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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9일 02시 12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저서: 신동엽 전집 창작과 비평사(1980),
저자: 신동엽

1930년: 8월 18일 충청남도 부여읍에서 태어나 식민지 농촌 생활을 경험하면 자람.
1938년 9세: 부여 공립 진죠 소학교에 입학.
1945년 15세: 전주사범입학, 18세때 시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맹휴학에 가담하여 퇴학당함.
1949년 19세: 단국대학교 사학과 입학.
1950년 20세: 육이오가 일어나고 두 달 정도 인민군치하의 부여에서 민청 선전부장을 하다가 12월에 “국민 방위군”에 소집됨.
1951년 21세: 국민 방위군으로 전쟁터에 끌려갔다가 병든 몸으로 귀가, 다시 몸을 회복한 뒤 대전전시연합회에서 계속 공부함. 이 해 가을부터 친구 구상회와 함께 사적지를 찾아다님.
1953년 23세: 대학 졸업하고 돈암동의 헌책방에서 책방일을 돌보다 인병선과 만남.
1957년 27세: 인병선과 결혼.
1959년 29세: 장시 “이야기하는 쟁이꾼의 대지”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 시 ”진달래 산천”, “새로 열리는 땅”등을 발표. 1960년 “학생 혁명 시집”출판, “싱싱한 동지를 위하여” 수록.
1961년 31세: 명성여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침. “시인 정신론” 발표.
1963년 33세: 시집 “아사녀” 출판.
1965년 35세: “삼월”, “초가을” 발표.
1966년 36세: 6월 시극 “그 입술에 패인 그늘” 상영됨, “4월을 갈아 엎은 달”, “ 담배 연기처럼” 발표.

1967년 37세: 1월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시 “껍데기는 가라” 를 발표, 이 시집에는 “원추리”, “그 가을”,” 아니오”등 수록.

1968년 38세: 오페레타 “석가탑” 상연, 6월 김수영 시인이 타계하자 그를 추모하는 조시 “지맥 속의 분수” 발표함. 창작과 비평에 “보리밭”, “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등 발표.
1969년 39세: “ 시인, 가인, 사업가”, “선우휘씨의 홍두깨”발표. 이 해 3월 간암 진단을 받고 4월 7일 서울 동선동 집에서 세상을 떠남.

이후 1975년에 신동엽 시 전집이 출판되지만 군사정권은 이 책을 긴급조치 9호 위반이라는 이유로 판매를 금지했다. 1979년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가 창작과 비평사에서 간행된다. 7월 일본에서 시집이 번역되어 나왔다. 1980년에는 “신동엽 전집”이 다시 출판되고 1982년도에는 “신동엽 창작기금”이 만들어졌다. 1989년부터 중학교 교과서에 “산에 언덕에”가 실리게 되어 누구나 그의 이름과 시를 알게 되었다.


저서: 시인 신동엽 현암사(2005)
저자: 김응교, 인병선 유물 보존, 공개, 고증

김응교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석사 논문 「신동엽 시 연구」를 썼으며, 연세대학교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대학에서 비교문학을 연구하고, 와세다 대학 문학부 객원 교수. 『분단시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한길문학』 신인상을 받았고, 시집 『씨앗p통조림』, 예술문학기행 『천년 동안만』, 장편 실명소설 『조국』, 평론집 『박두진의 상상력 연구』, 『한국시와 사회적 상상력』 등을 냈다.

인병선
신동엽의 부인으로 1935년 평남 용강에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짚풀문화 특별전]을 열었으며 93년에는 [짚풀 생활사 박물관]을 설립했다. 현재 짚풀 생활사 박물관 관장으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저서로는 [짚 문화], [풀 문화]와 시집 [들풀이 되어라], 산문집 [벼랑 끝에 하늘] 등이 있다.

언젠가 짚풀사 박물관의 소개를 본 적이 있는데 인병선이라는 분이 신동엽 시인의 부인이라는 소개가 있었다. 나는 그 때까지 신동엽이란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었다. 솔직히 개그맨 신동엽은 알았어도 시인 신동엽은 처음 접하는 인물이었다. 교과서에서도 배운 적이 없었고 더러 그의 시의 일부를 들었을지는 몰라도 당시 나의 관심사와는 아주 요원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가 쓴 시나 수필을 접하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그의 부인인 인병선 여사와의 편지나 그의 삶의 궤적들은 아주 생생하게 다가온다. 나보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신동엽이란 사람의 시나 그의 사상은 이 시대의 또래의 사람과는 아주 다른 차원으로 탁월한 인물이란 생각이다. 더불어 그의 아내 인병선의 일생 또한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로 경의를 표한다.

[내 마음에 들어 온 글귀들]

(신동엽: 현암사 출판)

그의 시는 조선과 고구려를 넘어 상고시대의 옛날까지 펼쳐내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아주 먼 과거를 ‘그 옛날’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생활 이야기와 함께 극적으로 살려낸다는 점이다. 그의 ‘옛날 이야기’는 단지 과거로 돌아가자는 회고주의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을 여는 옛날’이다. 그의 시는 ‘과거의 읽을 거리’가 아니라 ‘내일을 위한 잠언’이다. 10p

아나키즘이란 어떤 체제나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을 반대하는 사상이다. 개인이 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아나키즘에 찬성한 동엽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어느 한 쪽에 쉽게 찬성할 수 없었다. 31p

모든 권력에 반대하고 ‘중립’에 있기를 바라는 동엽의 소박한 민족주의를 우익이나 좌익 학생 모두 이해할 수 없었다. 34p

전주사범 학생들은 대다수가 농촌 출신의 가난한 수재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몸으로 겪어온 학생들에게 토지 개혁은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해방이 되었는데도 농촌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니 전주 사범 학생들은 토지개혁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35p

배고픔 때문에 날로 먹은 이 게가 뒷날 동엽의 건강을 극도로 악화시키는 디스토마의 원인이 될 줄 상상도 못했다. 41p

만약에 발레리라면 남북이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고 있는 금일의 조선에 생존하여 그의 절친한 가족의 하나가 어느 편한테 희생되었다고 하자. 그래도 발레리는 그러한 난해한 시를 썼을까. “발레리를 읽고” 42p

”능동적 주체란 “결코 협소한 자기 만족적 자아가 아니어야 하며 어디까지나 민족과 인류가 갈망하는 인간 생활의 보다 나은 행복의 지표를 둔 보편적 자아”라고 설명한다. “능동적 주체”라는 개념은 그의 대표적 평론 “시인 정신론”에서 “전경인(全耕人)”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43p

한국 전쟁은 동엽에게 평생 떼어놓을 수 없는 현실적인 태도를 가르쳐 주었다. 이제까지 신동엽의 현실의식에 대한 평가는 사일구 이전에는 추상적이었는데 사일구 이후에 구체화되어 간다는 단순한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한국 전쟁 시기에 그가 썼던 메모와 일기문, 그리고 습작시를 볼 때 그의 역사의식은 이미 한국전쟁 시기에 형성되었으며 이후 부단한 현실 저항의지로 표출되고 있다. 50p

그래 봄 인병선은 서울대 철학과에 합격한다. 인병선은 그 시절을 ‘진학에 대한 기쁨도 새로운 학문에 대한 정열도 나에겐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온통 그에게만 심취해 있었다’ 하고 회고한다. 57p

신동엽의 모든 생활에 인병선에 대한 사랑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엽은 “결코 조국이나 백성이나 박해 받는 사람들이 목숨으로부터 배반하여 도피하지는 말자” 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이 개인적인 사랑을 넘어 인류애에 이르기를 기원하고 있다. 86p

1950년대 초기는 시인 김수영 홀로 외롭게 시대적 비극을 노래했다고들 평론가들은 평하곤한다. 그러다가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김수영의 외침에 여러 시인이 화답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시인이 바로 신동엽과 박봉우다. 111p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김수영은 1연에 대해 “카랑카랑한 여무진 저음에는 대가의 기품이 서려있다” 고 썼다. 2연을 두고는 “그의 고대에의 귀의는 예이츠의 ‘비잔티움’을 연상시키는 어떤 민족의 정신적 박명(薄命) 같은 것을 암시한다. 그러면서도 서정주의 “신라”에의 도피와는 전혀 다른 미애에의 비전과의 연관성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3연의 “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는 통일의 방법에 대한 신동엽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죽산 조봉암이 단지 평화통일을 주장했다고 해서 사형을 당한 것이 불과 이 시가 발표되기 7,8년 전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담론을 시에 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53p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를 발표한 그 해 1967년 12월에는 펜클럽 작가기금 5만원을 받아 전주사범 시절부터 거의 20년 동안 구상해 온 이야기, 그 유명한 “금강”을 쓸 수 있게 된다. 154p

그와 더불어 전후 최고의 시인이라 일컫는 시인 김수영은 신동엽에게 “소월의 정조와 육사의 절규가 함께 있다”는 최고의 찬사를 남겼다. 그렇게 신동엽을 아끼고 칭찬해 마지않던 김수영은 신동엽이 죽기 바로 한 해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때 신동엽은 김수영을 융숭한 조사로 배웅한다.

한반도는 오직 한 사람밖에 없는 어두운 시대의 증인을 잃었다. 그의 죽음은 민족의 손실, 이 손실은 서양의 어느 일개 대통령 입후보자의 죽음보다 앞서 오천만 배는 더 가슴 아픈 손실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인 김수영은 죽지 않았다. 위대한 민족 시인의 영광이 그의 무덤 위에 빛날 날이 머지 않았음을 민족의 알맹이들은 다 알고 있다. 204p

그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비판적 사유를 요구한다. 우리 마음속에 어두운 구름을 “닦아라”고 요구한다. 우리가 가진 무거운 고정관념의 쇠 항아리를 “찢어라”고 권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새로운 눈으로 내일을 볼 것을 신동엽은 요구하고 있다. 205p

(신동엽 전집: 창작과 비평사)

*진달래 산천

………..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엔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조선일보 1959년 3월24일) 8p


*초가을

‘…………..
덜 여문 사람은
익어가는 때
익은 사람은
서러워 하는 때.
……………..(사상계 1965년 10월호) 58p


*담배 연기처럼

들길에 떠 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멀리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한글 문학 1966년 겨울호) 66p


* 종로 오가

이슬비 오는 날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群像)속에서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
그 소년의 등허리선 먼 길 떠나 온 고구마가
흙 묻은 얼굴들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었다.

충청북도 보운 속리산, 아니면
전라남도 해남 땅 어촌 말씨였을까.
나는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섰다.
그러나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동서춘추 1967년 6월호) 69p


* 그 사람에게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 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 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창작과 비평 1968년 여름호) 80p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 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高大문화 1969년 5월) 85p


* 왜 쏘아

눈이 오는 날
소년은 쓰레기 통을 뒤졌다.

바람 부는 밤
만삭의 임부는
철조망 곁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눈이 갠 아침
그 화창하게 맑은 산과 들의
은빛 강산에서
열두살 짜리 소년들은
어제 신문에서 읽은 동화얘길 재잘거리다
저격 받았다.
………………………

왜 쏘아.
그들이 설혹
철조망이 아니라
그대들의 침대 밑까지 기어 들어갔었다 해도,
그들이 맨손인 이상
총은 못 쏜다.

왜 쏘아.
우리가 설혹
쓰레기통이 아니라
그대들의 板子안방을 침범했었다 해도,
우리가 맨손인 이상
총은 못 쏜다.
…………………………111p


수필: 시끄러움 노이로제(1968.1)
………………………..
빛깔이 있는 안경을 쓰면 시끄러운 원색 양철조각들이 조금은 부드럽게 보이기도 하거니와 정 보기 싫은 것이 있다면 눈을 슬그머니 감고 있어도 아무도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니까 이상히 생각할 사람이 없어서 좋다. 349p


수필: 산, 雜記

….내가 지니는 산상에서의 동행 없는 고독(?)은 오히려 孤高의 감정에까지 승화되어 다시없는 자신의 山脈의 心을 타고 발바닥으로 해서 서서히 젖어 올라와 심지를 솟구치게 해 주는 것이다. 이 순간에 느끼는 일종의 法悅! 이 순간에 느끼는 하늘 뚫을 듯한 의지의 고양, 경건으로 통하는 옷깃을 여미고 싶어지는 숙연한 마음. 이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산을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351p


斷想抄354p

▲오늘의 시인들은 오늘의 강산을 헤매면서 오늘의 내면을 직관해야 한다.

▲凡人의 情은 그 구성된 물질 밀도가 물 사마귀같이 딱딱하다. 그가 가는 곳 어디든지 탈이 생기고 그가 뜬 자리 언제나 상흔이 남는다.

▲금욕 수도자의 문장, 평탄하고 말이 적다. 애인을 가지고 있는 수도자의 문장, 정력적이고 말이 많다.

▲인간에 충실하려는 사람은 체계를 싫어한다. 체계란 철갑 옷이다. 354p~358p


* 시인 정신론

문명인의 고향은 대지가 아니다. 그들의 출생은 허공 속에서 始終했다. 전복 등에 소라가 붙고 소라 등엔 더 작은 조개가 붙어 모르는 동안 행복하게 살아가듯 그들이 호적은 7천년 축적된 조형 문화적 부피와 인간 상호관계의 허구스런 언어계층 위에 기록되어 오고 있다. 365p

시란 바로 생명의 발현인 것이다. 시란 우리 인식의 전부이며 세계 인식의 통일적 표현이며 생명의 침투며 생명의 파괴며 생명의 조직인 것이다. 하여 그것은 항시 보다 광범위한 정신의 집단과 호혜적 통로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하나의 시가 논의될 때 무엇보다도 먼저 그것을 이야기 해 놓은 그 시인의 인간 정신도와 시인혼이 문제 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철학, 고학, 종교, 예술, 정치, 농사 등 현대에 와서 극분업화된 이러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인식을 전체적으로 한 몸에 구현한 하나의 생명이 있어 그의 생명으로 털어놓는 정신 어린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가히 우리시대 최고의 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이란 원초적, 歸數性的 바로 그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시는 궁극에 가서 종교가 될 것이라고. 철학, 종교, 시는 궁극에 가서 하나가 되어있을 것이다. 370p


-공예품 같은 현대시-

아랫배 근처가 아니면 가슴 근처가 막혀있는 시인들이 있다. 고추장은 좋지만 버터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는 기독교는 좋지만 불교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등등. “그러나 그 장벽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혁명을 치르지 않는 한 그 시인의 小乘性은 거기 굳어버린다” 이들은 대개 영탄조의 회고취미에 빠져있다. 381p

시에서의 피나는 노력과 고심이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기교나 수사법을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높은 경지에 이르려는 精神人의 구도적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자기에의 內察, 이웃에의 연민, 공동언어를 쓰고 있는 조국에의 대승적 관심, 나아가서 태양의 아들로서의 인류에의 연민을 실감해봄이 없이 시인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중앙일보 1967, 7,19)

다방이나 대학 연구실이나 중앙 도시의 빌딩만이 우리 조국의 현실일 수는 없다. 총 인구 가운데 7할을 차지하고 있는 굶주리고 헐벗고 학대 받고 있는 농어촌은 그럼 누구의 현실이란 말인가. (중앙일보 1967, 8)

(김수영) 그가 어느 날 대포집에서 한 말을 잊지 못한다.
“신형, 사실 말이지 문학하는 우리들이 궁극적으로 무슨 무슨 주의의 노예가 될 순 없는 게 아니겠소?”
(한국일보 1968.6)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문학은 수도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괴로움이요, 영원한 부정이요, 영원한 모색이다.
안이하게, 세계를 두 가지 색깔의 政體싸움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군사학적, 맹목기능학적 고장 난 기계하곤 전혀 인연이 먼 연민과 애정의 세계인 것이다. (월간문학 1969.4)

지금은 싸우는 시대다. 언어가 민족의 꽃이며 그 민족의 공동체적 상황을 역사감각으로 삼수 받은 언어가 즉 시라고 할 때, 오늘처럼 조국과 민족이 그리고 인간이 굶주리고 학대 받고 외침되어 울부짖고 있을 때, 어떻게 해서 찡그림 속의 살 아픈 언어가 아니 나올 수 있을 것인가. (다리. 1971.10)

무서워한다는 건 정치브로커들의 신경과민이거나 守官奴들의 협심증세이다. 동족인의 얼굴이나 문화를 무서워한다면 永世分斷을 원하고 있는 所致다. 국제 정세의 귀결을 기다리자는 것은 미소 양 세력의 처리만 기다리고 우리는 칼 도마 위에 생선처럼 누워 있으라는 말고 같다. 그들 외부 세력을 우리 문화국민이 지성적 운동으로써 좌우할 수 있음을 자신하라. 우리의 의연을 그들 외부에 반영하여 영향을 주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남북 공동으로 선언하라. 그것을 위해 배달 지성의 문화교류회동은 기필코 있어야 할 것이다. (미발표 유고)

[내가 저자라면]

신동엽에 관한 책은 세 권을 읽었다. 첫 번째가 현암사 출판의 노란 책”신동엽”으로 부인인 인병선 여사가 보관하던 유물 사진이 있는 책이다. 시인 신동엽의 성장과정과 인간적인 부분이 잘 묘사되어 있어 “신동엽 전집”을 읽을 때 많이 도움이 되었다. 사진과 그의 친필등은 시인의 곁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한다. 세 번째 책은 “시의 자유정신 김수영, 미래역사의 꿈 신동엽”이란 책으로 두 사람의 일화와 시가 소개 되어져 있었다. 그 시대의 시인으로서 크게 축을 이루었던 두 사람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좋은 책들이다.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는 시인, 누가 하늘을 보았느냐고 절규하는 시인,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장면에서 그의 어린 시절과 청춘, 그리고 젊음과 사랑이 있었고 죽음 또한 존재하고 있다.
문자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살펴 보면 예나 지금이나 그 기본 골격은 변함이 없다. 현재 우리와 가장 가까운 현대사의 질곡을 넘어 온 사람들….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어떻게 살아 남았을까?
내 아버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어릴 적 밥상머리에서 무훈담을 듣곤 했지만 이제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쪼르르 쫓아가서 물을 수 없음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그와 김수영이 대포집에서 나눈 대화는 그들의 진정이 느껴지면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굴레나 이즘따위등이 아주 우습게 느껴진다. 글을 보면 고수가 고수를 알아본다고 서로 인정하는 사이였던 것 같다. 그의 글을 보자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김수영 시인과 대포집에서 한 잔을 하면서 하는 말이다.
“신형, 사실 말이지 문학하는 우리들이 궁극적으로 무슨 무슨 주의의 노예가 될 순 없는 게 아니겠소?”
신동엽은 김수영이 하는 말을 잊지 못한다고 쓰고 있다. 잊지 못한다는 것은 크게 공감했다는 것이고 정말 문학하는 이의 자세라면 당연히 어느 주의자나 무엇 무엇이라고 규정되어지는 것에 손사래를 친다는 것일 것이다. 왜냐? 신동엽의 말을 빌리자면 시인은 일종의 구도자의 길을 걷는 것이며 또한 영원한 자유를 꿈꾸는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아가는 양심의 목소리를 내는 자일 뿐이다. 신동엽은 죽는 날까지 그렇게 살다가 떠났다.

석가탑에서는 아사녀에 대한 애정,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갖는 그 지극한 애정에 전율했다. 사랑이란 감정은 유치하다던가 유전자의 장난이라는 냉소적인 비아냥과는 별도로 막상 그것과 맞닥뜨린 사람에게는 무장한 마음을 단번에 해제시키고 그 아름다움 속으로 걸어가게 만드는 부드러움이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마음 속에 조용히 숨쉬는 정열, 그 원시적인 순수한 사랑을 다시 한번 보듬어 보게 하는 글이었다. 신동엽의 시는 어찌 보면 요즘 글보다 더 관능미가 있다. 읽는 이가 얼굴을 붉힐 만큼 오히려 그 시대의 사랑은 포장되어 있지 않다. 원시적인 관능이라고 한다면 너무 실례일까?

수 많은 시가 있지만 그의 장편시 “금강”은 가슴이 얼어붙는 느낌, 목이 메는 느낌,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는 느낌.. 슬픔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감정이다. 이 시를 읽고 감히 어떤 말로 감동을 표현할 수 있을까. 그저 그 시대에 살았던, 살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일 뿐이다. 우리는 이런 시대를 거쳐왔구나..나의 선조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그저 오늘의 내 속에서 조그맣게 고개를 쳐드는 양심을 인지할 뿐이다.

활자의 위력은 무섭다. 특히 나와 같은 감성적인 이들에게는 논리보다 이런 시 하나가 더욱 몸 속에 각인이 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80년대 학교를 다녔음에도 나는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세월을 보냈다. 만약 그 때 내가 상황인식을 제대로 했더라면 오늘의 나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어떤 면에서는 다행이고 또 불행이다. 한번도 시대의 아픔에 뛰어든 적이 없었다. 그저 배고프지 않고 남에게 손 빌리지 않는 삶을 꿈꿔왔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란 없다. 나는 그런 면에서 내가 사는 나라와 사람에 대해 갚아야 할 것이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다.

신동엽의 시와 글을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역사의식, 민족주의, 지식인의 행동하는 양심. 자신의 자그마한 자족. 그들의 인생. 그 여자의 삶…

“자기에의 內察, 이웃에의 연민, 공동언어를 쓰고 있는 조국에의 대승적 관심, 나아가서 태양의 아들로서의 인류에의 연민을 실감해봄이 없이 시인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문학은 수도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괴로움이요, 영원한 부정이요, 영원한 모색이다.”

쩌렁쩌렁 내지르는 소리로 느껴진다. 정말 제대로 잘 살아야겠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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