을 이루고, 바다 밑 용트림 휘올라 어제 우리들의 역사밭을 얼음 꽃피운 억천만 돌창떼 뿌리 세워 하늘로 반란한다.

2
유월의 하늘로 올라 보아라
푸른 가슴 턱 차도록 머리칼 날리며 늘메기 꿀 익는
유월의 산으로 올라 보아라.

유월의 하늘로 올라 보아라
벗겨진 산골짝마다 산 열매 익고
개울 앞마다 머리 반짝이는 빛나는 탄피(彈皮)의 산.
포푸라 늘어진 등성이마다
도마뱀 산동리(山洞里) 끝
유월의 하늘로 올라 보아라.
바위를 굴려 보아라. 십삼도 강산 가는 곳마다 매미 우는 마을. 무너진 토방 멀리 도시로 가는 반질 달은 나무 부리 흰 신작로를 달리어 보아라.

바위를 굴려 보아라. 고초장 땀 흘리던 순이네 북간도. 자운영 독사풀 뜯어 헛간집 이어 온 삼복(三伏), 부대끼며 군침 씰룩이던 황소 혓바닥처럼 검은 진주쌀 핏대 올린 연산군의 자유 많은 연설 소리를 들어 보아라.

유월의 동산으로 올라 보아라.
콩밭마다 딩굴던 향기 진한 대가리.
팔월이 오면 점심 마당 농주(農酒)통,
구슬 뿌리며 역사마다 구멍 뚫려 쏟아져 간 아름다운 얼굴, 북부여(北扶餘)의 가인(佳人)들의 장삼자락 맨 몸을 생각하여 보아라.
유월의 하늘로 올라 보아라.
황진이(黃眞伊) 마당가 살구나무 무르익은 고려당, 놋거울 속을 아침 저녁 드나들었을 눈매 고흔 백제 미인들의.
지금도 비행기를 바라보며 하늘로 가는 길가엔 고개마다 괴나릿봇짐 쇠바퀴 밑으로 쏟아져 간 흰 젖가슴의 물결치는 아우성 소리를 들어 보아라.

3
목메어 휘젔던 울창한 숲은 비 젖은 빛나는 구름 밭에 휘저오르고.
멍석딸기 무덤을 나와 찔레덤풀로 기어들은 발해(渤海)는 바위에서 성긴 숲으로 숲에서 다시 불붙는 태고적 산불로 어울려 목숨과 팔뚝의 불붙는 천지로 타오른 그날 임진난리의 우렁찬 외침을 귀기울여 보아라.
침을 삼키며 싱싱한 하늘로 올라 보아라.
이랑진 빨래터 강마을마다 매듭 고흔 손으로 묻어진 어여쁜 지뢰(地雷)의 얼굴, 신무기(新武器)의 오손도손한 살림살이를 구경하여 보려무나.

유월의 동산으로 올라 보아라.
밀짚모자 깃을 추켜 이마 훔치던 경부선(京釜線) 가로수 총메인 소녀.
참쑥 뭉쳐 꿀꺽이며 압록강으로 제주도로 바다로 골짜기로 반만년 쫓기던 민텅구리 죄 없는 백성들의 터진 맨발을 생각하여 보아라.

귀밑머리 날리며 이월의 동산에 올라 미소짓던 사람아. 다사로와라. 우리들의 전답(田沓)만은 상처 없이 누워있었구나.

하여 목 마치게 바위뿌리 나무등걸 쥐어뜯으며 뱃바닥 얼굴 가슴 닳도록 영웅(英雄)스레 기어오른 산마루턱 턱마다 가슴턱 차이도록 트인 동해,

구름 속 꿈틀거리는 의지 굳은 봉우리마다 아우성 섞인 억천만.
억만년 여름날의 뼛죽 지글거린 하늘 끝 억심을 구가하여 보아라.

<自由文學, 1961년 11월호>


66-아니오
아니오
미워한 적 없어요,
산 마루
투명한 햇빛 쏟아지는데
차마 어둔 생각 했을 리야

아니오
괴뤄한 적 없어요,
능선(陵線) 위
바람 같은 음악 흘러 가는데
뉘라, 색동 눈물 밖으로 쏟았을 리야.

아니오
사랑한 적 없어요,
세계의
지붕 혼자 바람 마시며
차마, 옷 입은 도시계집 사랑했을 리랴.

<시집 阿斯女, 1963년>

67-빛나는 눈동자
너의 눈은
밤 깊은 얼굴 앞에
빛나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검은 바람은
앞서 간 사람들의
쓸쓸한 혼(魂)을
갈가리 찢어
꽃풀무 치어 오고

파도는,
너의 얼굴 위에
너의 어깨 위에 그리고 너의 가슴 위에
마냥 쏟아지고 있었다.

너는 말이 없고,
귀가 없고, 봄(視)도 없이
다만 억천만 쏟아지는 폭동을 헤치며

고고(孤孤)히
눈을 뜨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두운 밤
너의 눈은

세기(世紀)의 대합실 속서
빛나고 있었다.

빌딩마다 폭우가
몰아쳐 덜컹거리고
너를 알아보는 사람은
당세에 하나도 없었다.

그 아름다운,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조용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다만 사랑하는
생각하는, 그 눈은
그 밤의 주검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
자시(子時)다, 새벽이다, 승천(昇天)이다

어제
발버둥하는
수천 수백만의 아우성을 싣고
강물은
슬프게도 흘러갔고야.

세상에 항거함이 없이,
오히려 세상이
너의 위엄 앞에 항거하려 하도록
빛나는 눈동자.
너의 세상을 밟아 디디며
포도알 씹듯 세상을 씹으며
뚜벅뚜벅 혼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눈.
너의 그 눈을 볼 수 있은 건
세상에 나온 나의, 오직 하나
지상(至上)의 보람이었다.

그 눈은
나의 생과 함께
내 열매 속에 살아남았다.

그런 빛을 가지기 위하여
인류는 헤매인 것이다.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몸은 야위었어도
다만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눈물겨운 역사마다 삼켜 견디고
언젠가 또 다시
물결 속 잠기게 될 것을
빤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의.

세속된 표정을
개운히 떨어버린,
승화된 높은 의지의 가운데
빛나고 있는, 눈

산정(山頂)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정신의 눈
깊게. 높게.
땅속서 스며나오듯한
말없는 그 눈빛.

이승을 담아 버린
그리고 이승을 뚫어 버린
오, 인간정신 미(美)의
지고(至高)한 빛.

<시집 아사녀, 1963년>

82-힘이 있거든 그리로 가세요

그렇지요, 좁기 때문이에요. 높아만 지세요, 온 누리 보일거에요. 잡답(雜踏) 속 있으면 보이는 건 그것뿐이예요. 하늘 푸르러도 넌츨 뿌리 속 헤어나기란 두 눈 먼 개미처럼 어려운 일일 거에요.

보세요. 이마끼리 맞부딪다 죽어가는 거야요. 여름날 홍수 쓸려 죄없는 백성들은 발버둥쳐 갔어요. 높아만 보세요, 온 역사 보일 거에요. 이 빠진 고목(古木) 몇 그루 거미집 쳐 있을거구요.

하면 당신 살던 고장은 지저분한 잡초밭, 아랫도리 붙어 살던 쓸쓸한 그늘밭이었음을 눈뜰 거에요.

그렇지요, 좀만 더 높아 보세요. 쏟아지는 햇빛 검깊은 하늘밭 부딪칠거에요. 하면 영(嶺) 너머 들길 보세요. 전혀 잊혀진 그쪽 황무지에서 노래치며 돋아나고 있을 싹수 좋은 둥구나무 세가들을 발견할 거에요. 힘이 있거든 그리로 가세요. 늦지 않아요. 이슬 열린 아직 새벽 벌판이에요.

<서울 日日新聞, 1961년 4월 11일>

100-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134-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는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우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모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 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158-오월의 눈동자

지금 난 너를 보고 있지 않노라.

훈풍 나부끼던 머리칼
오월의 푸라타나스 가로(街路) 저 멀리
두고 온 보리밭 언덕을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아니노라.
바람이 기어드는 가슴
나뭇잎 피는 산등성에 서서
술익는 마당
두고 온 눈동자를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아니노라.
남해바다 멀리
한번도 나의 울 안에
춤춰본 적 없는
푸른 빛 희열에 찬 생의 향기를
그윽한 새 잎에 받들어
나는 지금 마셔 주고 있노라,
온 마음 밭으로 깊이깊이 들여마셔 주고 있는 것이노라.

지금 난 너의 눈동자를 보고 있지 않노라.
지나온 하늘
초록정원(草綠庭園) 딩굴던
태양의 이야기에 귀기을이고 있는 것도 아니노라.
학창시절의 호밀밭 전쟁이 뭉개고 간 꽃잎의 촉촉한 밤하늘을 회상하고 있는 것도 아니노라.
훈풍에 날리던 머리칼
산정(山頂)
온 세계의 아름다웠던
천만가지 머언 오월의 향기를
나의 피알 속에
상기 살아있는 피 한 방울 감격 속에서
이렇게 새 잎 타고 불어오는 바람 언덕에 서서
오늘도 내일도 그제도
머리다발 날리며
마셔보고만 싶었었노라.

3. 내가 저자라면

70년대의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인의 한 사람으로 신동엽을 든다고 한다. 그의 영향은 비단 시단에뿐 아니라 전체 지식인에게, 특히 학생들에게 더욱 컸으며, 웬만큼 교양이 있는 지식인이나 문학에 관심을 가진 학생치고 신동엽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이번 연구원 과정을 통해서 신동엽의 전집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는 들어왔지만, 그것이 지닌 의미와 영향력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시를 읽기 전에 싸이트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간단하게 찾아보았다. 민족의식·역사의식이 강조되어 해석된 글을 보며, 사상에 집중된 딱딱하고 감성이 죽어있는 시가 아닐까, 과연 내가 시놀이에 빠져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으며 책을 읽어 나갔다.

이 책은 1975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미흡한 상태에서나마 독자들의 욕구에 부응하여 간행한 바 있는 책이다. 그 당시 출간 되자마자 곧 판금조치를 당하였고, 이런 경황 중에 시인의 10주기를 앞둔 창비사에서 장편서사시 [금강]을 제외한 서정시들을 모아 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를 출판하였다고 한다.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막바지에 이르렀던 1979년이었지만 다행히 이 선집은 판금조치를 당하지 않고, 독자들의 꾸준한 애호를 받아 민족시로 문학사에 깊이 각인 되었다고 한다. 20주년을 맞아 미발표 유작들을 추가하여 새로운 개정판으로 출판된 책이다.

저자는 민족이 겪어 온 역사적인 비극성을 시의 주제로 삼고 있다. 그의 시 어디서나 아무렇게나 뽑아 보아도, 그의 시가 이 땅에 사는 이들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 앞날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안목에 바탕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품었던 민족의식·역사의식을 관념의 언어로 풀어내기보다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책에서 처음 등장하는 ‘이야기하는 쟁기뿐의 대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저자는 자신의 의식을 ‘사상’이라는 울타리에 가두어놓지 않고, 시대와 시간을 초월하여, 자연, 대지,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참담한 현실을 견디면서 자신의 몸 깊은 곳에서 들끓던 소리들을 토해낸 그의 시들은 어두운 저녁의 기운을 덮어쓴 민족 언어를 넘어, 밝은 햇살의 자신의 소리들로 승화시켰다. 이것은 그의 몸에서 우러나왔기에, 시를 통과하여 탄생한 생명력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한 저자는 자신의 유토피아를 시를 통해 실현하고자 했다. 저자에게 현실세계는 꿈꾸는 세계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평등하고 조화로운 건강한 문화가 꽃피었다고 생각되는 시대는 가고 현재는 분열되고 분업화된 세력이 부패하고 억압하는 세계였다. 저자는 시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되찾고 대지의 순수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복되어야 할 민족적 순수성은 단순히 좋은 세계, 평등한 세계를 위한 선한 회복이 아니라, 뚜렷한 역사의식 속에서 찾았다. ‘동학혁명’을 비롯하여 ‘4*19혁명’등 수많은 역사의 현장, 역사적 사건 또는 역사적 한 시점이 등장하고 있다. 위와 같은 시에대한 신동엽의 철학과 세계관은 그의 평론인 <시인 정신론>에 잘 나타나 있다.

"시란 바로 생명의 발현인 것이다. 시란 우리 인식의 전부이며 세계의 인식의 통일적 표현이며 생명의 침투며 생명의 파괴며 생명의 조직인 것이다. 하여 그것은 항시 보다 광범위한 정신의 집단과 호혜적(互惠的) 통로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철학, 과학, 종교, 예술, 정치, 농사 등 현대에 와서 극분업화된 이러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인식을 전체적으로 한 몸에 구현한 하나의 생명이 있어, 그의 생명으로 털어 놓는 정신어린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가히 우리시대 최고의 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통찰력과 현실의 어려움에 대해 굴하지 않는 정신을 담아 시를 창작 하면서도, 시적 언어는 원시적·원초적인 생명력 있는 몸의 언어로 표현되어진 공존이, 신동엽이라는 시인을 탁월하고 독특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었을 것이다.

이 순간 살아 숨 쉬는 저자를 만났다면, 그의 생생한 모습은 이러했으리라.

빛나는 눈동자
너의 눈은
밤 깊은 얼굴 앞에
빛나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검은 바람은
앞서 간 사람들의
쓸쓸한 혼(魂)을
갈가리 찢어
꽃풀무 치어 오고

파도는,
너의 얼굴 위에
너의 어깨 위에 그리고 너의 가슴 위에
마냥 쏟아지고 있었다.

너는 말이 없고,
귀가 없고, 봄(視)도 없이
다만 억천만 쏟아지는 폭동을 헤치며

고고(孤孤)히
눈을 뜨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두운 밤
너의 눈은

세기(世紀)의 대합실 속서
빛나고 있었다.

빌딩마다 폭우가
몰아쳐 덜컹거리고
너를 알아보는 사람은
당세에 하나도 없었다.

그 아름다운,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조용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다만 사랑하는
생각하는, 그 눈은
그 밤의 주검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
자시(子時)다, 새벽이다, 승천(昇天)이다

어제
발버둥하는
수천 수백만의 아우성을 싣고
강물은
슬프게도 흘러갔고야.

세상에 항거함이 없이,
오히려 세상이
너의 위엄 앞에 항거하려 하도록
빛나는 눈동자.
너의 세상을 밟아 디디며
포도알 씹듯 세상을 씹으며
뚜벅뚜벅 혼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눈.
너의 그 눈을 볼 수 있은 건
세상에 나온 나의, 오직 하나
지상(至上)의 보람이었다.

그 눈은
나의 생과 함께
내 열매 속에 살아남았다.

그런 빛을 가지기 위하여
인류는 헤매인 것이다.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몸은 야위었어도
다만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눈물겨운 역사마다 삼켜 견디고
언젠가 또 다시
물결 속 잠기게 될 것을
빤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의.

세속된 표정을
개운히 떨어버린,
승화된 높은 의지의 가운데
빛나고 있는, 눈

산정(山頂)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정신의 눈
깊게. 높게.
땅속서 스며나오듯한
말없는 그 눈빛.

이승을 담아 버린
그리고 이승을 뚫어 버린
오, 인간정신 미(美)의
지고(至高)한 빛.

<시집 아사녀, 1963년 67P>

IP *.73.2.112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32 『신동엽 전집』을 읽고 file [5] 현운 이희석 2007.10.29 4496
1131 [리뷰027]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 香山 신종윤 2007.10.29 3045
1130 프로스트-그는 나의 생활의 일부 [2] [1] 우제 2007.10.29 2716
1129 [30] 신동엽전집/ 창작과 비평사 써니 2007.10.29 2424
1128 [신동엽전집] 진정 껍데기는 가라 여해 송창용 2007.10.29 2224
1127 [30] 자연 속에서 [걷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4] 校瀞 한정화 2007.10.31 3926
1126 (29) '신동엽 전집'을 읽다. [4] 時田 김도윤 2007.10.29 2574
1125 (30) 프로스트의 자연시 : 일탈의 미학 [2] 박승오 2007.10.29 5785
1124 詩人 신동엽 香仁 이은남 2007.10.29 2726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素賢소현 2007.10.28 2808
1122 신동엽 전집 / 신동엽 호정 2007.10.28 2338
1121 &quot;88만원세대&quot; 승자독식게임의 시대 [5] 김나경 2007.10.28 3785
1120 (29) 호모 루덴스 : 호이징하 [3] 박승오 2007.10.22 2858
1119 [29] [호모 루덴스]- J.호이징하 校瀞 한정화 2007.10.22 2428
1118 『호모 루덴스』를 읽고 [6] [1] 현운 이희석 2007.10.22 2635
1117 [리뷰026] 호모 루덴스, 요한 호이징하 [1] 香山 신종윤 2007.10.22 2293
1116 이외수 &lt;날다타조&gt;2 [1] gina 2007.10.22 2285
1115 이외수 &lt;날다타조&gt; [1] gina 2007.10.22 2345
1114 [독서29]호모 루덴스/호이징하 素田 최영훈 2007.10.22 2247
1113 [29] 호모 루덴스/ 요한 호이징하 [8] [3] 써니 2007.10.22 3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